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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徽省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보주시(亳州市), 말로만 들어오던 보주(亳州)를 2009년 8월 7일에 갔다가
하루를 유하고 8일 合肥고 돌아 왔다. 사실 보주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더 감애가 컸다.
보주(亳州)는 3천 여년의 긴 역사를 가졌다니 참 대단한 곳 보주(亳州)였다.
보주(亳州)는 한국말로는"박주"이다. "보주" 는 560만이 넘는 인구에 8394평방키로미터로 3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고, 亳州市中心 인구는 30만이 좀 넘는다고 한다.
亳州市 정부의 안내로 중의(한방)약제시장을 참관하면서 큰 감동을 받는데, 이 약 료가 韓國으로도 대거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한 크기의 시장 입구에는 화타(華佗)의 동상이 있고, 옛 모습 그대로 멋진 조각건물, 그
대문이 참으로 큰 인상적이 었다. 그 시장은 2층으로 되어져 있었고, 그 종류 역시 상상을 초월한 수 많은 종류의
한방 약제들이 전시 되어 찾아 오는 사람들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 수많은 인파들의 속을 뚫고, 아니 어렵게 왔는데 자세히 구경을 하고 싶은데, 다음 장소로 가야 된단다.
옆에서 아내가 말한다, 다음에 우리 다시 시간을 내어 오자고 한다. 그런데 이번 돌아 가면 언제 다시 보주(亳州)를
온다는 기약은 없는데, 정말 이렇게 안내를 받으면서 찾아간 곳은"조조"(曹操)가 군사 이동을 위하여 만들었다는
"군사이동굴" 참으로 할 말을 잃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물! 와! 정말 이곳 보주(亳州)를 향하여 달려 올
때 이미 부부는 대단한 중원의 땅을 실감 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출퇴근 길 산하나 없는 들판에 合肥市를 대하는 나의 감동은 하루에도 몇번식 이 땅을 어이구 이 땅을 하며
감탄할 때가 수십번, 合肥市 경제기술개발구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올라 서면서 480키로 보주(亳州)톨게이트
까지 말이다.
보통 속도를 보니140~160으로 달리고 있었고, 광활 땅에 어찌 산 하나 없이 다 옥수수 혹은 콩밭으로 펼처져 있단
말인가? 이런 큰 들판 중원을 차지 하기 위한 적의 공격도 무지 했겠지만 이 땅을 지키기 위한 그 힘이 더 위대하게
생각 되는 순간 이었다.
그 사람"조조"(曹操)였다.
亳州의 사람으로 자신의 고향이자 자기의 땅을 아니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그 흔적을 볼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군사이동굴" 말이다. 10키로의 지하 군사이동로(길)중 1키로를 개발 보수하여 관광지로 삼고 있는 그 지하길을 참관
했는데, 그 지하 통로를 통하여 군인을 이동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모든 물품(곡물)등을 운송하는 통로 로도 활용
되었고, 적이 침입을 했다면 그 통로에 또 비상으로 숨어 들어온 적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아울러 물, 그리고 휴식 등 다양한 코스로 더우기 어느곳에서는 구부리고 어느곳에서는 서서 단 1명이 걸어갈 수 있
는 폭으로 말이다. 결코 둘이 같이 갈 수 없고 엉덩이를 보고 따라 갈 수 있게 끔 되어 있었다.
더욱이 많은 군사를 이동할 때는 군인의 복장을 다 각각 다르게 했다고 한다.
그럼 사진으로 한번 보면서 감상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보주(亳州) 한번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동기는 바로"한방을 이용한 마취로 내과수술을 성공한 화타(華佗)
의 고향, 세계 최초의 한방마취로 수술을 성공한 인물의 고향이자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의 고향이기도 하니 더
마음에 그리고 있던 보주(박주亳州)였다./
정말 넓고 광활한 땅! 공물자원 많은 땅이지만 위로는 넓고 광활한 땅에 펼쳐진 옥수수 그리고 콩밭들~~!
그 땅을 파면 어디서 무엇이 나올지 예측 할 수 없는 보물의 땅! 오! 이런땅 왜, 한국에는 없을까?
파면 어떤 자원이 나올지! 하하하~!
역시 이러한 땅을 부부가 같이 밟으면서 같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짐에 기쁘게 생각한다.
보주시정부 옆에 있는 4성급호텔 10층에서
제일 오래되었고 또 호텔이 하나 밖에 없단다.
우리가 안내를 받고 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곳 보주(亳州)경제개발구에서 나온 "이"부주임이 우리를
계속 안내를 하여 주시는데 넘 친절했으며, 틈틈히 대화속에 보주의 날씨를 묻자 여름에 최고온도가 35도를 넘
않고 겨울도 짧게 지나가는데 7~8도가 최고 온도라고 한다.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도착한 곳은 옛날에 조조(曹操)가 군사들을 이동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지하통로 였다.
이곳보주(亳州)는 조조(曹操)의 고향이란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데, 지하통로의 총 길이는 10km로 그중 1km를 발굴보수를 하였는데,
오늘 그 부분을 직접 걸어보면서 그때의 감정을 느끼자고 한다. 참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벽돌한장 한장 쌓은
정성은 만리장성보다 더 정성과 공을 드린 느낌이 왔다, 땅속에서 어떻게~한 사람이 바듯 걸어서 또는 구부리고
지날 수 있는 통로, 게다가 환풍을 우한 치밀한 계획과 물 샘물이 있고, 또 혹시 모르는 누수로 나오게 될 물을 처
리하는 방법, 이동중 적이 침입을 받았을 때 통로 한쪽으로 숨어 적의 목을 벨수있는 그런 함정과 또 발거리 하하
정말 넘 고차원적인 방법의 지하 통로를 내려가 보세!
감탄 스럽지 아니한가?
뒷쪽은 미 발굴 직역으로 벽돌로 가려 놓고 있었다.
특히 여기에 사용된 벼돌들은 우리가 먹는 참쌀을 썪어 만들어진 일명 참쌀 벽돌이라니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 38선 중부전선에 북이판 땅굴을 본적이 있는데, 참으로 숱한 세월이 흘러간 먼 옛날 삼국시절에
이 땅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이동 통로를 만들고, 또 이 통로를 통하여 군인뿐 아니라 중요한 전달사항 및 곡식도
나르는 통로로 사용 했으며, 특히 많은 군사를 훈련해 이동을 시킬때는 같은 색의 옷을 입히지 아니 했단다.
설 수 있는 통로이다.
이렇게 어느곳에서는 2층으로 되어 휴식과 함께 교육을 할 수 있는 자리로도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가 봐도 지하 통로를 구비리고 또 서서 바듯 한 사람이 지나는 통로에 아직 발굴 작업을 마치지 아니한 통로
를 막아 놓은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으니 아지 발국보수를 하지 못한 9km를 생각하니 입이 다물어 지지 않
았다. 역시 삼국지에서 읽게는 되는 부분이지만 曹操의 그 멋진 순발력과 군사를 통솔 다스리는 멋! 하여 그를
추종하고 좋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역시 실제의 현장을 보니 정말 존경 그럽게 느낌이 왔다.
나와서 사진을 한장 부부가 찍었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나오는 것인지!
들어 가는 곳인지 알 수 가 없어!
아러한 곳에서 부부가 같이 사진한장 기념으로 찍는것은 당연 비가 와도 어서 찍세!
이 두자의 글씨는 조조(曹操)가 쓴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과 행동 등을 표현한 글구 란다.
이곳으로 나왔는데
일차 나오는 출구라고 하는데, 들어가는 곳 같으기도 하다.
사람을 세워 놓고 선자리를 파라! 방카식으로 했다가 그 통로를 이렇게 참쌀벽으로 쌓고 흙을 덮었을까? 어떻게
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좀더 있다면 화타(華佗)의 생가도 가보고 싶었다.
09-08-10 志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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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마디로 사람의 힘 무섭다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