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688 - 여행
여행은 늘 필자를 겸허하게 한다. 자신의 현 위치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미루어 왔다. 14년 만에 만난 엘에이(L.A.)는 더 말끔해 보였다. 인구도, 후리웨이도, 자동차들도 많아져 보였다. 24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엘에이 근처 규모가 크고 안정되어 보이는 애너하임 한인교회 목사님으로 봉직하고 있었다. 친구와 그의 부인과 나는 총각 시절의 직장동료였다. 같은 학교에서 그는 교목으로 있었고 그의 부인은 나와 같은 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했다. 같이 근무한 시간은 짧았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추억을 공유했다. 이번 여행은 이들이 초청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서부지역 기독교 문협의 세미나 강연 및 연주 초청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여러 문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과 즐거운 대화도 나누었다. 엘에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자동차 여행 중 원로 평론가 최금산 선생님 댁에서의 하룻밤도 깊은 기억으로 남는다. 며칠 동안 차를 빌려 혼자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흑인 동네에서 헤맸던 기억이 아마 가장 인상에 남을 듯하지만, 무엇보다 깊은 인상으로 필자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미국에 오래 산 교포일수록,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언어습관을 지녔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하고 시작하는 문장 속에는 은밀히 조국을 비하하는 어조가 들어있는 듯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백인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반박하고 싶었지만, 혹시 열등감으로 읽혀질까 해서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어법도 은밀히 감추어진 일종의 열등감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아직 어느 유색인종이든 미국에서는 무늬는 좋을지 모르나 여전히 소외그룹이다. 밤이면 텅 비는 세계적 대도시! 불안해서 거리를 맘대로 걸을 수 없는 곳. 그래도 물론 미국은 한국보다 살기 좋은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의 돈의 가치가 내 조국보다 높아 보였다. 한국에서의 만원과 그곳에서의 10달러의 가치는 엄청 다르게 느껴졌다. 맑은 공기와 방대한 땅. 그리고 풍요로움, 갑자기 내 조국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럴수록 내 조국에 대한 가슴 저린 사랑이 타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쇼날리즘일지도 모른다.
말리브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칠레 출신의 연극배우, 그와 난 같이 태닝을 하면서 서툰 말로 대화를 했다. 그가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의 잘생긴 외모라기보다는 썬텐을 하면서 읽고 있던 책이 세익스피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은 침착했고 지적으로 느껴졌다. 돈 한 푼 안 내고 그림 같은 해변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부러웠다. 광대하게 펼쳐진 해변들도 영화처럼 아름다웠지만, 가슴 깊이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행은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엘에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길은 1번 해안도로가 가장 아름답지만 길이 위험하고 길이도 길다. 물론 필자는 이 길로 달려보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101번 후리웨이를 달렸다. 거대한 땅덩어리의 미국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길, 우리나라처럼 속도제한 카메라가 있진 않았지만, 위성으로 속도위반을 단속(?)한다는 나라, 내가 운전대를 잡은 도요타 승용차는 비교적 핸들이 가벼웠지만, 연료가 적게 드는 경제성으로 이미 미국을 정복한 듯했다. 거리마다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일본제 도요타. 이미 엘에이는 도요타 왕국처럼 느껴졌다. 세계적 명차인 포르세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웬만한 차들은 눈에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웬만한 명차들이 거의 한국에 수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볼보, 벤츠, 등등. 이는 필자가 특별히 자동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지금도 늙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젊어서 한동안 오토바이에 몰두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가지 종류의 운전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다. 사실은 모터싸이클에서 내린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하레이데이븐슨’이라는 미국의 명품 모터싸이클을 빌려 후리웨이를 달려보고 싶었다. 한국에선 모터싸이클로 달려볼 수 없는 고속도로, 하지만 모터싸이클은 오랜 기간은 빌려주지 않고 당일에 한해 렌트 해준다고 했고, 가격도 자동차 렌트비 보다 비쌌다. 그리고 지인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저녁 초대를 해준 재미 시인의 큰아들이 모터사이클을 가지고 있었고 그날 함께 초대되어 온 아들의 친구가 하레이데이븐슨을 타고 왔다. 평소부터 관심이 있었던 필자는 그 모터싸이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포 2세였기 때문에 필자는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어린애처럼 나의 이번에 새로 만들어 간 국제 운전 면허증을 보여주며 어떤 종류의 모터싸이클도 운전할 수 있는 나의 자격을 자랑했다. 그들도 좀 놀라면서 관심을 보여주었지만. 막상 나는 그에게 모터싸이클을 좀 빌려줄 수 있냐고 부탁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그도 그 모터싸이클을 아주 아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달 째 인천 국제공항에 꿈처럼 전시 중인 하레이데이븐슨! 우리 돈으로 2800만원이라는 가격이 붙어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가격은 10000달러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약간 웃도는 가격이다. 이 정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카드 할부로 살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리에 세워진 멋진 스포츠카들을 구경하다 스포츠카에조차 우리의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가 장착되었는 것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이 싸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성능도 입증되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져서 마음이 훈훈해 왔다. 그러나 생각했던 만큼 현대나 기아 차들이 잘 눈에 띄지 않아 섭섭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직 필자는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스피드와 자동차와 모터싸이클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떠 오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 놓고 구입할 능력은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꿈결처럼 순간 속도 200km를 넘어서서 달리던 시절이 가슴을 뎁혀 놓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렇게 세속적 관심이 많은 필자가 좋은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자괴감이 슬그머니 온몸에 감겨왔다. (2005년)
그때 / 허수경
알 수 없는 거리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총을 들고 아이는 군복을 입고
주머니에 박하사탕을 한 움큼 넣어달라고 했다
알 수 없는 거리에서 자라난 아이가
해를 고요하게 넘겨받는 하늘이
저쪽에 있듯 자명하게 꿈으로 들어왔다
지진으로 사라진 도시를 추억하거나
이제는 방문할 수 없는 전쟁 속의 도시를 추억하며
오래 도서관에서 서성인 날
오래된 쐐기문서에 씌어진 양과 수확량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총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아이
우리들이 그리워한 세계의 얼굴이 저 멀리에서
마치 불타는 뉴질랜드 숲의 동물들처럼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때
이 밤 어느 곳에서는 비행기가 날고 거리에는
아직 제가 태아난 곳을 잊지 못하는 아이들
모닥불을 피우며 양고기를 굽는
아직 피 묻은 손으로 양고기를 들썩이는 노인들을 위하여
아직 아무도 관을 준비하지 않은 그때
머리에 가득 얼굴을 열고 다니는 여자들
여자처럼 생긴 남자들은 울면서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그때
영변, 갈잎 / 허수경
극우주의자들이 다니던 술집에
새 신전이 세워지던 날
옛 신전 속에서 술을 나르던 신들이
일제히 사라지던 날
마치 도륙이 시작되던 어느 도시의
새벽녘처럼 그렇게
삼엄하게 해가 떠오르던 날
말을 잃은 사제가 혀를 들고
거리의 쓰레기 곁에서 울던 날
평안하게 태어나는 아가야
울지 말고 울지 말고
영변과 어미 누이
갈잎에 지던 물소리 제 살을 여는
빛을 들으라
이마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먹어라
붉은 후추나무 / 허수경
유프라테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를 구워 파는 식당
식당 뜨락에 서 있는 붉은 후추나무
구운 물고기 위에 있는 붉은 후추알
영상 46도
물고기 눈은 이미 검은데
아직 불에 구워지지 않은
붉은 후추알
사막의 바람이 지는 자리
이 지나간 자리에
얼굴에 칼자욱이 선명한 노인이
아직도 불을 지피고 물고기를 굽는 식당 뜨락
붉은 후추알을 달고 나무 하나 저무는데
그 너머 망한 도시 하나 모래 속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