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탄생하면서, 자본가가 주장하는 희소성의 법칙은 거짓말이다. 우리가 그 동안 소비했던 수 많은 상품은 절대적으로 희소성의 법칙과는 상관없이 팔려나갔다. 희소성의 법칙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와 부족들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대부분의 재료를 자급자족에 의지했는데, 그 중에 특별하고 희귀한 물건들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에 겨우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예를들면, 실크로드를 통해서.
근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형성될 때, 유럽의 각국들이 제 3세계로부터 강탈해 온 것들은 보통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일상용품이 아니었다. 금은,커피 등 기호식품, 비단 등 사치품, 향료등 조미료....이런 것들은 일반 인민들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것들이었다.
그런 물건들은 경제학 원론에서 이야기 했던 희소성의 법칙에 틀림없이 들어 맞는 거였다.이렇듯, 세계무역은, 각국의 생존을 위한 보통을 물건 보다도 특별한 계층을 위한 특별한 물건을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다.자본주의 생산 기술이 발달하여, 그 희소성의 물건들이 보통의 인민들의 필수품으로 만들어 졌을 뿐이다.
인민들은 과거에는 전혀 필요도 없었던 새로운 상품이 현재는 필수품으로 착각을 하여 기회비용의 약삭 빠른 머리를 굴려 구매할 뿐이다.
박정희 시대, 빈농의 아들들이 생존을 위해 도시로 나와 공돌이 공순이가 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박정희 산업화 시대에 프롤레타리아들이 탄생하였다.
영국의 경우에는, 프랑스 프로랑스 지방의 양모산업에 양모를 공급하기 위해, 영국의 시골 영주가 자신들의 장원에서 농노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최소한의 토지였던 공유지에 말뚝을 박아 양을 키우기 시작했고, 농노들은 전국들 떠돌아 다니는 부랑자가 되었다. 공유지를 파괴한 엔크로져 운동이 일어났던 16세기 이후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까지의 영국에서는,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이른 바 농노 출신의 부랑자 떼거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른바, 자본주의 탄생의 또 한가지 원인 엔크로저 운동이다.
시골영주들 입장에서는 비록 양을 치게 되어 그들의 경제적 지위는 획들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장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동력은 필요했다. 그리고 시골교구를 운영해야 했던 캐톨릭 사제의 입장에서도 교구를 유지할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했고, 영국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중앙집권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도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여 수용할수 있는 최소한의 수용시설이 필요했다.
왕과 영주와 신부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왔고, 그들은 부랑자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현대 유럽 사회복지법의 효시가 되었다는 거짓말이 된, 구민법 빈민법등을 만든 것이다. 그런 합의 과정이 민주주의의 효시가 된 의회다. 영주와 왕과 카톨릭 사제의 합의 과정이다.
그후, 프랑스에 양모로서 원료를 공급하다가 그 마저 여의치 않았던 영국이 막대하게 증가한 양모를 스스로 처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것을 한번에 해결 할 수 있었던 것이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이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이 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수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곳에 그들의 공유지에 쫒겨난 부랑자들이 노동력을 공급했고, 각지에 세워졌던 그들의 수용시설이 도시로 몰리게 되었다. 부랑자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요소 프롤레타리아다. 드디어, 상품 생산의 한 단위로만 존재했던 새로운 형태의 인간형인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그 인간형은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존재였다. 그들의 노동력의 크기는 상품을 판 돈으로 환산이 되었다. 전통사회에서의 노동은 단 한 차례도 돈으로 환산되어 진 적이 없었다. 노동이 상품 생산의 단위로 전락한 적도 없었다.
칼 맑스의 자본론은 그래서 쓰여졌다.프롤레타리아의 탄생은 유럽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자본주의 형성의 조건, 희소성의 법칙을 갖추어주기 위해 그들이 노략질 했던 특별한 물건이었던 기호식품과 향료등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상품생산을 위한 플렌테이션 농업을 한, 제 3세계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그곳의 노동력을 현지에서 구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돈으로 유혹했으나, 돈이라는 개념에 생소했던 그들에게는 플렌테이션 농장의 노동자로서의 노동은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고심끝에 유럽인들은 그들의 생활양식을 뒤집는 방법을 쓰게 되었다.
드디어 원주민들은, 스스로 자급자족했던 전통의 경제적 시스템을 버리고, 유럽인들의 상품 생산을 위해 그들의 농장에서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아 그들이 일용할 생활 필수품들을 유럽인들을 통해 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프롤레타리아는 이렇게 전 세계에서 나타난 것이다.
농노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임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는 보조금을 지불했고, 자본가는 보조금을 핑계로 임금을 더욱 낮추었고, 노동자는 더욱 낮아진 임금을 받기 보다, 차라리 최저 생계비라도 받을 수 있는 실직을 택했다. 이것이 스피넘 랜드법이다.
스피넘랜드법은 최악의 실패한 법이 되고 말았다. 역시 사회복지법의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그후, 프롤레타리아는, 기계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챠티스트 운동 등을 통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유럽국가들의 복지제도는 완성이 되어갔고, 현재진행형이다.
19 세기는 유럽의 자본주의가 완성되면서, 자국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시기였다.
18 세기 까지 유럽은 민족과 영토문제로 헤아릴수 없는 전쟁을 했다. 그런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19세기 유럽은 워터루 전쟁 말고는 전쟁이 없었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급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의 자본주의 문제는 각국간의 문제로 터지고 그것이 전쟁이 되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벌어졌던 어떤 전쟁보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1, 2 차 세계대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