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 속에 둘러싸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인왕산의 커다란 암벽은 그 주변을 점잖게 내려보며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다. 조선조 오백여년을 이어온 경복궁과 그 경복궁을 서쪽에서 감싸 안 듯 호위하고 있는 인왕산은 아직도 건재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용길은 자신의 작품 [서울-인왕산]에서 인왕산과 그 주변의 풍광을 현재 진행형으로 커다란 화면에 담백하고 산뜻하게 담아냈다.
인왕산은 높이가 338m로 야트막하지만 조선의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에 두고 동쪽의 낙산과 함께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며 서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산의 모습 또한 바위가 많고 험준해 조선시대 이래 많은 화가들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오용길의 작품 [서울-인왕산]을 보고 정선의 [인왕제색(仁王霽色)]을 떠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정선은 [인왕제색(仁王霽色)]을 산 아래쪽인 청운동 쪽에서 올려다보며 그렸다. 당시의 기법으로 높은 산세를 가장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산 아래 자락에서 올려다보며 그리는 고원법(高遠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용길은 [서울-인왕산]을 좀 더 멀찍이 떨어진 높은 빌딩에 올라 조망하듯 인왕산과 그 주변의 풍경을 그려내, 정선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먼저 작가는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인왕산을 원경에 배치하고, 그 아래로 우거진 숲과 빌딩, 가장 앞쪽으로 경복궁과 그 앞뜰을 배치하였다. 인왕산의 커다란 바위는 먹을 칠하지 않음으로 바위의 괴량감을 돋보이게 하였으며,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숲은 물을 듬뿍 머금은 수묵으로 형태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그려내고 있어 아마도 봄비가 내리고 난 후 습기를 머금은 숲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색색의 빌딩들은 비가 개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위쪽의 습기를 머금은 수묵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빌딩 아래편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을 생략하고, 경복궁 경내와 함께 여백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수묵으로 그려진 인왕산 때문에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화면에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려는 작가의 배려라고 보여 진다. 하지만 배려에 그치지 않고 흥례문 앞에 몇 명의 사람을 그려 넣어 경복궁이 현재와 단절된 과거의 것이 아닌, 현대인들 속에서 함께 교감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다.
오용길의 작품은 산뜻하다. 수묵의 중후한 맛과 수채화 같은 맑은 신선미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의 농담과 필치의 속도감, 다양한 채색의 활용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감각이 전통산수의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아쉽게도 그가 올랐던 빌딩은 없어졌지만, 4m가 넘는 커다란 화폭에 펼쳐지는 서울의 진경을 보는 것으로도 그 이상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용길 吳龍吉 (1946 ~ )
오용길은 1946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두 번의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으며 주로 선유도, 쌍계사 등 전국의 명승지를 답사하며 실경을 그려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연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자연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채묵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은 서양회화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먹의 자유분방함과 함께 화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첫댓글 좋은 작품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정말 귀한 작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