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개띠 해 자료
개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되었다. 한자어로는 견(犬) 이외에 구(狗)·술(戌) 등으로 표기된다. 기(猉)·교(狡) 등은 작은 개를 뜻한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주둥이가 뾰족하여 사냥을 잘하는 사냥개를 전견(田犬), 주둥이가 짧고 잘 짖어서 집을 지키는 개를 폐견(吠犬), 살이 많아 잡아먹기에 알맞은 개를 식견(食犬) 등으로 불렀다. 개는 용도에 따라서 사냥용·경주용·투견용·군견용·경찰견용·목양용·애완용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많은 품종들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있다.
개는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로, 조상은 이리·자칼 등이라고 하며,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dingo: 늑대보다 약간 작은 야생동물)나 서남아시아에 반야생 상태로 서식하다가 멸종된 야생종 중에서 생긴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야생종이 세계의 몇 개 지역에서 가축화되어 그들 사이의 선택·교배에 의하여 현재와 같이 약 2백여 품종이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에 의해 순화, 사육되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페르시아 베르트동굴의 것으로 서기전 9500년경으로 추산된다. 서기전 9000년경으로 추산되는 독일 서부의 셍켄베르크 개는 크기와 두개골의 형태가 딩고와 대단히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로서 개의 이빨이 발견된 바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 문헌에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개를 사육하여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신라 지증왕이 개로 인해서 왕비를 구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사육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생태
개는 오랜 세월을 통해서 가축으로 순화되었기 때문에 형태의 변화가 심하고 그 분포도 세계적이다.
품종에 따라서 크기는 매우 다양하여 어깨높이는 8∼90㎝, 몸무게 0.4∼120㎏, 털은 긴 것과 짧은 것이 있고, 빛깔이나 무늬도 다양하다. 꼬리 끝에 흰 무늬, 눈 위에 원형의 담색 무늬, 어깨에 십자형의 짙은 색깔의 무늬 등이 나있는 것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꼬리는 비교적 짧고 몸통길이의 반 이하이며, 여우류와는 달리 굵은 총상(總狀)을 하고 있지 않다. 귓바퀴는 크고 거의 삼각형으로 늘어진 것, 선 것 등이 있으며 앞으로 늘어뜨리면 너구리류와는 달리 눈까지 내려온다. 눈동자는 여우·너구리류와는 달리 원형이다.
입술이 두툼하고 끝이 뾰족하지 않으며 비근부(鼻根部)에서 안간부(眼間部)에 걸쳐 뚜렷한 단(段)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이리와 형태적으로 대단히 흡사하여 양자의 외부형태에 의한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앞발에 다섯 개의 발가락과 뒷발에는 네 개의 발가락이 있어서 지행성(趾行性)이다. 몸통의 피부에는 땀샘이 없기 때문에 호흡으로 체온조절을 한다. 맹장은 있으나 정관선(精管腺)이 없고, 음경의 하면에 구(溝)가 있으며 음경골이 있다.
본래 육식성이었으나 가축화되면서 잡식성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빨은 식육동물처럼 날카롭고 강하나 위·장 등의 소화기관은 초식동물에 가깝다. 이빨은 거의 나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발생, 변화하기 때문에 나이 감정에 이용할 수 있다. 개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미의 젖을 냄새로써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후각이 예민하다.
이와 같이 발달된 후각으로 성별이나 개체 등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범인 추적을 목적으로 하는 경찰견이나 수색견으로도 이용된다. 또한, 청각도 발달되어 있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은 2만의 진동수를 겨우 들을 수 있으나, 개는 10∼70만의 진동수를 들을 수 있고, 소리의 가락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서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잘 볼 수 있고, 움직이는 물체에 예민하게 반응하므로 야행성의 특징을 가지며 경계심이 강하다. 수색견의 경우 흰 손수건은 잘 찾아내지만 다갈색은 쉽게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색깔의 구별능력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야생의 개는 짖지 않으나, 가축화된 개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경계할 때에 짖는다.
보통 길거리에서는 짖지 않으나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문 안에 들어서면 짖게 되고, 또 자기 세력범위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을 보인다. 개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주인이나 자기 집을 찾아오는 귀가능력이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인 진돗개는 그 귀가성이 대단하여 휴전선 부근에서 군용으로 쓰이던 것이 진도까지 되돌아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의 귀가능력은 후각·시각 이상의 특수한 직감에 의한 방향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는 자기를 길러준 주인을 어디든지 따라가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는 성질이 있다. 특히, 주인에게는 충성심을 가지며,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경계심을 갖는다.
야생하는 경우에는 암·수컷이 여러 마리로 집단을 이루기도 하는데, 순위가 정해져 있으며 정해져 있지 않을 때에는 싸워서 우열을 정한다.
임신기간은 62∼68일, 생후 약 1년 후에 번식이 가능하며, 한배에 보통 4∼6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6∼7주간 젖을 먹으나 4주 정도부터 부드러운 먹이나 어미가 토해 낸 반 소화상태의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수명은 보통 12∼16년이나 최고 34년까지 산 기록도 있다. 투견·엽견·경기견 등은 비교적 단명하나 집에서 기르는 개는 20년까지도 산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개는 수렵·목양·경주·수색·애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이외에, 에스키모인·아메리카 인디언·아시아의 동북 및 시베리아의 북부지방 등에서는 썰매를 끄는 데 개가 이용되고, 티베트에서는 짐을 실어 나르는 데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개가죽으로 장구를 만들었고 꼬리로는 비를, 털가죽으로는 방한용 외투와 모자 등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중종 때의 전라감사 정엄(鄭淹)은 통신업무에 토종개를 이용하여 막대한 통신비를 절약했다고 한다.
중국·우리나라 등 동양의 일부에서는 식용으로도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삼복조에는 마늘을 넣고 삶은 개고기를 구장(狗醬)이라 하여 이것을 먹고 땀을 빼면 더위가 가시고 보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병후 회복에 삶은 개를 먹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식용으로는 노란개[黃狗]를 제일로 쳤고 그것도 수컷일수록 보신에 좋다고 여겼다.
황구로 빚은 술을 무술주(戊戌酒)라 하여 공복에 마시면 기력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동의보감』에서도 수캐고기는 오로칠상(五勞七傷)을 보하고 피는 난산, 음경은 상중절양(傷中絶陽)과 음위불기(陰萎不起)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개는 사람에게 충실하고 의리가 있는 가축으로서 우리나라에는 충견설화가 많다.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 신림동의 의구총(義狗塚)과 의구비,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면 토성리와 평양 선교리의 의구총,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의 개탑 등은 화재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의 충직과 의리를 전하고 있다.
1282년(충렬왕 8)에는 개성의 진고개에서 개가 사고무친의 눈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이고 물을 먹여 키웠으므로 이에 관청에서는 개에게 벼슬을 내리고 그 충직함을 기렸다고 한다.
또, 전생에 사람이었던 자가 개로 환생하여 대우를 받으며 산다는 환생설화가 있다. 즉, 옛날 경주고을에 아들 딸 두 자식을 키워 시집·장가 보내느라 먹을 것도 못 먹고 세상구경 한번 못하고 죽은 최씨댁 과부가 개로 환생하여 자식들의 집을 지키며 살았다.
어느날 한 중이 와서 그 개는 바로 당신의 어머니가 환생한 것이니 잘 먹이고 유람을 시켜주라고 하였다. 팔도유람을 마치고 경주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어느 장소에 도달하자 그 개는 발로 땅을 헤치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최씨는 그곳에 개를 묻었는데, 그 무덤의 발복(發福)으로 최씨집이 거부가 되고 자자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하여, 지금도 경주의 최씨들은 그 무덤에 성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우리나라의 개에 관한 설화들을 보면 개를 인간과 상통하는 영감적인 동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개를 영감 있는 동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개가 10년을 넘도록 살면 둔갑을 하는 영물이 된다 하여 늙은 개를 흉물시하고 기피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조들은 개도 상(相)을 보아 선택하였다고 한다. 노란개가 꼬리·귀·네 다리 또는 두 앞발 등이 희면 길상으로, 검은 개로 얼굴·두 앞발·두 귀 등이 희거나 몸 전체가 흑색인 개는 불행을 가져오는 악령을 잘 쫓는 것으로 생각했다.
노란개의 네 다리가 희거나 입 주둥이가 검거나, 또 흰개의 꼬리가 검거나 두 귀가 노랗거나 한 것은 흉상으로 여겼다.
개가 담 위에 올라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그쪽 방향에 있는 집에 큰 흉사가 있을 것으로 알았다. 또, 지붕이나 담 위에 올라가 짖으면 그 집의 주인이 죽는 것으로 알기도 하였다. 개가 앞마당에서 이유없이 짖으면 경사의 조짐으로, 개꼬리에 지푸라기가 묻어 있으면 손님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개가 풀을 뜯어 먹으면 큰 비가 오고, 떼지어 다니며 뒹굴고 기뻐하면 큰 바람이 불어올 징조라고 여겼다 한다.
개와 관련된 우리 나라의 속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본래의 제 천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개 꼬리 삼년 묻어 두어도 황모 못된다.’고 하며, 평소에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할 때에 ‘개가 똥을 마다 한다.’고 한다.
돈을 벌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벌어서 값지게 산다는 뜻으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고 하며, 보통 때에는 흔하던 물건도 필요할 때에 찾으면 드물고 귀하다는 뜻으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것은 아무리 구차하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좋지 못한 사람과 사귀면 결국은 좋지 못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에서 ‘개를 따라가면 칙간으로 간다.’고 한다.
‘개발에 편자’라는 말은 격에 어울리지 않을 때를 일컬으며, ‘개밥에 도토리’는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외톨이로 돌 때에 하는 말이다.
못난 양반을 빗대어 ‘개 팔자 두냥반’이라 하며, 그 밖에도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 ‘개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고기는 언제나 제맛이다.’, ‘개구멍에 망건치기’, ‘개 보름 쇠듯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 ‘개 싸움에 물을 끼얹는다.’, ‘개 잡아먹고 동네 인심 잃고, 닭 잡아먹고 이웃 인심 잃는다.’ 등의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개로서 진돗개와 풍산개·삽사리 등이 있는데, 사냥용·호신용 등으로 개량의 여지가 있는 우수한 품종들이다. 이들은 문화사적으로 귀중한 가축이므로 육성·보호에 힘써야 할 것이다.
2018년의 상징동물은 강아지(개)다.
2018년 무술년 (무술(戊戌)은 육십간지 중 35번째이며. '무'는 황이므로 '노란 개의 해'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약
30년만에 국내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 것.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가 개최되는 해다.
1999년생이 19세를 맞이하여 성인이 되기 시작하는 해다.
1990년대 생 미성년자가 이 해로 막을 내리고, 또한 20세기 마지막 미성년자인
2000년생이 미성년자인 마지막 해다.
이 해부터 고등학교 문과와 이과 구분이 폐지되어 이 때 고등학생이 되는
2002년생들은 문과나 이과 구분없이 모든 학생들이 의무 및 필수적으로 국어, 한국사, 수학, 과학 등을 모두 이수하게 되는 입장이 된다. 그에 맞춰서 통합사회 및 통합과학 과목이 신설되어 모든 고교생이 교육을 받게 된다. 수능과목 적용은
2022학년도 수능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
그 외에도 초등학교에서는 안전 생활이라는 교과가 신설되고
4~500자 정도의 한자가 명시됨에 따라 교과서에서 한자가 병기될 것이라 한다. 또한 실과 과목의 내용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한다. 중학교에서는 정보과목을 필수과목화시키고 고등학교에서는 정보를 일반선택으로 전환시킨다.
또한 고교에서는 '고전과 윤리', '고전 읽기', '영미문학읽기',
'과학사' 등의 신설과목들도 생겨날 예정이라고 한다.
계획대로라면 이 해에 중앙선의 전철화가 완료되고 시종착역이 현재의 경주역에서 신경주역으로 변경된다. 더불어 장항선의 전철화가 완료되며 이에 따라 내구연한이 거의 다한 새마을호가 이 해에 전부 퇴역하고 후계 열차인
ITX-새마을에 완전히 자리를 넘길 예정이다. 서해선도 빠르면
2018년 완공이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볼 때, 2016년 시점으로 향후
10년 동안 2024년과 같이 주말 공휴일이 단 1일 뿐인 해 중 하나이다. 단, 하루 설 뒷날(2월
17일)만이 토요일이다. 이 해 5월 5일은 토요일인 대신 월요일에 대체 휴일이 시행된다. 또한 추석연휴 역시 첫날인 9월 23일이 일요일이라 대체 휴일로 9월
26일 수요일을 쉬게 된다. 덤으로 주말 공휴일이 2일인 해는
2017년, 2019년, 2025년이며, 가장 많은 해는 2021년이다.
대한민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처음으로 감소하는 해이다. 실물경제, 부동산, 주식시장 등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으로 작년보다 1000원 이상 오른 역대 최대 인상폭, 16.4% 오른
IMF 사태 이후 두번째 최대 인상률이다.
43~44여만세대의 아파트가 입주를 앞두고 있으며, 이는 사상 최대이다.
여담으로 어감이 좋지 않은 해라서 자칫하면 욕설로 읽힐 수 있으니 주의하자.
2월 16일부터 무술년이다.
영욕의 58년 개띠 퇴장 , '신인류' 70년 개띠 뜬다
세대교체 본격화.. 58년생 정년퇴직 70년생이 조직 중추 떠올라
자산 축적 은퇴세대 첫 출현.. 사회적 역할 기대, 재교육 필요
[※편집자 주 = 베이비부머 세대의 핵심이면서, 궁핍했던 유년기를 거쳐 '한강의 기적'을 견인한 '58년 개띠'가 올해 환갑을 맞아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반면 교복 자율화 첫 세대이고, 2차 인구 팽창기 중심세대인 '70년 개띠'는 사회 초년병 시절 맞닥뜨린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사회의 든든한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던 '82년 개띠'는 여전히 저임금·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술년(戊戌年) 개띠 해를 맞아 개띠 세대의 치열한 삶을 되돌아보고, '94년 개띠'를 포함해 이들이 남긴 발자취와 인생 여정, 당면 과제, 새해 포부 등을 살펴보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58년 개띠'. 하도 많이 들어 친숙함을 넘어 고유명사처럼 귀에 익은 말이다. 그해 출생한 사람들은 으레 나이를 소개할 때 연도와 띠를 묶어 '특별함'을 부각한다. 그 속에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깔렸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에서 1958년생의 의미는 남다르다. 우선 이들은 1955∼1963년 인구 팽창기를 일컫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핵심이다. 전쟁의 상처가 수습되면서 1958년 출생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 사상 처음 90만명을 넘었다.
급속히 불어난 출생 인구로 인해 학교에는 60∼70명이 바글거리는 '콩나물 교실'이 등장했고, 오전·오후로 교실을 나눠쓰는 '2부제 수업'도 흔했다.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다.
1974년 일명 '뺑뺑이'로 불리는 고교 평준화가 시행돼 시험 없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 세대이면서 역대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 문턱을 밟은 당사자(77학번)이기도 하다.
유신정권 몰락과 5공화국 탄생의 정치 격변기를 경험했고, 사회의 중추역할을 하던 39세 때(1997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거리에 내몰리는 아픔도 맛봤다.
그러나 이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세대로도 평가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초고속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렵잖게 일자리를 구했고, 장사나 사업도 호황을 누려 부(富)를 축적할 기회가 그만큼 많았다.
58년 개띠가 영욕을 함께 누린 세대라면 70년 개띠는 억세게 운이 좋게 학창시절을 지낸 '신인류'다.
우선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경제개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경제부흥기에 태어나 배 곯지 않는 유년기를 보냈다. 2차 베이비붐(1966∼1974년)을 타고 연간 출생인구 100만명을 처음 넘긴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1983년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교복 자율화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유니폼 대신 '개성'의 가치를 확실하게 몸에 익힌 첫 세대다. 대학생 과외 허용과 해외여행 자유화 혜택도 가장 먼저 누렸다. 학생 군사훈련 과목인 교련과 입영훈련 제도가 폐지된 것도 이들부터다.
넓게 보면 '386세대'에 속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학생(89학번)이 돼 이전 학번과 비교하면 화염병과 최루탄이 많이 사라진 캠퍼스에서 낭만과 여유를 누린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 진출과 더불어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는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가 도산하거나 입사가 취소되면서 극심한 취업난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이들 스스로 "우리 역시 부침이 많았던 세대"라고 항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띠동갑인 두 연령대가 경험한 삶은 변화무쌍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펼쳐보는 듯하다. 선배는 '궁핍과 성장'을 몸소 체험했고, 후배는 '풍요와 불안'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58년생 인구는 77만517명, 70년생은 91만9천22명에 이른다. 주목받는 생년(生年)이라서 그런지 이들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결속력도 강하다. 58년생의 경우 전국 모임까지 운영될 정도다.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온 이들이 개띠 해를 맞아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다. 환갑을 맞는 58년생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띠동갑 후배 70년생이 사회의 허리를 맡아가고 있다.
공직사회를 보면 그 변화가 확연하다. 올해 60세를 맞는 58년생은 공로연수나 명예퇴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반면 70년생은 과장·팀장 자리를 꿰차면서 조직 전면에 등장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정년을 맞는 58년생 지방직 공무원은 광역·기초단체를 합쳐 7천650명이다. 재작년과 작년 퇴직한 56·57년생이 각각 4천652명과 5천295명이던 것에 비해 64.4%와 44.5% 많다.
충북도청의 경우 4급 이상 34명, 5급 17명 등 65명의 중견 간부가 무더기로 자리를 비웠다. 이 기관 5급 이상 중견간부가 33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15%가 물갈이되는 셈이다. 대구·경북에서는 무려 719명, 광주·전남도 377명의 58년생이 공직에서 물러났다.
민간부문의 세대교체는 이보다 훨씬 신속하게 이뤄졌다. 정년 60세가 법제화되기 전 상당수 기업의 정년이 55세였던 점에 비춰볼 때 58년 개띠의 퇴장은 이미 4∼5년 전부터 진행됐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70년생 개띠들로 채워진다. 대구시와 산하기관 팀장(5∼6급) 가운데는 70년생이 229명이나 되고, 경북도청과 23개 시·군에도 310명의 개띠 팀장이 있다.
1958∼1970년은 베이비붐 세대 중에도 인구가 가장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경제성장 혜택을 받아 안정적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공급됐고, 이전 세대와 달리 자산을 축적한 사람도 많다.
따라서 이들의 세대교체는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경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딱히 58년생에 국한 짓기는 어렵지만,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후배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넘어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며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세대 은퇴자 중에는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거나 자산을 축적한 경우도 상당하다"며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인 은퇴 세대의 출현이며, 중고령층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병기 여운창 우영식 강종구 이승형 기자)
82년 개띠가 묻고 58 개띠가 답했다 인생 별 거 있다
2018년은 戊戌, 개의 해다. 현대사의 굴곡을 겪으며 쉼 없이 달려온 58년 개띠가 還甲을 맞는다. 이제 58년 개띠 앞에 놓인 화두는 노후다. 두 바퀴 아래 띠 동갑 82년생 개띠는 서른여섯, 청춘에서 장년으로 다가섰다. 인생 2막에 돌입한 전직 최고경영자(CEO) 58년생과 시인 82년생이 개띠 공감 이야기꽃을 피웠다. 개띠인 58년생 정권수 전 버거킹코리아 대표와 82년생 오은 시인이 26일 오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소품으로 준비한 강아지 인형 가운데 정씨는 누렁이를, 오늘은 가장 엉뚱하게 생긴 강아지를 골랐다.
동창회에서 어떤 놈이 그러던데 우리가 뭐, 베이비붐 세대라면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 왔다고 하던데, 그랬냐.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여러 가지로 장한 인생이야. 그래서 너는 사는 게 재밌나. 이 나이에 재미는 무슨 재미야. 술 맛있는 줄도 모르겠고 마누라가 목욕을 해도 돌아누워서 자고, 진짜 뭘 해도 재미있는 줄을 모르겠어. 돈도 얼마 못 벌어놔서 노후를 생각하면 한숨 나고. 뭐 이 타령으로 살다가 끝나는 거겠지, 별거 있겠냐. 은희경의 마이너리그 중에서.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신문지를 구겨대던 시대에 태어나 민주화, 경제성장, 국제 통화기금(IMF) 사태 등을 지나 스마트폰으로 동창들과 연락하는 시대에 다다랐다. 내년이면 만 60세, 還甲을 맞는다. 개떼처럼 많다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맹랑하다고 58년 개띠라 불렸다.
58년 개띠 정권수 전 버거킹코리아 대표이사와 82년 개띠 시인 오은이 마주 앉았다. 35세의 오 시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고도 성장기에 초년기를 보냈다. IMF 시대와 정보기술(IT) 혁명기를 거쳤다. 스펙 붐을 통과해 30대에 이르니 두 바퀴 인생 선배들이 젊었을 때 맞이했던 것과는 다른 팍팍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정권수씨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83년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77학번)하고 그해 5월 두산그룹에 입사해 기획실 등에서 근무했다. 2012년 두산그룹 계열사였던 버거킹코리아에서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퇴직했다. 올 2월부터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중·장년층에게 사회공헌 일자리를 연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은 시인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7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02학번)하고 2009년에 KAIS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4년간 다음소프트에서 빅데이터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파스텔 뮤직 수석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해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의 시집을 냈다.
내 어머니를 보고 58년 개띠라는 시를 썼다. 어릴 때 정읍에서 어머니가 경양식집을 운영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이렇게 말하고 계셨다. 이모님, 고기 한 근을 내가 썰면 스물 몇 덩이가 나오는데, 이모님이 썰면 스무 덩이만 나온다. 더 얇게 썰어야 한다. 생존을 향한 강인한 생활력이 느껴졌다. 58년 개띠 오은 시인 앞만 보며 달려왔어요. 뒤를 볼 겨를이 없었어요. 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그림자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뒷바라지하느라 이렇게 늙었어요.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누가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니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위를 떠받들며 살아왔어요. 아래를 보살피며 살아왔어요. 위아래가 있는 삶이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 어떤 풍경이 흘러가고 있는지 이 거대한 풍경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담당하고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앞을 보면 개떼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뒤에 있어서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뒤를 돌아다보니 거울이 있었어요. 내가 있었어요. 잊고 있었던 얼굴에는 물굽이가 가득했어요. 어디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표정이 정권수 그게 저절로 형성됐을 거다. 어렸을 때 화장실에 앉아서 쫙쫙 비비면 보들보들해진 신문지, 그게 용변 처리하는 휴지였다. 사는 형편이 좀 나은 사람도 그랬다. 대학에 가 보니 누런 두루마리 화장지가 있어서 와 이런 게 다 있나 했다.
같은 58년생도 사람마다 취향, 삶의 궤적, 형편이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와 달리 58년 개띠는 키워드로 묶여 있다는 게 특이하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과 우리가 동갑이다. 정치적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교 입학시험이 갑자기 없어졌다. 중3 초까지도 학원 다니면서 입시 공부 했는데. 명문고 서열 벗어나서 공부 못하는 놈이 경기고 가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기가 안 죽었지 싶다. 직업을 구할 때도 고교 서열 같은 것 상관없이 덤빌 수 있었다. 이런 점이 57년생과의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민주화 등 역사적인 사건을 관통한 세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가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나는 당시 군대에 있었는데 부마항쟁이 나니까 군대에 비상이 걸렸다. 철모 쓰고 칼 차고 다녔다. 12·12 때는 우리 군인들끼리 총 들고 싸우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광주 민주항쟁이 터졌다. 나처럼 군대에 있던 애들도 있고, 밖에서 데모하는 애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었든 사회 현상을 남 일 보듯 넘어갈 수 없게 됐다. 이후 80년대 학번들은 득세를 했는데 77~79학번은 피해를 많이 봤다. 취직이 쉬웠다고 들었다. 좋은 직장에 대한 경쟁은 있었지만 대개 취직만 하면 회사가 금방 팽창하고 성장했다. 회사 그만두고 사업해도 70~80%는 성공했다. 큰 어려움 없이 살던 개띠들의 인생은 IMF 사태를 겪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열심히 일하면 큰 보상은 못 받아도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 가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IMF 터지고 어려워져 우리는 부곡 하와이로 갔다.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심해지기 전이었지만 대학교 다닐 때 공무원 시험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친구가 많았다. 평생직장 보장 안 해준다니까,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들 보면 한 3분의 1쯤이 자의든 타의든 결혼을 안 했다. 걱정이 되는 거다. 부모님처럼 나도 치열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여가 시간, 개인의 행복 다 포기하면서 결혼·육아를 할 수 있을까? 지금 30대는 그런 고민을 품은 세대다.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던 걸 알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아이와 나란히 누울 공간도 없어서 아이를 머리맡에 두고 같이 잤다. 4대가 함께 사는데 방 3개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그래도 과감하게 결혼했다.
우리는 워낙 없이 커서 사는 데 비용이 별로 안 든다. 벌어진 칫솔 쓰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요즘 젊은 세대는 본인이 자라면서 경험한 환경보다 나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지도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한다. 저도 사실 단칸방에서 자랐는데 불편함을 별로 못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편의'들을 많이 알아버려서 다시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 또 그때야 똑같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철수는 100점 맞았다는데 너는 몇 점이니, 옆집 애는 대학 어디 갔다는데, 이런 비교도 많이 당하며 컸다. 그렇다 보니 겁도 난다. 도전·모험과 좀 멀어져 버린 게 82년 개띠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 선생님은 어떻게 직장생활을 끝내게 됐는지 궁금하다.
서든 데스다. 갑자기 그룹 임원이 면담하자고 했다. 이거 지금 통보받는 겁니까. 라고 웃으면서 물으니 그런 셈이죠. 라고 했다. 31년 다닌 회사를 통보 뒤 일주일 만에 나왔다. 퇴직하고 보니까 다들 뭔 자격증이 이렇게 많은지. 일에 매달려 살아온 내겐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었다. 그때 부모님이 교대로 입원해 정신없이 지냈다. 아내는 저 양반이 집에 왔으면 이제 나하고 놀아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에 서운해 했다.
50년대 생들이 마지막 효도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부모님들, 우리 아니면 대책 없는 세대지 않나. 정씨는 58년생은 워낙 가진 게 없어서 결혼도 사업도 용감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은은 82년생은 이미 편의를 알아버려 모험과 멀어졌다고 했다. 일을 그만두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아침의 커피 한 잔이 그리웠다. 컴퓨터 켜면서 또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마시는 커피가 자꾸 생각났다. 그걸 할 수 있는 데가 지금의 일자리다. 4년 정도 부모님과 시간 보내다 지난 2월 서울시50플러스 재단 서부캠퍼스의 보람일자리 매니저로 왔다.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경력은 있는데 뭘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사회공헌 일자리를 소개해 준다. 뜻은 좋은데 사람 채용할 돈이 없는 비영리단체(NPO)가 많다. 회계·법무 등 전문 인력이 부족한 NPO에 전문가를 보내 아는 것 좀 전해 주는 일, 취약계층에 도시락 배달하는 일 등 다양하다. 사실 빵 만드는 걸 좋아해 올 초에 제과점을 열 준비를 했는데 아내가 말려 중단했다. 당신 말 한 번 들었으니까 당신 동의 않는 일 해도 한 번 용인해 달라고 해 지금 일을 하게 됐다. 일주일에 두 번 일하는 보람일자리용 교육에 갔다가 일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싶어 주 5일 근무하는 전담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 지원서 보고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꽤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고 경력을 보니까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 다고. 내 뒤로는 나이 든 사람을 많이 뽑
내 일이 기본적으로 남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회사로 치면 위계사슬 맨 밑이다. 실무자들이 다 한 세대 밑, 자식 나이다. 그래도 서무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던져두시고, 전략이나 의사결정, 네트워크 등 큰일들을 당신들이 하시오 한다. 나랑 일하면 진급이 빨라진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내 값어치 하는 거다. 정권수씨는 요즘 성과만 보고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동료애를 느낀다고 했다. 오은 시인은 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CEO로 계실 때 그 회사에 다녔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시 출근하면서 느낀 점은. 제일 좋은 게 동료애다. 성과를 노리고 할 때는 사람이 안 보였다. 동료애를 느껴보지 못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제는 진급할 이유도 없고 승진할 일도 없으니 도와 가면서 일하는 걸 즐긴다. 또 여성들과 일하는 게 처음이다. 50플러스재단 들어올 때 건물 전체에 남자가 나 포함해 셋뿐이었다
아침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송혜교가 누구랑 결혼한다. 어쩐다. 아침마다 요란하다. 활기가 느껴진다. 내년에 환갑을 맞는 58년생 개띠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젊어서 즐기던 걸 규모만 줄여서 계속하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술 두 병 먹던 사람이 한 병만 먹으면서 노후 보내겠다, 골프 자주 쳤는데 이젠 한 달에 한 번 치며 살겠다. 그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좋겠다. 인생 뭐 있으라는 말, 남을 위로할 때 쓰기도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쓸 때가 있다. 인생 정말 뭐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삽살개·진돗개·동경
“개야 개야 삽살개야, 너에게 밥을 줄 때 먹기 싫어 너를 줬냐. 윗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너를 줬지.”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놀음이 개 짖는 소리에 들통 날까 조바심을 내는 내용의 전래민요의 한 소절이다. 삽살개를 비롯해 진돗개, 동경이 등 토종개 이야기는 옛 민요나 시조·민화 등에 종종 등장한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충견(忠犬)이던 삽살개가 군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일본 사찰의 수호신 동물석상인 ‘고마이누´(高麗개)도 이 땅에서 건너간 ‘삽살개´가 뿌리라고 한다.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 눈과 귀를 덮은 긴 털이 야성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이며 ‘살(煞)´은 액운을 의미하니, 삽살개란 액운을 물리치는 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삽살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는 게 한국일(41) 한국삽살개보존협회 육종연구소장의 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세우고 군용 모피로 견피(犬皮)를 연간 10만장에서 많게는 50만장까지 수집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전국의 개가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것.
한 소장은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1992년부터 삽살개의 체계적인 혈통관리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오랜기간 우리 풍토에 적응해온 삽살개는 우리와 정서적으로 매우 잘 통하며 질병에도 강하고, 주의력이 깊고 복종심이 뛰어나다. 최근 애완견을 이용한 정서장애 치료법이 유행인데 삽살개가 좋은 치료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애완견치고는 다소 몸집이 큰 게 흠이어서 삽살개를 작게 만드는 육종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한 소장의 주장이다.
삽살개와 자웅을 겨루는, 또 하나의 명견인 진돗개. 진돗개는 섬이라는 ‘진도´의 특수성 때문에 순수 혈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평야와 산야지대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진도. 그곳에서 노루, 토끼, 너구리 등을 사냥하며 승부근성 및 민첩성을 발달시켜온 대표적인 토종견이다
한국의 토종개 중 천연기념물은 모두 3종(種)이다. 1962년 진돗개(53호)가, 92년 삽살개(368호)가, 2012년에 경주개 동경이(540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토종개들이 제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건 보존과 연구에 인생을 바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띠의 해인 2018년 무술년(戊戌年), 그것도 ‘황금개의 해’를 앞두고 토종개를 지킨 이들을 만났다.
① 신라 토우에서 본 동경이에 빠진 최석규 교수
지난 21일 ‘경주 교촌 한옥마을’에 다다르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즈넉한 고분군과 한옥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활짝 열린 나무 대문 위로 ‘경주개 동경이 체험관’이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띄었다. 마당엔 동경이 10여 마리가 자기 보금자리에 들어앉아 있었다. ‘동경이 아빠’라 불리는 최석규(59) 동국대 생태교육원 교수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환경운동가였다.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설치 반대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막지는 못했다. 그는 “대단히 허무했다”고 했다. 이후 환경운동까지 접었다. 서라벌대 애완동물과 교수였던 그는 2005년께 우연히 경주국립박물관에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찾게 된다. ‘신라 토우(土偶) 전’이 열리고 있었다. 흙으로 만든 인물과 동물 중에 꼬리가 뭉툭한 개 토우도 있었다. 경주 토박이 주민들이 종종 “꼬리 짧은 개인 ‘신라개’가 있다. 귀중한 토종개”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동경이에게 순수한 학자적 관심이 생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때부터 서라벌대 성기창∙이은우·박순태 교수와 함께 동경이 ‘혈통 고정(보존)화’ 연구를 했다. 환경 분야에 쏠려 있던 그의 관심은 다시 개를 향했다. 경주 지역의 토종 동경이 70여 마리를 찾아내 개체 수를 늘렸다. 혈통을 고증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2009년엔 농학박사(축산 분야) 학위를 땄다. 최 교수 등의 노력으로 2012년 동경이는 천연기념물 540호에 이름을 올렸다.
최 교수는 “동경이는 반려견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친화적이고, 낯선 사람이 다가와도 짖을 뿐 달려들진 않는 특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집에서도 동경이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최 교수는 “시민들이 키우는 80여 마리를 포함해 경주 전역에 487마리가 있다. 이 중 300마리에 한해서만 국가와 시에서 사료비와 예방접종비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리운영비·인건비 등은 동경이보존협회 회원들의 기부금과 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개의 해를 맞아 동경이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②온순한 삽살개 세계에 알린 하지홍 교수
경북 경산의 하양읍에서 차로 20분을 가면 삽살개 400여 마리가 사는 ‘한국삽살개재단’이 나온다. 삽살개 보존을 위해 경산시가 세운 곳이다. 삽살개를 토종개로 되살린 하지홍(64) 경북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일터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하 교수는 두꺼운 점퍼에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삽살개 사육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삽살개는 수캐의 경우 어깨 높이가 55~60㎝에 이를 정도로 덩치가 있어 기자를 뒷걸음질하게 했다. 하 교수는 웃으며 “정적인 녀석이다. 온순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을 절대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간식 욕심도 없고, 움직이는 물체를 쫓는 물욕도 없다. 사냥개·경비견으로 미달이다”고 했다. “빗질해 주는 것 외에는 기르기 편해 반려견으로 좋다”는 하 교수의 표정은 자식 자랑하는 부모 같았다
하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했다. 85년 경북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 같은 대학 수의학과 교수를 지낸 아버지의 동물농장을 찾았다. 자신의 학창 시절에 20마리였던 삽살개가 8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개 유전학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다. “삽살개는 제 어린 시절의 일부였죠. 그만큼 애정이 컸으니까 그런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89년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기 위해 호기롭게 문화재청을 찾아갔던 하 교수는 퇴짜를 맞았다. 개체 수도 적고, 삽살개가 토종개라고 입증할 자료도 부족했다. 9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 꼬박 7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최근 털이 짧은 삽살개인 ‘고려개’ 복원에도 성공했다. 이 중 ‘바둑이’(털 짧은 얼룩무늬 삽살개)도 있다. 이 종들은 아직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삽살개의 아버지이자 친구로 살아온 그의 고민은 다음 세대다. “30년간 삽살개 보존에 힘썼다. 후계자가 없는 게 안타깝다. 뜻을 가진 젊은 연구자들이 와 주길 기다리고 있다. 육종 연구를 통해 일본·중국처럼 많은 토종개가 나오고, 한국의 문화 자산으로 길러지길 바란다.”
③진돗개처럼 충직하게 그들을 지키는 오석일 박사
목포역에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진돗개사업소’에 도착했을 때, 오석일(50) 박사는 서울에서 온 기자는 안중에 없었다. 장염에 걸린 새끼 진돗개를 진료하고 있었다. 진도에 동물병원이 없다 보니 그가 수의사 역할도 한다. 진도에 사는 1만 마리가 넘는 진돗개는 모두 그의 연구·관리 대상이다.
전남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그는 진돗개를 연구하던 지도교수를 만나 석·박사 과정 모두 진돗개에 관한 연구를 했다. 사업소가 생길 때 연구사로 취직했고, 19년째 진도에서 살고 있다.
오 박사는 진돗개를 “잘난 맛에 사는 애들”이라고 표현했다. “훈련을 시켜보면 정말 빨리 습득해요. 그런데 자기가 하기 싫으면 요령도 피우고, 고집도 부리죠.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동물을 쫓는 사냥개 습성이 있지만 사납지는 않다는 게 오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집 잘 지키는 진돗개의 이미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다. 오 박사는 “활발하게 뛰어놀아야 할 녀석들을 집에만 묶어 놓으니 낯선 사람과 같은 외부 환경에 예민해지고 놀라게 된다. 낯선 사람이 오면 짖고 사납게 행동하는 걸 ‘집 잘 지킨다’고 칭찬해 주니 더 그렇게 변한 거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 사회화 훈련을 받은 녀석들은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진돗개 중에는 백구·황구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흑구·호구·재구(잿빛털 개)와 바둑이(얼룩무늬), 눈 위만 백·황색 털이 난 ‘네눈박이’ 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게 오 박사의 생각이다. 그는 “백구·황구를 제외한 나머지 종에 대해 진짜 진돗개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는 건 사실이다. 애호가나 학계에서 진돗개 망칠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종들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불개·제주개·풍산개도 혈통 남아 있는 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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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종이 전부가 아니다. 혈통이 남아 있는 종은 불개·제주개·풍산개 등이다. 거제개·해남개·오수개는 사라졌다.
이 중 지금까지 보존 연구가 가장 활발한 종은 제주개(사진)다. 주둥이가 뾰족하고 꼬리는 빗자루처럼 꼿꼿한 게 특징이다. 제주도 축산진흥원은 1986년부터 제주개 3마리를 찾아 혈통을 보존하고 개체 수를 늘려 왔다. 현재 축산진흥원에는 49마리가 있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144마리를 일반에 분양하기도 했다.
축산진흥원은 천연기념물 지정 준비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13일 천연기념물 지정 전까지 분양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김대철 축산진흥과 사무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위해 순수 혈통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 분석 연구와 제주개가 등장하는 옛 문헌 등을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코·발톱 등이 붉은 색인 ‘불개’는 2005년 개체 수가 60여 마리까지 늘기도 했지만 현재는 보존 연구가 미진한 상태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