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눈을 갖지 못한 재판부로서는 감히 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를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 사건 판결문의 일부다.
검찰의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에 대한 징계 신청. 징계 신청 사유 중 하나는 변호사의 ‘진실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위 재판부의 말을 징계 신청을 한 검찰에 돌려주고 싶다.
‘진실의무’를 논하기 이전에, 징계 신청 대상 사건에서 검찰 스스로가 진실에 도달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진실의 상대성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변호사의 진실의무를 논하는 검찰의 자격부터가 문제다.
변호사의 ‘진실의무’와 짝을 이루는 것은 검사의 ‘객관의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
검사는 피고인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항소할 수 있다.
그동안 검사의 객관의무 위반이 문제 된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25년 전, 조영래 변호사는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을 변론하면서
“‘폭언·폭행은 있었으나 성 모욕 행위는 없었다’는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 재판에서도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한 것이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가까운 예로는,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백지 구형’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에 대한 징계 사례도 있다.
“검사는 의원들처럼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
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한 검사에 대하여 법무부가 정직 4월의 징계처분을 한 것이다.
징계처분 취소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구형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이 무죄일 경우에는 무죄를, 유죄일 경우 유죄를 말해야 하는 법적 의무와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의하여 징계된 검사의 객관의무가 법원의 판단으로 제자리를 잡은 것이다.
용산참사 사건 공판 과정에서 검사 쪽이 3000쪽의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이 사건 1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묵살했다.
검찰의 태도는 진실을 밝혀야 할 ‘재판’을 승패를 다투는 ‘게임’으로 변질시켰다.
검찰 스스로 공익의 대표자로서 지위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이념을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던 것이다.
수 많은 사례들에서 ‘객관의무’의 가치를 저버렸던 검찰이 아무런 자기반성도 없이 변호사들의 ‘진실의무’ 위반을 이야기하며 사회적 약자를 변호했던 변호사들의 징계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검사의 객관의무가 문제 된 사안들에는 이번에 징계 신청 대상이 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있었다.
용산사건 재판에서는 피고인을 변호했던 권영국, 김인숙 변호사가 있고, ‘무죄 구형’이 문제 된 재심사건 재판에서는 이덕우 변호사가 변론을 담당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공판을 담당했던 검사들이 징계처분을 받은 사건은 장경욱 변호사가 주도적으로 변론했다.
이처럼 검사들의 객관의무가 흔들리고 그 가치가 의심받을 때, 법정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우고 항의하고 따져 물으며 ‘진실’을 추구했던 쪽은 오히려 징계 신청 대상이 된 변호사들이었다.
그들은 변호사법에서 정한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
하기 위하여 진실에 대한 요구가 좌절되는 현장을 지켜왔던 것이다.
그런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검찰이 진실의무 위반을 논하는 것, 그 자체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