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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 2009년 12월 11일~12월 12일(금요 무박산행)
* 날씨 : 안개가 많이 낀 후 맑음 (기온 0~10℃)
* 참여인원 : 산수 산악회원 40여명
* 산행 코스 및 시간 (거리는 포항 셀파 산악회 실측거리 참고 )
주요지점(표고) |
실제거리 |
누적거리 |
도착/출발시간 |
누적소요시간 |
비고 |
여원재(470) |
0 |
0 |
2:4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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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산(846.4) |
5.47 |
5.47 |
4:25/4:30 |
1:50 |
5분휴식 |
매요리 |
5 |
10.47 |
5:48/07:11 |
3:31 |
1시간23분휴식 |
사치재(500) |
3.3 |
13.77 |
8:01/08:08 |
5:28 |
7분휴식 |
새목이재 |
2.93 |
16.7 |
8:44 |
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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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봉(776) |
1.4 |
18.1 |
09.:22 |
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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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막성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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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8 |
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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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성이재(550) |
3.38 |
21.48 |
10:25/10:30 |
7:50 |
5분휴식 |
비고 |
2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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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40분 휴식 |
* 산행후기
40여 회원님들을 실은 버스는 23시 신사역을 떠나 중간휴게소인 금산 인삼랜드를 경유하고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여원재에 02시 35분에 내려 놓습니다.
차에서 내려서니 밤 공기도 퍽 포근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번 구간의 대간길은 퍽 유순한 길입니다.
지리산의 험한 산세를 뒤로 하고 덕유산을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지형적인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가 걷고자 하는 길은 전형적인 산책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여원재를 02시 40분쯤 출발합니다.
어둠속에서 걷는 길이지만 평이한 오솔길 같은 느낌을 지울수 없읍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 질것 같은 느낌속에 잠시 쉬고 있던 몸이 정상적인 가동을 알리는 신호에 따라 원할한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뒤를 돌아보니 열을 지어 오는 랜턴 불빛이 일대 장관을 이루기도 하는군요.
적어도 날이 밝아 오려면 5시간 이상은 지나야 하기에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번의 순서가 바뀌지만 로프가 매달려 있는 바위길을 지나고 목재데크 계단길을 만나게 되면서 고남산에 도착하게 됩니다.(04시 25분)
목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과거엔 악명(?)을 떨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산악회에서 이곳을 통과하려면 어김없이 한 두사람의 부상자를 발생 시키기로 유명한 구간이었기에 겨울철엔 기피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잘 정리된 대간길이기에
그럴 염려는 없군요.
오늘 구간중 가장 높은 곳인 고남산(846m)입니다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라 풀이 죽어 있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둠속이라 보이진 않지만 고남산 정상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흉물스런 통신시설을 떠 올려 보니 차라리 어둠속에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안개가 몰려 오는 모습과 함께 고남산을 뒤로 하고 매요리를 향합니다.
임도길을 만나게 되면서 이곳이 통안재임을 알게 되지요.
▲ 산행 들머리인 여원재 (02시 40분) 정도에 출발합니다.
▲ 고남산 정상 도착하기 전의 계단. 이 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부상자가 속출하는 곳으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지요.
▲ 고남산 정상석. 오늘 산행구간에서 표고상 가장 높은 지점입니다.
▲ 임도길에 내려서자 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길을 가로지르게 되는 등로
한동안 평이한 길을 걷게 되고 몇번의 오르 내림이 반복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길에 내려서게 됩니다.
매요마을에 도착되었지요.
마을길에 들어서면서 어둠속에서도 목재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하며 그 용도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보다가 이곳 운봉읍 일대가 그 유명한 남원 목기의
고장임을 알게 되면서 의문점이 풀립니다.
마을 회관을 지나고 좌측 방향으로 접어 들며 대간꾼들이 유용하게 이용하는 매요 휴게터에 도착합니다.(05시48분)
일단 자리를 잡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으신 할머니를 깨워 봅니다.
잠에서 깨신 할머니 말씀이 8시에 막걸리 한통이 예약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산사랑님이 재고로 남아 있는 막걸리 2병과 김치 한 포기를 가져 오면서 다소 과한 대금을 치룹니다.(\10,000)
여명님, 산사랑님과 같이 라면을 끓여 먹고 긴 시간 휴식을 취합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할때부터 동이 터서 랜턴이 불필요할때까지 있을 예정이었던지라 급할 이유가 없지요.
사물이 구별될 정도로 식별이 가능한 시간이 7시 10분이 지나서 매요 휴게터를 뒤에 오신 분들께 양보하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 05시 48분 매요 휴게터에 도착합니다. 이후 평상에 자리잡고 1시간 20여분간 휴식을 가진 후 동이 터올무렵
랜턴을 벗고 산행에 임합니다.
▲ 07시 11분. 뒤 따라 오신 회원님들께 자리를 양보하고 장시간 휴식을 가졌던 곳을 떠납니다.
▲ 07시 23분. 포장된 마을길을 벗어나면 유치 삼거리가 나오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들어서게 되지요.
오늘 산행의 반정도를 미로속에서 지나 왔기에 이제부터는 환한 낯을 기대해 봅니다만 여지없이 기대를 저 버리게 하는군요.
매요리를 출발한지 50여분만에 88고속도로를 만나게 되는 사치재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치재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을 잇는 고개입니다.
사치재를 내려서며 당연히 도로 아래 통로를 통해 진입을 하여야 하나 차량 통행이 뜸한 88고속 국도를 횡단하여 마루금을 따릅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구방향) 지리산 휴게소가 위치 하고 있어 짐을 가볍게 하고 속도를 요하는 대간꾼들에게는 유용하게 이용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90년대 중반에 발생한 산불로 인해 일대가 초토화 되다시피 전멸했었는데 이제는 억새풀이며 활엽수들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네요.
안개로 인해 조망의 아쉬움을 가져 보며 봉우리에 도착하여 긴 호흡으로 숨을 고르고 내려서니 새맥(목)이재에 도착합니다.(08시 44분)
좌우로 난 길을 지나고 나서야 이곳이 새맥이재였음을 깨닫게 되고 비록 조망을 볼수 없는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이 상황을 즐길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 08시 01분. 88 고속국도변에 도착되기 전의 사치재. 우리 일행은 고속국도 밑의 통로를 지나는 대신 교통량이 많지
않은 도로를 횡단하는 모험(?)을 감행 하였지요.
▲ 88고속국도 성산(대구) 방향입니다.
▲ 대간길은 88올림픽 고속국도 아래를 통행하는 길을 따라 이어지지요.
▲ 08시 7분. 88 고속국도를 횡단하고 산행내내 동행하셨던 산사랑님과 여명님.
▲ 제법 오래된 석물임에 확인차 발길을 옮겨보니 부인의 무덤이나 과거엔 제법 무게 있는 벼슬을 했던 모양입니다.
▲ 사치재를 지나며 지난 십수년전 큰 산불로 인해 소나무등이 고사되고 억새와 활엽수만이 활개를 치고 있네요.
▲ 안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우리 회원님.
▲ 08:44 임도인 새목( 맥)이재를 지나고 시리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되지요.
▲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하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산은 언제나 나에게 충만감과 함께 넘치는 행복감을 안겨 줍니다.
▲ 전망바위 도착되기전 남근석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을 지나며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예감 합니다.(09:42)
▲ 맑은 날에는 제법 조망이 괜찮으련만 오늘은 운치있는 모습만 기억하렵니다.
▲ 09시 58분. 이제는 돌 무더기만이 남아 있는 아막성터에 도착하게 됩니다.
▲ 걷기 편하고 숨 쉬기 편한 푹신푹신한 낙엽길로 수 놓아진 마루금
▲ 스산한 음기가 주위를 지배할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런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만도 행운입니다.
▲ 아막성에 대한 설명판입니다.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한 산길을 걸을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입니다
비록 조망을 볼수 없는 아쉬움이 있을지 언정 바람조차 불지 않아 오늘이 딱 그런날이 아닌가 싶군요.
산은 저마다의 느낌과 생각이 다르겠지만 지난 첫 번째 구간에 이어 오늘 함께 하는 여명님과 산사랑님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남근석이 위치하고 있는 곳을 지나고 한 눈에도 성터임을 알수 있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아막성터에 도착합니다
성터 옆에 2개의 돌탑이 세워 있는것으로 보아 천 3, 4백년 전 엔 전쟁을 치루었을지언정 오늘은 평화롭게만 보여집니다.
아막성터는 백제와 신라군이 운봉땅을 차지하기 위해 일대 격전을 벌인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지칭하는 지명도 백제에서는 아막성,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고 각기 다르게 불렀다고 하니,
지금의 기준으로 볼땐 왜 하필 산에서 전쟁을 치루었을까 하는 의문점을 하게도 하지요.
▲ 짧은 긴장감을 주었던 아막성터 내리막길의 너덜지대네요.
▲ 아막성곾을 걸어 오고 있는 여명님과 산사랑님.
▲ 성리 마을 1.5km를 알리는 임도(10:16) 복성이재는 봉화산 방향으로 10여분 진행한 후 도착하게 됩니다.
▲ 복성이재 가는 길
▲ 10:25. 드디어 복성이재 도착입니다.
▲ 북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들머리죠. 개인사진을 잘 찍지 않는데 어쩌다...
▲ 임도길을 따라 내려오게 되면 합류되는 길입니다.
▲ 쫓겨난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성리마을에 들어서기 전 만나는 제비가 하늘을 날며 박을 상징하는 조형물입니다.
▲ 성리마을의 발복집터 안내판
▲ 성리 철쭉식당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에 세워진 표시석
10시 25분 복성이재에 도착합니다.
여원재를 출발한지 8시간이 조금 못 미친 시간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에 도착 된것이지요.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성리마을에 위치한 철쭉식당으로 이동합니다.
성리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연결하는 751번 지방도로로서 차량통행이 뜸한 전형적인 시골길입니다.
철쭉식당 안내판에는 10분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10여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식당에 도착하게 됩니다.
밥 보다는 아직도 따지 않은 감나무에 달려 있는 잘 익은 홍시에 시선이 모아지고 결국 대나무를 이용하여 많은 수의 감을 따서 배를 채우게 되며
밥은 뒷전입니다.
지난구간에서도 많은 감을 따 먹었었는데 또 한번의 풍족함을 안겨 주는군요.
호남지방의 산행은 종종 이런 행운을 줍니다.
철쭉식당에서 먹는 성찬으로 오늘 산행의 마무리를 합니다.
아무리 강조 해도 부족하지 않은 즐산보다는 안산의 소중함을 새기며 산수와 함께 한 2구간도 마음속에 담으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성리마을에 얽힌 이야기 *
성리 마을은 쫓겨간 흥부가 들어 갔다가 부자가 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90년대초 흥부가의 발상지를 찾을때 이곳 아영면 성리마을과 인월면 성산마을이 저 마다의 연고를 주장하며 주민들이 감정싸움까지 있어 남원
고을이 시끌벅적한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현재는 이곳 성리마을이 '흥부 발복지'로 칭하고 성산마을은 '흥부 놀부 고향' 으로 정리 되었다고 하네요.
이곳 성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당산제를 모시고 별도로 제물을 차려놓고 춘보(흥부)의 추모제를 드리고 마을 주민이 마당밟이
굿을 치는 행사도 한다고 합니다.
흥부와 관련된 지명 또한 많아
'제비가 하늘을 나는 형상' 의 "연산등" ,
'부자가 살았다' 는 "장자골",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가다 쉬었다' 는 "화초장바위거리" ,
'흥부가 여기서 순금을 주워 부자가 됐을 거라' 는 "생금모퉁이",
'놀부가 지고 가던 화초장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오래 생각했다' 는 "장구목',
'흥부가 어렵게 살 때 허기져 쓰러졌다' 는 "허기재"등
마을의 웬만한 이름은 모두 흥부와 연관을 지어 설명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 이 시점에서 흥부와 놀부의 장단점을 따진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 있을겁니다.
과연 지금같은 세상에서 흥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을 헤쳐 나갈수 있을까요.
그럴지 언정 흥부와 놀부 중 선택을 하라면 흥부쪽에 마음이 기우는 것은 인지상정일까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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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산행사진이며 해설이 감동을 주고도 남습니다. 다시한번 함께한산행 감사드리고 다음구간상행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다음달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