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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6월16일(5.11) 2부 예배 16일 본문 : 창세기43:12-16절 제목 : 베푸신 은혜로 기뻐하라[14]
기도 : 시무장로 송우성 ♬23.202.205.204.361.
◇ 설립17주년 49번째 2부예배로 영광을! ◇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4:24)
찬 양 : 오전10:40 예배:11시
올 겐 : 고범희 피아노 : 김순복 드 럼 : 송호성 섹소폰 : 이기수 베이스 : 송우성
사 회 및 강 론 : 담임목사 고 승철
제1부 찬양과 영광
묵상영광 / 다 같이 모두찬양
묵상성시 / [마태복음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묵상기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기도문 / 다 같 이
영광찬송 / ♬23 만입이 내게 있으면 (엡5:19, 찬양과 경배)
1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2 내 은혜로 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고 그 크신 영광 널리 펴 다 알게 하소서
3 내 주의 귀한 이름이 날 위로하시고 이 귀에 음악 같으니 참 희락되도다.
4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 하셨네 아-멘
교 독 문 / 제9번(시23:1-6절)로 함께 교독합니다.
집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회중: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집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회중: 쉴만한 물 가 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집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회중: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집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회중: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집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회중: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집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회중: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으로 다같이
부름찬송 / ꁠ202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갈1:4, 속죄)
1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 : 주의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제목 보혈의 능력 주의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부름기도 / 시무장로 : 송우성
16일 본문 : 창세기43:12-16절 제목 : 베푸신 은혜로 기뻐하라[14]
12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여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16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제2부 말씀과 은혜
할렐루야!
모든 사역자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여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는 사랑글을 소개합니다.
휘셔 씨는 ;
크리스챤 건축설계 사인데
그는 2차 대전 시에 자기가 겪은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휘셔 씨는 ;
수백만의 유태인들과 함께 죽음의 집단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점점 기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던 한 사람이 자기가 먹고 있는 딱딱한 빵조각과
휘셔 씨가 ;
마실 스프와 바꾸어 먹자고 항상 애걸했던 일이 있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작은 빵 조각보다는 차가워도 스프가 먹기도 좋고 배도 부르게 하기 때문에,
휘셔 씨도 ;
스프를 원했으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사람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휘셔 씨는 ;
자기의 스프를 그에게 주고 자기는 늘 그의 작은 빵 조각을 받아먹었다고 했다.
드디어 미군이 진주해 들어와서 휘셔 씨는 집단 수용소에서 해방되고
미군의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받게 되었다.
진단 중에 휘셔 씨는 ;
자기가 스프와 빵조각을 바꾸어 먹은 이야기를 위사에게 했다.
그러자 ;
의사가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을 했다.
˝당신은 ;
그 사랑을 베푼 일 때문에 살아난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날 이렇게 살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
당신이 스프를 먹지 않고 그 빵 조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사의 결과
그 스프는 영양분이라고는 거의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
그 빵 조각을 먹었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는 영양을 지탱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1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205예수 앞에 나오면 (마11:28,거듭남)
1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후렴 : 우리 주 만 믿으면 모두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 하리라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
주후2024년도 표어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가는 믿음[하박국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6월 주제 : 은혜로 기뻐하는 믿음[빌립보서4:19]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6일 본문 : 창세기43:12-16절 제목 : 베푸신 은혜로 기뻐하라[14]
▶ 본문은 야곱의 더딘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애굽의 총리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베냐민을 내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하나 남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
굶주리는 가족들 때문에 언제까지 고집으로 버틸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13절)라며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창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잡혀 있는 시므온도, 따라가는 베냐민의 안전도 인간인 자신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야곱의 고백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표현 ;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는 표현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결심임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라는 말의 원문에는 ;
‘자식’이라는 말이 없고 단순히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은 전적으로 되어, 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에 의해 되어 질 것뿐이지,
인간으로서의 야곱은 ;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곧 언약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지, ;
그 이상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
야곱의 신앙고백이 이 말 속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리스종합주석 구약 6권, 329)
앞장 창42장까지는 ;
기근 상황 가운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족을 지키려 했던
야곱의 부족한 믿음이 ;
이제 창43장에 와서는 ;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언약의 백성다운 믿음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고 ;
창43장은 야곱의 호칭을 이스라엘로 기록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야곱이 양식을 구하는 일에 있어 ;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사리를 분별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믿음은! 좀 더뎠지만 ;
하나님은 기다려주셨고 드디어 믿음을 보였을 때 ;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 말씀을 삶으로♡
주님, 왜 진 작에 믿음으로 맡기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님께 맡기는 더딘 믿음에 늘 송구합니다.고
고백하여야합니다.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딘 믿음에도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려주심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더딘 제 믿음일지라도
주님의 은혜로 끝까지 붙잡아 주셔서 믿음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삶을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
첫째 : 돈을 배나 가지고 가라 차착에 두려함[12]
둘째 :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남을 원함[13;14]
셋째 : 베냐민과 요셉의 만나 함께 먹음[15;16]
첫째 : 돈을 배나 가지고 가라 차착에 두려함[12]
12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43:12절에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기지고 -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번 곡식을 사기위해 가져갔던 돈의 두 배라는 의미가 아니라 ;
지난번 그냥 먹은 식량 값과 다시 사고자하는 양곡의 값에 해당하는 돈을 함께 갖고 갈 것을 의미합니다.
차착(미쉬게) -라고 하셨습니다.
① 허물되다(욥19:4),
4 내가 과연 허물이 있었다 할 찌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는 것이니
② 실수하다.(사28:7),
7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③ 범죄 하다.'(민15:22)는 ;
22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한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솨가'에서 파생한 말로 ;
실수로 인한 뚜렷한 허물을 뜻합니다.
야곱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곡물을 관리하던 애굽 관리들의 실수로 ;
또는 자신의 아들들이 너무 급해서 경황 중에 돈을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
지난번의 돈이 다시 자루 속에 담겨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풍습이지 실제로 정량보다 더 많은 음식을 주 어 먹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삼상9:22-24).
특히 애굽 인들의 숫자 개념에서 5는 ;
①완전함, ②충만함 을 뜻합니다(사19:18).
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3)장망성이라 칭하리라
한편 요셉은 ;
이 일을 통하여 형들이 아직도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지 못하고
특정인에 대하여 시기하는 버릇이 남아 있는지 시험해 보려고 꾀하였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의 편애(42:38)는 물론 가장 어린 자임에도 불구하고 ;
애굽에서도 특별대우를 받는 ;
베냐민에게 요셉의 형들은 전날 요셉에게 보였던 시기심(37:4) 같은 것을;
전혀 보이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일(37:31-35)
이후 그들이 많이 회개했고
(창42:21,22)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또한 그들의 인격이 성숙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1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204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갈2:20, 거듭남)
1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후렴 : 이것이 나의간증이요 이것이 나의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2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보리로다
첫째 : 돈을 배나 가지고 가라 차착에 두려함[12]
둘째 :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남을 원함[13;14]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아버지 야곱을 설득 한 유다
42 장에서는 베냐민을 애굽으로 간 것으로,
불행이 그의 몸에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 야곱의 망설임을 불식시킨 것은 ;
유다9절에 ;
"나는 책임을 지지하자"라는 말이었습니다.
구어 역은 ;
"내 손에서 그를 구하라"라고 직역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만,
이제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나카자와 번역은 ;
"(최악의 경우) 내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강한 형태의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이 말 이야말로 아버지 야곱의 집념의 마음을 녹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유다 말로 베냐민을 애굽으로 간 결심합니다.
야곱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주저 않았 더라면, 지금까지 두 번은 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10절) 유다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고집, 고집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고집하고 있는 것을 놓지 때 해방되어 상쾌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의 말씀에서 ;
"전능하신 하나님이 두 사람 (먼저 인질이 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앞으로 가야 할 베냐민 두 사람)을 너희에게 돌려달라고"라는 기도 (열망)가 있지만,
이 "반환"으로 번역 된 부분에 ;
"보내리니"라는 동사의 강도 뜻 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14절에서는 ;
"나도 잃을 때 잃을 것이다 '라는 야곱의 맑은 말씀 속에 ;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때의 심경에도 비슷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강한 바람과 손실 맑음 속에 아버지 야곱의 안비바렌토 마음을 내 비치고 있습니다.
어쨌든도 요셉이 건 책략에 야곱의 가족은 감쪽같이 빠져 버리는 순간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의 길이 열린 순간이기도합니다.
그 아들들의 할 일을 지시하였습니다.
(1) "예물"을 가지고 가라는 것(11절).
이것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기를 힘쓰는 야곱의 성격을 보여 준다.
그는 일찍이 에서를 만나러 갈 때에도 이렇게 예물을 보냈었다(33:8).
"비자"는 ;
호도나 밤(栗) 같은 열매이고, "파단 행"은 살구의 일종이다.
(2) 일찍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 올 때에 자루에서 발견된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라고 합니다(12절).
이것은 야곱의 결백한 성품을 보여 줍니다.
그는 남의 재전(財錢)을 이유 없이 취하기 원치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야곱의 이와 같은 처사는 역시 앞날의 올무를 피하기 위한 지혜로운 것입니다.
빌4:8 ;
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그리고 그는, 최후적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14절).
이것은 그의 신앙입니다.
43: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다이)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족장들에게 나타내실 때 사용하셨던 특별한 명칭으로서(출6:3)
천지의 주재이시며 조상과 맺으신 언약을 온전히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강조한 호칭입니다.
야곱이 이 명칭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난관을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라하밈')입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특히 불타는 심정으로 긍휼을 호소할 때 ;
(신13:17)와 ; '죄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출34:6;시51:3;39:8;마7:19).
이렇게 볼 때 여기서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을 간구하는 ;
야곱의 심정이 ;
재판장 앞에 선 죄인의 심정과 더불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자포자기적 표현이 아니라.
그는 그 후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절대적 신뢰감을 토로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
어떤 경우에든지 그 결과를 자신의 신앙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문학적 표현입니다(왕하7:1;에4:16).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2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보리로다
204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갈2:20, 거듭남)
2 온전히 주께 맡긴 내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보리로다
후렴 : 이것이 나의간증이요 이것이 나의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첫째 : 돈을 배나 가지고 가라 차착에 두려함[12]
둘째 :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남을 원함[13;14]
셋째 : 베냐민과 요셉의 만나 함께 먹음[15;16]
15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43:15절에 갑절 돈을...가지고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곡식을 두 배로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날의 돈을 다시 되돌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12절>.
16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43:16절에 베냐민이...있음을 보고 -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으로 팔려오기 전 ;
요셉이 베냐민을 마지막 본 때는 ;
22년 전 헤브론에서 유아 때(1살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한 눈에 베냐민을 알아본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인 듯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
형들을 제외하고 1차 방문 때 안보였던 나머지 젊은 청년이 베냐민인 줄 짐작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
자신의 집을 맡고 있는 청지기에게 ;
그의 형제들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의 집은 성의 외곽 지역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학자는 ;
당시 애굽 상류 인사들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결코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
이 구절의 역사성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①황소(Apis)나 ②매(Horus) 등 ;
신상으로 숭배되던 짐승들을 제외하고는 각종 조류나 짐승을 식용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
심지어 황소까지도 일부지방에서는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정에...먹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오정은 애굽인들의 일반적인 식사 시간입니다.
첫째 : 돈을 배나 가지고 가라 차착에 두려함[12]
둘째 :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남을 원함[13;14]
셋째 : 베냐민과 요셉의 만나 함께 먹음[15;16]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3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204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갈2:20, 거듭남)
3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아-멘
후렴 : 이것이 나의간증이요 이것이 나의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제3부 감사의 봉헌으로 축복
봉헌성가 / 361주의 주실 화평 (마5:24, 소명과 헌신)
1주의 주실 화평 믿음 얻기 위해 너는 정성껏 기도 했나
주의 제단 앞에 모두 바치기 전 복을 받을 줄 생각마라
후렴: 주의제단에 산제사 드린 후에 주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복락을 누리겠네.
예물봉헌 / 송우성 기도와 정성으로
봉헌축도 / 당회장 고 승철목사
축복기도 / 초장에 축복을 더 하소서!
승리외침 / 믿음은 능력의 힘을 주십니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합시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형통합시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승리합시다.
주후2024년 6월 생일명단 [생일을 축하합니다.]
6/04 고윤호
6/18 고윤성
▣ 예배가운데서 현실을 잊지 말자<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려고 자리에 앉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도 설교를 들을 때도 마음이 움직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을 떠날 때는 험한 세상을 담대히 살아갈 힘이 솟아납니다.
실제로 이런 '은혜'에서 비롯되는 기쁨 가운데 ;
한 주간을 열심히 살다가 다시 주일을 맞아 예배당에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경배와 찬양'에 열중하는 ;
젊은이들을 보면서 걱정스런 마음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들이 현실을 잊어버리고 예배당 안에 있을 동안에는 감동을 받아 눈물도 흘리지만 ;
평일에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학교나 일터에 나가서는 ;
소심하고 무력한 학생이나 젊은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젊은 세대를 잘 모르는 늙은 세대의 오만한 걱정이겠습니까?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는 열심인 ;
그리스도인이 교회 문 밖을 나서면 무능한 사회인이 되는 수가 없지 않습니다.
본디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 존재로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살아야 하는데,
세상에 나가기만 하면 ;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 드는 약한 존재가 되어 현실을 외면하며 살기 쉽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예배는 현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예배는 ;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 가운데서 일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그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갈 힘을 늘 새롭게 얻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서 현실을 잊어버리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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