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音會 제75회 정기감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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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 장소 : 해음감상실 (선프라자 705호)
# 진행 : 김 희 성
# 주제 : 바그너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제4부 "신들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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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계속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마지막 작품인 제4부 "신들의 황혼"을
감상할 차례입니다.
16시간이 넘어가는 대작을 4달에 걸쳐 감상하게 되는데 실제 공연은 1주일에 끝날 정도로
집중력있게 감상하여야 제맛이 납니다.. 그러나 비록 4달에 걸쳐 중요 장면만 감상하였지만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 중에 분명히 이정표가 될만한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감상의 소스로 계속 사용하고 있는 2010-2011 시즌 뉴욕 매트로폴리탄 공연 실황의
'신들의 황혼'은 4시간 32분에 달하는 정말 긴 작품입니다.. 매번 중요 부분만 발췌하여
90분 정도로 감상하겠다고 했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요약이 잘 안됩니다 -.-;;
특히 '신들의 황혼'은 그동안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작품이라 중요한 장면이 많은 편입니다.
극의 진행과 줄거리에 큰 훼손이 없도록 적절히 스킵하면서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4월과 5월 정기감상회 진행의 간격이 조금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5월과 6월은 3주만에
감상회가 진행됩니다. "반지원정대"를 마감하는 시간이라 많은분들이 참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참석하지 못해 받지 못한 분도 계십니다.
꼭 참석하셔서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다음달부터는 2-3권씩만 들고 와서 못받으신 분께
드릴 예정입니다..
식사는 늘 하는 것처럼 '둘례한식집'에서 하겠습니다.
식사 포함하여 참석여부를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해음회 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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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제4부 "신들의 황혼"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
배경 신화 시대의 바위산, 라인 강가, 기비훙족 왕궁과 라인 강가의 숲.
<2012년 2월 11일 뉴욕 메트 공연 / 272분 / 한글자막>
뉴욕 메트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파비오 루이지 지휘 / 로베르 르파주 연출
지그프리트.....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사이에 태어난 영웅.............제이 헌터 모리스(테너)
군터..............기비훙족의 우두머리........................................Iain Paterson(베이스바리톤)
하겐..............알베리히의 아들. 아버지가 다른 군터의 남동생.....한스-피터 쾨니히(베이스, 파프너까지 일인이역)
구트루네........군터의 여동생.................................................웬디 브린 하머(소프라노)
알베리히........니벨룽족의 우두머리 난쟁이..............................에릭 오웬스(베이스바리톤)
브륀힐데........발퀴레였다가 여기서는 지그프리트의 아내...........데보라 보이트(소프라노)
발트라우테.....발퀴레. 브륀힐데의 자매...................................발트라우트 마이어(메조소프라노)
세 명의 노른(운명의 여신들,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마리아 라드너, 엘리자베스 비숍, 하이디 멜튼
세 명의 라인의 처녀들...........................................................에린 몰리, 제니퍼 존슨 카노, 타마라 멈포드(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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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영상물 내지 해설)
프롤로그
운명의 여신 세 명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며 운명의 줄을 짜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알베리히와 라인 황금을 훔친 이야기를 꺼내자 줄이 끊어진다. 그들의 지혜도 끝난 것이다.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도록 세상으로 보내며 애마 그라네도 준다. 지그프리트는 사랑에 대한 맹세로 용 파프너에게서 빼앗은 반지를 간직하라며 건네준다.
제1막
기비히 가문의 지배자인 군터와 구트루네 남매와, 아버지가 다른 형제 사이인 하겐은 남매에게 결혼을 권한다. 그는 군터의 신부로 브륀힐데, 구트루네의 남편으로 지그프리트가 좋다면서 계략을 제안한다. 자기가 만든 미약으로 지그프리트가 브륀힐데를 잊고 구트루네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지그프리트는 구트루네를 얻기 위해 군터가 브륀힐데를 차지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때 라인 강을 따라 여행하던 지그프리트가 도착한다. 구트루네가 미약을 주자 지그프리트는 즉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군터가 자신이 고른 신붓감에 대해서 말하자 지그프리트는 타른헬름을 이용해서 자기가 군터로 변한 다음 브륀힐데를 얻겠다고 동의한다. 두 사람은 형제가 되기로 피의 맹세를 하고 브륀힐데가 있는 바위산으로 떠난다. 그러는 동안, 발퀴레 자매 중 한 명인 발트라우테가 브륀힐데를 찾아와서 반지를 라인 처녀들에게 돌려주고 신들을 구하자고 청한다. 브륀힐데는 그 청을 거절하면서 자신에게는 지그프리트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선언하고, 발트라우테는 절망 속에 떠나간다. 저 멀리서 지그프리트의 호른이 울린다. 그러나 낯선 이가 등장하면서 브륀힐데의 기쁨은 공포로 바뀐다. 군터로 변신한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가 군터의 신부라고 하면서 반지를 빼앗아 버린다.
제2막
환상 속에서 하겐 앞에 아버지인 알베리히가 나타나 반지를 차지하라고 일러준다. 기비히 사람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군터와 브륀힐데가 도착한다.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와 마주치자 격노하며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한다. 여전히 미약에 홀려 있는 지그프리트는 진실을 모른 체 자신이 구트루네와 결혼할 것이고 브륀힐데는 군터의 아내가 될 거라고 말한다. 지그프리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본 브륀힐데는 그가 도둑질했다고 비난한다. 바로 그 전날에 군터로 보이는 사람에게 반지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지그프리트는 그녀의 비난에 항의하며 하겐의 창에 대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맹세한다. 브륀힐데는 분노로 이성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된다. 하겐이 나서서 자기가 지그프리트를 죽이겠다며 사냥 중에 일어난 사고로 위장해서 암살하면 된다고 제안한다. 군터는 이 음모에 가담하기를 주저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고 만다.
제3막
사냥 여행 중에 하겐은 지그프리트에게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한다. 지그프리트는 미메와 함께 살았던 시절, 그리고 용과 싸운 이야기를 말해준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하겐은 망각의 미약을 해독하는 음료수를 권한다. 지그프리트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불을 뚫고 들어가서 브륀힐데를 깨웠는지를 말한다. 브륀힐데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하겐은 지그프리트를 찌르면서 거짓된 맹세는 앙갚음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그프리트는 죽어가면서 브륀힐데를 기억한다. 구트루네는 지그프리트가 시체로 돌아오자 군터가 죽였다며 비난하고, 이에 군터는 하겐이 죽였다고 대답한다. 군터와 하겐이 결투를 벌이고 군터는 살해당하고 만다. 하겐이 반지를 빼가려고 다가서자 죽은 지그프리트가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올린다. 브륀힐데가 나타나 장례식을 위한 장작더미를 쌓으라고 명령하고, 지그프리트의 손에서 반지를 빼낸 다음 애마 그라네 위에 올라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자 라인 강이 흘러넘쳐 기비히 성을 덮친다. 하겐은 반지를 잡으려고 하다가 라인 처녀들에게 잡혀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며, 처녀들은 황금을 되찾은 것을 기뻐한다. 저 멀리서 불길에 휩싸인 발할라와 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 신들의 황혼 === (영상물 내지 해설 / Paul Thomason / 이준형 / 2012년 8월)
어네스트 뉴먼은 <인간과 예술가로서의 바그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그너의 모든 경력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1848년에 <지그프리트의 죽음>의 대본을 썼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대담한 구상과 강력한 상상력, <로엔그린> 이후에 보여준 예술적 성장, 당대의 오페라 예술 전체를 완전히 파괴한 것에 대해서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러나 <로엔그린>의 음악적 어법으로는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며, 바그너 역시 틀림없이 이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1848년 11월 무렵의 바그너가 자신의 새로운 오페라가 향후 수십 년 동안이나 완성되지 못하리라는 점이나 혹은 이 작품이 - <신들의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 서양 문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인 <니벨룽의 반지>의 정점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해 초에 바그너는 <로엔그린>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끝냈으며, 당시 (유럽 대부분이 그랬듯이) 드레스덴을 휩쓸고 있던 정치적 혼란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또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와 나자렛 예수의 생애에 바탕을 둔 오페라에 대한 초안을 만들기도 했다. 그 해 여름에는 '니벨룽 : 전설에 의한 세계사'라는 에세이를 썼으며, 나중에는 '니벨룽 전설 : 극을 위한 초안'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바그너가 <지그프리트의 죽음> 이상으로 니벨룽 전설을 탐구하려는 열성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1849년 5월, 드레스덴에서 일어났던 폭동은 진압되었다. 그 동안의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경찰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게 된 바그너는 달아났으며, 결국 스위스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중요한 저작인 <오페라와 드라마>를 포함하여 몇 편의 산문 작품을 썼으며, 또한 <지그프리트의 죽음>의 대본을 개정했고 또 몇몇 음악적 초안도 잡았다.
바그너는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청중이 영웅의 최후를 다룬 이야기를 진정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 이야기를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해서 1851년에 <젊은 지그프리트>의 대본을 썼으며, 그 다음에는 (이야기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발퀴레>와 <라인의 황금>이 연달아 나오면서 <지그프리트의 죽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째서 벌어지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게 되었다. 그 후 <반지>의 첫 세 작품과 더불어 <트리스탄과 이졸데>, 그리고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까지 작곡한 이후인 1869년 10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금은 <신들의 황혼>으로 알려진 작품의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다시 착수했다. 작품의 제목이 바뀐 것은 오페라 자체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 즉 영웅의 죽음에서 신들의 몰락으로 초점이 바뀐 것을 드러낸다.
이야기의 가장 초기 판본에서는 브륀힐데가 지그프리트의 주검을 발할라 성으로 가져가며, 그의 죽음이 신들을 구원한다. 바그너가 <반지>의 결말을 낙관적인 것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듯이 신들이 멸망하는 것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추측이 있었다. 때때로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 이유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바그너가 이 책을 읽게 되는 1854년 말에는 이미 <반지>의 전체 대본이 완성된 상황이었다. 유럽의 새로운 사회적 질서에 대한 바그너의 낙관적 견해는 1848년과 1849년의 봉기가 분쇄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젊은 지그프리트>의 산문 초안을 잡았던 1851년 5월에 이르면 "신들의 유죄와 필연적인 그들의 몰락. 지그프리트의 임무. 신들 스스로에 의한 자기 소멸"이라고 적게 된다.
바그너의 드레스덴 시절 친구인 아우구스트 뢰켈은 <반지>의 대본을 읽고 나서 작곡가에게 <신들의 황혼>에서 처음부터 청중을 혼랑스럽게 만들었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황금이 라인 강으로 돌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신들이 몰락해야만 합니까?" 바그너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냈다. "좋은 연주라면, 가장 단순한 관중이라도 이 지점에서는 아무런 의문이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신들의 몰락이 계약서에 들어 있는 문구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아니, 이 몰락의 불가피함은...우리의 가장 내밀하고 깊은 감정에서 솟아오릅니다. 따라서 이런 불가피성을 감정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했으며...작품의 의미(내 시적 의미의 성향을 고려할 때)가 대부분 음악에 의해서만 분명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시(대본)를 음악 없이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프란츠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음악이 울려퍼질(바그너 본인의 강조) 것입니다."
바그너는 작곡 기법을 완벽하게 습득하기 전까지는 <신들의 황혼>을 작곡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뢰켈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빈틈없이 맺어진 통합체가 되는 것으로서, 오케스트라에 그 이전의 구성 단위로부터 발전한 것이 아닌 것은 단 한 마디도 없는 것"이었다. 바그너는 <반지>를 작곡하면서 라이트모티프 - 선율, 화성, 리듬, 심지어 조성으로 이루어진 음악 단편 - 를 더욱 폭넓게 쓰게 되었는데, 단지 배역이나 사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작곡가는 라이트모티프를 대대적으로 확장하였으며, 더욱 섬세할 뿐만 아니라 강렬한 표현력을 만들어내고, 또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여러 단계와 감정을 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라이트모티프를 적절하게 조립해서 사용했다. 감상자가 라이트모티프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바그너의 음악은 여전히 감정적으로 강력하며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브라이언 매기는 오페라와 드라마에 대한 바그너의 관점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악극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다루어야만 한다. 악극의 목표는 전형적인 상황을 참가자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제시하는 것이며, 이러한 극적인 목적에서 음악은 수단일 뿐이다. 비록 유례없이 표현이 풍부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뜻 보면, 극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고 흘러가는 <반지>의 처음 세 작품에 비해서 <신들의 황혼>의 대본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금방 알아볼 수 있고 쉽게 뽑아서 쓸 수 있는 아리아가 있으며, 멋진 사랑의 이중창이 있는가 하면 피로 맹세하는 우정의 이중창도 있고 또 으스스한 복수의 삼중창과 열광적인 합창도 있다. 그러나 바그너는 최종적으로 <신들의 황혼>의 작곡을 시작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몇몇 자구나 단어를 바꾼 것 외에는 대본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는 대본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것을, 그때까지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관현악 작품 - 브륀힐데의 마지막 연설 다음에 흘러나오는 장엄한 기악곡에 이르는 부분 - 을 쓰는 데 정확하게 필요한 단어와 극적인 상황을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복잡한 삶과 상황, 감정을 이토록 심오하게 요약하는 역할은 오케스트라가 표현해야만 한다. 단지 언어만으로는 그런 상황을 완전하게 다루거나 참된 변용과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이는 카타르시스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들의 황혼>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해낸다.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반지>가 초연되고서 몇 년이 흐른 후에, 작곡가의 부인 코지마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저녁 만찬 전에 그(리하르트)가 <신들의 황혼>의 종결부를 훑어보더니 그토록 복잡한 것은 다시는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바그네리안들도 그가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첫댓글 병원 행사가 있어서 이번 감상회는 참석이 힘들겠네요~
오늘 해음회 정기감상회는 참석자가 적어 취소하고 7월에 반지원정대 마감하겠습니다. 7월 감상회는 부산시향 연주회 관계로 18일로 계획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회장님 열씨미 준비하셨을텐데 지송하네요. 다음달엔 꼭 참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