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암흑천지에 긴장된 적막감이 흐르는 뒷골목. 어
느 순간 긴박한 발소리가 들 려오고, 누군가 정신없이 달려
온다. 그리고 그를 쫓는 3,4명의 남자들.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숨막히는 추격씬이 이어지고...
도망자, 간신히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몸을 숨긴다. 얼굴에
선 비 오듯 땀이 흐르는 데 캡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어 표
정을 읽을 수가 없다.
#2 시골 장터 (다른날 낮)
흩날리는 눈발, 질척한 눈길 위에 장이 섰다.
추위로 오돌오돌 떨며 분주하게 물건을 사고 파는 촌부와
촌아낙네들.
그 잿빛 풍경 속으로 프레임 인 되는 고급 양장차림의 윤
희. 모두들 눈을 맞고 있 는데 혼자 우산을 받쳐쓰고 걷고
있다. 사람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 질퍽한 인파 속 눈길에 쪼그리고 앉아 자꾸 빠지고 벗겨
지는 검정고무신을 아 예 끈으로 발과 함께 꽁꽁 묶고 있
는 남자, 갑식이다.
갑식, 일어나 검정고무신의 안정성을 시험해 보느라 걸어보
고 뛰어도 보는데, 그러 다가 누군가와 퍽 부딪힌다. 보면
영화배우 문희 같은 여자가 살풋 목례를 하고 있다. 윤희,
창백하고 병색이 짙어 뵌다.
갑식 (당황, 꾸벅 절을 한다)
윤희, 갑식과의 충돌로 질퍽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가방을 주우려는데, 갑
식이 먼저 후다닥 가방을 주워 제 옷으로 눈이며 진흙을 털
고 닦아서 건넨다.
윤희 (엷은 미소로 목례하고 걸어나간다)
갑식 (이 촌구석에 저런 여자가 왜? 누굴까?)
#3 김회장 저택 거실
분노한 지팡이 도자기를 박살내고...
김회장 (진노한) 뭐이래? 탈영을 해? 탈영을? 이 종간나 새끼
를 기냥!
비서 아무래두 강제로 입댈 시킨 게... ...
김회장 (부들부들) 찾으라우! 군에서 찾기 전에 우리래 먼저
찾아야 헌다! (분노) 그 에미 나일 찾아갔을 끼야. 날래 그
에미나이부터 찾아보라우!
비서 네 회장님!
김회장 (불안)
#4 온통 눈밭인 시골길 (밤, 눈)
얼큰하게 취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읊조리며
걸어오는 갑식. 그의 손에서 마른 미역 한 단이 덜렁 덜렁
거린다.
갑식, 어느 순간 뭔가에 부딪혀 크게 휘청한다. 중심을 잡
고 보면 웬 가방이다! 주 워드는데 그 가방 낯이 익고, 빠르
게 주위를 살펴보면, 바로 몇미터 앞에 나뒹굴고 있는 윤희
의 우산이 먼저 보이고 저 멀리 쓰러져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
다. 갑 식, 놀라서 달려간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윤희, 배를 감싸안고 신음하고 있다.
갑식 보소! 보소?
윤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 줌 우리 아기 줌 살려, (혼절
한다)
갑식 (놀라서) 보소? 보소? 이보소?
윤희 ... ....
갑식 (비로소 보면 여자 만삭의 산모인데)
여자의 몸에서 양수가 터져 흘러나오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갑식, 서둘러 윤희를 들쳐안고 손엔 또 윤희
의 가방까지 들고서 푹 푹 빠지는 눈길을 힘겹게 걸어나간
다. 그들을 휘몰아치는 눈발이 거세다.
#5 길녀의 집 외경
방안에선 산통이 시작된 산모의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요란
하다.
#6 안방
길녀, 누운 채 산통으로 배를 감싸안고 몸이 뒤틀려
엉덩이를 들썩인다. 길녀, 손 을 뻗어 수건을 잡아 입에 꽉
물고, 안간힘으로 고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키고 엉 금엉금
기어가 장롱에서 배냇저고리며 아기용품을 꺼내 한쪽에 둔다.
#7 부엌
길녀, 뜨거운 가마솥 뚜껑을 힘겹게 열고 대야와 가위
를 삶으며 혼자서 출산 준비 를 하는데,
갑식 (E, 지친) 봐라! 봐라! 여 좀 나와봐라!
길녀, 수건을 빼 손에 꽉 쥐고 통증 참으며 벽을 짚고 문을
짚고 간신히 나가는데,
#8 마당
마당엔 눈사람이 된 남편이 만삭의 웬 여자를 안고 기
진맥진해서 서 있다.
길녀 (? 기운없는) 멉니꺼? 누구라예? (가까이 다가가서)
이 여자 누굽니꺼? 예?
갑식 (버럭) 퍼뜩 들가 요짜리부텀 안깔고 머하노? 이노무
여핀네 서방 잡을라카나 퍼 뜩 띠가가 문부터 몬여나?
길녀, 그 서슬에 고통으로 한손으론 배를 감싸고 또 한손으
론 허리를 받쳐 힘겹게 걸어가 방문을 열어준다.
갑식, 윤희를 안고 조심조심 들어간다.
길녀, 갑식이 마루에 던진 윤희의 가방까지 들고 힘겹게 따
라 들어간다.
닫히는 문. 잠시 후, (E) 길녀와 윤희가 내지르는 비명소리!
#9 부엌
갑식, 부지런히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다. 두 여자
의 비명 가팔라질수록 더욱 초 조해지고...
#10 안방
나란히 누운 길녀와 윤희, 똑같이 입에 재갈을 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몸이 땀인 길녀, 젖 먹던 힘까지 다 토해내며 힘을 주고
있다.
길녀 아 윽- (호흡 조절하며 다시 한번) 아 윽-
그런데 윤희는 창백한 얼굴로 영 기운을 못 쓰고 있다.
길녀 (느끼고) 보입시더. 그카문 절대로 아 안나옵니더. 힘
주이소. 내처럼 이래 윽-! 윽 -! 따라해 보이소.
윤희 (안간힘으로) 아 윽-! 윽-!
길녀 더 시게! 더 팍팍!
윤희 아으 윽-! 아으 윽-! (죽을 힘을 다해 힘을 준다)
#11 길녀 집 외경 (다음날 새벽)
저 멀리 성탄절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면서 여명
이 밝아온다.
(E) 응아- 하고 터지는 아이의 울음소리!
잠시 후, 그 울음소리 위에 겹쳐 터지는 또 한 아이의 응아-
하는 울음소리!
윤희, 죽어있다. 그리고 그 옆엔 빨간 핏덩이가 엄마
의 죽음을 아는지 요란하게 울 고 있다. 눈처럼 하얀 차가
운 엄마와 피처럼 붉은 뜨거운 아기.
갑식 (멍하다)
길녀 (멍하다)
갑식 (윤희의 가방을 가져다 건네며) 열어봐라.
길녀 가방은 와예?
갑식 신분을 알아야 지서에 신골 할 꺼 아이가?
길녀, 끄덕이며 가방을 열고 소지품들을 꺼내는데 겨울 옷
가지들이 나오고 그 끝 에 달려 오래된 회중시계가 나온
다. 길녀, 그 회중시계 신기해서 들여다보다가 문 득 시계
를 여는데 안에는 한복을 곱게 입은 젊은 여자의 흑백사진이 들어
있다.
길녀, 유심히 보는데...
갑식, 빼앗아 그 사진 들여다본 후 시계 안과 뒷면을 자세
히 살펴보는데,
길녀 (E, 비명처럼) 여,여보?
갑식 (홱 쳐다보면)
신문지에 싸여있는 엄청난 액수의 돈다발!
화들짝 놀란 길녀와 갑식의 휘 동그래진 시선이 공중에서
만난다.
#14 김회장 저택 외경 (다른날 낮)
#15 김회장 서재
씬13의 회중시계 속 여자와 동일한 여자의 사진액자!
초췌한 김회장, 퀭한 시선으로 그 여자를 응시하고 있다.
김회장 (물끄러미 유품상자 응시)
비서 애...가 있답..니다 회장님!
김회장 (홱 쳐다보고 기다린다)
비서 실종된 윤희양... 임신한 채 집을 나간 모양입니다.
김회장 (파르르) ... ...
비서 (물러나는데)
김회장 찾으라우! 무신 일이 있어두 그 에미나이 찾아내서
내 손주래 델꾸오라우!
#16 길녀 안방
나란히 잠들어 있는 두 명의 아기.
길녀, 이부자리 위에서 미역국 양푼을 후루루 비우고 있다.
길녀 (입을 쓱 닦고는 손바닥으로 젖을 누르며) 젖이 통 안도
네. 퍼뜩 돌아야할 긴데. 지서선 안즉 소식 없심니꺼? 신고
헌지가 하마 은젠데?
갑식 사진을 신문에 낸다꼬 했시니까 기다리보문 소식이
있것재.
그때 잠에서 깬 윤희의 아이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그런데 길녀, 아이를 안아주지 않고 이부자리로 간다.
갑식 (?) 머하노? 아 울어쌌는데 퍼뜩 안안꼬?
길녀 (귀를 막고서) 안아도 소용?심니더. 가 지금 배고파
서 우는 깁니더.
갑식 (벌떡 일어나) 그라문 퍼뜩 젓(젖)을 물리야지 와 귓
구멍 처막고 그래 누버있노?
길녀 (더 세게 꽉 막는다)
갑식 쓰으- 퍼뜩 몬일나나? 퍼뜩?
길녀 (억지로 일어나서 자신도 답답해서) 그라문 우얍니꺼? 쟈
먼저 멕이고 통 저시 안 돌아서 저녁에도 우리 아한텐 빈젖
만 빨?는데! 또 굶김니꺼? 예?
갑식 (일순) ... ... 그래도 물리라.
길녀 (사정) 여보?
갑식 쓰으-
길녀,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안타까운 시선
으로 잠들어 있는 자 신의 아이를 바라본다. 마음이 아린
다.
길녀 (긴 한숨) 죽은 야 엄마 가족들 끝내 몬찾으믄 야는 우
얄 깁니꺼?
갑식 ... ... (골똘하다)
길녀 (불안) 당신 혹시, 안됩니더 절대 안됩니더! 행여라도
쓸데?는,
갑식 (O.L) 시끄럽다 마! 공 들있는데도 끝내 안나타난다카
문 야는 마 우리 연인 기다!
길녀 여보?
갑식 (누우며) 하늘이 정한 니 연이고 내 연이다. 품어야지
도리 있나? (눈을 감는데)
길녀 좋심니더! (돈다발 응시하며 절실한) 그라문 내인테
딱 한가지만 약조를 해주이소! 그카문 나도 당신 뜻에 따르
겠심니더! (비장하다, F.O)
]
#17 시골 국민학교 교실 (1988년 초3, 비)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칠판 중앙에 '자습'이라고 적혀있고, 그 한쪽 귀퉁이에 떠
든 사람 '이은희'라고 적 혀 있는데, 그 아래 또 '이은희 김
지영 박영숙'이라고 적고 있는 반장아이. 뒤편을 흘겨보며
씩씩거리는 폼이 화가 많이 난듯 하다.
교실 뒤쪽에선 은희와 아이들이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
오'를 부르며 소방차 흉내를 내고 있다.
도저히 못참겠는지 반장아이 은희들을 흘기고 씩씩거리며
뒤편을 향해 가나 싶었 는데, 단아하고 총명해 뵈는 금희
의 책상에 가 멈춰선다.
금희, 다 푼 문제집 채점하고 있다.
반장 쟈들 니가 조용히 좀 시키라! (울상) 안그라문 내 또
샘한테 혼난다!
금희 (100점이라고 표기하며) 싫다! 반장은 니다 아이가?
반장 야, 이은희 저 가시나가 어데 내말을 듣나? 그래도 부
반장 니말은 듣는다 아이가?
금희 (그제야 고개 들고 뒤쪽을 쳐다본다)
은희들 저희들끼리 빠져서 더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
고 있다.
금희 (한심) 후우- (흘기며 쳐다보다가 벌떡 일어나 교탁으
로 가서) 야 거게 뒤쪽! 김 지영 박영숙은 퍼뜩 제자리로 가
고 (쏘아보며) 이은희 니는 거기 무릎 꿇고 앉아 라!
은희들 멈추고 황당한 듯 금희를 쏘아본다.
은희, 금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금희 (은희 쏘아보며 다부지고 엄하게) 뭐하노 이은희? 꿇
어앉으란 소리 몬들었나?
은희 (맞받아 쏘아보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 일제히 은희와 금희에게로 쏠려있다.
지영 저 가스나가 근데! (씩씩거리며 교탁 앞으로 가며)
야, 이금희! 니가 선생님이가 선생님이가 이 가스나야! (하
는데)
은희, 금희를 쏘아보며 천천히 꿇어앉는다!
금희도 놀라고 아이들도 놀란다.
금희 (놀란 시선으로 은희를 바라보는데)
은희 (차갑게 외면한다)
그때 교실 문 열리고 담임이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담임 (금희와 은희를 번갈아 보고 알만하다는 듯) 또 머꼬
이은희? (다가가며) 이노무 자슥, 또 떠들었나 또? (쥐어박
으며) 요놈아 제발 금희 반이라도 해라 금희 반이 라도
어? 자슥아, 이란성이라꼬 해도 명색이 쌍둥이자맨데 허구헌날 니
는 와 요모 양이고 어? 금희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금희 (마음이 불편하다)
은희 (금희가 얄미워서 사납게 쏘아본다)
#18 시골길 (비)
노란 우비에 노란 장화를 신은 금희, 허겁지겁 빗길
을 달려오고 있다.
금희 같이 가자 은희야! 은희야!
50미터쯤 앞에 비료포대에 구멍을 내 목을 내고 팔을 낸 우
스꽝스런 우비를 입은 은희가 살이 나가 찌그러진 검정우
산을 받쳐들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금희, 은희를 따라잡고 나란히 걷는다.
은희 (아는 체 하지 않고 걷기만)
금희 (기척 살피고는) ... ...
금희의 노란 장화 순탄하게 길을 걷는데, 은희의 낡은 운동
화는 조심하려면 할수 록 자꾸만 흙탕물에 빠진다.
그때 트럭 한 대가 빗길을 달려 아이들 옆을 지나가며 심하
게 흙탕물을 날리는데, 금희, 민첩하게 은희를 제 뒤쪽으
로 밀어 그 흙탕물을 자신의 비옷으로 막아준다. 최대한 많
이 막기 위해 다리를 벌리고 양팔까지 벌린 자세로. 그런 금희의
얼굴에 흙탕물이 튀어져 있다.
은희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만다)
금희 (그 웃음에 마음이 놓인다)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하는 은희와 금희.
금희 와 꿇어앉노 바보같이?
은희 (이미 마음은 풀어졌다) 씨이- 자기가 꿇어앉아라꼬
해놓고!
금희 그거는 니한테 화도 나고, 또 자꾸 아들이 니가 내 동
생이라꼬 떠들어도 내가 니 만 봐준다꼬 하니까...
은희 피이- 내도 진짜로 꿇어앉기 싫었다 머!
금희 그란데 와 꿇어앉노? 10분만 더 버팅기문 쉬는 시간인
데.
은희 그걸 누가 모리나? 아까 내가 안꿇어 앉았어봐라. 아
들 보는 데서 언니 체면이 머 가 되노? 차라리 내가 쪽팔리
는 기 낫지.
금희 (멈춰서고 바라본다, 그런 마음인 줄 몰랐다)
은희 와?
금희 ... ...
은희 아우 참, 와? 머?
금희 (갑자기 우비를 벗어 건넨다) 입어라!
은희 (휘 동그래져 ?해서 쳐다본다)
금희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니 준다꼬! 이 우비, 갖
꼬 싶어했다 아이가?
은희 (진심인가? 우비 정말 탐난다!) 진짜로 내 주는 기가?
언니야 진짜? 진짜로?
금희 셋 셀 동안 결정해라! 아니문 내맘 바뀔 지도 모린다!
하나- 두울- 세,
은희 (홱 낚아채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금희 (미소짓는다)
신이 난 은희는 우산을 팽개치고 서둘러 우비로 갈아입고,
금희는 은희가 팽개친 우산을 집어 받쳐쓰고 은희를 씌워
준다.
노란 우비를 입고 빗속을 폴짝폴짝 좋아서 뛰어다니는 은
희.
#19 바뀐 길녀집 마당 (비)
몸빼 바지에 머리에 수건을 두른 전형적인 시골아줌마 길
녀, 은희처럼 비료포대 비옷을 입고 여물통을 들고 부엌
을 나와 돼지우리로 가며,
길녀 학쪼 끝났으문 어픈어픈 기들오지않고, (돼지에게 여
물을 먹이며) 오늘 하우스에 퇴비넣고 멀칭헌다고 내가 지
헌테 ?번을 말했노 말이다. 콩알만한 기 이거는 거 릿귀신
이 씐나 허구헌날, (하는데)
자매들 (E) 학교 다니왔슴니다!
길녀 (쌍심지 켜고 쳐다보는데, 그 눈이 더 사나워진다)
은희의 비료포대 비옷을 입은 금희! 금희의 노란 비옷을 입
은 은희!
쫄딱 젖은 금희는 추운지 연신 오돌오돌 떨며 파리한 얼굴
로 기침을 해대는데, 은 희는 입이 귀에 걸려 해죽해죽이
다.
은희 엄마! 언니가 이거 내인테 ?다! (모델처럼 포즈를 잡
으며) 내 이쁘재? 억쑤로 죽 이재? 어? (김완선 눈으로 섹
시하게 엄마에게 다가가며) 나 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
서-(하는데)
길녀 (매섭게 뺨을 날린다)
은희 (홱 돌아간 채 너무 놀라서) ... ...
금희 (깜짝 놀라서) 어,엄마?
길녀 벗으라! 퍼뜩 몬벗나? 이노무 가스나 그저어 창자에
욕심만 꽉 차갖꼬, 느거 언니 몸 약한 거 아나 모리나? 툭
하문 감기고 툭 하문 퍽퍽 쓰러지샀는데 이 빗속에 이 날
씨에 어? 뺏을 게 따로 있재, 요노무 가스나 니는 양잿물이라케도
느거언니 꺼라문 뺏아서 마시고 볼끼다!
은희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뺏든 거 아이다! 내가
뺏든 거 아이단 말이다! 내 는 암말도 안했는데 언니가 먼
저 ?단 말이다!
금희 맞다 엄마! 내가 ?다! 은희가 뺏든 기 아이고 내가 준
기다!
길녀 (조금 당황스럽지만) 둘 다 시끄럽다 마! 멀 잘했다꼬
찔찔 눈물이고 눈물이! 니도 그렇다! 천날만날 양호실로 보
건소로 에미 심장을 ?다 붙였다 하문서, 내가 돈이 썩어
자빠져서 이딴 비옷 사준 줄 아나? 비 맞꼬 또 저번참처럼 폐렴에
라도 걸리 봐라, 빙원비에 약값에. 니 은제까지 에미 애비
등골 뺄래 은제까지?
금희 잘몬했다. 진짜로 잘몬했다 엄마. 그러니까 은희 야단
치지마라. 은흰 하나또 잘몬 없다!
은희, 추위에 빨갛게 익은 얼굴과 손으로 우물의 물을 긷고
있다. 두레박을 올리는 줄이 차갑고 따가워 연신 머리를 숙
여 호호 불어대면서 줄을 올린다.
#21 마을길 - 길녀집 앞
은희, 바께스가 무거워 몇 번이고 바닥에 놓았다 들었다 하
며 힘들게 옮기고 있다.
은희, 끙끙거리며 거의 집까지 다 왔는데 그만 돌부리에 걸
려 넘어지면서 바께스 까지 쓰러뜨려 물을 다 쏟고 만다.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나는 은희.
은희, 툭툭 털고 일어나 피가 나는 손바닥을 잠시 들여다보
다가 입으로 그 피를 쪽쪽 빨면서 다른 한손으론 쓰러진
바께스를 줍는데, 손바닥이 까진 것보다 텅빈 바께스가 더
속이 상하다.
은희 (바로 앞 집 대문을 보고는) 으이씨-! (하고는 터덜터
덜 되돌아간다)
#22 동 우물가
다시 두레박질을 하는 은희, 얼어붙은 차가운 줄이 까진 손
바닥을 더 아프게 한다.
#23 자매의 방
길녀, 은희의 손에 호호 불어가며 머큐롬을 발라주고 있다.
은희 (성질부리며) 으이 신경질나! 수도꼭진 와 얼어붙고
야단이고! 인자 내는 안갈끼 다! 엄마 니가 해라!
길녀 그라문 물은 엄마가 길러 올테니까 니는 들에 아부지
새참 내가라.
은희 으이 추버죽겠는데 또? 싫다! 금희언니 시키라! 엄마
는 와 맨날 내만 시키노?
금희, 방학숙제 하다가 그 말에 뒤돌아본다.
금희 (미안한) 내가 가께 엄마.
길녀 (정색) 어데를? 어데를 니가 간단 말이고? (엄한) 니
는 여 신경쓰지 말고 거 공부 허는 데나 단디 신경 써라.
(정리하고 일어나며 은희 향해) 나가자. 언니 공부하는 데
신경 쓰이게 허지말고.
은희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며) 싫다! 내는 안간다!
길녀 니 자꾸 이랄래? 이랄래 니? 퍼뜩 안일나나?
은희 10분만! 엉? 그라문 5분, 딱 5분만 엄마 엉? (하는데)
길녀 (이불을 확 걷어내고 귀를 잡아당겨 강제로 일으키며) 이
노무 가스나는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재 어? 퍼뜩 안일나
나? 퍼뜩 안일나나?
은희 (끌려나가며) 아야! 아야! 알았다! 간다! 간다 엄마!
내 가께! 내 가께 엄마! 그러 니까 제발 귀 좀 놔라! 귀 떨어
진다 아이가!
#24 논두렁길
새참 소쿠리를 머리에 인 은희, 퉁퉁 부어서 걸어가고 있다.
은희 (씩씩거리며) 미버! 엄마 미버!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
만큼 엄마 미버! (파르르 멈 춰서서) 씨이- 두고봐라! 난중
에 엄마, 꼬부랑할매 되문 내가 고려장해 버릴끼다! 밥도
안주고 물도 안주고 산에 업고가서 꼭 내다버리삐고 말끼다!
#25 비닐하우스가 있는 들
은희, 새참 이고 오다가 뭔가 발견하고 휘 동그래져서 걸음
을 멈춘다.
간밤에 몰아친 강풍으로 날아간 비닐하우스. 찢어진 비닐
들, 흉물스럽게 내려앉은 철골들, 서리를 맞아 얼어죽은 딸
기들.
난장판이 된 풍경 속에 갑식, 군 공무원들과 언쟁중이다.
갑식 (핏발선 눈으로 잡아끌며) 함 봐라! 눈깔 박히있으문
똑똑히 보란 말이다! 똑똑히!
공무1 (뿌리치며) 으이 이거 못놔? 보자 보자하니까 이 사람
이 정말! 그래서? 그래서 우 리보고 어쩌라구?
갑식 표준설계도대로 안하문 정부보조금이고 머고 국물도
?다꼬 하도 으름장을 나서 있는 거 다 뜯어내고 느거들
시키는 대로 다시 지은 기다! 그란데 무너?다! 폭설 에도
끄덕?다고 하던 기 바람 좀 시게 몰아?다꼬 이래 맥?이 무너지
뿌?단 말 이다! (멱살을 잡으며) 내 하우스 우짤끼고? 내
딸기 우짤기고 이자슥들아!
공무1 이 새끼야 그걸 왜 우리한테 그래? 니 농사지 우리농사
야? 니가 제대루 못져놓고 누구한테 행패야 행패가? 미친
새끼! 무식해빠져갖구! 별것도 아닌 걸갖구 사람을 오라가
라야? 어이, 그만 가자! (가는데)
갑식 (분노로 부르르 떨고)
갑식, 근처의 여물통을 들고 뒤쫓아가 그 공무원들에게 홱
똥물을 뒤집어씌운다.
비명을 지르는 공무원들!
갑식 (글썽) 니놈들은 머가 그러케도 항상 쉬분 기고? 한
해 농사다! 내헌텐 내 피고 땀 이고 내 자식놈들 미래고 희
망이란 말이다! 제발 농사갖꼬 장난질 치지말란 말이 다!
(하는데)
열받은 공무원들 갑식에게 덤벼들고, 세 사람 한바탕 거름
밭에서 뒹굴며 주먹질을 해댄다. 갑식, 맞고 터지고 밟히
고...
은희 아부지! 아부지! (공무원들 팔을 잡고 말리며) 때리지
마이소 아저씨! 우리아부지 때리지 마이소 아저씨! (공무
원 마구 때리며) 때리지 말란 말입니더 때리지!
공무원 은희를 확 내동댕이치는데 철골에 박혀 이마에서 피
가 흐른다. 피를 보고 울상이 되는 은희. 그러나 그 피 쓰
윽 닦고 울음을 꾹 참으며 다시 달려들어 공무 원1의 다리
를 꽉 물어버리는 은희!
#26 시골길 (해질 무렵)
여기 저기 터지고 온몸에 똥칠을 한 갑식과 소쿠리를 머리
에 인 은희가 나란히 걸 어온다. 은희의 이마에도 상처가
있다.
갑식 쪼매만 앉았다 가자 은희야.
갑식과 은희, 적당한 곳에 나란히 앉아 벼가 잘려나가 텅
빈 겨울 논을 바라본다.
갑식 (겨울 논처럼 황량한 눈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은희 (그 모습이 왠지 슬프다)
갑식 아부지헌테서 똥냄새 많이 나재?
은희 (끄덕끄덕 하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 아니라고 도리질)
갑식 자슥! (일별하고 다시 겨울 들판을 응시한다)
은희 (아버지를 좇아 겨울들판 바라보며) 논이 참 슬프다!
저 논도 우리 딸기처럼 얼어 죽은 기가?
갑식 아이다. 논은 안죽는다. 일년 내내 비지땀 흘리문서
고상을 억쑤로 해서 시방은 쉬 고 있는 기다.
은희 그래도 내눈엔 자꾸 죽은 거맨쿠로 보이는데?
갑식, 갑자기 눈을 파서 걷어내고 겨울땅을 박차고 솟아나
있는 겨울 들풀을 찾아 낸다.
갑식 잘 보그라. OOO라꼬 하는 들풀이다. 이 OOO를 누가
낳고 키웠을 꺼 같노?
은희 (들풀과 땅을 바라보며) 음.. 흙? 아니 아니 땅?
갑식 맞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붓고 폭설이 내리도 땅은 결
코 죽는 법이 ?다. 시방은 은희 니처럼 겨울방학 한 기다.
은희 그라문 아부지두 겨울방학 해라. 일년 내내 고생 많
이 했으니까 하우스 무너?다 꼬 속 상해 하지말고 딸기 죽
었다꼬 맘 아파하지말고 오늘부터 겨울방학 해라. 저 논처
럼. 응?
갑식 (짠하다)
붉게 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딸이 걸어간다.
갑식 은희야!
은희 응?
갑식 은희는 커서 으떤 사람이 되고 싶노?
은희 어떤 사람? 음... 아부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문 조컷
는데?
갑식 이 똥 겉고 저 땅 겉은 사람!
은희 머? 또옹 같고 땅 같은 사람?
갑식 하모. 겉은 보잘 거 ?꼬 흉해도 똥처럼 마른 땅에 소
중한 거름이 되고 또 땅처럼 곡식도 품고 풀도 품고 사람
도 품고, 아부진 내딸이 꼭 그런 사람이 되문 좋것다.
은희 (아버지의 말 가슴 깊이 새긴다)
#27 자매의 방
온 벽면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금희의 상장액자들. 그 한
귀퉁이에 은희의 개근 상 3개도 프레임 없이 종이째 그냥
붙어져 있다. 그중 하나는 덜렁덜렁 떨어지려 고 한다.
금희, 콜록이며 공부하고 있다.
은희,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온다.
은희 아으으 추버라! 아으- (하는데)
금희 (안쓰런) 지금까지 들에 있었나?
은희 (끄덕끄덕)
금희 손 주봐라.
금희 (E) 형 이름은 카스토르고 동생 이름은 풀룩스다! 형은 말
타기를 잘하고 동생은 권투와 무기를 억쑤로 잘 다뤘는데
특히 이 동생은 절대로 안죽는 불사신의 몸을 갖꼬 태어난
기라.
#29 동 자매의 방
창가에 나란히 붙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은희
와 금희.
금희 둘은 우애가 너무 좋아가 멀 하든 어델 가든 은제나
함께였는데,
은희 (O.L) 우리맨쿠로?
금희 응. 우리맨쿠로.
#30 몽따쥬 (중학생 은희, 금희)
[시골길} 단아한 교복차림의 금희, 단어장 들고 단어를 암
기하며 다리를 건너 하교 하는데 그 뒤를 2,3명의 남학생들
이 졸졸 따라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비틀즈
LP판과 편지를 전하는데, 교복스커트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깻
잎소녀 은희가 불쑥 나타나선 그 LP와 편지를 낚아채 LP
는 자신의 머리로 박살을 내고 편지는 갈기갈기 찢어서 후-
불어 공중에 날린 후 꺼지라고 손짓한다. 휘동그래진 눈으
로 줄 맞춰 물러나는 남학생들. 그 모습들 위로.
금희 (E) 근데 어느날 다른 마을 젊은이들캉 결투를 벌리다가
고만 형이 죽고 말았는 기라!
은희 (E) 머라꼬? 죽어삐?다꼬? 그라문 동생은 인자 우에 사
노?
[롤러장] 교복스커트 자락을 휘휘 날리며 롤러스케이트를
예술로 타는 은희. 연신 깻잎 머리를 새끼 도끼빗으로 정리
하며 뒤로 가는 묘기까지 부리는데, 그러다 날 라리계의 지
존 여고짱과 꽝-하고 부딪혀 넘어지고 만다. 겁없이 맞짱을 뜨다
가 구 석으로 끌려가 죽살나게 깨지고, 무릎꿇고 살려달라
고 비는 은희의 모습 위로.
금희 (E) 형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동생은 죽을라꼬
몇 번이나 시돌했는데, 마 불사신의 몸으로 태어나가 도저
히 죽을 수도 없었다 아이가. 그래가 동생은 제우 스를 찾
아가가 '제발 저를 죽게 해주십시오. 하루 빨리 죽어서 형하고 함
께 살고싶 습니다.' 하고 간청을 하고 또 하고 그랬거든.
[교실복도] 만화책이며 하이틴로맨스 들고 무릎 꿇고 앉아
벌을 받고 있는 은희. 금희, 복도를 지나가다 그 모습 보
고 속 상해 한다. 그 모습 위로,
은희 (E) 우와아. 그래서 그래서 언니야?
금희 (E) 형제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가 둘이 영원히 함
께 지낼 수 있도록 해줬고 또 둘의 영혼을 하늘에다 올리
가 두 개의 밝은 별로 만들어 ?다 아이가.
#31 인써트
밤하늘의 쌍둥이 별자리.
금희 (E) 그기 쌍둥이 별자리다 은희야!
은희 (E) 언니야, 오늘부터 언니는 카스트로 해라 난 플룩
스 할테니까. 나도 언니가 죽 으면 따라 죽을 기다. 아이다
아이다! 나는 언니가 절대로 몬죽게 항상 언니를지 켜줄 기
다! (F.O)
#32 시골길 (1995년 고1, 초겨울)
등교하는 학생들을 다 태운 버스 막 출발하는데, 저 멀리
서 "스톱! 스톱! 아이씨 아이씨 스톱!"을 외치며 한 여학생
이 달려온다. 무심한 버스, 그대로 달려나가는데,
여학생 칼 루이스처럼 쏜살같이 달려온다. 깻잎머리, 이상
하게 고쳐입어 엉덩이와 허벅지에 딱 달라붙은 민망한 교
복스커트, 검은 스타킹 위에 신은 짝퉁 아디다스 흰 면양
말, 거기다 흰 운동화까지, 척 봐도 한눈에 날라리인 이 여학생, 은
희다!
깻잎 소녀 은희, 정말 잘 달린다. 은희, 이제 버스 뒷꽁무니
까지 거의 다 따라왔다.
#33 버스 안
남학생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은희 향해 휘파람을 분
다.
사이드미러로 달려오는 은희를 연신 힐끗거리는 운전기
사, "아이씨 더 빨리 달리 뿌리소 더 빨리!" 응원하는 남학
생들의 부추김에 속력을 더 내어 달린다.
남학생들 환호하며 신났다!
#34 동 시골길
은희 으이씨- (두 눈 부릅뜨고 더 악착같이 달린다)
은희의 허벅지 움직임에 따라 안그래도 꽉 끼는 교복스커트
가 더 팽팽해져 금방이 라도 터질 것 같다.
은희, 믿을 수 없게도 버스를 따라잡는다! 버스와 나란히 달
리는 은희!! 버스를 추 월해 나가는 은희!!!
은희, 팔을 벌리고 길 한가운데 턱-하니 버티고 서서 마주오
는 버스를 기다린다.
놀란 버스가 끽-하고 은희 앞에서 급정거한다. 몸이 앞으로
쏠려 버스 앞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운전사와 남학생
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일제히 은희를 쳐 다본다.
은희, 그들을 향해 문을 열라는 제스추어 하고, 태연히 사이
드미러를 보며 흐트러 진 깻잎을 새끼 도끼빗으로 잘 정리
한다.
버스 문 열리고, 은희 도끼빗 스커트주머니에 꽂으며 승차
한다. 빗 뒷자루가 뾰쪽 하게 하늘을 향해 비쭉 나와있다.
한데 은희의 스커트 옆선이 허벅지까지 뜯어져 있고, 구멍
난 검은스타킹 안으로 하얀 은희의 허벅지 속살이 탁구공만하게
보인다.
은희, 아무것도 모른 채 회수권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35 달리는 버스 안
은희의 달리기에 기가 질린 남학생들 일제히 길을 내주는
데, 어느 순간 은희의 뜯 어진 스커트와 구멍난 스타킹을
발견한 남학생들 저희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으며 키득키득
인다. 누구는 휘파람까지!
은희,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그 남학생을 향해 윙크를 날리
며 자리를 찾아간다.
은희, 둘러보다가 장동건처럼 생긴 남학생이 앉아있는 자
리 앞으로 가 옥동자처럼 생긴 남학생을 밀쳐내고 손잡이
를 빼앗아 잡고 선다.
옥동자 (뭐라 말하려는데)
은희 쓰으- (가라고 눈짓한다)
옥동자 인상을 쓰며 옆으로 비껴 서는데, 은희의 도끼빗 옥
동자의 중요부분을 콕 찌른다.
옥동자 아으- (손으로 가리며 울상이 되어 조금 옆으로 가서
선다)
은희 (모른 채 장동건만 미소로 바라본다)
한데 버스 급정거하는 바람에 은희의 도끼빗 다시 옥동자
의 그곳을 쿠욱 찌르고 만다!
옥동자 윽-! (감싸쥔 채 아파죽겠다) 야,야!
은희 (홱 쳐다본다) 와? 머?
옥동자 하,하말이 이,있다!
은희 할 말? 머슨 말? (옥동자 찬찬히 보고는) 아~아! 아이
씨(I see) 아이씨! (장동건 신 경쓰며) 쉿-! (가까이 오라
고 손짓, 귓속말로) 야, 단도직입적으로 내 말하께! 어? 나
는 니맨쿠로 몬생긴 머스마한테는 관심이 ?다 어? 그러니까 니도
풀리즈 내인 테 관심 꺼라! 엉?
옥동자 그기 아이고 내말은,
은희 (O.L) 쉿-! 샷따 마우스! 작업 방해하지 말고 어픈 꺼
지라! 어?
옥동자 억울하게 사라지고,
은희, 예쁜 척하며 장동건 바라보다가 버스 쏠리면 기회다
싶어 장동건 앞으로 몸 을 들이대는데,
은희, 보면 적나라하게 뜯어져 못볼 꼴을 보이고 있는 자신
의 스커트!
은희, 화들짝 놀라 손으로 허벅지의 탁구공을 가리는데, 버
스 출발하면서 중심을 잃은 은희, 그만 콰당하고 버스 바
닥에 넘어지고 만다. 은희의 그 적나라한 모습, 가관이고
탁구공 점점 커져 야구공만하게 된다!
#36 OO 종합고등학교 정문 앞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인문계, 다른 한쪽은 실업계
인 종고.
인문계와 실업계 학생들 한 학교지만 다른 교복을 입고, 등
교길을 완전히 양분하 여 서로 재수없어 하며 등교한
다. "아우 저 실업년들 봐라 저기 뭐꼬?" / "으이 저 재수똥
인문고년들 퉤!"
그 무리들 속에 유난히 빛나는 단아하고 청초한 여고생, 금
희다! 금희, 단어장을 손에서 떼지 않고 연신 암기하며 걸
어오고 있다.
금희에게만은 실업고 인문고 구분없이 양쪽 남학생들이 모
두 졸졸 뒤따르고 있다.
실업짱 (껌을 짝짝 씹으며) 머꼬 저 재수?는 가스나는?
실업1 이금희도 모르나! 저쪽 인문고 1학년. 쟈가 우리 도 전체
서 1등이라카더라! 우리학 교 역사상 서울대 입학생 첨으
로 나올끼라고 벌써부터 저짝 인문고 샘들은 쟈 3학 년 되
기만 기다리고 있다꼬 하더라.
실업짱 (공부 잘하고 남학생들까지 몰고다니는 금희 재수없
다!) 퉤! (금희를 찍었다!)
금희, 실수로 단어장을 떨어뜨리는데, 남학생들 일제히 달
려들어 그 단어장을 먼저 줍겠다고 난리법석을 뜬다. 누군
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단어장을 금희에게 건넨 다.
금희, 인색한 미소로 답례하고 다시 단어장에 시선 주면서
걸어나간다.
#37 음악실
날카로운 인상의 음악교사, 카세트 테입을 작동시키면 '베
토벤의 비창'이 흐른다.
은희와 꽃님, 키득거리며 또 감탄하며 야한 잡지 보고 있다.
음악 (테입을 홱 끄면서) 이은희!
은희 하우 바빠죽겠는데 와 또 부르고 난리고? (심드렁) 와
예?
꽃님, 기회다 싶어 잡지를 가져다 혼자 보는데, 은희 그 잡
지 확 낚아채 돌돌 말아 서 스커트 안 허리에 꽂는다.
음악 (흘기며) 방금 들려준 곡 제목이 뭐야 이은희?
은희 예? (들은 바 없다!)
음악 지난 주 청음시험에 너 이곡 제목을 뭐라구 썼어?
은희 아아 그거요? 베토벤의 비참아입니꺼 비참! 샘은 지
가 그것도 틀?을까봐예.
아이들 까르르 웃고,
음악 (기가 막히고) 뭐 비참? 비참? 정말 비참하다 응? 그
리구 G선상의 아리아를 뭐? 지선생의 아리랑? 아리랑?
아이들 키득이고, 은희 웃지말라고 눈짓으로 위협한다.
음악 너는 어떻게 된 애가! (가까이 다가가서) 너 커서 도대
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말해봐 이은희!
은희 똥 같고 땅 같은 사람예.
음악 (파르르) 뭐어? 너 지금 뭐라구 했어? 다시 한번 말해
봐! 다시!
은희 (?) 똥 같고 땅 같은 사람...
음악 (꼭지가 열려서 쥐어박으며) 뭐어? 똥 같고 떡 같은 사람?
떡 같은 사람? 이게 근 데 선생을 어떻게 알구!
은희 샘예 그기 아니고예 떡이 아니라 땅예 땅! 떡같은 사
람이 아이고 땅같은 사람예!
음악 (또 쥐어박으며) 이젠 말까지 바꾸니? 말까지 바꿔?
(하는데)
철퍼덕 떨어지는 야한잡지! 펼쳐진 양 페이지엔 민망한 모
습의 남자들!
음악 (화들짝)
은희 (아후 진짜로 죽었다!)
#38 교무실
은희, 야한 잡지 머리 위로 든 채 꿇어앉아 손들고 벌을 서
고 있다.
지나가는 교사들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마디씩 한다.
금희 (또야? 속 상하고 창피해서 차갑게 쏘아본다)
은희 (슬그머니 피한다)
음악 이금희 일루 좀 와봐.
금희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한다)
음악 늬들 진짜루 쌍둥이 맞니? 뭔가 잘못 된거 아냐? 달라
두 어떻게 이렇게 달라?
금희 ... ...
음악 니가 언니라며? 너만 잘 하지 말구 동생두 좀 챙겨! 허
구헌날 이게 뭐니? 이런 식 으루 계속 방치해봐 생 날라리
밖에 더 되겠어? 이게 다 나중에 니 짐된다?
은희 (고개를 홱 들고 음악 쏘아본다)
금희 (무겁게 은희를 응시)
은희 (금희에게 미안하고)
그때 실업짱의 똘마니 날라리 하나가 건들건들 걸어가 은
희 얼굴을 향해 휘익 껌 을 뱉어날린다. 포물선을 그리며 은
희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는 껌!
그러나 은희, 오른손의 도끼빗으로 실업짱을 겨냥하고 왼손
으로 날아오는 껌을 멋 지게 홱 잡는다! 은희, 왼손을 펴 손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는 껌을 흔들어 보여준 다.
은희 (요것들아! 어때 내 실력이? 의기양양해서 실업짱 겨
냥하며 덤비라고 손짓한다)
실업짱 비웃음 흘리며 은희를 노려보면서 건들건들 몇걸음
앞으로 나와 은희를 향 해 껌을 또 휘익 날린다. 이번엔 포물
선이 좀 더 높고 크다!
은희, 멋지게 점프를 해서 또는 체조선수처럼 덤블링해서
그 껌을 멋지게 잡고 완 벽하게 착지한다.
금희를 비롯한 쌍둥이들 은희의 멋진 모습에 낮은 탄성을
터뜨리며 은희를 응원하 는데,
은희,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그 손을 감싸고 데굴데굴 구른
다.
은희 아으- 아으
아이들 놀라서 은희를 부르며 달려오고, 은희를 부축해 일
으키고 은희의 손 펴보 면 은희의 손에서 피가 흐른다. 면도
칼 껌이다!
쌍둥이들 비명 지르고, 뒤늦게 은희도 면도칼을 보고 죽어
라 비명을 지른다.
금희 (분노로 부들부들 실업짱을 노려본다)
실업짱 (금희 향해) 또 보자! 내 심심할 때 엉? (건들건들 걸
어나가다가 되돌아와 은희를 향해) 가스나 니는 앞으로 한분
만 더 내눈에 띠문 그땐 진짜로 죽음이다 어?
은희 (부들부들 떨며 비굴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 끄덕인
다)
은희와 길녀, 돼지우리 청소중이다.
은희, 빽빽 울어대는 돼지 엉덩이를 퍽퍽 쳐가며 돼지똥을
치우는 폼이 능숙하다.
은희 우리 담탱이가 월요일날 엄마 좀 보자더라!
길녀 와? 니 또 사고?나?
은희 엄마는! 내가 맨날 사고만 치는 줄 아나? 진학상담! 이
과 갈 건지 문과 갈 건지 대학은 또 어데로 생각하고 있는
지, 그런 거 상담하는 기다.
길녀 (멈추고, 무거운) 은희 니 꼭 대학엔, (하는데)
금희 (E, 다급한) 엄마! 엄마!
길녀와 은희, 홱 돌아본다.
금희 (글썽) 사,사고... 났단다 아부지!
은희 머?
금희 아,아부지 교통사고 나갖꼬 지금 읍내 병원에 실리갔
다고 욱이네 아저씨가...
길녀 (얼어붙는다)
#45 읍내 병원 복도
길녀와 은희, 금희, 하얗게 질려서 달려온다.
#46 병실
길녀들 뛰쳐들어와 보면, 갑식 의식을 잃고 누워있고 갑식
의 오른쪽 다리 기브스 한 채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의사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안심하세요.
길녀 (안도한다)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선상님! (꾸벅 절
을 하는데)
의사 인산 수술 끝나고 받겠습니다!
길녀 (화들짝) 수술이라고예? (갑식을 돌아보며) 머슨 수술예?
의사 오른쪽 티비아가 아니 정강이뼈가 부러졌어요. 무릎
뼈도 탈구가 좀 됐고. 수술은 뭐 간단하니까 걱정할 필욘
없습니다만 앞으로 1,2년간은 농사일 못할 겁니다. 빨 리
걸어다니려면 재활치료도 해야하고 또 다리에 함부로 무릴 주게
되면 평생 목 발을 짚고 다녀야 될 지도 모르니까요.
길녀 (풀썩 주저앉는다)
은희 (얼어붙고)
금희 (얼어붙고)
#47 길녀집 마당 (밤)
축 늘어진 은희와 금희, 걸어 들어오고 마루에 나란히 걸터
앉는다.
은희도 금희도 말이 없다.
#48 병실
갑식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길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길녀 (긴 한숨을 내쉰다)
갑식 땅 꺼지것다.
길녀 (홱 쳐다본다) 금희아부지? 은제 깨십니꺼? 몸은 어떠
예? 괘안아예? 아프문 아프 다고 하이소 예?
갑식 내는 마 괘안으니까 니는 고마 집에 가봐라. 퍼뜩?
길녀 아픈 사람을 혼자 두고 자꾸 어델 가란 말입니꺼?
갑식 올밤에 기온 떨어진다하더라. 퍼뜩 가서 온도 안떨어
지게 하우스에 물 넣어라.
길녀 시방 딸기가 중합니꺼? 내는 내서방이 더 중합니더!
갑식 쓰으- 퍼뜩 몬일어나나? 내 몸둥아린 내 목숨 하나뿐
이지만 그 딸기에는 우리 네 식구 목숨이 몽땅 달리있다!
일나라! 퍼뜩?
길녀 (속 상하다)
#49 비닐하우스 안
고무호스(아니면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스런
물줄기, 빨간 딸기밭 곳 곳에 분사되고 있다.
은희, 츄리닝 바지 걷어붙이고 이마의 송글송글한 땀을 닦
아가며 밭에 물을 주고 있다. 그 손길에 정성이 묻어난다.
은희, 아버지의 딸기 소중하고 애틋하다.
길녀,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조금 놀라서 그 모습 바
라보고 섰다.
길녀, 은희를 오래 응시한다. 길녀의 눈이 한없이 무겁다.
#50 길녀 안방
길녀, 회중시계 골똘하게 응시하고 있다. 윤희의 가방
도 보이고...
길녀, 뭔가 갈등하고 있다. (F.O)
#51 OO 종합고교 정문
길녀, 운동장으로 들어서 교사를 바라보는데 그 표정 긴장
되고 비장해 보인다.
#52 은희 교실
은희, 창가에서 서서 도시락 급하게 까먹다가 엄마를 발견
하고 반색한다.
은희 (고개 내밀고 손 흔들며) 엄마! 엄마 여다! 여다 엄마!
(하는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분주히 계단을 오
른다.
은희 (갸웃, 도시락 놓고 교실을 나간다)
#53 상담실 앞
은희, 폴짝 뛰어 유리창 안을 보면 엄마가 담임과 상담중이
다.
은희 (무슨 얘기 오가는지 궁금하다)
은희, 몰래 살짝 손잡이를 돌려 고개를 빼곰히 들이밀고 엿
듣는다.
#54 상담실 안
담임 제가 볼땐 은흰 문과보다는 이과쪽을 선택하는게,
길녀 (O.L) 아니예! 지 오늘 선상님캉 문과 이과 상담할라
꼬 온 기 아입니더!
담임 네? 그게 무슨...
길녀 우리 은희, 저짝 실업고등학쪼로 옮길랍니다! 옮기주
이소 선상님!
은희 (화들짝 놀란다)
담임 네? 은흰 아무말 없었는데? 그리구 저쪽 학교에 결원
이 생기지 않는 한 옮길 수 가 없어요. 학교인원순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제 맘대로 이쪽 저쪽으로 학생을 옮 길 수
가 없거든요.
길녀 안됩니더! 꼭 옮겨주시야 합니더! (벌떡 일어나 꾸벅
꾸벅 절을 하며) 이래 이래 부 탁드립니다 선상님! 옮겨주
이소 예?
담임 (난감) 죄송합니다만 은희어머니 그건,
길녀 (O.L) 그럼 자퇴시킬랍니다! 은희, 자퇴시켜 주이소
선상님!
은희 (얼어붙고)
길녀 아 아부지가 다?심니더! 농사도 몬짓고 당분간은 꼼
짝?이 빙원신세를 지게 생? 는데 우얍니꺼? 안할 말로 지
나 나나 나가서 몸이라도 팔아야 저그아부지 빙원비 대고
저그언니 공부시키고 할 형편입니더! 자퇴가 낫겠네예! 자퇴할랍
니더! 그러니 까 낼 당장 우리은희 자퇴시켜 주이소 선상
님! (하는데)
담임 (발견하고) 은희야?
길녀 (놀라서 홱 쳐다보면)
은희,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길녀를 쏘아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
#55 교정
점심시간 풍경. 교정엔 인문고 교복과 실업고 교복이 한데
섞여 있다.
은희 (눈물을 쏟으며) 언니만 자식이고 나는 소가? 돼지
가? 어? 나보고 실업고로 가라 꼬? 나보고 실업고 가서 저
딴 촌스러분 교복이나 입꼬 다니라꼬? 어?
길녀 그것도 운이 좋아가 저짝 학교에 아가 하나 빠질 때
에 얘기고. 지금으로봐선,
은희 (O.L)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자퇴를 하노? 안한
다! 몬한다! 내가 와? 내가 와 자퇴를 해야 되는데? 죽어도
나는 몬하니까 언니보고 해라 케라! 언니보고 하라카 문 되
잖아?
길녀 섭섭해도 할 수 ?다. 될 놈을 미는 기다! 안되는 놈까
지 억지로 끌어붙있다간 될 놈 인생까지 잡아묵는다! 공부
로 출세하는 건 금희 하나로 됐다! 니는 엄마캉 농 사짓자!
우리 둘이 농사 지어갖꼬 아부지 병수발 하고 금희 대학공부도 시
키고, (하는데)
은희, 홱 눈물로 뛰쳐나간다.
#56 은희 교실
수업중인 교실. 왈칵 문이 열리고,
은희, 뛰쳐들어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섬주섬
가방을 싼다.
교사와 아이들 놀라서 지켜보는데,
은희, 서럽게 흐느껴 울면서 가방을 싸고는 교실을 뛰쳐나
간다.
꽃님 (?) 은희야? 은희야?
#57 읍내 도로 - 고속버스
은희, 울면서 무작정 달리고 또 달린다. 은희, 역시나 잘 달
린다.
은희,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버스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앞서거니 뒷서거 니 하는 버스와 은희!
버스 운전기사, 사이드미러로 악착같이 달려오는 은희를 갸
웃해서 본다.
기사, 버스를 세우고 문을 연다.
정신없이 달리던 은희, 숨이 차서 멈춰서는데 하필 버스 문
앞이다.
은희 (눈물 닦으며 헉헉거리는데)
기사 이봐라 학생, 손님들 기다리는데 빨리 안타고 뭐하노?
은희 (?쳐다본다)
기사 아 퍼뜩 안타나?
은희 (얼결에 올라탄다)
은희를 태운 버스, 휑하니 출발한다.
버스 '서울행'이다! 안내판 붙어있는데 은희는 전혀 못보고,
은희 (가방 뒤져 회수권 꺼내려는데)
기사 요금은 내릴 때 내라.
은희,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은희, 또 눈물이 터진다.
#58 고속도로
은희를 태운 버스 시원스레 달려온다.
#59 달리는 버스 안
은희 머라꼬예? 어데 어데 가는 버스예?
기사 (귀찮은) 서울! 서울! 와?
은희 (하얗게 질린다) 예에? 서,서울...?
#60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해질 무렵, 눈)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은희, 두리번두리번 난생 처음인
서울이 그저 신기해 차 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하고 어리
둥절 정신이 없다.
저쪽에 헌혈차도 보인다. 헌혈아줌마들 지나가는 젊은이들
을 붙잡고 헌혈차로 이 끌지만 대부분이 도망을 간다.
은희 (빽빽한 도로와 수많은 사람들에 놀라) 우와! (방향
틀어 마천루 보고 또) 우와!
은희, 배가 고파서 배를 움켜쥐고 뭐 먹을 것 없나 두리번거
리는데 저쪽에 햄버거 가게가 있다. 은희, 반색하며 가게
를 향해 걸어나간다.
#61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생 주문 확인하며 계산 두드리고는, "5800원입니
다 손님!"
은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여는데 지갑 안에는 달랑 천
원짜리 한장뿐이다!
은희 (당황되고 난처하다)
아르바 손님?
은희 ... ... (지갑 들여다보며 창피해죽겠고) 다,다음에 와
가 꼭 묵으께예.
은희, 어색한 미소로 도망치듯 뒷걸음치고 어느 순간 홱 뒤
돌아 뛰어나간다.
나가다가 청소중인 막대걸레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은희,
다리를 질질 끌면서 도 망을 간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
다.
#62 터미널 앞 (눈)
은희, 주린 배를 움켜잡고 가판대에 진열된 빵이며 음료수
초코렛 등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지갑의 돈은 천원뿐!
은희, 지갑을 들여다보며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오래 갈
등하는데, 난데없는 누 군가의 손이 은희의 지갑을 홱 낚아
채 달아난다.
은희 (너무 얼떨결이라 잠시 멍하다)
은희, 정신을 차리고 소매치기를 눈으로 빠르게 좇으면 소
매치기 막 버스에 오르 며 은희를 향해 씩 웃으며 지갑을
흔든다!
은희, 정신없이 뛰어가지만 버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은희 (황당) 허! (허탈) 후우- (난감해서 풀썩 쪼그리고 앉
는다)
버스와 인파들로 북적한 퇴근길 버스정류장에 은희 그렇게
풀죽어 난감한 채로 오 래 쭈그리고 앉아있다.
(시간경과)
은희, 오돌오돌 춥고 배가 고파 두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흐
느적흐느적 터미널 안 을 향해 걸어가는데, 구세주처럼 헌
혈차가 번쩍 눈에 뜨인다.
은희, 문득 어떤 생각으로 헌혈차 향해 허겁지겁 달려간다.
은희 저기예 아줌마!
아줌마 (그제야 돌아보고 탐색한다) 왜? 헌혈..하게?
은희 (배고파 배를 꽉 움켜쥔 채) 그 전에 꼭 물어볼 기 있는데
예, 여서는 피 뽑으문 뭐 주는데예?
아줌마 쵸코바하고 봉봉. (반색) 왜? 헌혈할래 너?
은희 (크게 실망) 빵이 아이고 쵸코바예? ?개나 주는데예?
아줌마 2개. 할래?
은희 (주린 배를 움켜잡고 고개를 끄덕인다)
#63 헌혈차 안
날카로운 주사바늘이 연한 살을 뚫고 혈관으로 들어가고,
이내 시뻘건 피가 튜브 를 타고 혈액봉투 속으로 들어간다.
은희, 간이침대에 누워 피를 뽑고 있다.
은희 (벌떡 일어나 안달하는) 근데 쵸코바는 와 안줍니꺼?
예? (초조하게 둘러보며) 씨 이- 보이지도 않고! 아까부터
준다 준다한 기 벌써 ?분짼데! (바늘을 홱 뽑아 들 고 협박
범처럼) 내는 쵸코바 주기 전에는 내피 한방울도 안뽑을 끼니까 쵸
코바부 터 갖꼬 오이소!
반대편 침대에 누워 헌혈하고 있던 남자, 고개를 돌려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은희를 쳐다본다. 지훈이다!
직원 아우 알았어. 갖다줄게 갖다줄게 어? (일어나 가며)
무슨 애가 초코바에 환장을 했나! (뒤돌아 갸웃하며) 좀 모
자라는 앤가?
지훈, 헌혈 마치고 일어나 은희를 향해 앉아서 지켜보는데,
은희의 배, 꼬르륵 꼬르륵 요동을 친다. 은희, 고통스러워하
며 배를 움켜잡고는 괴로운 듯 유리창에 머리를 퍽퍽 갖
다박는다.
지훈 (엽기다! 인상은 구겨지고)
직원, 드디어 쵸코바 두개를 가져다준다.
은희, 허겁지겁 쵸코바 하나를 뜯어 입에 물면서 드러눕고
팔을 내어준다.
은희의 피 술술 흘러나가고 누운 채 은희는 쵸코바를 걸신
든 것처럼 먹어댄다.
지훈 (입 쩍 벌어진 채 절레절레)
직원 (쵸코바 2개와 봉봉을 지훈에게 건내며) 고마워요. 이
건 헌혈증서.
지훈 (헌혈증서만 받아넣고) 마 됐심니더. 수고하이소. (일
어서 나가는)
은희 (사투리에 번쩍 홱 쳐다보고) 아이씨? 아이씨?
지훈 (나를 부르는 건가? 천천히 돌아본다)
은희 우와, 낯선 서울서 내랑 똑같이 시부리는 사람 만나니
까 억쑤로 반갑네예! 아이씬 고향이 어딥니꺼?
지훈 (불쾌해서 일별하고 나가는데)
은희 아이씨! 쪼맨만예 아이씨! 저거예, 아이씨 피값예, 도
로 받아서 나한테 주문 안되 겠심니꺼? 같은 동향 사람끼
리, (하는데)
지훈 (인상 확 쓰며) 싫은데! (홱 나가버린다)
은희 (어? 재수 없다!) 씨이- 문디이 자슥! 재수 똥이다 임
마!
#64 고속터미널 안 매표소 앞
지훈, OO표 확인하며 매표창구에서 몸을 떼는데, 옆창구에
서 들려오는..
은희 (E) OO 가는 표 딱 한장만예! 언니? 언니?
지훈, OO이란 말에 보면 아까 그 엽기깻잎이다!
은희 갚십니더! 꼭 갚십니더! 집에 내리가는 대로 꼭 붙여
드리께예? 예? 서울에는 아는 사람도 한 명도 ?고예 낼 학
교도 가야되고 아부지도 아프고 그라고 결정적으로 외박
하문 지 울엄마한테 맞아죽심니더! 언니?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