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키운 제자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불볕더위가 여름내 지구를 괴롭히던 지난 팔월은 말복도 입추도 불볕더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계속 그 횡포는 대단하였다. 분명한 것은 서민의 계절이란 여름이 올해는 절대 서민을 위하지 않았다. 온열 환자,냉병 환자, 일사병 환자들이 속출한다.
그런 와중에서 찾아간 창고 카페에서 뜻하지도 않던 기쁨이 기다리고 있어 신에게 감사한 계절이었다.
2009년 동해안 최북단 바닷가에서 가르친 제자가 느닷없이 창고 2층 카페에서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15년 전에 찰랑이는 동해안 화진포에 발을 담근 대진고에서 가르친 녀석이었다. 하ㅇㅇ-. 담임은 아니었지만, 작은 키에 얼굴이 동글납작해 작은 학교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녀석이었다.
커피가 설악초처럼 청순한 만남을 꽃피운 날이다. 문인들끼리 매달 돌아가면서 점심을 초대하다 보니 2차로 운치있는 찻집을 전전한다. 친일파이기에 자유롭지 못한 하정荷汀이 잠들어 있는 봄내 뒤뜰 노루목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생뚱맞게 우뚝 서 있는 창고 카페가 시원始原이다. 지난 겨울 수필가들로 둘러앉아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를 흠뻑 바라보며 가슴 뭉클한 그 현장이 아닌가!
기억의 꼬투리는 할머니와 아버지 셋이 어렵게 사는 불우한 조손가족이라 더욱 진하다. 체구는 작지만 하는 일들이 어른스럽게 맺고 끊는 결기가 돋보여 만장일치로 선행 표창도 받던 녀석이다.
아침에 지각이 잦았다. 그때마다 항상 얼굴에 눈물 자국이 말라 있었다. 남의 배를 타는 아빠는 항상 술에 젖어 있고, 등 굽은 할머니 또한 종일 출어한 배들이 쏟아놓은 그물을 추려 손이 온통 생채기투성이셨다. 엄마 없이 학교가 파하면 할머니를 마중 나가 어둑해야 고무대야에 상처가 난 고기 몇 마리 담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야산에서 할머니랑 자루를 메고 가서 검불을 긁어 와야 한다.
14년이란 세월이 물처럼 흘렀다. 그 후 나는 고향인 춘천에서 퇴직하고 야인이 되었다. 글쟁이로 부족한 고전의 밭이랑을 서성이며 문학을 논할 때, 녀석은 88년생의 아리따운 30대 여성으로 성장해 고향 봄내까지 헤엄쳐오다니! 고생을 빗물처럼 마시며 대학갈 형편도 못되니 오로지 돈을 모아 아버지 평생소원인 작은 통통배라도 사드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하니 얼마나 갸륵한가!
삶은 참으로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다.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할머니 품에서 온갖 부러움도 참아내야 했다. 술에 취해 집안을 휘청이게 하는 아빠의 주사酒邪 때문에 할머니와 언제나 새우잠을 자야 했다.
옛 동해북부 철둑에 난파선 같은 삼 칸집에서 추억은 참으로 아리고 쓰렸으리. 비가 오면 줄줄 새던 오막살이 판자촌-. 태풍 때 지붕에 올라앉은 폐타이어 덕에 바람을 잠재우던 초도리-. 지금도 할머니와 수평선을 보며 흰 머리칼을 날리며 안개가 끼면 등대에서 불어대는 뚜우- 하는 일정한 소리를 듣던 모습이 또렷하다.
만나서 첫 번째 던진 우문愚問은 무엇인가?
요즘 꼰대라고 젊은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툭 던졌다. 거대한 커피 전문점 사장과 인맥이었다. 행여 아들과 혼인이라도 해서 운영하게 되었느냐고 ㅎ 입을 열게 하기 위해 객관식으로 답을 요구했지만 아뿔싸! 킬러 문항이 되어 답이 없었다. 커피 사장님은 기혼자로 다섯 직원 중에 선발된 것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선생님! 점심 드셨어요?
-그럼, 저기 계시는 세 분 모두 작가신데 인사나 드려 ㅎ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제자의 환한 얼굴. 소규모 면소재지 학교라 국토 지리, 세계 지리, 정치경제, 사회문화를 가르칠 때 맨 앞자리에서 마른 눈물 자국이 있던 녀석이 아닌가?
칠순이 넘으니 여기저기 신호가 빗발친다. 난리 통에 예기치 않던 홍역 바람이 호흡기로 이어져 일교차가 극심한 날씨면 늘 나를 괴롭혔는데, 제자를 만나고 오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힘이 부쩍 솟는다. 느릅나무 부표 같던 제자가 이젠 웬만한 파도도 끄떡없다고 자신감을 보이며 모두 선생님들이 키워준 덕분이라고 회상해 얼마나 대견하던지 ㅎ
동행한 적광 회장께서 스펀지가 흠뻑 물을 흡수하듯 제자를 불러 금일봉을 전달한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며 그의 손을 잡아 위로한다. 실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예전 같으면 근묵자흑近墨者黑이나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고 몸담던 곳을 비아냥 거리던 선입견도, 시대가 바뀌면서 어엿한 일자리가 아닌가!
청산은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품어내 듯, 세월의 씻김 속에서 해맑은 얼굴로 키운 사제지간은 학내 학부모와 교사간 불신으로 교권이 추락하는 작금의 세태에 자랑스럽게 자랑하고픈 제자라고 소리치던 여름날이었다. (끝)
첫댓글 어제 오랜만에 만난 광수회-.막 외국 여행을 다녀온 박종숙님과 이복수님 그리고 회장 적광 임종학님이 모여 천하를 두루 노래하고 어려운 제자까지 찾아 위로하며 오랜만에 커피의 구수한 맛을 느끼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