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감사!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아 멘 -
※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20세기 최고의 영성가 토마스 머튼(1915~1968)을 배출한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있다. 이곳에는 요즈음 ‘단기 수도원 체험’이 인기다. 대부분의 신청자는 나이가 많고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누렸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내 삶은 공허하고 허무할 뿐이다. 세상의 명예와 부를 가질수록 마음은 늘 허전하여 영적인 갈망을 느낀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놀랍게도 이 단기수도원 체험 후 아예 그곳에 들어가 수도사로 마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누려왔고 말년에도 그럴 수 있는데 왜 단순한 수도원 생활을 택하는 것일까?
세상에서의 성공이 곧 행복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뒤에 밀려오는 공허감을, 성공의 추구가 ‘끝없는 경주’임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 영국 BBC방송 ⇒ “한국, 부유해졌지만 과거보다 불행 … 자살률 ↑”
한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지만(1인당 2만4천달러), 매일 4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고 지난 8일 보도했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한국에서 자살률이 치솟는 이유는 사회가 지난 40년간 ‘성공’에 몰입하다 지금은 ‘성공’에 매몰돼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단정한다는 것이다. 고속성장을 이뤄낸 한국사회에 자살은 뿌리 깊은 문제여서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보도했다.(더 높이, 더 많이, 더 빨리)
※ 밥 한 술에 감사하기
사막 기독교인들에게는 스스로가 교만한 사람인지 겸손한 사람인지 재어보는 척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음식에 대한 태도’였다. “음식에 대해서 불평하면 하는 만큼 교만한 자이며,
반대로 감사하면 하는 만큼 겸손한 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영성의 길은 멀리 외딴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밥 한술에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새번역)
【1】감사를 ‘선포’하십시오!
1.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없던 감사도 샘물처럼 솟아나지만,
불평을 하면 없던 불평도 해일처럼 덮친다.
※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마 14:15~21)
빈들의 굶주린 무리들, 장정만 5천명. 돈도 없지만 있다해도 소용없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thanks)하시고…”(마 14:19)
모든 사람이 해결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굶주림에 지친 수만개의 눈동자들이 자신을 향해 있을 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는데도 그것을 들고 ‘감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감사선포’로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의 선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감사를 선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2. 감사는 천국의 언어, 불평은 지옥의 언어
“감사가 넘치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도 찬송이 터져납니다. 그러나 불평이 가득하면, 홍수 속에 가까스로 구조되고도 구조대 늦었다고 욕합니다. 아! 감사를 잃은 인생의 가난함이란 … 감사할 일도 원망하는 이가 있고, 원망할 일도 감사하는 이가 있습니다.”
3. 감사하기 어려울 때 감사를 선포하십시오.
※ 어느 어머니의 감사
어느 시골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감사예배를 드릴 때 한 여인이 많은 양의 곡식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평소 그 여인의 가난한 살림을 잘 알기에 목사님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무슨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예, 사실은 저에게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그 아이가 큰 병에 걸렸을 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목사님은 밝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드님이 이제 건강해져서 감사 예물을 드리셨군요.”
그랬더니 그 여인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제 아들은 1년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한달전에 죽었답니다. 비록 아들이 살아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고, 지금은 하나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 예물을 드렸습니다.”
(선교비, 구제비 끊어야 할 때 ⇒ 불평, 독설…
함께 동역하다 사임해야 할 때 ⇒ 원망, 저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희의 일은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가 어떨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더 중요한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기도드립니다.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2】믿음의 감사를 배우십시오!
1. 감사를 잃어버린 ‘마라’의 현장(출 15:22-25)
※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드린 찬양의 감격과 구원의 감사가 3일만에 마라(쓴물)를 만나자 썰물같이 빠져나가고 원망의 홍수가 밀려왔다. 비록 쓴물이지만 생명유지에는 지장이 없는 물이었다. 문제는 마시기에 썼다는 것이다. 쓰지만 물이 없는 것보다는 너무나 귀한 것인데 ‘욕심’이 원망과 불평을 낳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망각하고, 조금만 어려워져도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모습은 철저히 버려야 한다. 마라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불평하다 광야에서 다 죽었다.
2. 인생의 ‘마라’를 만날 때!
※ 더욱 감사하십시오. 내게 베푸신 은혜를 조목조목 새기며 감사하십시오. 좋으신 하나님이 마라를 만나게 하실 땐 목적이 있습니다. 연단하여 더욱 강하게 하시고자 할 때(욥), 더욱 큰 축복을 받을 준비를 시키려고(요셉, 다윗),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시려고(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바벨론 왕궁에서 시기와 모함을 받은 다니엘. 기도하다 사자굴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그때에도 다니엘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결국 죽음의 사자굴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온 천하에 증거하는 생명의 사자굴이 되었습니다. 마라를 만날 때 더욱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예비하신 ‘엘림’(물샘 12개, 마라에서 11㎞.)을 만날 것입니다.
* 로마서 8장 28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희망의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1. 미리 감사!
※ 죽은 지 4일 지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다 끝났다고 절망할 때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미리 드리셨습니다.
* 요한복음 11장 41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감사는 내일의 희망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미리 감사하십시오. 먼저 감사하십시오.
* 고린도전서 2장 9절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도 감사하셨고,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감사하셨습니다. 희망의 감사를 계속하십시오.
* 에베소서 3장 20절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 “감사하는 자는 번성케 되고 쇠잔치 않으며, 영화롭게 되고 멸시를 당하지 않으리라”(렘 30:19)
엄마가 아이에게 속삭입니다.
“얘야, 네 이름이 뭔지 아니? 네 이름은 사브라(Sabra)다. 사브라! 선인장 꽃이야.”
똥그래진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을 잇습니다.
“엄마는 사막의 선인장처럼 살아왔단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땡볕에서 살아남았고, 암흑 속에 날리는 모래 바람 추위도 견뎌왔단다. 아침 햇살 비출 즈음 아스라이 맺히는 이슬방울로 목축이며 생명의 줄을 이어왔단다. 그리하여 마침내 네가 꽃으로 피어난 거야.”
이제 똘망해진 아이의 눈을 품으며 엄마가 지긋한 미소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네 이름은 사브라. 선인장 꽃이다! 너도 언젠가는 내가 밟은 고난의 여정을 밟게 되겠지만 너에게도 언젠가는 또 다른 꽃이 피겠지. 너는 사브라! 네 안에 또 다른 사브라를 품은 사브라니라.”
아이가 영문도 모르고 말뜻도 모르고 해맑게 웃습니다. 그것은 희망의 광채였습니다. 사브라는 희망꽃인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새번역, 살전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