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정신

나는 <떡보>라 불릴만큼 떡을 좋아해서 맛있는 떡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하루 한 끼 정도는 떡으로 때울 때가 많다 (떡에 식혜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 나는 우리나라에 노래방이나 노래밤보다 떡집이 많아졌으면 한다 최근에 대학가에 떡까페가 종종 생겨나서 눈물나게 고맙다 이번에 나온 우리학교 교지에 떡까페 소개가 있었는데 한번 짬을 내서 찾아가볼 생각이다 북까페에서 떡을 내주는 집도 있다니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떡집과 도서관이 많은 나라 우리 나라 좋은 나라 나는 떡집을 지나갈때 모락모락 나는 김을 보면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떡이 없다면 그림에 떡이라도 좋다 지난 주에 ㅇ교수는 내가 떡을 좋아하는 줄 잘 알기에 연구실로 떡 한 접시를 들고와서 맛 보라고 하면서 품평을 부탁했다 나는 이틀간 야금야금 맛을 보고나서 ㅇ교수에게 개인적으로 평점을 통보하기로 하였고 내친김에 그간 내가 먹은 <좋은 떡의 일반적인 요건>을 다소 좀 길게 적어보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취향과 경험에 의지하고 있고 웬만한 떡보 동지들은 다 아는 사실이므로 굳이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1.우선 떡을 만드는 재료가 중요하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신선한 곡물 중에서 생산년도나 도정시기가 가장 빠른 것일수록 좋고 쌀의 경우 현미가 바람직하다 밤, 대추, 호박, 잣 등은 국산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고 간을 맞추거나 당도를 조절하기 위해 넣는 소금과 설탕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하얗게 정제된 것 보다는 입자가 크고 원재료의 색과 질감에 가까운 것을 쓰는게 좋다 2. 첫눈으로 때깔을 볼 필요가 있다 기계로 찍은 듯 너무 반듯하거나 입자가 너무 곱고 균일해서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떡은 맛도 없다 재료를 지나치게 곱게 갈았을 때 생기는 문제다 옛사람들이 절구에 떡메로 쳐서 만든 떡은 원재료가 갖고 있는 영양과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점성을 높였기 때문에 쫄깃하면서도 들러붙지 않고, 오래 씹을수록 맛이 있었다 한편 물기나 기름기가 너무 번질거리는 떡도 문제가 있으며 떡에 색을 넣은 경우 원색에 가깝고 너무 눈에 띄면 인공염료일 가능성이 크다 쑥, 치자, 솔잎, 잇꽃 등 자연염료는 색이 은은하고 곱다 3. 보기 좋은 모양의 떡이 맛도 좋다 별식으로 먹는 떡은 아기자기하고 손이 많이 간다 이런 떡일수록 작고 비싸며 갖가지 고명이 들어간다 맛보다 시각적인 효과를 더 많이 고려한 떡이니 자주 먹으면 금방 질리게 된다 늘 먹을 떡이라면 단순한 재료에 넉넉한 모양이 좋다 너무 작지고 않고 너무 크지고 않으며 하나하나의 모양이 조금씩 다른 손의 정성이 보이는 떡이 좋다 4. 향기가 은은한 떡이 좋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떡 냄새를 맡았을때 침이 나오면서,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빨리 먹고싶은 충동을 느낄만큼 좋은 냄새가 나야한다 기름냄새가 너무 강한 것은 좀 그렇다 좋은 참기름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이것도 너무 많이 바르면 느끼하다 요새 시중에서 파는 떡은 좋지 않은 기름을 바른다 떡과 떡이 눌러붙지 않고, 또 번질거려 신선한 느낌을 줄려고 바르는데 이 때문에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5.떡을 먹을 때는 손의 촉감을 느끼면서 먹으면 더 맛있다 떡을 손으로 찢어보면 그 점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때 곡물에 함유된 수분 농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물기가 너무 적으면 퍽퍽하고 물기가 너무 많으면 질펀하다 퍽퍽한 떡은 거칠고 목말라서 먹기 사납고 질퍽한 떡은 손과 입안에 달라붙어 괴로울 뿐만 아니라 금방 질리게 된다 감칠맛이 나는 쫄깃한 상태의 떡은 손이 먼저 알아본다 6.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맛이다 사실 이 맛이라는 건 통감각적이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요소에 깨끗한 환경, 좋은 물, 적적한 온도 그리고 떡을 빚는 이의 정성이 더해질 때 황홀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중에서 파는 떡들은 대부분 백설탕과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지나치게 달고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재료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맛을 떨어뜨린다 다양한 종류를 진열했지만 막상 먹어보면 그 맛이 그 맛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