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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화) 여행 둘째날, 베란다 밖을 보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고.
그나마나 반년이 벌써 지나가려 하네.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심각한 얘기는 나중에.
아침은 친구가 후딱 준비한 어묵탕에
커피 한 잔.
친구의 병원 방문 때문에 이날 일정이 늦어졌다.
전일, 각연사 통일대사탑비를 향하다가
젖은 바위에 미끄러져 손가락을 다쳐,
뼈가 다쳤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의사가 셋이나 되는 아산 배방읍에 있는
정형외과, 손님은 많았지만 완전 장삿속.
CT, MRI사진을 찍으라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논산을 향하는 길, 비는 계속 내리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후, 커다란 옛날식 손가락지지대를
하고 나온 친구에게 십몇만원이 청구되었는데-
물론 다음번 시술비 일부를 포함한 비용.
강남에서 마나님의 손가락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즉각 예약취소를 했고.
(직물공장의 벽화)
논산을 가는 도중, 친구가 틈나면
자주 들리는 공주시 유구읍에서 잠시 정차.
1950-60년대에 이곳은 100여개의 직물공장이
있는 등 직물업이 발달했었다.
삼천공녀가 있었다 하기도 하고.
유구를 문화마을로 만들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였고, 그 결과, 거리가 무척 세련되어 있다.
벽화의 할머니 무엇을 하시는지.
직물기의 실을 잇고 계신가?
유구농협의 하나로타운도 세련미를 보이고.
4,500평의 타운은 로칼후드, 하나로마트,
놀이시설, 카페와 레스토랑을 갖추었다.
친구의 말로는 로칼후드의 지역 농산물들은
값도 싸고 신선도도 높다고.
로칼후드에서 파는 이지역의 자연염색제품.
식품은 아니잖아?
유구읍의 인구는 8천. 고려 조선시대에는 서울,
호남을 연결하는 중심통로인 이곳에 유구역을 설치,
통행인들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했다고.
지금은 도농복합형 읍. 직물공장 외에
코웨이, 웅진식품이 있다.
김기창화백(1913-2001)의 출생지.
(세종대왕)
모자이크 타일 거리도 인기가 있고.
5일장이 열릴 때 유구를 방문해보면 좋을 듯.
11:30 논산 은진면 관촉리에 있는 관촉사 도착.
고려 광종 19년(968년) 혜명 창건.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뜯고 있을 때
아이 우는 소리가 있어 가보니
큰 바위가 솟아나고 있었고, 조정에서는
이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기로 결정.
이 불상이 은진미륵.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은진미륵,
크기 만하고 못생겼던 미륵상.
60년이 훨씬 지나,
불균형의 미를 보러 간다고?
그만큼 보살님도 노숙미가 더 하겠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하셨고,
입장료도 받고.
이승만박사 추모비도 있고.
인구 123천의 논산시, 젓갈, 식량의 공급지이고
삼국시대 이후 군사적 기능은 여전.
계룡산, 대둔산줄기에서 발원한 강경천은
금강으로 흘러, 넓고 기름진 논산평야를 만들었고,
강경읍은 1930년대까지 금강하구 관문으로
강경장은 전국 3대 시장의 하나였다.
군산항, 경부선과 호남선의 개통으로
지금은 쪼그라들었지만.
반야루를 거쳐 계속 계단을 오르면
대광명전.
연산면 신양리 일대는 그 옛날 황산벌. 결사대
5천을 이끌고 결사항전했던 계백의 함성이 있던 곳.
이곳은 왕건이 신검에게 항복을 받은 곳이기도.
견훤의 장자인 신검은 견훤이 넷째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고
왕위에 올랐으나, 1년 반 만에 왕건에게 항복.
자연과 어울어진 석조미륵보살입상, 높이 17.8m.
(은진미륵)
970년에 시작 1006년(목종 9) 완성된 불상.
불상이 세워진 후 빛이 사방을 비추었고, 광명의 빛이
촛불빛과 같다 하여 절이름이 관촉사(灌燭寺).
이젠 위압감을 주기보단 친근한 상.
얼굴, 손이 과대 표현되었고, 어깨가 좁고
가슴, 허리 구분이 없는 원통형.
원통형 관 위에 사각형의 이중 보개가 특이.
(중국불상에서 보이지 않는 요소)
미륵전을 통해 본 미륵상.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온화한 모습이다.
전각은 추후에 건립된 것.
전면에 해탈문이라고 쓰여진 석문.
신도들이 하도 밀려들어 담을 쌓고
여러 곳에 문을 냈다고.
사찰의 중문 역할.
보살님의 입술을 밝히는 석등(보물).
상하 이층으로 되어 있다.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로
불성(佛性)을 밝혀주는 등.
지장전이라 하기도 하는 명부전.
지장보살이 주불. 좌우에 5명씩 대왕(시왕)이 있다.
시왕은 죽은자의 지은 죄를 심판하는 심판관.
오른쪽 세번째 왕이 우리가 아는 염라대왕(지옥의 왕).
지장보살은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
삭발하고 이마에 띠를 두른 형상.
대광명전 입구에 있는 반야루의 현판,
불광보조(佛光普照).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이 온 세상을
비춘다는 뜻.
그옛날 훈련을 받았던 논산훈련소,
아직도 건재하나 보다.
우리 분대가 식사당번이었던 하루, 주번사관이
점호때 밥풀이 더덕더덕 붙은 주걱으로 내뺨을 때리니,
모두들 웃었다, 놀부마누라 생각이 나서.
내가 흥부였나보군.
은진미륵 알현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는지.
13:00에 찾은 공주시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금강물은 많이 불어 콸콸 흐르고.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모형막집이 있고.
스마트폰을 보고있는 원시인도 있고.
석장리에도 맘모스가 살았나?
석장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 1964년-1992년까지 12차례
발굴이 있었다.
손보기교수(1922-2010)가 발굴과
연구를 주도.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집과 사용했던 뗀석기.
발굴된 지층과 유물을 통해 보면, 석장리는
30만년전- 3만년전까지 이들이 살았던 터전.
이들은 두발로 걸었고, 도구를 제작했으며
물고기머리, 사람얼굴 등을 조각했다.
선사시대예술은 성공적 사냥, 다산, 풍요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로 동물, 여인을 표현했다고.
구석기유적의 발견은 우리나라역사를
오천년에서 만년 정도로 앞당겼다고.
전국적으로 140개가 넘는 구석기 유적이
산재해 있고.
석기제작에는 좋은 재질의 돌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금강유역의 구석기유적은 11곳.
구석기인들에겐 동굴이 최적의 주거공간.
1973년 충북 제천 점말동굴로 인해
본격적 조사가 이루어졌고.
2시 다되어 음식문화거리에 있는
새이학에서 국밥+알밤묵무침+진로.
역대 대통령이 찾았던 음식점.
이학이란 음식점을 새이학으로 개명,
이건물로 이전했다고.
금강 너머 공주의 강남.
공주시의 인구는 11만. 북쪽엔 차령산맥,
남쪽엔 계룡산, 무주에서 발원한 금강이
시중앙 서쪽으로 흐르고.
김종서, 김장생, 김집, 송시열을 배출했고
일제 강점 후 도청소재지였고, 교육도시.
마곡사, 갑사, 동학사 등이 있고.
그러고 보니 정안밤 먹고 싶네.
이식당에선 십만원이 넘는 국립중앙박물관
도록을 무료로 배부.
책자가 부실하던가,
무슨 문제가 있겠지.
14:50 국립공주박물관 관람 시작.
조각상은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
(鎭墓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 진묘수를
7배로 확대 제작한 것.
머리에 뿔이 있고, 몸엔 날개.
1971년 송산리고분군에서 발굴조사된 무열왕릉,
대전, 충남지역에서 출토된 국보 18점,
보물 4점 등 45천점이 이박물관에 보관, 전시됨.
BC(Before Christ)대신 B.C.E.(Before Common Era)
AD대신 C.E.(Common Era)를 사용하고 있는데,
비크리스도인을 위해 사용되는 기호라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성백제시대 충남의 지방세력.
아산친구와 차속에서 서산 음암면 부장리 유적을
본적이 있는데, 2006년 사적으로 지정.
아파트를 짓다 발견된 청동기-조선시대에 걸친
생활및 분묘유적 등. 분묘 출토 유물은 토기,
철기, 장신구류.
부장리 5호분은 최고 지배자 무덤.
문헌상 소홀히 다루어진 지방세력 실체를
확인한 것이 큰 의의라고.
부장리 5분구 1호 묘에서 출토된 자루솥.
철, 소금의 중요생산지 태안반도 세력의
무덤군은 마한의 전형적 ㅁ자형 도랑을 두룬
13기 묘.
무덤 안에서 금동관모, 금동신발,
철제 자루솥 등이 출토됨.
고구려 장수왕(413-491 재위)의 한성 점령으로
백제는 475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 금강
남쪽 공산성(공주시 금성동)에 자리함.
538년 사비천도 후에도 공산성은 백제
북방을 지키는 군사요충지.
1624년 이괄의 난때 인조가 이곳에 피신했고.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석성으로 개축. 백제시대에는 공산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 인조이후에는 쌍수산성.
성의 길이는 2,7km.
네곳에서 문터가 확인되었다고.
공주시 금성동 일대에 남아있는 송산리
고분군은 벽돌무덤, 돌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무령왕릉을 빼고 도굴로 인해 무덤주인들을
알 수 없고, 무령왕릉과 6호분은 당시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
무령왕릉실은 따로 마련되어 있고.
무령왕릉에서는 4,600여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으며, 대부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보관.
동성왕을 이어 40세에 왕위에 오른 무령왕
(501-523재위)은 왕권강화와 민심안정에
힘을 썼음.
박물관 앞에 모형이 있는 진묘수.
묘실의 등잔.
왕과 왕비의 관은 일본의 금송으로
만들어져 주변국가와의 교류를 입증.
왕비가 사용했던 금제(金製) 관식(冠飾).
백제는 금관이 없고 관을 꾸미는 장식품만 있다고.
왕비가 신던 금동신발.
통일신라 대신 남북국시대,
이 역시 생소한 단어.
가마터에서 구운 불상대좌(佛像臺座).
청양군 목면 본의리 백제 가마터에서
발견, 높이 1m, 폭 2.8m.
계유명 천불비상(千佛碑像).
연기(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 서광암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초기 작품. 삼존불 위의 작은 불상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공주산성시장의 명물,
잔치국수는 맛보아야 된다며, 점심식사후
2시간 후에 청양분식을 찾았다.
열심히 역사공부를 한 탓인지
잔치국수가 맛있다고 입맛을 다셨고.
국수 맛도 국물이 좌우.
아산친구는 강남의 정형외과를 찾아야 했기에
핑게김에 같이 상경.
빗발은 더욱 거세졌다.
이틀간의 비로 가뭄은 완전히 해소된 듯.
사학을 전공한 아산친구, 분위기 좋게 만드는
친구 둘 덕에 맛갈나는 여행이 되었다,
오랜만의 여름등산도 하였고.
고맙네, 친구들.
여행 끝나고 이틀 후 보내온 친구의 손가락.
아산 정형외과에서 만들어준 구식 손가락
지지대(그날 바로 팽개쳤지만)와는 천양지차.
친구는 수술을 안해도 조심만 하면 된다고
좋아했다.
작년에는 등산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이마를 다쳤었고.
친구, 이제는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야.
조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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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이렇듯 좋은 경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 즐길게 정말 많네요, 특히 공주군석장리 박물관.
고맙소, 도움이 되었다니,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