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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예레미야 7장 1-7절)
1.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나님 말씀을 들었는데 예배하러 혹은 제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경배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라. 그래서 북왕국은 없어져버렸고 남왕국만 남아있기 때문에 유다인아, 이렇게 말합니다.
12지파 중에 10지파는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2지파, 유다지파하고 베냐민지파가 남아있는데 그래서
1.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그 당시는 성전 문인데요.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그때 우리가 그 시대의 문화를 다는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명절 때는 다 백성들이 와서 경배하고 그렇게 해요. 그리고 절기 때. 평소에는 특별히 무슨 제사할 일이 있거나 그 외는 일반사람들은 매주 우리처럼 이렇게 예배하러오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든 어느 때든지 간에 여호와께 경배하러 온다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사가 문제가 아니고 말씀을 잘 들어봐라. 그래서 말씀을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 하는 인식은 호세아 때부터 이때로부터 쭉 이후로 아마 조금씩 인식되어 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양을 잡고 소를 잡고 갖다 바쳐도 하나님 말씀을 안 듣고 엉뚱한 짓을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벨론 포로 갖다온 이후에 유대교의 지도층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 게 되는데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면 바벨론에 갔을 때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좀 깨닫게 되는 거예요. 성경을 읽어 보니까.
아시는 대로 바벨론에 갔을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졌잖아요. 그러면 성전도 없고 재단도 없을 때 우리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나. 여기에 이런 문제가 봉착하니까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간 사람들이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말인데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이런 말씀을 깨닫고 그렇구나, 우리가 양을 잡거나 소를 잡아 드리는 것 개의 목을 꺾은 거나 뭐가 다르냐. 동물만 죽이는 그지 이래가지고 진정으로 하나님 기뻐하는 것은 재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기뻐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알고 배우고 하는 게 천천만에 양이나 송아지의 피보다 중요하다. 이런 인식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것도 여기도 보면 예루살렘 성전 파계되기전 에 예레미야도 이런 말을 들은 겁니다.
“재물가지고 자꾸 들어오는데 재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말씀을 들어봐라”말씀도 안 들어보고 행위도 엉망이고 윤리도 도덕도 없고 그러면서 재물만 갖다 바친다면 하나님 좋아 할 것 같으냐.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성경 이사야서도 그런 말이 나오죠. “헛된 재물을 다시 가져오지 마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무슨 의미가 있느냐.
재물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런 의미인데 글쎄 말씀을 들어보지도 않고 하나님 알지도 못하고 재물만 갖다 바치면 다른 신들처럼 재물만 먹고 떨어지는 그런 신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뭘 받치고, 뭘 받치고 감사함으로 바치는 거는 좋아요. 그런데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의 재물은 헛것이라. 일단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이런 인식들이 예언자들 속에 간간히 나타난다고요.
그런데 잘 모르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바벨론에 갔다 와서 어름푸시 양을 잡고 소를 잡는 그런 피 흘리는 제사보다도 더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거다. 그리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하면서 그들이 성경을 공부하게 되고 그런 인식도 제가 보기는 에스라가 거의 주도적으로 개혁운동 즉 재물도 재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는 것, 그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 그리고 순종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런 것이 더 중요하다 하는 것을 아마 에스라 때부터 인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 보니까 2절에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줄의 그어 놔요.“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안 듣고 들어보지도 않고 재물만 갖다 바친다고 재물만 먹고 나가떨어지는 이방신과 같지 않다는 거죠.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길 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죠. way, 영어로 way라고도 하고 하나의 메소드, 방법이라고도 하고 바르게 하라 다른 말로 정직하라. 신앙이라는 게 믿음이라는 게 바르게 하고 곧게 하고 옳게 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지금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을 다 함락되고 훼파되고 할 텐데 그러기 전에라도 얼마 안 남았지만 얼마 안남은 그 기간이라도 알아듣고 그 길과 행위를 바르게만 한다면 돌이켜 생각을 바꾸고 회개하고 그렇게 하다면 너희로 사로잡혀가지 않고 이곳에, 예루살렘 거하게 하겠다. 그러니까 지금도 회개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얘기죠.
4절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자꾸 여호와의 전 타령, 성전 타령, 예배당 타령 이런 거를 믿지 말라는 거죠. 지금도 도시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니까 수용하기 위해서 예배당을 확장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으나 성전신앙 즉 예배당 신앙, 건물 신앙 이런 거는 미신에 불가해요.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예배당 안에만 갇혀있는 하나님이야,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 하냐, 그래서 예배당도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했으니까 성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온천지가 다 하나님 전이다.
사람이 예배당을 지어놓으면 예배당 안에 하나님 갇혀있고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예루살렘 전을 솔로몬도 자기가 지어놓고도 하나님이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할 텐 데 하물며 내가 지은 조금만한 건물 안에 하나님이 갇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여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들이 이 예배당 있는 곳을 하나님 전이라서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 유대교 지도자들 당시에 제사장 이런 사람들이 성전신앙, 건물에 메이는 신앙, 어떤 장소에 메이는 신앙, 이것을 템플컬쳐라고 해요. 큰 건물이 우상이 되어가지고 여호와 전이라, 여호와 전이라, 여호와 전이라 하는 그런 거짓말을 믿지 마라. 하나님이 그 안에 갇혀있는 분이 아니다.
5절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다른 말로 정직하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한다는 게 도덕과 윤리죠. 하나님 보시기에 길과 행위가 그 생각이나 의향이나 행위가 바르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신다는 겁니다.
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실로라는 도시는 예루살렘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서 에브라임 지파의 수도죠. 에브라임 지파가 아시는 대로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였는데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서 에브라임 지파에서 나온 여호수아가 자기지파가 있는 도청소재지, 자기 지파의 소재지가 실로였어요.
실로에 여호와의 법궤가 오래 있었는데 그들이 엘리제사장이 하는 것을 보았잖습니까. 그런 식으로 하니까 나중에 법궤가 거기서 빼앗겨 버리고 나중에 실로를 하나님께서 황무지가 되게 했다고요. 그러니까 옛날에 여호수아가 그렇게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했지만은 그들이 엉뚱한 짓을 했을 때 “내가 북왕국의 중심이 되었든 에브라임 지파의 수도 실로라는 도시를 어떻게 멸망시켰는지 가 봐라”“지금 내가 실로 뿐만 아니라 유다지파의 수도 예루살렘도 이와 같이 실로처럼 다 멸망시킬 거다.”그런 얘기예요.
13절
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요란 떠는 종교행사보다 조용히 입을 닫고 정말 마음을 엎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또 알아들은즉, 깨달은 즉, 자기 생각을 고치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 이거는 만국 불편의 진리인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도시교회에 가면 우리야 사람이 많이 모여 봤자 100명밖에 안되니까 고함질러도 거기서 거기지만 몇 천 명이나 몇 만 명이나 되면 거기서 찬양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하면 세상에 뭔가 일어난 것 같아요. 굉장한 것 같아요.
어차피 목사님들이 성경을 잘 모르니까 그냥 축제하듯이 경배와 찬양이고 CCM이고 해가지고 분위가가 세상이 뒤집어질 듯 그래요. 뭐가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요란한 것 좋아하지 않아요. 비파와 수금을 내 앞에서 그쳐라. 나는 그런 것 좋아하는 것 아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해야지 온갖 악을 행하면서 길과 행위를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서 종교행사만 요란 뜬다고 기뻐하겠느냐. 전혀 그런 것 아니거든요.
14절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예루살렘 성전이죠.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
하나님은 공평한 거야. 북왕국이나 남왕국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아요. 특별대우 그런 거 없는 겁니다. 똑같아 잘못하면 누구든지 쫓아낸다.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기도할 수 있는 기회도 끝나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이 말을 들은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지 말하고 하는데 기도가 나와요. 왜냐하면 밖에 가서 말하면 사람들이 안 들으니까. 그러니까 말할 곳이 하나님 밖에 없는 거예요.
예레미야가 아내가 있습니까, 자식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가서 백성에게 말해도 백성이 안 들으니까.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건데 하나님께 기도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다른 기도는 괜찮아도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 내가 안 들을 테니까. 기도하거나 간구하거나 부르짖거나 해도 이 백성을 위해서는 나는 안 들어.”
이렇게 어느 한계, 인계점을 넘어섰다는 거예요. 넘어가면 회개도 할 수 없고 예레미야의 기도를 물리친 겁니다.
17절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하늘 황후는 그 당시에 이쉬타르 혹은 아스다롯 여신이에요. 그때는 이쉬타르, 아스다롯 나중에 로마로 와서 비너스, 다이아나,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이시스 항상 세계적인 여신이 발명되었는데 그 여신이 일찍이 처음에 바벨론 시작할 때는 이쉬타르 발음이 아스다롯 가나안 방언으로 왔을 때는 이쉬타르가 아스다롯이 돼요.
그 다음에 로마로 갔을 때는 비너스, 그 다음에 고린도 갔을 때 아프로디테, 에베소서에서는 아르테미스, 아데미, 그리고 애굽에 갔을 때는 아이시스 여신, 여신이 대게 어머니 신인데 여신 섬기고 어머니 섬기는 아주 익숙한 세상에서 여신을 싹 빼버리니까 너무 분위기가 그렇다.
여러분, 모든 생명들이 남자나 여자나 모성애에 대한 사람들 마다 동경이 있다는 거예요. 어머니라는 말은 영원한 고향 같은 그런 정서가 있기 때문에 어머니 신, 여신을 없애버리니까 기독교에 오면 없애버리거든요. 없애버리니까 너무 아쉽다 해가지고 여신을 대용품으로 만들어 낸 게 마리아예요.
카톨릭이 마리아교가 된 거예요. 사람들마다 여성스러움에 모성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카톨릭 평화방송에 자기들 예배시간에 엄마 삼창하는 것 봤잖아요. 뿌리가 바벨론에서 이쉬타르가 가나안 땅에서 아스다롯 그리고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이시스, 비너스 다음에는 마리아가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정작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거라. 여러분, 우리나라에 교회와 병원과 학교가 기독교를 통해가지고 함께 들어 왔어요. 교회가 들어오고 학교가 들어오고 병원이 들어왔는데 이대라든지 연대라든지 이런 학교가 숭실대, 숙명대, 숙명대는 아닌가요? 서울여댄가 그렇죠.
서울여대 이런 대학이 대게 기독교 학교거든요. 기독교 학교인데 대표적인 학교가 이대, 연대 남자로는 연대, 여자학교는 이대 그런데 여자들만 오는 학교고 교수들 몇 사람 남자들도 있지만 총장은 여자가 해요. 그런데 이대 안에 신학과가 있거든요.
연대도 신과가 있고 이대도 신과가 있어요. 이대 신학과에서 여자대학교이니까 여성신학을 한다고요. 여성신학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거는 성차별이다, 여성이 소외되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을 어버이라고 해야 돼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학자가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이대 학장이 총장이 되었는데 이분이 김대중대통령 시절에 국무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도중에 하차했죠. 총리 되어보지도 못하고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분이죠.
그러니까 이대 총장이나 교수나 이런 사람들이 전혀 하나님 생각 안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거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건 성차별이다. “너는 너의 아버지를 어머니라고 하느냐, 아버지는 아버지지 그래.”도대체가 학자들이 뭘 하는지 몰라요. 이래서 하늘 황후는 이스타르입니다.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전제는 술을 부어 바치는 건데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여러분, 사람들이 돌멩이를 가지고 사람형상을 깎아 놓고 절하는 거는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얼굴에 수욕을 퍼붓는 거라. 스스로 돌멩이 앞에 굻어 엎드리는 거는 돌멩이 보다 못한 자가 되는 거예요. 인간들이 그렇게 어리석다고.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양을 갖다 잡아 바쳐라.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늘 내 목소리를 들어라. 여러분, 사울왕이 아말렉을 치러갈 때 사무엘이 단단히 일러 말했거든요. 아말렉을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까지 다 사멸하고 절대 살려두지 말라고 했는데 황소 중에서 아주 멋진 거 끌고 온 거라.
그러니까 사무엘이 아주 진노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근성으로 듣고 끌고 왔느냐 하니까 너무 좋은 거라서 하나님께 제사 하려고 가져 왔다는 거예요. “이보시오. 왕이여 하나님께서 송아지 끌고 온 걸 목소리 청종하는 걸 좋아하지 좋아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송아지의 기름보다 나은 게 아니요.”
그러니까 말귀를 사람들이 다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잘 듣는 마음, 하나님 말씀을 옥토같이 잘 듣는 마음 그리고 깨닫는 마음 그리고 순종하고자 하는 그런 겸손한 마음이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송아지나 염소나 동물을 잡아 죽이는 것 죽일 때 마다 가슴 아픈 일이죠, 그렇게 목소리를 들으면 복을 받아라 하였으나
24절
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
지금도 제가 볼 때 그래요. 지금도 교회마다 성도들이 성경을 참 알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이렇게 해야 되고 목사들이 하나님 원하는 게 요란스러운 종교행사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 듣는 거다. 이걸 목사가 인식을 해가지고 준비해 가르치려고 해야 할 텐데 성도들이 대게 배우려고 안 해요.
왜 배우려고 안 하는가 보니까 많이 알면 부담이 많다는 거야. 많이 알수록 부담이 더 된다. 그럴 수 있죠. 성경을 많이 알면 의무와 책임감이 자꾸 높아지니까 부담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뭘 이야기 하면 우리가 그것까지 알아야 됩니까, 믿기만 하면 돼지.
이러니까 배불러질수록 배우려고 안 해요.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게 교만이야. 공부하지 않는 게 태만이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게 교만이라고 여러분, 배우려고 안하는데 가르칠 수 있는 천하장사가 없습니다. 배우려 해야 목마른 사람이 있어야 물을 갖다 먹이지.
배불려지고 잘 살아진다는 게 위험한 게 뭐냐, 사람들이 교만해진다는 거예요. 배부르고 교만하다. 그렇기도 하고 또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안 가르치고 그러니까 지금도 실제로는 대부분이 성경 공부를 안 하고 그냥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잘된다, 복 준다, 잘된다, 복 준다. 그런 위로의 말씀을 해달라고 아예 목사에게 주문을 해요.
그래서 교회가 안 되는 거지요. 여러분, 그렇게 하던 유럽교회가 다 망해버렸잖아요. 우리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신학교 교수들이 전부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신학하고 왔기 때문에 교회 안 되는 신학, 교회 망치는 신학, 이런 신학을 해가지고 와서 목사를 길러내기 때문에 그러면 반드시 망하죠.
27절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찌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예레미야 네가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찌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데 진실이 어디 있겠어요.
29. 예루살렘아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자산 위에서 호곡할찌어다
자산이라는 말은 민둥산, 벌거숭이산을 자산이라고 해요. 머리털을 베어 버린다고 하는 것은 극한 슬픔을 나타내는 행위인데 우리도 가끔 머리 깎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처럼 머리를 깎는다 하는 것은 우리는 잘 안하는 일인데 유대인들은 머리를 쥐어뜯습니다. 머리를 뺍니다. 여간 잡아도 잘 안 빠집니다. 하나님이 야무지게 심어가지고 잘 안 빠지는데 그래도 머리를 잡아 뜯고 수염을 한 개 빼도 얼마나 아픕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온 기한공동체가 이방여자를 취해 아내를 삼고 애도 낳았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듣자 에스라가 머리털을 다 쥐어뜯고 수염을 쥐어 빼요. 극한 슬픔을 표현할 때 그렇게 하는 거라.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바 이 세대를 끊어버리셨음이니라
하나님께로 부터는 이미 다 은혜에서 끊어진 겁니다. 예레미야 때 기도하지 말라는 것 보면.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저는 평생을 성경 연구해도 이말 알아보려고 어지간히 애를 썼어요.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뭐냐, 세상의 사전을 다 뒤져도 그렇게 불러지는데 힌놈의 아들이라고 하면 우리생각에는 힌놈, 검은 놈, 붉은 놈, 노란 놈, 이런 놈들이 있는 가 보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있는가 보다. 우리 어감도 그렇잖아요.
그게 아니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 힌놈이 사람이름도 아니고 힌놈이라는 말도 골짜기, 계곡 이런 뜻이고 사실은 또 아들 골짜기이니까 골짜기 중에 작은 골짜기, 작은 골짜기이니까 골짜기 중에 큰 골짜기, 아들 골짜기, 새끼 골짜기 이런 계곡인데 여러분 우리가 예루살렘에 가서 이렇게 쳐다보면 손을 벌리면 오른손이 가는 이쪽은 기드론 골짜기 기드론 골짜기보다 조금 더 커요,
그리고 힌놈골짜기는 왼손 쪽인데 작습니다. 거기가 뭐하는 곳이냐 하면 쓰레기를 낭떠러지 같은 곳에 굉장히 가파른 절벽 같은 곳에 거기다 쓰레기를 갖다 부으면 일단 눈에 안 보여요. 너무 높고 깊고 하니까 그러면 그곳에 갖다 버리면 좋잖아요,
그 다음에 무연고 시체, 사람이 길에서 죽었는데 주민등록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도 모르고 무연고 시체를 거기 장사할 때 그 곳에 던지고 불살라 버리는 거예요. 쓰레기를 버리고 하니까 거기가 쓰레기가 자꾸 쌓이면 곤란하니까 비가 많이 안 오니까 쓰레기에 다가 자꾸 쌓아 올라오면 불을 붙여놓습니다.
그러면 뭉개 뭉개 서서히 타요. 타니까 연기가 계속 올라옵니다. 쓰레기라는 게 매일 나오잖아요. 하다못해 에스라하우스 쓰레기만 해도 얼마나 나옵니까.
그런 것처럼 온 시민이 계속 버리니까 타고 또 타고 비가와도 그 밑에는 불이 있어서 1년 내 연기가 올라오고 쓰레기를 버리니까 불을 붙이니까 불이 타고 그리고 온갖 벌레 구덕이 파리 이런 것들이 그냥 냄새가 올라오고 이런 곳이야.
그래서 나중에 이곳이 신약시대에 오면 지옥이라는 말이 우리도 없어가지고 땅 깊은 곳에 있는 곳이 옥이지옥 아닙니까. 실제로 지옥에 가야 있는 단어는 이 땅에 국어사전에는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를 빌러 쓰기를 게헨놈, 게힌놈이라는 말이 게핸나가 돼요. 게힌놈이 게핸나 되는데 신약에 게핸나가 지옥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지옥을 말할 때 꺼지지 않는 불이라 그러죠. 꺼지지 않는 불, 그러니까 계속 연기가 올라오고 사람의 시체가 던져지고 하니까 지옥의 상징물이 되는 곳이 여기가 게핸나, 게힌놈,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는 곳이에요.
앞으로 제가 이 단어에 대해서 연구를 더 해봐가지고 명쾌한 답이 있으면 또 뒤늦게라도 알려드리지만 제가 평생에 이걸 놓고 무슨 말인지 히브리어 사전이나 헬라어 사전이나 온갖 사전을 다 뒤져도 왜 힌놈의 아들 골짜기일까?
온갖 주석을 다 봐도 딱히 딱 부러지는 해석이 잘 안 나와요. 어떻든 거기서 뭘 했느냐 하면 몰렉 신을 섬기면서 아들을 불 살라는 거라. 여러분, 우리가 경주에 가면 에밀레종인가 하면서 청동을 녹일 때 딸을 집어 넣었다네요. 아주 악한 일이거든요.
종이 뭐라고 딸을 집어넣어요. 그런 것처럼 몰렉 이라고도 몰록이라고 하는 신을 섬길 때 거기다가 자녀를 불 살려는 그런 짓을 했다는 거라. 여러분,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냥 어떤 동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자기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북한에 가면 김일성 형상 이런 것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형상, 그런데 김일성도 죽었고 세종대왕도 죽었어요. 형상도 죽었잖아, 형상도 앉아있어도 말도 못하고 죽은 거야.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 자신이 살아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형상도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실상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실상과 형상, 실체와 그림자 이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지었다. 그렇게 하나님이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불에 다루는 거는 하나님을 불에 던지는 것과 똑 같아요.
여러분, 사람을 미워하는 거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거예요. 왜, 사람이 하나님 형상이니까. 사람을 때리는 거는 하나님을 때리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서울에 가서 광화문 앞에 가서 이순신장군 형상이나 세종대왕 형상을 보고 때리려고 하면 세종대왕을 모욕하는 거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보고 때리는 거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형상을 모독하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되는 거예요. 이거는 창세기 9장부터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만약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도 피를 흘려야 된다.
왜냐하면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면 안 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안 되고 피를 흘려도 안 되고 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형상을 모독하는 거는 실상을 모독하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에 제가 쓴 책 표지 날개를 보면 사진이 나와 있어요. 저는 안 내고 싶은데 자꾸 출판사가 내야 된다는 거라. 냈는데 만약에 누구 내 사진을 발로 비벼 문지르면서 그러면서 노목사를 사랑한다 해봐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형상을 미워하는 것은 바로 실상을 미워하는 것과 똑같다.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그런데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몰렉에게 불살라 바치니 이게 얼마나 악한 일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극악무도한 일이 된다는 거예요.
32절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왜 그러느냐 하면 나중에 예루살렘이 망할 때 적군이 와서 사람들을 무더기로 죽일 것 아닙니까. 바벨론이 와가지고 막 죽여서 죽으면 그렇게 시체 한두구가 아니고 여러 수백, 수천구, 수만구가 되면 어떻게 다 처리해요.
처리할 때가 없으니까 힌놈의 아들 골짜기 쓰레기장에 다 갔다 밀어 던질 게 아닙니까.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고 얼마 안 돼서 바로 그 일이 벌어집니다. 전부 죽여서 그곳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살육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하고 또 이 예언 한 것이 예레미야 자기 당대에 자기 눈앞에 다 이루어지는 걸 보게 됩니다. 이 예언 하는 것도 슬픈 일이도 자기가 예언한 부정적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이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이때부터 완전히 멸망한다는 지난시간에 우리가 시온을 멸절하리라 하신 이후에 예레미야 애가까지가 전부다 기가 막힌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반교회에서 아예, 아무도 어떤 목사도 설교하거나 강의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그러면 33장 3절 나머지는 알바 없고 그래서 전혀 하나님의 진노하신 진노에 대해서 하나님의 어떤 심정에 대해서 일반성도들이 그의 이해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때 예레미야 때에 하나님 진노하신 진노가 송아지 피로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이렇게 속상해 하신다고. 오늘 신약시대는 송아지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외아들에 피로 세운 언약이 교회에서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하나님 얼마나 진노하시며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그래서 오늘날은 교회가 노래하고 춤추고 워쉽댄싱 할 때가 아닙니다. 울어야 할 때 입니다. 울어야 할 때. 이 시대가 예레미야하고 울어야 할 때지요.
앞으로 몇 시간 더 예레미야서를 봐야 할 텐데 다른 성경 보다 진노가 잘 안 나갑니다. 제가 웬만하면 2~3장 하는데 예레미야서는 설명하다 보면 1장 밖에 못해요. 그래도 예레미야서를 공부를 잘 하셔야 하나님의 아픔, 하나님의 슬픔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게 될 줄 압니다.
8장은 오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전달된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솔로몬의 성전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여 윤리와 도덕이 회복되고 공법을 물과 같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을 원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백성들이 이 진리의 말씀을 헤아려 깨닫게 하시고 또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며 무엇을 슬퍼하시고 아파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장성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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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