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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주요명소
국립 진주 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은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서부경남의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는 국립기관으로 1984년 11월에 개관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의 최대 격전지인 진주성내에 위치해있는 입지조건과‘임진왜란’ 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8년 1월 임진왜란전문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1997년부터 국내외에서 임진왜란 관련 유물 약 600여점을 대여 받았으며, 다시 98년 에 56점을 수집하여 임진왜란 전문역사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전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간의 흐름을 위주로 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난 원인과 과 정, 결과 및 후대평가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방향에서 관련된 유물 200여점을 전시 하고 있다.
아울러 『만화로 보는 임진왜란』, 『사료로 보는 임진왜란』, 『역사특집 임진왜란』 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한『사료총서(문학, 역사, 대 명외교편)』등을 발간하여 임진왜란에 관한 좀 더 깊고 폭넓은 역사적 이해를 꾀하고 또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2001년 11월 19일 국립진주박물관은 새롭게 두암관을 개관하면서 더욱 다양하고 품격 높은 문화를 소개하였다.
경남 사천 출신의 재일교포 실업가 두암 김용두 선생이 수 십년간 일본에서 수집한 우리 유물 가운데 179점을 기증하여 그 중 백자철화죽문죽절 형병을 비롯한 청자, 분청사기, 백자,목제생활품, 금속공예품, 회화, 서예작품 등 다 양하고 아름다운 우리미술품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진주시 남성동 169-17
국립진주박물관 055-742-5951
진양호 공원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유역면적 2,285㎢, 저수량 1억 3,600만톤으로 7년 6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1970년에 준공되었으나 현재는 저수량 3억 1,000만톤 규모의 댐 보강공사가 1999년 10월로 완공되었다.
기타 부대시설을 포함한 전체 보강 사업 준공도 2000년 12월 완공되었다. 이로써 홍수조절과 생활 및 공업용수 공급은 물론 연간발전량은 4,000만kw에서 4,130만kw로 늘어났다. 주변에는 물홍보 전시관, 선착장을 비롯하여 동물원, 어린이 동산, 호텔, 여관, 식당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진주시 판문동 일대 진양호 공원사업소 055-749-2510~1
금호지
금산면사무소로부터 약 400m 지점의 금산면 용아리에 소재한 금호지는 전체 면적이 204,937㎡에 달하는 큰 저수지이다. 금호지의 전설은 무척 흥미롭다. 옛날 옛적에 황룡과 청룡(혹은 흑룡)이 하늘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것을 본 어느 용사가 "싸움을 멈추라"고 소리치자 청룡이 놀라 아래를 보는 순간 황룡이 청룡의 목을 비수로 찔렀다.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그 꼬리에 쓸려 갑자기 하나의 큰 못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의 금호지로, 금호지는 청룡을 닮아 항상 물이 맑고 푸르다고 한다. 또한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호지를 둘러 봤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안둘러 봤다."라고 하면 게으른 놈이라고 벌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승까지 이름이 난 저수지이고 보면 용이 있다는 전설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금호지는 둘레 5km로 굴곡이 많아 한눈에 저수지의 전부를 볼 수 없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추정만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금호지가 워낙 깊어 명주실구리 3개가 들어갔다는 옛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위에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족자원이 풍부해서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사시사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명소이기도 하다.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1102-1 진주시청 관광과 055-749-2055
진주성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김시민 장군의 농민항쟁이나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1862년 전국적인 임술민란의 대표격인 진주민란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임진왜란과 관계가 깊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 (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석축된 성의 둘 레가 약 1,760m(4,359척),높이는 약5m~8m(15척)이며, 성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성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 (남강)이 흘렀으며,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 을 뿐 아니라,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12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관리사무소 055-749-2480~1
연화사
경남 진주시 옥봉북동 449번지에 위치한 연화사는 수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12교구 본사 합천 해인사의 포교당이다. 연화사를 가기위해서는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진주 나들목으로 나와야한다. 나들목을 빠져 나오면 수려한 모습의 남강이 보이는 강변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연화사 주위에는 도심지역으로 봉래초등학교와 진주중학교, 진주여자고등학교가 있으며, 남강과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고, 남강을 바라보며 절이 위치해 있다. 바위벼락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영남제일의 아름다운 누각 촉석루(矗石樓).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안고 물속으로 몸을 던진 논개(論介)의 충절이 지금도 남강을 따라 흐르고 있는 고장 진주, 바로 그곳에 전통사찰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 있으니 수정산(금산)기슭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연화사(蓮華寺)이다.
연화사(蓮華寺)는 수정산 기슭에 있으나, 도심에 있는 절집에 가깝다. 도로변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며 창건 또한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도심의 날로 변해가는 현대 건축물들 사이에서 우리 전통건축양식의 모습을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연화사, 연화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경남 고성 옥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연화사라는 사명은 옥천사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 처럼 배열되어 있다는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900년대 초 본사인 쌍계사를 능가할 정도로 사세가 컸던 옥천사가 밀려드는 신도들을 제대로 제접할 곳이 필요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연화사로 창건이후 오늘날까지 도심 포교당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연화사는 특이하게도 보살선원(금당선원)이 잘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 사찰이다.
보살들의 수행정진 도량으로 유명한 이곳은 초창기부터 여러 큰스님들이 주석하며 이어온 수행가풍으로 항상 30명 정도의 보살들이 정진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정진의 정도가 하도 깊어 스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연화사 도량에 가면 부도가 2기 있는데 스님의 것이 아닌 보살의 부도이다. 이 부도는 이곳에서 공부한 보살들이 입적하면서 남긴 정진의 결과물인데 공부의 깊이가 상당했을 뿐 아니라 불자들의 귀감이 되어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송 성덕화라는 보살의 다비식 후 사리 7과가 나왔는데 이 사리가 방광을 하여 진주 소방서에서 불이 난 줄 알고 출동했다고 하니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다. 지금도 연화사에 가면 80세가 훨씬 넘은 노보살들이 허리를 곧추 세워고 정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히 연화사의 보배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화사는 또한 3천배 기도도량으로도 유명한데 선원에서 정진하지 않는 신도들이 수시로 절에 와서 3,000배에서 10,000배를 하고 그 수가 하루에 30여명을 헤아린다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연화사의 이 모든 가풍이 조계종 종정이며 해인사 방장이셨던 성철 큰스님을 비롯한 여러 큰스님들의 덕화 덕분이라 하니 그 크신 법향을 어찌 말로 다할수 있으랴 싶다.
진주시 옥봉북동 1~513 449번지 055-741-4852
서장대(西將臺)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내에 위치한 서장대는 진주성 서문의 지휘장대이다. 여지도서에 보면 회룡루로 나오는데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서장대는 허물어진 것을 1934년 독지가 서상필씨가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목조와가이다. 원래 서장대의 현판은 없어지고 지금의 현판은 1979년 은초 정명수의 글씨이다.
호국사(護國寺)
전통 사찰 제70호로, 소재지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내에 위치한 호국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이 절은 원래의 이름이 내성사였다고 한다. 고려말기에 왜구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승병을 기르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때는 승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임금께서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최근에 진주성을 정화하면서 일주문자리가 발견
되어 새로 세웠으며, 사찰의 건물들은 모두 근년에 새로 이룩된 것이다.
촉석루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 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 (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 휘본부 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 되 었다. 6.25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 고적 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는데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으며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 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내) 진주성 관리사무소 055-749-2480
응석사
응석사(凝石寺)는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번지 집현산(集賢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응석사는 진주의 대표적 고찰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까지 면면이 법등이 이어져 왔다. 임진왜란 때 많은 당우가 불에 탔으나 그 뒤에 중건되어, 대웅전 등은 조선시대 후기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구산 수련 스님 등 고승들이 머무르며 선풍을 확립하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741번지
응석사 055-746-9794
진양호공원
![진양호공원 진양호공원](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rean.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30%2F178930_image2_1.jpg)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 형성된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각종 위락시설을 고루 갖춘 관광객의 쉼터이다. 이곳은 경남유일의 동물원을 두고 있어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기린 등 야생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3층 규모의 현대식 휴게전망대로 시원하게 트인 넓은 호반과 주변 시가지, 지리산·와룡산·자굴산·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 오르고 있는
이곳은 영화 하늘정원(안재욱, 이은주 주연)의 촬영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1년 계단과 연결되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상락원 가족쉼터와 연결된 가족들의 휴식코스로, 동물원·진주랜드와 연결되어 오락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진주의 명소이다.
진양호공원 사업소 055-749-2510
진주시 판문동 171-1번지
의곡사
의곡사(義谷寺)는 경상남도 진주시 봉동 415-1번지 비봉산(飛鳳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다. 의곡사는 신라시대인 665년(문무왕 5) 혜통(惠通) 조사가 창건하였다. 그 뒤 통일신라와 고려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법등을 이어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이 절에서 승병들을 양성하여 왜적과 싸웠으며, 진주성(晉州성)이 함락된 뒤에도 계속 승병들이 모여 들어 이 절을 중심으로 항전하였다.
그로 인해 나라에서 의승병들의 항전을 기리는 뜻에서 당시에 쓰이던 사명인 근정가를 " 의로운 골짜기에 있는 절" 이라 뜻의 의곡사라는 이름을 내려 쓰이도록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성간(性侃) 스님이 관청의 도움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후기에도 몇 차례 중건과 중수가 이루어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청남 오제봉과 석정 스님께서 주석하신 바 있다
진주시 상봉동동 254~589 415번지. 의곡사 055-741-4710
경상남도 수목원
진주시 이반성면에 위치하고 있는 경상남도 수목원은 부지 1,003,640㎡, 연건평 2,809㎡ 에 전시원(침엽수원 외 7개 1,150종, 67,725본), 열대식물원(1,072㎡ 122종, 1,147본 난 86종 1170분) 분재온실 2동(351㎡,222종 375본), 산림자료관(236㎡, 473점), 산림동물원 (21,371㎡,조.수류 29종 236마리), 자연학습 및 학술연구관, 운동시설, 연못, 전망대 등 다양한 전시시설과 기능 탁성화된 향토 수종 전시장으로 산림과 동,식물에 대한 자연 종합 학습장이자 도민의 건전한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1념 11월 1일 산림박물관은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고 제1전시실에는 산림의 기원과 분포, 제2전시실은 산림의 생태와 자원, 제3전시관은 산림의 혜택과 이용, 제 4전시관은 산림의 훼손과 보존에 대해 전시하고 있으며, 그 밖에 자연표본실, 생태체험실, 12지상 목조각 등을 갖추어 연구와 교육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등 넓고 탁트인 공간에서 주말과 휴일을 보내는 가족 나들이객들로 항상 만원을 이루는 곳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rean.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51%2F158351_image2_1.JPG)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482-1
경상남도수목원장 055-750-6345~54
경상남도 산림환경연구원 055-771-6521 ~ 6528
진주 음악분수대
진주시 음악분수 음악에 맞추어 수동적으로분수 모양을 조합하여 조명과 각종 효과들을 연출되는 종합창작 예술품이다.
진주성 주변 남강에 조성된 진주시의 명물 '음악분수'는 음의 고저에 따라 입력되어 있는 값이 나오는 단순한 음악 분수가 아닌, 음악에 맞추어 수동으로 분수 모양을 조합하여 조명과 각종 효과들을 연출 함으로써 연출가의 뛰어난 음악에 대한 해석과 예술성이 요구되는 종합창작 예술품이다.
대지면적 9,800㎡ * 원형분수 - 노즐 462개, 조명 334개, 펌프 12대 (고사분수, 안개분수, 물결분수, 학날개분수, 물춤분수, 상모놀이분수, 병풍분수, 물폭죽분수, 워터미러, 워터스크린등) * 보조분수 - 2개소/노즐 102개, 조명 124개, 펌프 8대 (바닥분수, 개구리분수) * 부속시설 - 운영실, 산책로, 조형물
진주시 신안동 35~347 271-1번지
진주시 문화관광담당관실 055-749-2545, 5082
남가람문화거리
역사, 문화, 예술도시인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속의 문화, 휴식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문화예술거리로 지정되었다. 1992년부터 조성된 남가람 문화거리는 진양교 ~ 문화예술회관 ~ 진주교 ~ 천수교에 이르는 칠암, 망경지구 남강변일대(7만1,085㎡,2.9km) 에 죽림을 복원하고 야외공연장, 기념비, 조형물, 휴식공간, 진주성. 남강 전망대 등 문화공간을 조성해 문화예술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중심부를 흘러가는 남강의 빼어난 자연환경, 경상남도 문화예술회관, 진주성 등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 친숙하고 유익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유물과 문화재가 산재한 고전적 도시로서 문화관광을 겸한 명소로 외래관광객으로부터도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진주시 칠암동
남악서원
![남악서원 남악서원](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korean.visitkorea.or.kr%2Fcms%2Fresource%2F20%2F178920_image2_1.jpg)
신라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지(要地)를 찾아 다니다가 이 곳 금산 아래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에 비몽간(非夢間)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 위업의 가르침을 받아 높은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1922년 지방 유림들이 중건(重建)하고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의 이름을 본따 남악서원(南岳書院)이라고 하였다.
사당에는 김유신과 최치원 선생 설총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사당, 서원, 솟을대문이 남북의 축상(軸上)에 놓여져 있고 서원좌우에 정면 4칸(間), 측면 2칸의 재(齋)가 각각마주보고 있는 □자형(字形)의 좌우대칭 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五樑構造) 팔작지붕이다.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다.사당은 서원 바로 뒤에 높게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칸(前退間)이 없는 평면형이다.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817-1번지
진주시청 문화관광과 055-749-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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