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에서 인식한 인생철학과의 화해 --김태흥 시집 『인생에 정답이 있나?』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자아의 성찰을 통한 인생론의 탐구 우리 시는 존재 개념의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시는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디서든지 창조할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깊이 잠재한 의식이 생명과 교감할 때에 시는 탄생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시의 창작 동기나 발상은 인생의 체험을 중시하는 연유도 우리 의식의 흐름에는 삶과 동행한 생의 궤적(軌跡)에서 재생된 다양한 시적 이미지나 주제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좋은 작품과 연결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옛 성현들의 말에 인생은 황홀한 기쁨이다(W.어머슨)라는 것과 인생은 불안정한 항해이다(W.셰익스피어)라는 것으로 서로 대별(大別)하는 견해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행로에는 많은 경험이 산재하고 있다. 이 경험을 근원으로 해서 창조되는 시는 어쩌면 오욕(五慾) 칠정(七情-喜怒哀樂 愛惡慾)에서 빚어지는 삶의 간절한 굴곡이 형상화하거나 승화한 정신적인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 김태흥 제7시집 『인생에 정답이 있나?』에서는 그가 살아온 삶의 희비(喜悲)가 작품의 중심축을 이루는데 그는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 처음 가보는 이 낯선 길 /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 인생길을 터벅터벅 찾아가고 있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길 /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길 / 나 혼자 개척하는 외로운 길 / 나만이 가야 하는 길 / 그 길이 내 앞에 놓여있다 / 두려운 맘 떨치고 / 큰 숨 한번 쉬고 / 하나씩 하나씩 용감하게 부딪히자 / 인생의 나이테가 멈추는 그 날까지(「인생길, 되돌아올 수 없는 새로운 길」 전문)’라는 어조(語調)로 낯설고 험난한 인생길을 재고(再考)하고 있다. 들국화 군데군데 핀 앞산마루를 곱게 비추며 타고 넘는 저녁노을 그루터기 들녘에 맴돌고 있던 이 가을도 어서 앞서라고 재촉하고 있네 동공으로 빨려드는 화려한 장면인데도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온 생이 너무 행복해서일까 아니면 너무 아파서일까 인생이 짧아서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끊이질 않네 어차피 한번 왔다가는 인생인 걸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가 성장기 중년기 노년기 마디마디 지났던 굽이굽이 삶의 터널 아련히 생각나는 지난날들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는 바보 같은 삶이었네 네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을 땐 다시 이 지구를 찾아야겠지 저무는 빨간 노을 속으로 날고 있는 저 기러기 어쩌면 내 삶을 그렇게도 닮았는지 인생도 혼자 와서 홀로 돌아가는 저 기러기 같은 나그네가 아닌가 --「황혼의 인생에 저무는 가을」 전문 김태흥 시인은 ‘황혼의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그가 이 작품에서 그의 내면의식을 투명하고 명징(明澄)하게 투영하는 것은 ‘저녁 노을’과 ‘이 가을’이 던져주는 중요한 이미지는 ‘문득 서글픈 생각’이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그는 ‘지나온 생이 너무 행복해서일까 / 아니면 너무 아파서일까 / 인생이 짧아서일까’라는 의문형으로 어조가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은 바로 ‘어차피 한번 왔다가는 인생인 걸 /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가’라는 해답으로 위무(慰撫)하고 있어서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는 / 바보 같은 삶이었네’라는 단정적인 사유(思惟)의 중심을 정리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T. 칼라일은 ‘인생이란 단지 기쁨도 슬픔도 아니며 그 두 가지를 지양하고 종합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는 김태흥 시인이 인생을 탐구하면서 감지(感知)하게 되는 운명적인 삶의 형태가 적나라하게 투영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처음 가보는 이 낯선 길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인생길을 터벅터벅 찾아가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길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는 길 나 혼자 개척하는 외로운 길 나만이 가야 하는 길 그 길이 내 앞에 놓여있다 두려운 맘 떨치고 큰 숨 한번 쉬고 하나씩 하나씩 용감하게 부딪히자 인생의 나이테가 멈추는 그 날까지 --「인생길, 되돌아올 수 없는 새로운 길」 전문 그렇다. 김태흥 시인은 그의 사유에 깊이 잠재해 있는 인생론은 운명과 현존이 상호 화해하는 해법을 찾고 있다. ‘나 혼자 개척하는 외로운 길’, 이 인생길을 묵묵히 혼자 ‘오늘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두려운 맘 떨치고 / 큰 숨 한번 쉬고 / 하나씩 하나씩 용감하게 부딪히자 / 인생의 나이테가 멈추는 그 날까지’라는 결론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행로를 ‘터벅터벅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 많은 세월은 어디로 다 흘러보내고 / 달랑 흰머리 한 휘날리며(「인생, 그 찬란한 무지개였나」 중에서)’ 어느덧 저녁노을 앞에 다다른 자신의 형상을 느끼고 있다. 그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움뿐 / 오그라진 허리에 태산 같은 노후 걱정만 쌓이고 / 서산마루에 떨어지는 한줄기 석양빛 / 활처럼 굽은 등허리에 주인처럼 걸터앉는다’는 어조로 외로움과 노후 걱정들이 만년(晩年)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는 시법이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2. 삶과 동행하는 세월의 화해의식 김태흥 시인은 인생론과 동류의 이미지들을 삶에서 깊게 탐색하고 있다. 이는 삶과 동행하는 세월(또는 시간)이 동시에 그의 심중에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는 이미지의 재생에서 동일한 호흡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보아온 그의 인생관이나 인생행로는 이 세월과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세월 속에서 무상(無常)의 지향성을 탐구하고 있어서 김태흥 시인의 시법은 이제 세월과 삶의 행보가 바로 그의 가치관의 진정한 진실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어느덧 인생 팔십 고개 / 덧없는 세월 / 지나온 발자취는 어디쯤 / 가을의 수레엔 얼마쯤 실렸을까 / 알곡은 얼마나 영글었을까 / 스쳐 지나간 얼굴들 / 보고 싶은 얼굴들 / 추억의 지난날들 / 눈물은 왜 주책없이 흐르는가? / 목은 왜 메이는가 / 인생에 반려자들 / 추억의 동산에 / 꽃을 심고 있는 자들이여 / 그들이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구나(「덧없는 세월[인생무상]」 전문)’라는 인생 팔십과 덧없는 세월 그 발자취에서 존재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자성(自省)의 정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삶의 고뇌가 머물렀던 자리 자리마다 추억의 물결이 일렁이네 상처가 아물던 자리 어찌 생각이 없겠는가 감회어린 회포가 없겠는가 아름답게 승화되는 지난날들 삶의 값진 발걸음이 아니었나 인생의 주춧돌이 아니었나 어이 잊을 수 있겠나 지난 고통은 아름다움인 것을… 아득한 세월이 지키고 있네 --「삶의 아픈 자리」 전문 김태흥 시인은 ‘삶의 고뇌’에서 ‘추억의 물결’과 ‘상처’들의 ‘지난 고통은 아름다움인 것을… / 아득한 세월이 지키고 있네’라는 범상찮은 어조는 그 고뇌와 세월과의 화해로 융합하는 시법으로 삶의 문제의 해법을 적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그는 회상을 통해서 ‘상처가 아물던 자리 / 어찌 생각이 없겠는가 / 감회어린 회포가 없겠는가’ 그리고 ‘아름답게 승화되는 지난날들 / 삶의 값진 발걸음이 아니었나 / 인생의 주춧돌이 아니었나 / 어이 잊을 수 있겠나’라는 불망(不忘)의 어조로 삶의 고뇌를 화해시키고 있다. 꺼져가는 생명의 촛불 앞에 한 가닥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는 부모 아직 보지 못한 자식을 기다리느라 한 줌 남은 생명의 줄을 붙들고 결코 놓질 않는다 문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곧 오겠지 틀림없이 올 거야 그때까진 어떻게든 버틴다 각오에 다짐을 하면서 순간순간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들을 보고서야 스르르 손을 놓는다 기다리던 목소리 들리는 순간 맘을 탁 놓고 먼 길을 떠나려 한다 한평생을 엮어 만든 사랑도 --「삶의 의지」 전문 한편 그는 인생 팔십 고개에서 그 동안의 희노애락의 궤적은 그의 생명, 즉 존재와 밀접한 지향점을 공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이 이 ‘삶의 의지’에서 표출되고 있어서 ’먼길 떠나려‘고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는 부모‘ 의 생명줄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자식을 기다리는 형태의 작품 전개가 삶에 대한 지난(至難)한 역정이 하나의 의지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을 감응(感應)하게 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로 적시하는 것은 결론으로 표출한 ‘기다리던 목소리 들리는 순간 / 맘을 탁 놓고 / 먼 길을 떠나려 한다 / 한평생을 엮어 만든 사랑도’라는 안도의 어조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삶에서 ‘꺼져가는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 일깨우는 시적인 진실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인생의 거실에 걸려있는 장식 / 지나온 삶을 비추고 / 빛바랜 추억을 조명하고 있다 (「삶의 풍경」 중에서)’라거나 ‘헐떡헐떡하는 숨을 쥐고 / 가파르게 달려온 삶 /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 앞만 보고 그렇게 살아온 지난날 / 이 시점에서 /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아, 지난날이여」 중에서)’는 지난날 빛바랜 추억에서 조망하는 삶과 세월의 조화가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3. 문명과 충돌하는 현실적 갈등의 해법 김태흥 시인에게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제재(題材)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가 사회적인 모순이나 갈등 등을 지적하고 해소하려는 해법을 제시하는 시법, 즉 시의 시사성(時事性)의 전개에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형성한다. 우리의 문학도 그 사회생활에서 떠날 수가 없다. 특히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의 현실에 직면해서 거기에서 이미지와 주제를 탐색하게 된다. 이를 시의 사회성이라고 시학에서 말한다. 현실은 복잡다단해서 모순과 갈등이 내포하고 있어서 불합리, 비정상 그리고 국가적인 위난(危難) 등이 노출되어 있어서 불만이나 불평 등 위기감 혹은 불안감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 희망, 투쟁 등의 시법으로 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흥 시인 역시 ‘나날이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 물질도 넘치도록 풍성해지고 / 제가 윤택해지니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 의식 수준도 높아지니 인권도 신장 되고 / 훌륭한 문화도 꽃을 피우고 있다‘는 문명사회의 이점(利點)에서도 ‘찬란한 창공에 속아서 의심 없이 부딪혀 떨어진 / 저 순진한 철새들의 비명 / 오늘도 높은 빌딩의 그림자를 베고 단잠을 청하는 / 군데군데 허름한 노숙자 무리’ 그리고 ‘네 이웃이 헐벗고 굶주려 아우성인데 / 목구멍으론 행복이 넘어가느냐(이상 「문명의 그림자」 중에서)’는 등의 어조로 현실적인 사회 비평을 분사(噴射)하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이웃 나라에서 슬쩍 들어온 전염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새로운 환자가 폭주하니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보이고 음압 치료실이 턱없이 모자라고 방호복이 부족하고 소독약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초기 방역에 구멍이 뚫려 병마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민초들만 돈 없고 힘없는 그들의 가엾은 눈동자를 하늘에 고정시키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강대국 옆에 붙은 약소국의 설움 이웃 나라 눈치를 살피는 아부 정치로 패거리 정치의 이기심으로 백성의 생명이 무시되고 명예와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국가 체면이 한없이 망가지고 아무 잘못도 없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만들어야 하고 낡은 정치를 개조하는 정치 백신도 만들어야 하고 나라 안팎이 분주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백신 개발」 전문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괴질(怪疾)에 전국민이 국가적으로 위난을 맞고 있다. 일찍부터 우리는 시는 순수하게 생활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미(美)를 추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으나 지금은 생활과 연관된 소박한 작품에서부터 정치적 혹은 사회체제 변혁 그리고 세계 평화 등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형태시가 발전되고 있다. 이처럼 김태흥 시인은 이 괴질에 대한 ‘나라 안팎이 분주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마스크의 품귀현상과 음압 치료실, 방호복의 부족 그리고 소독약이 없다는 등 초기방역에 부실한 사회적인 유감을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실재(實在) 상황에 대한 그의 비평정신이 돋보이기도 한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M. 아아놀드는 ‘시란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라는 말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엄한 비평정신으로 시가 창작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김태흥 시인도 우리의 사회적인 현실을 감도(感度) 깊게 현현함으로써 시의 사회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현실 감각은 나아가서 ‘강대국 옆에 붙은 약소국의 설움 / 이웃 나라 눈치를 살피는 아부 정치로 / 패거리 정치의 이기심으로 / 백성의 생명이 무시되고 / 명예와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 국가 체면이 한없이 망가지고 / 아무 잘못도 없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표면화해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뿐만 아니라, ‘낡은 정치를 개조하는 정치 백신도 만들어야’ 한다는 충언까지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날 일제 강점기나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저항시와 참여시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인들이 동참했던 문학사적 의미도 포괄되었으나 김 시인의 바이러스 괴질로 인한 위난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적시되고 있다. -전염병이 돌고 돌아서 / 청년도 위협하고 / 경제가 어려워 하도 어려워서 / 서민이 울먹이 고 / 정치가 온통 혼란스러워 / 백성들이 빙빙 어지럽다고 / 이 세상 돌아가는 꼴이 정상이 아니네(「세상이 세상 같지 않으니」 중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 꿈과 희망이 자라고 /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지구 / 행복이 강물처럼 흐르는 낙원을 / 우리 다 같이 함께 만들어 보자 / 뒤에 오는 다음 세대들 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 지구인의 뛰어난 합작품 / 손에 손을 잡고 희망가가 울려 퍼지는 나라 / 전쟁과 공포가 없는 나라 / 기아와 질병이 없는 나라 / 행복과 즐거움이 충만한 나 라 / 전 세계인이 간절히 바라는 행복의 나라(「이 생명의 불길이 꺼지기 전에」 중에서) -이웃 나라에서 들어온 역병이 온 나라를 휘감고 /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 세계에서 반도 체를 제일 잘 만드는 나라인데 / 어쩌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난 걸까 / 초동대처를 잘 못 한 인재로다(「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중에서) 이 밖에도 작품 「비 노래는 소한」 중에서는 ‘좌와 우로 나누어진 정치판’에 대한 풍자적인 사회참여로 국위를 선양하는 높은 어조가 시의 사회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형태의 시법도 엿보게 한다. 4. 자연 섭리의 안온한 정취와 서정 김태흥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그의 순정적인 이미지의 창출이나 순박한 주제의 흡인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인간문제(혹은 인생문제)에서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설정이 삶의 문제에서 시간성과의 동행으로 계절적인 향취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정화되고 거기에서 취택하는 서정적인 이미지와 시적 전개는 더욱 우리들을 안온한 정념(情念)을 품게 한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다채로운 감흥(感興)이 바로 작품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인간이 간직한 오감(五感-視聽嗅味觸)에 의해서 발상되는 자연의 풍광과도 상관하게 된다. 김 시인은 자연에서도 봄과 가을을 특히 흥미롭게 시각적인 향훈에 젖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봄과 가을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더욱 그의 정서나 사유의 정점에서 어떤 지적인 향기에 매료(魅了)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봄이 왔다 꽃향기 잡으러 가자 파란 하늘로 오르자 저 하늘 끝까지 올라보자 둥실둥실 뜬구름도 지나고 반짝반짝 별빛 아래로 높이 더 높이 올라보자 노란 꽃동산 위로 하얀 꽃동산 위로 빨간 꽃동산 위로 온 세상 꽃이 다 보이는 그곳까지 둥 둥 둥 맘껏 올라가 보자 두발 아래 놓인 세상 참 보기도 좋구나 개폼으로 폼을 잡고 사는 못난이들 모두 다 발아래서 놀고 있네 사람 팔자 시간문제로다 모두 다 눈높이 때문이로구나 --「봄은 봄이다」 전문 우선 그의 심연(深淵)에 충만되어 있는 봄의 정경이 미감(美感)으로 승화하고 있는데 이는 봄의 이미지에서 ‘꽃향기 잡으러 가자 / 파란 하늘로 오르자 / 저 하늘 끝까지 올라보자’는 환상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꽃동산’의 정감이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두 발 아래 놓인 세상’을 낭만적으로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품 「봄이 오는 길목에서」 중에서 ‘입춘을 앞세우고 입장하는 봄 처녀 / 홍매화 목련 산수유 진달래 영산홍 / 줄줄이 뒤따르고 있네’ 그리고 「봄잔치」 중에서 ‘따뜻한 남풍이 불어오고 / 매화 실가지 가지마다 볼록볼록 새겨진 점들 /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 파릇파릇한 움틔움으로 / 불그레한 수줍은 자태로 / 환한 분홍빛으로 팽창하던 어느 날 / 드디어, / 봄 하늘 아래 기지개를 켠다’, 작품 「꽃피는 봄날, 웃으면서 만나리」 중에서도 ‘새 꽃이 피어나는 봄날엔 / 지난 일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 웃으면서 손을 잡고 일어서자’라는 봄에 관한 꽃잔치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밖에도 ‘꽃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 사월의 노래를 열창하면서 / 스스로 봄이 되는 사람도 있다--중략--봄은 어디에 오고 있을까 / 남쪽 먼 길에서 찾아오는 손님 / 대문을 열어두고 밤새 대문이 되는 사람도 있다(「사월이 오면」 중에서)’와 같이 봄의 향훈 속에 묻히는 우리들의 자연관은 광대무변(廣大無邊)임을 이해하게 된다. 뻥 뚫려 높게 올라간 파아란 가을하늘 뱅글뱅글 돌고 있는 빨간 고추잠자리 떼 산야도 모자라 하늘까지 물들이고 있나 문경새재 오솔길에 알록달록 차고 넘치는 인파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베이지색 온산을 뒤덮고 있는 조화로운 그림 동산 소리 소문 없이 연출한 하모니 인간의 눈앞에 펼쳐 한 수 가르치고 있구나 --「가을 동산」 전문 이 가을에서도 동일한 정감이 엿보인다. 봄이 꽃이라면 가을은 ‘온산을 뒤덮고 있는 / 조화로운 그림 동산’이다. 봄의 향연은 온산을 푸르게 물들여서 만유(萬有)의 자연에게 생기를 제공하더니 이 가을은 각양각색의 물결이 넘치는 결실의 계절, 참으로 사계절의 자연 섭리는 어쩌면 한 폭의 풍경화를 우리들에게 감상하게 하는 신비로운 조화이다. 김태흥 시인은 ‘가을 하늘 아래 쭉쭉 늘어선 / 은행나무 가로수 / 노오란 융단을 차곡차곡 펼치고 / 누굴 기다리고 있나--중랴--이리저리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 /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울림소리 / 앙상한 가지를 타고 넘는 가냘픈 기타 소리 / 까맣게 차가운 이 밤에 / 난데없이 생각나는 고소한 군밤(「가을이 물들다」 중에서)’ 그리고 ‘가을걷이가 이미 끝이 났고 / 을씨년스런 텅 빈 늦가을 들판 / 농촌 분위기만 눈으로 들어온다 (「늦가을 나들이」 중에서)’는 자연과 동화(同化)하는 시법은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 시학에서는 자연을 인격화해서 인간의 정서나 사회에 좋은 혜택을 주고 있어서 자연과 시인과의 관계는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하는 동화(assimilation)로서 시인이 모든 가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들여서 내적 인격화하고 대화를 나누거나 투사(投射-project)라고 해서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두 가지의 낭만적인 원리로 작품화하는 특성이 있다. 5.‘나를 만나’려 방황하는 시인의 진실 이제 김태흥 시인의 시집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그의 팔십 인생에 대한 회고에서 탐색한 삶과 세월과 인간들의 양상과 불확실성 시대의 사회상과 그리고 자연친화의 서정성이 함축된 시법으로 이 시집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현상을 통해서 감득(感得)한 결론은 바로 나(자아)를 찾아서 만나려가는 인생 철학적인 가치관의 중심에서 시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세상의 그늘진 곳을 열어주고 / 눈물을 닦아주고 / 격려와 위로를 주고 / 감동을 주고 /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시인 // 세상이 타락해가는 것을 / 예방할 수는 없을까 / 좋은 길로 인도하고 / 꿈을 심어주고 /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고 / 웃음을 줄 수는 없을까’라는 시인으로서의 희망과 기원이 넘치는 그의 예민한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김태흥 시인 자신(인간)과 시와의 상관성에서 구현해야 할 덕목에는 무엇인가를 적시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나를 만나라」 중에서 ‘참 나는 어디에 있을까? / 조용히 눈을 감고 / 거울에 비춰보며 나를 찾는다 / 어떤 모습일까 / 단점은 어떤 것일까 / 장점은 전연 없을까--중략--공연히 들떠서 나부대는 모습은 없는가 / 시간의 여유가 있는데 왜 급하게 글을 쓰려고 하는가 / 고쳐라, 하루라도 빨리 고쳐라’ 하고 ‘나’를 심도(深度)있게 자책하고 있어서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나를 찾아서 만나보라는 자성의 어조가 잔잔히 들려오고 있다. 맘에 앉힐 때도 조용히 남들이 모르게 떠나보낼 때도 이슬비처럼 소리 없이 고요하게 빠이빠이를 보내고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고 가고 싶을 땐 언제라고 붙잡지 않으니 전연 부담이 없다 남이 모르니까 나 혼자 정리하고 고개 한 번 들고 손 한 번 흔들면 끝이니까 스트레스의 발자취가 없다 올 때도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 갈 때도 조용히 정리하면 되니까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이런 힐링 철학이 어디에 있나 --「자의적 판단」 전문 김태흥 시인에게 내재된 인생적인 자존(自尊-self respect)의 지향점은 스스로 판단하는 지적인 인생관이며 가치관이다. 그것은 ‘갈 때도 조용히 정리하면 되니까’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 혼자서 정리하고 고개들어 손 한번 흔들면 끝이라는 비장한 어조뿐만 아니라,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 이런 힐링 철학이 어디에 있나’라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그의 인생론은 순박한 그의 시적 진실이다. 그는 다시 ‘맘이 답답할 때 / 필을 들고 / 수필이나 시를 한 수 지어본다 / 맘이 뻥 뚫리는 힐링 /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고 / 삶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되고 / 서민이 돈 안 들이고 / 맘의 위안을 찾을 수 있고 /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그 신비한 방법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 오늘도 시나브로 펜을 들어본다(「글 타령은 서민의 노래」 전문)’라는 진솔한 창작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어서 그의 내면의 사유는 삶과 시가 동시에 심미적(審美的)으로 공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민초 속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호흡하고 귀를 열고 경청하는 고향의 향기에 맘을 담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살아온 세상을 얘기하고 지금 살고 있는 하늘을 전하며 함께 울고 같이 웃고 손잡고 기뻐하던 날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얘기를 생각을 전하는 그것이 시인의 혼이다 --「참새 같은 시인」 중에서 그렇다. 그의 시나 시인의 여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언제나 민초와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의 애환을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대중들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삶과 인생과 세월과 고향을 노래하고 싶은 잔잔한 서정적 기질이 잠재해 있는 시혼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시의 주된 효용(效用)은 영국의 대시인 T.S.엘리엇의 말대로 독자의 습성을 만족시키고 시가 그의 마음에 작용하는 동안 정신에 대해서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데 있기 때문에 시가 시인과 독자들 사이에 교감하는 진정한 시정신이 발현되는 진실을 수긍(首肯)하는 생명성이 공감으로 흡인되는 것이다. 김태흥 시인은 ‘시도 쓰기 전에 꿀차부터 생각난다’거나 ‘시가 제대로 될 턱이 없지’ 또는 ‘시는 시대로 안 되고 (이상 「창작의 유혹」 중에서)’라는 시청적의 고뇌와 같이 그의 시창작에 대한 사유와 정서가 바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고충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처럼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理想)을 쫓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인이 과거를 재생하거나 현실적인 실생활(real life)에서 생성하는 이미지들을 여과(濾過)해서 좋은 시를 창작하려는 보편적인 정서의 확충이 필요하게 된다. 제7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