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밴드의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듀오. 이적(본명 이동준)과 김진표가 1995년 결성한 그룹이다.
활동 내역
1995년 발표된 1집 타이틀곡 '아무도'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팬들이 발견한 '달팽이'가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후속곡이자 비주류의 감성을 노래한 '왼손잡이' 또한 10위권 안에 드는 등 히트하면서 크게 떴다.
다소 즉흥적으로 결성된 그룹이기도 한데, 엄친아의 대표주자 이적이 솔로 1집을 준비하던 시절 친분이 있던 김진표에게 샘플곡을 들려주다가 '너 같이 할래?' 라는 권유를 통해 패닉이라는 듀오가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이적의 솔로 1집으로 준비되던 것이 패닉 1집이라, 김진표는 양념 정도로만 기여했다고. 때문에 방송 활동 당시에 김진표를 위한 파트 배분을 위해 달팽이의 간주 부분에서 색소폰 연주를 맡게 했다.
따라서 김진표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앨범은 2집부터라고 볼 수 있다.
패닉 1집이 성과를 거두자 후발주자로 참여한 김진표는 기고만장해서 흥청망청하고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이적이 '너, 나 없이도 패닉 할 수 있냐?'고 꾸지람을 했다고 한다.
이에 과거의 음악 활동을 돌아보고 패닉 1집에선 자기가 빠져도 별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충격을 받은 김진표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반영한 앨범이 이듬해인 1996년 발표된 패닉 2집 밑이다.
이 2집은 '벌레', 'Mama' 등 스승과 어머니를 대차게 까는 내용으로 19금 판정을 받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진표가 원하는 대로 참여 비중을 확 늘린 데다가 특유의 미치광이 같은 페이소스는 패닉이라는 듀오를 규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집 '밑'에서는 'UFO'로 활동하면서 가요 차트에서는 중위권까지 들면서 선전했지만, 더욱 파격적인 모습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패닉이 변했다'면서 떠나간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반면, 1집 때는 '그냥저냥 괜찮은 가수네'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2집의 파격적인 모습에 삘이 꽂혀 극렬 패닉 신자로 편입된 사례도 의외로 많이 있었다.
근데 패닉 1집도 잘 들어보면 꽤 파격적인 것들이 많다. 반면 패닉의 팬이었다가 뒤늦게 2집을 알게 되고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는 어린 팬들도 많다.
다만 패닉 이후 김진표의 솔로 1집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패닉 2집 당시의 취향이 이적과 잘 맞았던 듯하다.
이적은 2005년 패닉 4집과 관련된 인터뷰 중 지난 1~3집을 더듬으며, "우리가 패닉이라는 이름으로 하고자 했던 음악은 2집이 가장 가깝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패닉의 시작부터가 이적의 원맨 밴드에 가까웠고, 해보고 싶었던 날카로운 성향의 음악을 패닉을 통해 충분히 제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이적의 솔로 앨범에서는 사회비판적인 색은 간간이만 드러났다.
다만 솔로 앨범에 실리는 곡의 가사로 볼 때 이적이라는 가수의 작사/작곡의 입힐 수 있는 색의 관심사가 단순한 사회비판에서 철학적인 생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패닉 1집과 2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각각 71위, 89위에 랭크되어 있다. 패닉 1집 쪽이 순위가 더 좋은데, 당시 평론가들이 대중성을 좀 더 고려한 결과로 예상된다.
큰 차이가 나는 순위는 아니다. 100대 음반 선정 기념으로 이적의 인터뷰가 실려있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인터뷰를 보면 20대 초반에 음반 제작을 하면서 어떤 생각으로 음반 제작에 몰입했는지 확연히 범상치 않은 생각의 소유자임을 드러낸다.
2집 이후 김진표가 각자 자신의 솔로 활동을 시작해서 1997년에 1집 "열외"로 활동했고, 이적은 김동률과 '카니발'을 결성해서 "Carnival"을 발표했다.
후자의 경우 '그땐 그랬지'가 방송 활동이 뜸했음에도 가요 차트에서는 중위권까지 들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곡이자 가수 인순이가 리메이크한 '거위의 꿈'도 같은 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러다가 1998년에 패닉 3집 "Sea Within"이 발표됐고 타이틀 곡인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와 후속곡 '숨은 그림 찾기'가 히트했다.
3집 활동 이후에 이적과 김진표는 다시 각자 솔로로 활동했고, 이적이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이던 2001년에 발매된 김진표의 솔로 3집에선 '2001 PANIC - 분노, 왜'란 패닉 신곡을 실어 패닉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이적은 김진표의 3집을 패닉의 3.5집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타이틀곡인 "믿을진 모르겠지만" 역시 이적이 만든 곡이다.
2003년 음악캠프 상반기 결산 특집으로 이적과 김진표가 만나 왼손잡이를 불렀다. 활동 시기가 같기도 했다.
3집 앨범이 발매되고 7년만인 2005년에 4집인 "Panic 04"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로시난테'로 정해졌고, 당시 증기기관 열차를 사용하는 뮤직비디오 컨셉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후속곡 '정류장'으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김진표의 이혼 탓인지 급작스레 활동을 마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그게 아니더라도 김진표는 부정맥 때문에 긴 활동을 하기는 힘든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 앨범이 '패닉'으로 발매한 마지막 앨범이며 공식적인 해체는 하지 않았으나 예전과 같은 활발한 활동은 없다. 그래도 딱히 해체한 것은 아닌지라 '언젠가는 새 앨범이 나오겠지'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그 사이에 김진표가 음반을 발표했고, 소집해제한 이적이 개인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음악 프로 등에서는 두 사람이 곧잘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그 즈음에도 두 사람이 늘 하던 소리가 "각자 바빠서 그렇지 해체는 아님"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숲으로 자란 노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김진표가 김동률과 함께 나왔고, 2008년 그룹 카니발로서 김동률과 함께 했던 THE CARNIVAL 콘서트에서도 JP는 서동욱과 함께 나와서 무려 '내 오랜 친구들', '그녀를 잡아요' 등 4명이서 함께했던 노래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그 이후로도 각자의 콘서트나 여러 무대에서 서로를 빛내 주었고. 데뷔 20년인 2015년 이적 소극장 공연 앵콜 무대에서도 둘은 한 무대에 섰다. 20주년이라고 거창한 건 하지 않아도 무언가 흔적은 남기고 싶었다고.
이 무대에서는 패닉 노래 중 김진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한 3집의 '태엽장치 돌고래'를 불렀다.
랩 부분은 둘의 당시 상황에 맞춰 개사했다. 토크 시간에는 김진표가 사진 찍는 걸 허락해줘서 검색하면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 김진표의 솔로곡인 '시간을 찾아서(feat. 이적)'도 함께 불렀다. 또한 이적의 솔로곡인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라는 곡도 이적이 혼자 부른 버전도 있으나 김진표가 피처링한 버전도 있다. 사실상 패닉의 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3년에 Mnet 방송의 적에서 김진표와 패닉의 이야기를 했는데 꽤나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
'서로 신나게 디스하는게 포인트.' 이때 나오는 여성 가수는 랩퍼 치타다.
2014년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편에 게스트로 나온 이적이 패닉은 god처럼 아직 해체되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밝혔다. 사이가 나쁜건 아니니 언젠가는 패닉으로 다시 뭉칠지도 모르는 부분.
그러던 중 2020년 이적이 먼저 자신의 6집의 '돌팔매'의 피쳐링을 김진표에게 부탁했으나 처음엔 랩을 꽤 오래 쉬었단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패닉 25주년을 이유로 흔적을 남기기 위해 결국 돌팔매는 '왼손잡이'의 25주년 기념곡이자, 25년 뒤인 현대의 시점을 그린 후속곡으로 사실상 패닉의 곡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김진표는 다시 음악 쪽에 손대기 시작해서 자신이 몸담았던 노바소닉에 다시 객원으로 참가해 녹슬지 않은 랩 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0년 11월 13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패닉이 출연했으며, 유희열 역시 패닉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지 몰랐다며 반가워 했다.
https://youtu.be/tt91uc2_Vy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