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8일. 내가 페스코테리언이 된 날짜이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전날 본 tv프로그램이 나를 변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2년 6월 10일과 17일 두 차례 방영되었던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
우연히 두번째 방송을 봤고, 더 이상 육식을 할 수 없는 tv 화면 들을 마주했다. 밀렵꾼들에 의해 발만 댕강 잘려나간 채 산채로 버려진 새끼곰들. 곰의 발이 식용으로 쓰이기에 자행되는 끔찍한 행동들이었다. 단 시간내에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해, 몸집이 커지는 주사를 소들은 계속 맞는다. 몸집만 기괴하게 비대해진 반면 발은 그만큼 커지지 않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들은 푹푹 쓰러진다. 닭장에서 옆으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좁디 좁은 사육장에서 자라는 닭들. 그 스트레스로 다른 닭을 쪼아댄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닭의 부리는 자르는 것.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며 토할것 같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갈때쯤 결심했다. 다시는 육식을 안하기로. 처음부터 완벽한 비건이 되는 결심은 아니었다. 해산물과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 페스코테리언으로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하고 가장 힘든것은 지인과의 식사자리였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한 모임장소는 ‘고깃집’ 이기에 지인들과 갈 수 있는 장소는 제한적이었다. 특히 2012년도 당시는 ‘채식’, ‘비건’이란 단어가 생소했기에 나의 갑작스런 선택에 지인들은 ‘고기가 없는 식당이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선택지 앞에 당황해했다. 나또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고기가 없는 식당으로 ’횟집‘이 자주 선택되었다. 페스코이긴 하지만 생선이나 유제품을 맘놓고 먹지는 않았기에 회를 먹는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선마저 먹지 않았다면 어디를 갈 수 있었을까?
미국, 유럽에서는 아주 작은 식당조차 '비건 메뉴'가 존재한다. 영국 출장을 갔을 때 들어간 정말 작은 식당에도 비건옵션이 있는걸 보고 감격 했었다. 마트의 식자재 코너에도 유제품을 대체하는 아몬드, 귀리, 두유 등 식물성 우유와 요거트가 다양하고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재료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다행히도 현재는 비건과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높아졌고 비건 카페, 비건 식당, 비건 음식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채식을 하는 한국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동물권’에 대한 의식이었지만 채식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는 ‘환경’에도 육식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고기맛’을 위한 사육은 지구에 과도한 피해를 주고 있다. 열대우림 파괴, 지구 온도 상승, 수질 오염, 물 부족, 사막화, 세계의 기아까지 영향을 끼친다. 1960년 이후로 소를 기르기 위한 목초지를 조성하기 위해 중앙아메리카 열대우림의 25%가 불태워졌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물의 절반 정도가 소, 가축을 기르는 데 쓰이고 있고, 가축 사육에 쓰이는 자원을 세계 인구에 공급할 곡물을 재배하는 데 쓴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도 있다.
환경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레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알맹상점’이나 ‘더피커’같은 제로웨이스트상점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고, 옷을 사는 빈도수도 절반이하로 줄게 만들었다.
채식은, 비인간 동물을 넘어 현재가 아닌 미래까지 포용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채식을 하면 좋겠지만 아직 내가 완전한 비건이 되지 않았듯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채식을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나길 바란다. 이전에는 누군가와 외식을 하면 나때문에 갈 수 있는 식당이 제한이 되니 괜히 미안했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식사를 안하려고 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꼈다. 나랑 함께 식사를 하니, 자연스레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음을 접하는 거고, 채식식당도 경험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덧) - 무례함의 경험-
채식을 하고 얼마 뒤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그럼 풀은 왜 먹어? 풀은 생명 아니야?"
말문이 막혔다.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또 한번은 직장동료 뜬금없이 카톡으로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링크를 열어보니 “채식의 위험성” 에 관한 글이었다. 무례함을 넘어 폭력적으로 느꼈다. “너 틀렸어”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그런 사람이구나. 내가 반응을 보일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종종 나이많은 분들이 말한다. “고기 먹어야돼. 고기 먹어야지 건강하지”
“네” 대신, “괜찮아요. 채식해도 건강해요.” 라고 말하거나 “아픈 고기 먹으면 더 아플것 같아요.”라고 답을 한다. 혹은 그저 아무말 안하고 넘어갈때도 있다. 아무리 ‘걱정’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라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태도이기에 여전히 이런말을 들을때는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다음에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그런 표현은 제게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채식을 하는 분에게는 그런 표현하지 말아주세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