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요한복음 12:35-36 2023/12/03 구주강림 제1주
1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2024년 교회력이 시작되는 구주강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
교회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그리스도의 생애에 따라 구성이 됩니다.
크게 일곱 개로 나누는데
1)구주강림절(대림절/대강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의 절기로
①구유풍경(nativity)을 설치하고,
②성탄트리를 세우며, ③보라 색 기다림 초를 한 주에 하나씩 밝힙니다.
구유풍경, 성탄트리, 기다림 초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빛입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요 12:46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2)성탄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는 날
서방그리스도교(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12월 25일
동방그리스도교(그리스, 러시아정교회): 1월 7일
3)주현절
그리스도의 세례와 공생애 사역을 기념하는 절기.
4)사순절
속죄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가 40일간 고난당하심을 기념하는 절기.
5)부활절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절기
6)성령강림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탄생한 절기로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보혜사(참된 스승)로 함께하는 절기
7)왕국절(성령강림 마지막 주)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절기
이렇게 일곱 개의 절기가 교회력인데, 그 시작이 바로 대림절이라고도 불리는 구주강림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가 마치면,
교회력이 기록된 2024년도 달력을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꼭 가져가셔서 하나님과 늘 함께 하시는 복된 2024년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월에 들어서면, 제 귓전에 맴도는 노래가 세 곡 있습니다.
첫째는 찬송가 98장입니다.
채희동 목사님이 노랫말을 짓고,
한양대학교 교목이신 이천진 목사님이 우리 가락을 붙여 만든 찬양인데, 구주강림절 4주 동안 찬양과 묵상을 반복합니다.
1.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이곳에 오셔서 기도 들어 주소서
능하신 주께서 크신 일을 행하사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보좌를 떠나서 사람 몸을 입었네
높은 자 낮추고 비천한 자 높였네 만민 위해 오셔서 사슬을 풀어주소서
3.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죄악 된 세상에 속죄 주로 오셨네
주린 자 먹이며 병든 자를 고쳤네
천하 만민 돌보사 빛의 길 가게 하소서 아멘
둘째 아이가 태어난 어느 날, 목사 채희동은 이런 글을 남깁니다.
나의 따님에게
알몸으로 오시었군요, 나의 따님
아무것도 쥐지 않고 빈 몸으로 오시었군요, 나의 따님
이 세상 오자마자 자연바람 맞이하셨군요, 나의 따님
이 세상 오자마자 먼저 비우셨군요, 나의 따님
이제 곧 아기 예수님도 이렇게 오시겠지요.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알몸으로 오셔서 빈 몸으로 살다가
겨울 나무 십자가에 달려 세상을 구원하신 나의 주님
알몸이 되겠습니다, 나의 주님
아무것도 쥐지 않고 빈몸으로 살겠습니다, 나의 주님
이 세상 사는 동안 자연바람 맞이하겠습니다, 나의주님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비우며 살겠습니다, 나의주님
저는 이 시에서 이런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몸으로 오시었군요.
빈 몸으로 오시었군요.
자연바람 맞이하셨군요,
또 이런 다짐의 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몸이 되겠습니다.
빈몸으로 살겠습니다.
자연바람 맞이하겠습니다.
바라기는, 이런 표현들과 다짐들로
구주강림을 기다리는 빛의 여정,
4주간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제 귓전에 뱅뱅 도는 찬양은 찬송가 481장입니다.
지금 12월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결단할 때
꼭 찾아 부르는 찬송입니다.
1.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2.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3.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4.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게 하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이 찬양의 원제목은 ‘abide[əbáid] with me’입니다.
헨리 라이트라는 성공회 신부가 쓴 기도문 형식의 시입니다.
‘abide with me’
우리말로 해석하면 ‘저와 함께 하소서’ 또는 ‘저에게 머무르소서(거주하소서, 묵으소서)’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찬송가는 ‘임마누엘’이라는 뜻을 가진 ‘주여 함께 하소서’로 번역했습니다.
이 찬양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찬송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잘 불러지는 찬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찬양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그리고 2009년 항공사고가 났던 네덜란드공항에서,
이 찬송이 불리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이 찬양이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축구, FA컵 결승전이 열리는 날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어깨동무하고 부르는 노래가
‘abide[əbáid] with me’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지만 1927년부터 해마다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영국이 이 찬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한 길 더 나아가 이 찬양을 거의 애국가처럼 부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입니다.
인도에는 우리나라 광복절처럼 ‘공화국의 날(1/26)’이라는 국경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 있는 날에 울러 퍼지는 노래가 ‘abide with me’ 찬송가 481장이었습니다. 아이러니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가 뜻 깊은 날에 영국의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가?’
하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인도인을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이 찬송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공화국의 날’이 되면, 인도 전역에서 ‘abide with me’ 찬송가 481장이 울러 퍼집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1791년 3월 2일입니다.
존 웨슬리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이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납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왜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세 번째 제 귓전에 뱅뱅 도는 노래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시에 노랫말을 붙인 ‘그 선한 능력으로(Von guten Mächten)’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없지만 저에게는 참 소중한 찬양합니다.
어둠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제2차 세계대전
루터교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나치에 대한 저항과 히틀러 암살을 모의 했다는 죄로 비밀경찰(게시타포)에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절망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옥살이가 한창이던 1944년 차가운 겨울.
목사 본회퍼는 자신의 고백과 자신의 희망이 담긴 시 하나를 편지에 담아, 새해 인사 차 어머니와 약혼녀인 마리아에게 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찬양이 ‘그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우리말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이렇게 나는 나날이 그대들과 같이 살렵니다.
그리고 그대들과 함께 새해를 맞으렵니다.
인생의 끝에서, 인생의 밑바닥에서,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겠지요.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시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기묘)
그 다음 연을 볼까요?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오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새해, 여러 바람이 있겠지요?
하지만 목사 본회퍼는 오직 한 가지만을 구합니다.
오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말씀을 마칩니다.
주보를 보시면 오늘 설교에 제목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왜 우리가 빛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할까요?
그것은 사도 요한이 전해준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세 가지인데,
첫째 어둠이 우리를 이기지 못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전한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 12: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둘째, 왜 우리가 참 빛이신 예수님을 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할까요?
주님처럼 우리도 참 빛의 자녀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12:36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서 몸을 숨기셨다.
셋째는 바로 이유 때문입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