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
모로코 여행은 재작년 우리 부부가 주도한 일본 여행의 답으로 프랑스 친구부부가 제안한 것이었다. 작년 10월부터 의견이 오고 갔다. 아프리카가 생소한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자신들의 재방문을 환영할 것이라는 옛 제자가 둘이나 살고 있는 모로코를 가자고 했다. 이렇게 몇 십 년 지속되고 있는 우리들의 관계로 미루어보아 그들과의 관계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얼마나 진심으로 따뜻이 대했으면 그러랴. 외롭고 가난한 유학생을 초대하여 각가지 프랑스 음식을 맛보게 하면서 어눌한 불어에 귀 기울이고 타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관심과 배려가 그들을 감동시켰으리라.
모로코인들의 조언에 따라 축제가 있는 5월22일 경 떠나자고 했다. 우리는 파리 왕복 비행기표만 구입하고 방문할 도시와 묵을 숙소와 이동방법은 그들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할인된 표를 사려면 적어도 3개월 전이어야 한다. 그래서 1월에 인터넷에서 표를 구입했다. 그 당시 휘발유 값이 인하되고 있어서인지 칼 회항사건 덕이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싸게 구입한 나는 무척 의기양양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남편이 참석해야 할 국제회의 날짜가 통보되었다. 염려한대로 우리의 출발을 훼방하는 날짜였다. 25일과 26일이었다. 사실 5월에 있을 그 회의의 통보를 기다리다가 흔쾌한 동의를 신속히 줄 수 없어 몹시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뻗치다가 이왕이면 패스(Fès)의 축제를 보자고 그 날로 동의했었던 것이다. 결국 못 보는 아쉬운 여운을 남긴 채, 여정을 일주일 연기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변함없이 예정대로 22일 떠나기로 했다. 시차적응도 할 겸, 그간의 회포도 풀 겸, 사뭇 바람직한 여유 있는 출발이 되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는 29일 모로코 출발에 맞춰 서울 출발 날짜를 28일로 바꾸었다. 말레이시아에 갔다 하룻밤 자고 떠나는 유럽행은 무리이지만 어쩌겠는가. 친구는 물론 생판 모르는 친구의 친구가 둘이나 합하여 기획한 여행인걸! 우리가 구입한 할인된 표는 출발일을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불이행시 벌칙금을 뺀 금액은 환불 받고 새 표를 사야만 했다. 그 사이에 표값은 상승해 있었다. 40여만원을 손해 보았다.
프랑스에서는 서서히 세밀한 여행일정을 세워가고 있었다. 네 곳의 도시를 구경할 것이라고 했다. 험프리 보가드의 카사블랑카, 메크네스, 패스, 마라케슈. 기차를 타고, 기사 달린 차를 렌트하고, 각기 다른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는 현지 친구네 집에서 묵을 예정도 있다고 했다. 이국적 정취, 유목민의 생활, 이슬람 문화, 프랑스 스페인 문명의 흔적 등 새롭게 느끼고 겪을 체험이 호기심을 확 돋우었다. 또한 사막에서 잘 계획이라고 했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사막에 세워져 있는 초호화판 천막 호텔을 그 즈음 보았다. 그 정도의 호텔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이집트에서 잠깐 맛보았던 끝없이 펼쳐지는 살색 모래 구릉들 지평선 위에 떨어지는 낙조를 관조하며 숨막힐 것 같은 아련한 우수를 벅차게 느낄 순간이 참을 수 없는 흥분을 자아내었다.
5월 말 대장정의 아프리카 여행을 기대하며, 2월, 3월의 무료한 나날을 국내여행으로 달랬다. 4월은 선친의 선영 성묘가 예정되어 있었다. 은퇴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했다. 4월 12일 모친을 모시고 사 남매 내외가 모두 성묘를 한 후, 하루를 더 함께 지내려고 수안보에 갔었는데 그만 모친의 상태가 좋지 않아 돌아오고 말았다. 평상시 쓰던 약이 듣지 않고 모친의 아픔은 지속되었다. 동네 의원 처방도 신통치 않았다. 주치의의 처방 효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결국 5월 5일 새벽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고 말았다.
처음 일주일은 발병의 원인인 담도의 염증을 가라앉히면서 아스피린의 부작용이 수술 시 일어나지 않게 복용을 중단하고 중화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의심되는 담도암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를 알기 위해 복부초음파, 내시경초음파, 시티촬영을 받았다. 십이장까지 내려가서 보는 내시경도 무거운 쇠판을 복부에 올려놓고 찍는 시티도 모두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노쇠하고 병이 깊은 모친에게 첨단의학의 검사가 꼭 필요한지 의심스럽다. 의사 입장에서는 그렇겠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고생만 시킨 것 같다.
시티촬영이 실패하자 위급한 상황이라 판단한 내과 의사가 외과로 돌려 그 이틑날 시술을 하게 했다. 막힌 담도로 발생하는 통증의 근치는 간단한 복강경 시술로 가능하다며 환자에게 별반 위험이나 고통이 없어 젊은이들은 그 이틑날 퇴원한다고도 했다. 배에 구멍을 4개 내고 내시경으로 가볍게 처치하기 때문 수술과 차별화하여 시술이라고 한단다. 담낭을 자르고 담도를 소제하고 스텐트를 박을 거라 했다. 2시간 걸린다는 시술이 8시간 개복수술로 끝나고 말았다. 깨어나는데 4시간 걸렸다. 더 오래 수술을 견딜 수 있었다면 담도를 간에서 십이장으로 연결하는 대수술을 했을 텐데 연로하고 부정맥도 있고 환자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담즙관을 복부 밖으로 꺼낸 단계에서 수술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발달된 무통약 덕분에 수술 후 환자의 고통은 참을 만한 것이었으나 기력이 완전 바닥난 것 같았다. 돌아가실 듯 했다. 하루는 좋았다가도 그 이틑날은 절망적이었다. 예후(수술 후 증세)가 심히 불안정했다.
하루 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는 여행만큼이나 관심 밖이었던 의학 지식에 눈이 떠졌다. 의사와 간호사에게서 들은 단어들을 인터넷에서 확인하며 여러 번 읽게 되었다.
담낭은 쓸개의 의학적 명칭이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라는 표현은 간 뒤에 붙어 있는 담낭의 위치에서 왔나 보다. 간에서 생성된 담즙은 담낭에 일단 저장되었다가 십이지장으로 간다. 그 길이 담도다. 좁은 공간에 여러 기관이 있으니 해부학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진단도 수술도 그만큼 어려우리라. 전반적으로 관에 암이 있으면 담도암, 간에서 나온 두 관이 합쳐져 하나가 된 관에 암이 있으면 담관암이다. 모친은 담관암이다. 따라서 간과는 상관없나 보다. 60대 이상 여성이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우리가 놓친 초기 증상은 모친의 얼굴 색이다. 어느 새 검어진 얼굴을 보고 이상하다. 늙어서 그런가라고 생각만 했지 그것이 담관이 막혀 담즙이 혈관으로 들어가 일어난 황달인 것을 어찌 알겠는가! 처음 황달의 수치가 153이었다. 식욕부진과 그에 따른 체중감소를 보고 우리는 노화로 인한 자연스런 현상이라 생각했다. 허리가 넉넉해진 바지를 보고 도리어 축하했다. 또한 피부과에서 약만 처방해 준 이유 없는 가려움증이 초기 증세인 걸 몰랐다. 말없이 진행된 이 모든 증상의 마무리는 토하고 우측 윗배의 간헐적 고통의 지속이 내뱉는 신음소리였다.
여행이 몸 고생이라면 보호자로서 간병은 소용돌이 맘 고생이었다.
시작부터 삶과 죽음의 중대한 난제에 부닥쳤다. 살 만큼 사신 분의 생명을 첨단의학시술을 행하여 연장시킬 것인가 아님 의술이 발달하기 전 시대처럼 고통만 없애고 사그라들게 할 것인가?
꼭 필요한 검사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 얼만큼의 고통을 견디어야 하나?
평소 고통 없이 잠자듯 죽고 싶다는 분의 말씀을 존중하려면 이 문제가 제일 중요했다. 심장마비로 사망하지 않는 한 아픔 없는 완치는 없는 것 같다.
40대에 상처하고 망자와의 약속을 지켜 재혼도 하지 않고 불교 서적 탐구와 깊은 사색으로 초연의 삶을 살고 있는 80대 사촌오빠의 말씀이 무척 와닿았다. 생로병사의 인생. 우리들 모두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 그 전에 거치게 마련인 병. 병으로 아픈 것이 당연하다. 불가항력의 인간 조건을 어찌하랴.
언제쯤 퇴원하나? 담즙 주머니를 달고 정상인 생활이 가능한가? 여행은 가능할까? 앞으로 얼마나 사시나? 앞으로 병원엔 몇 번이나 실려갈까? 등등 3주간의 머리 속 맴돌이는 2주 넘게 돌아다녔을 모로코 여행에 못지 않게 나른하고 멍하게 했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을 쪽집게 과외선생처럼 의사가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었다. 상태를 잠시 보고 집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느니 옆에 붙어있는 것이 맘이 편했다. 무료할 시간들이 사명감 넘치는 시간이 되어 몸의 피로는 도리어 때때로 불면증의 약이 되었다.
나의 어떤 불평도 통과되고, 어떤 상황도 이해하여 나의 사정을 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모친은 말주변이 없다는 스스로의 평대로 입이 무거운 편이다. 그런 모친이 몇 년 전부터 너니까 말한다며 가슴에 담고 있던 본가의 자랑스럽지 못한 점, 신혼 초의 섭섭한 일, 등 속내 비밀을 털어놓았다. 아주 아주 잘 통하는 모친, 게다가 문제를 안 일으키는 모친이 부여하는 자유로 나는 더없이 편하고 행복했었다.
선친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아 후회한다는 모친의 말이 기억나서 들은 즉시 병의 상태, 시술의 필요성과 암의 가능성 등을 알렸다. 차분히 나는 이제 죽어도 좋고 여한이 없다고 했다. 수술을 전후하여 모친의 머리는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깊은 생각은 불가능한 듯 했다. 아프면 모든 생각이 정지된다. 미리미리 세세하게 다양한 경우의 죽음을 대비해야겠다.
시간이 약인지 수술 1주일 후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확신이 설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22일 출발을 강행할 수 없었다. 너무나 미미한 차도여서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만의 여행이었다면 일찍이 포기했었겠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지의 모로코인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치고 나서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퇴원 날이 가까운 어느 날 22일자 표를 또다시 벌금 물고 환불하고 28일 표를 다시 구입했다. 처음 표보다 50만원이상 차이가 났다.
해 본 적이 없지만, 증권을 한 기분이다. 돈 좀 벌자고 시작한 주식투자가 사고 팔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다 보니 총액에 재고할 만한 손실이 나버렸다. 싼 표를 사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그냥 낮은 이자율의 정기예금에 넣어 두듯 여행사에 맡겨 1년동안 유효한 출발 도착 변경이 가능한 표를 살 걸 그랬나 보다. 손해 본 금액으로 충분히 온전한 표를 구입했을 것 같다.
28일 간다고 확인 차 스카이프를 하려고 컴퓨터를 열어보니 친구가 스카이프 전화가 안 되어 보낸 글이 있었다. 이럴 수가! 이번에는 자기 부인이 폐렴으로 입원해 있단다. 퇴원 후 여행은 무리라 우리가 원한다면 자기만 같이 가겠다 한다. 참으로 예측 불가능한 인간사로고! 즉시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면 그 때 다시 정하자고 했다. 남편의 표를 또 벌칙금 빼고 환불 받도록 전화를 해야 하지만, 어쨌거나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볍고 여유로워진 마음이 더없이 평온하고 행복했다.
집에 가고 싶어 조바심하는 환자의 소원은 30센치 가량 짼 부분을 실로 꿰맸던 과거와는 달리 철찍개(호치키스)로 찍은 철사 침을 가위로 자른 후 이루어졌다. 응급실에 실려가던 날, 꽃을 좋아하는 모친과 올케가 돌보는 자그만 정원에 피기 시작하던 등꽃, 작약이 다 시든 후, 흰 장미와 붉은 장미, 군자란과 제라늄, 올해 처음으로 여주모양의 진주홍색 꽃봉오리가 줄기마다 매달린 선인장과 아직은 야들야들한 진초록의 무성한 나뭇잎들이 모친을 반긴지 1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서 오전 오후 모두 잠에 빠져버리는 모친의 기력이 소생된 듯했다. 퇴원한 첫 일요일에 모두 모여 퇴원 축하를 바비큐로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정원 나들이는 차츰차츰 규칙적으로 정신이 가장 맑아 보이는 오후 4시경에 우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행하여진다. 이른 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가득하고 환한 바깥세상. 아늑한 그늘의 보호 아래, 활기찬 수목들이 찬미하는 생명과 삶의 환희가 넘치는 대기 접촉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간에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순간들을, 온갖 아픔과 불편을 감내한 것은 차후 우리들을 위한 모친의 희생이라 하겠다. 영원한 이별이 머지않아 실재로 일어날 거라는 경각심에 화들짝 놀란 우리 모두는 최소한의 후회를 위하여 제각기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모시는 동생네의 수고를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나머지 우리는 번갈아 가며 모친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좋아하던 음식을 싸 들고 기쁨조의 격려 방문을 기꺼이 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효도를 만끽하라는 모친에게 주어진 희생의 대가라 하겠다. 아무쪼록 이대로 종착역까지 모친의 복이 지속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첫댓글 경위야 ~~~ 애썼네 ~~ ㅉㅉ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제 죽어도 좋고 여한이 없다고 하셨어 ? 설명 해드리면 오죽 잘 아셨겠어 ~
사실 어머니 인생은 아주 멋진 인생이야 ~ 여러가지를 많이 누리셨고 ~
친구 부인이 폐렴인것은 참 안되었지만 니가 맘이 좀 편해졌겠어.
나중에 건강되찾고 서로 상황이 좋을때 모로코는 얼마든지 갈수 있으니까 ~
경위야...어머니가 속히 건강회복하시고 모든 가족이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
육신의 여행이 영의 여행으로 변신했네...ㅎㅎ 인생 여행에서 배울 것이 더 많아..
함께 있을 때 맘껏 사랑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거 같아..
이런 일을 통해서 너의 가족간의 사랑이 더 두터워지리라 확신한다...힘내라 화이팅!
사랑이 최고 치료제야...자녀들의 사랑약으로 어머니가 더 건강해 지실거야...
이 좋은글을 길어서 못 읽고, 다시 들어와서 읽어야 해
댓글 보니까
어머님이 편찮으셨어?
경위야.. 비록 경제적 손실이 있고 또 몸이 아픈 일로 여행을 취소하게만 되었지만..어머님과
같이 있게 되어서 그 시간을 그 경비로 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오히려 잘 된거 같아..
첨에 읽으면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스페인 여행에 모로코를 끼려고 시작했던게..
이볼라이와 내란으로 가지 않는게 좋을거라는 권고로 가지 못한 곳을 경위가 가는구나하고
부럼움 반.. 그랬는데.. 나중엔 그다지 맘이 좋지는 않게 되었네..
어머님과 같이 지내는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란다.. 기도할게..
경위 , 착한딸은 달라도 많이 달라
형제들이 같이 도울수있는 상황이라서
ㅇㅁㄴ 힘드시나 복많으신 분이네
경위야.. 많이 놀랐겠네~ 그래도 회복되시어 아름다운 정원에서 온 가족들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서로 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진다~
난 어제 마침 '박창환 신부의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사목일기' 책을 읽어서 경위의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네.
첫 부분에 가기로 예정했던 도시들이 어쩜 내가 43년 전에 유학 끝내고 돌아오기 전에 갔던 4 도시들과 똑같지? 하며 흥미롭게 읽어 나갔는데... 맘고생 몸고생 하며 지나가버렸구나. 그렇지만 언제고 다시 갈 수 있으니까!
여행기 보다 더 맘에 닿게 네 이야기 읽었어. 가족애와 효도에 대해 또 건강에 대해 많이 생각나게 하네.
다시 들어와서, 다 읽었어.
에그~
그렇게 되었구나?
회복 하고 계시다니, 참 다행이다.
내일 일을 모르며, 이리 살고 있다는것이 다시금, 느껴지네.
힘내라, 정경위~~~~
아!!1 정말 아름다운 천국으로의 소풍을 앞두고 계신 어느 어르신네와 그의 자녀들의 완전한 돌봄을 보고있는것 같아
너무 너무 아름다웎다. 이렇게 해서 한 세상을 마감하게 해드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가시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위야, 너무 잘 했어. 이렇게 하다가 가시게 하면 아마 자식들도 후회가 하나도 없고 어머니도 웃으시며 행복하게 소푼 가실 수 있을것 같애. 그까짓 여행비 손실에 비할 바 아닌 큰 상급을 하나님이 주살것이다.
내가 배운 '웰 다잉'의 모범을 보여준것 같아 너무 놀랍다. 잘 했어.
경위가 인생을 어찌대하며 사는지가 역역해서 글이 참으로 가슴을 터칭한다.
삶속에 전개되는 희노애락을 상황마다 담담히 느끼며,자신과의 대화로 짚어가며
살아감에 진심으로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어제 답글 쓰러 들어와서는 열심히 방방마 자취 남기고는 그만~~ ㅎㅎㅎ
비일비재 하니까... 그러려니... 친구들 염려와 기도 덕에 모친 진도가 분명히 보여. 다음 주부터 거의 전처럼 될 것 같어.
모두들 고마워~~ 사는 동안 나쁜 일이 다 나쁘지만 않더라고 생각지 못한 좋은 점이 꼭 있는 것 같어. 이번 경우는 동생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어. ....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