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Belgium)
- 서유럽(베네룩스 3국) -
▶ 개관 : 공식명칭 - 벨기에 왕국 (The Kingdom Of Belgium)
위치 - 유럽 북서부
인구 - 약 1,132만명 (세계 77 위)
수도 - 브뤼셀 (한국과 -7시간 차)
면적 - 약 3만㎢ (한반도의 0.14 배)
기후 - 해양성 기후 (연중 흐리고 습함)
종족 - 플라망족(58%), 왈롱족(31%), 혼혈(11%)
언어 -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정부 - 입헌군주제 / 양원제 (국왕/총리)
종교 - 로마가톨릭(75%), 개신교(25%)
화폐 - 유로 (€)
▶ 역사 : 이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자취로 보아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세기부터 대부족을 이룬 겔트족과 게르만족
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이주해와 ‘벨그’라는 종족을 이루었다.
스페인·오스트리아·프랑스공화국 등에 합병되었다가, 1815년 빈 조약의 결과
로 네덜란드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1830년 벨기에 혁명이 일어나자, 1831년
7월 21일 레오폴드(Leopold) 1세를 국왕으로 하는 벨기에왕국을 세우면서 네덜
란드로부터 독립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5월 10일에 선전포고도 없이 독일군이 침공하여
5월 28일 레오폴드 3세는 독일에 항복하고 영국에 망명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1944년 9월 독일의 항복으로 레오폴드왕은 스위스로 망명하고, 왕제 카
럴(Karel,Ch.)이 1944년 9월 20일에 의회에서 통치자로 뽑혔다.
그 뒤 1950년 7월 20일 레오폴드왕은 귀국하게 되지만 복위되지 못하고 세자
인 바우더붸인(Boudewijn, B.)이 1951년 7월 16일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1993년 8월 9일 알베르 2세 국왕이 즉위하였고, 2013년 7월 필리프 국왕이
즉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친서방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식민지 개척-벨기에는 1831년 국가로 인정받은 이후 해군을 창설하고, 식민
지 개척을 장려한다. 레오폴 2세 치하인 1878년에는 콩고 지역을 식민지로 삼
아 콩고 자유국(1908년부터 벨기에領 콩고)으로 만들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르완다와 부른디를 차지하여 벨기에령 르완다-우룬디를 만들어낸다.
벨기에領 콩고는 1960년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하고, 벨기에령 르완다-
우룬디는 1962년 7월 1일 르완다 공화국, 부룬디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했다.
고무 테러-레오폴 2세 지배 당시 벨기에領 콩고는 수 백만명의 목숨이 희생되
는 무력과 착취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집단 살해사건을 고무 테러라고
부른다. 1899년 조지프 콘래드는 자신의 저서 ‘암흑의 핵심’에서 처음으로 레
오폴 2세 지배 당시, 콩고의 참혹한 역사를 처음으로 고발했다.
이 시기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충격적인 책은 1999년 아담 호츠쉴드의
‘레오폴드왕의 유령:식민지 아프리카의 탐욕과 테러, 영웅주의의 이야기’였다.
호츠쉴드는 이 책에서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간 수천명과 함께 수많은 콩고 민
중들이 상아와 고무에 대해, 레오폴 2세가 정한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학
살 당했다고 서술했다. 상아와 고무는 다이아몬드와 구리, 아연이 발견되기 전
까지 콩고의 최대 자원이었다.
호츠쉴드는 이같은 학살로 인한 레오폴드왕 시대의 콩고인 사망자 수를 당시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되는 1000만명으로 추정했다. 또한 레오폴 2세는
콩고로부터 착취한 자원은, 레오폴 2세로 하여금 궁전과 기념비, 박물관을 짓
고, 어린 딸에게 호화스런 옷과 빌라를 사줄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르완다 학살의 뿌리, 벨기에의 식민통치-1916년 벨기에가 제1차 세계대전
에서 패전한 독일을 대신하여 르완다를 지배하게 되었고, 투치족에 대한 차별
정책을 쓰면서, 종족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벨기에는 투치족 출신 왕들을
내세워 다스렸으나, 벨기에가 물러간 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으로 르완다
내전이 시작되었다.
르완다 내전이란, 1959년에서 1996년까지 아프리카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벌
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내전으로, 르완다 사태라고도 불린다. 수십 년간
의 끔찍한 학살과 질병, 기아 등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나치 독일의 지배-벨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국토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라이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을 당해 지배를 받은 경
험이 있다. 루뱅에서는 독일군이 자행한 학살로 많은 시민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하였다(벨기에 사람들은 이를 루뱅시 학살사건이라 하여 추념하며, 루뱅에서
는 지금도 독일 국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부흥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나라로, 1920년에는 안트베르펜에서 올림
픽이 개최되기도 했다.
연립정부-벨기에는 1993년에 연방 국가로 탈바꿈했으나, 최근 북부와 남부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였다. 국왕의 중재아래 2008년 3월에 연립 정부가 구성
되었다. 또한 벨기에는 1993년 11월 1일 유럽연합이 탄생되면서 유럽연합의
본부가 설치된 나라이기도 하다.
▶ 경제 : 산업과 경제가 일찍부터 발달된 나라로, 플란더런 지방은 중세 이래로 모직물
공업이 대단히 번창한 곳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졌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풍부한 석탄을 바탕으
로 하여 1950년대 초까지는 철강공업·금속공업·유리공업·섬유공업이 경제의 주
축이었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부족하여 기본적으로 가공무역과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동구권 및 아프리카 지역과의 중계무역이 발달되어 있
다. 한편, 플란더런지방을 비롯한 평야지대에서는 맥류·사탕무·감자·야채·목초
등을 재배하고 낙농업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이 나라는, 전체 수출의 65% 이상을 인접 독일·네덜란
드·프랑스 등에 의존하고 있다.
▶ 여행 정보 : 치안상태-유의 / 여행경보-여행자제(브뤼셀 여행유의)
긴급연락처 : 대사관 (32-02)675-5777
팁 문화 없음 / 무사증 90일 체류
전압 : 220V 콘센트 3구 220 230 / 240V 콘센트 2구
▶ 대한 관계 : 우리나라가 벨기에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대한제국 당시 한·백
수호통상조약으로, 이 조약은 1901년 3월 23일 대한제국의 외무대신 박제순
(朴齊純)과 벨기에왕국 특명전권대신 방카르트(Vincart, L.)에 의해 조인되었다.
광복 후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첫 번째로 우리 정부
를 승인한 국가이며,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그 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계속적으로 우리 나라의 입장을 지지해준 전통적 우방국이다.
1965년 5월 2일 대사급 외교관계 체결에 합의한 후, 1965년 11월 1일 주 벨기
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여 2006년 현재 지속되고 있으며, 벨기에 측은 1970년
2월 24일 주한 초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벨기에 수출액은 20억 2300만 달러, 수입액은 14억
31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정밀화학원료·합성수지·의약품·전동기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08명의 벨기에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LG전자 등이
진출해 있고, 162명의 한국민 교민과 521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2001년 1월 23일 외교관계 수립하고, 2006년 현재 주 영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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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속 작은 거인,베네룩스3국 2부-벨기에_#001 - 길이: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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