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단의 막내 아들 ‘요밥’과 ‘욥’은 같은 사람인가?
Are Job and Jobab the Same Person?
유석근 목사
(브니엘교회 담임 / 알이랑코리아 대표 / 겟세마네신학교 교수)
창 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창세기 10장 26~29절에는 욕단과 그의 13아들들의 이름이 나온다. 욕단은 벨렉의 형제였고. 벨렉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창 10:25). 벨렉이라는 이름은 ‘나눔’이란 뜻이다. 이는 지리적으로 대륙이 나뉘었다는 의미라기보다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벨렉의 시대에 바벨탑 건설이 있었고, 이 때에 인류는 달라진 언어를 따라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창 11:1~9). 노아의 6대손 벨렉에 관해 창세기 10:25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에벨에게 두 아들들이 낳아졌다. 한 이름은 벨렉인데 그의 날들에(in his days) 그 땅이 나뉘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다.” (직역)
성경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은 예언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가령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허무하다)이나,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한 ‘에녹’(봉헌되었다)은 이름에서 그들의 운명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인명(人名)은 하나의 예언적 계시이다. 벨렉이라는 이름도 그러한 이름 중의 하나다. 그의 이름은 “나뉘다”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W.B.C(Word Biblical Commentary) 주석은 ‘벨렉’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벨렉은 ‘나누다’(גלפ-팔라그)라는 어근에서 온 것이다. 이 어원은 이 어휘에 보다 추상적인 의미(‘나눔’)를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처럼 이 이름도 예언적이며 벨렉의 생애에 일어날 중대한 사건을 예시한다.” (고든 웬함 지음, 박영호 옮김, WBC 성경주석 창세기․ 상, 서울: 솔로몬, 2001, p.423)
이는 벨렉이 언어 혼란으로 세상이 나뉠 때에 바벨론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벨은 첫아들을 낳고 이름을 나누다라는 의미를 가진 벨렉이라고 지었다. 그 까닭은 그의 때에(in his days) 세상이 나뉘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벨렉의 동생 욕단의 가계는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멀리 극동의 해 뜨는 땅, 즉 ‘밝달’(밝은 땅)로 이주하였다(양달=양지, 응달=음지, 빗달=비스듬한 땅). 그리하여 우리 밝달겨레(배달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욕단은 바벨탑 사건 이전에 동방으로 탈출했다. 욕단의 가계는 그 시대의 ‘남은 자’였다. 바벨론에 있었던 벨렉은 유대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6대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창 11:10~26).
1.
벨렉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지구의 대륙이 나뉘어진 것을 말할까? 아니면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을 말할까? 후자가 바른 해석이다. 창세기 11:1~9에 의하면 인류가 분산하고 흩어진 것은 바벨탑 사건 때문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창 10:25 그리고 에벨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날들에 땅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이름은 욕단이었다. (한국어권위역킹제임스성경)
And unto Eber were born two sons: the name of one was Peleg; for in his days was the earth divided; and his brother’s name was Joktan. (KJV)
창세기 10:25에서 “땅이 나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 위의 사람들을 나누셨다는 말이다(창 11:8). 이것이 이 구절에 대한 옳은 설명이요, 성경적인 해석이다. 신명기 32:8,9을 보라. 그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나누셨다고 말씀하신다.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창세기 11:1의 ‘온 땅’이라는 말을 물리적인 지표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온 땅’이라는 말은 땅 위의 거주민들을 말한다.
창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온 땅의 언어’라는 것은 온 땅 사람들의 언어를 가리킨다. 땅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온 땅’이라는 말은 창세기 10:25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물리적인 지표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거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대륙이동설’의 근거로 이용하는 것은 오류다.
2.
욕단의 열세 번째 아들은 ‘요밥’이다. 욥기는 창세기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책이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책이 욥기이다. 그렇다면 욥은 ‘요밥’인가?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증거는 그렇다고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300년 전의 고대 알렉산드리아 70인경(LXX)에는 후대의 번역자들이 빠뜨린 욥기의 한 부분이 있다.
70인 역본에 따르면 욥은 70세에 고난을 당한 후 170년을 더 살고, 4대 손을 보고 248세(어떤 사본을 240세)에 죽었다. 욥이 248년을 살았다고 알려 준다. 성경에는 다른 욥(Jobs)과 요밥(Jobabs)이 언급되어 있지만, 대략 벨렉 시대 또는 그보다 조금 뒤에 살았던 사람만이 이 시대를 예상할 수 있다.
욥의 자녀들은 10명이었고 자녀들이 어느 정도 컸다고 보면(1:2) 30세쯤 결혼하여 약 30-40년이 지났다고 볼 수 있으며, 고난 후 140년을 더 살았으니(42:16) 200세는 넘었을 것이다. 헬라어 70인역은 “170년을 더 살았으며 그의 연령이 240세(어떤 사본은 248세)이었더라”고 되어 있다.
70인역(LXX)에는 “그의 시련이 있은 후에 170년을 살았다. 따라서 그는 모두 240(또는 248)년을 향유하였다”로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욥이 고난 당할 때의 나이는 70세로 추정할 수 있다(Rawlinxon, Pope).
벨렉 이전에(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에) 기대 연령은 400세 또는 450세에 가까웠다. 벨렉의 시대 이후, 우리는 400년 이상(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벨렉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서 239세의 벨렉, 239세의 르우, 239세의 스룩,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148세, 아브라함이 175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최대 기대 수명인 모세의 120세로 상당히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빌닷이 욥기 8:8~9에서 이러한 수명에 대해 말한 것을 읽어 보라.
욥 8:8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
[한국어권위역킹제임스성경]
욥 8:8 그러므로, 원하건대, 너는 이전 시대 사람들에게 물으며, 네 자신을 준비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탐구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라. 9 (왜냐하면 우리는 겨우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며, 또 땅 위에 있는 우리의 날들은 그림자이므로,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0 그들이 너를 가르치고, 네게 말하며, 그들의 마음에서 나온 말들을 말하지 않겠느냐?
다른 말로 하자면, 많은 노인들이 여전히 매우 긴 수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빌닷은 그들 자신의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욥기는 욥이 우스 땅에 살았다고 알려 준다. 창세기 10:23에 우스가 언급되어 있다. 그는 아람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요밥의 큰 삼촌이었다.
창 10: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우스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스’는 셈의 다섯째 아들 아람이 낳은 장자의 이름이다(창 10:22, 23). 그런즉 욥은 셈의 손자 우스 족속 영토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로 보건데 욥 또한 셈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스의 위치가 ‘동방’이었다는 사실이 뒷받침해 준다(욥 1:3). 야벳의 영토는 서북쪽, 함의 영토는 남방이었다.
헬라어 70인역 후기(後記)는, 우스 땅이 에돔과 아라비아 국경 Ausis땅이며, 욥은 에서의 아들 자레의 아들, 즉 아브라함의 5대손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오기(誤記)로 간주되어야 한다. 70인역은 히브리어의 완전한 번역이 아니라 의역(意譯)이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약 400행이 더 짧은 이유다.
42:17 And Job died, an old man and full of days: and it is written that he will rise again with those whom the Lord raises up. This man is described in the Syriac book [as] living in the land of Ausis, on the borders of Edom{gr.Idumea} and Arabia: and his name before was Jobab; and having taken an Arabian wife, he begot a son whose name was Ennon. And he himself was the son of his father Zerah{gr.Zare}, one of the sons of Esau, and of his mother Bosorrha, so that he was the fifth from Abraham{gr.Abraam}. And these were the kings who reigned in Edom, which country he also ruled over: first, Bela{gr.Balac}, the son of Beor, and the name of his city was Dennaba: but after Bela{gr.Balac}, Jobab, who is called Job, and after him Husham{gr.Asom}, who was governor out of the country of Teman{gr.Thaeman}: and after him Hadad{gr.Adad}, the son of Barad, who destroyed Midian{gr.Madiam} in the plain of Moab; and the name of his city was Gethaim. And [his] friends who came to him were Eliphaz, of the children of Esau, king of the Temanites{gr.Thaemanites}, Baldad sovereign of the Sauchaeans, Sophar king of the Minaeans. (LXX)
그러면 욥(Job)은 누구일까? 셈의 현손 욕단의 막내 아들 ‘요밥’(Jobab)과 동일인물이다(창 10:21~30). ‘Job’(욥)이라는 이름은 ‘Jobab’(요밥)이라는 이름의 약어일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어 원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LXX)의 후기 42장 17절을 보면 "Ιωβαβ ὁ καλούμενος Ιωβ", ‘욥이라 불리우는 요밥’이란 구절을 볼 수 있다.
강해설교로 명성 있는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도 그가 쓴 창세기 강해서 「우주창조」에서 욕단의 막내 아들 요밥과 동방의 우스 땅에 살던 욥이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요밥이란 인물을 살펴보면 그는 아마 욥기서의 ‘욥’이 아닌가 하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욥기가 모세 오경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 이 높다고 하면서 창세기 기록 이전에 이미 욥기가 쓰였다고 합니다. 사실 욥은 바벨탑 사건 이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 되겠습니다.” (척 스미스, 『우주창조』, 포도원, 1989, p.128)
욕단의 가계는 대홍수 후 극동에 정착했다(창 10:30). 그렇다면 요밥(Jobab) 곧 욥(Job)은 나중에 우스 땅, 곧 그의 큰 삼촌의 영토로 이주했을 것이다. 물론 그곳도 동방의 땅이었다.
3.
욥이라는 단어가 요밥의 축약 또는 별명이라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요밥과 욥의 철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욥이라는 단어는 욥기와 창세기 46:13, 에스겔 14:14, 20, 야고보서 5:11에 등장한다. 요밥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10:29에 나온다. 그리고 창 36:33, 34과 여호수아 11:1, 역대상 1:44, 45에 보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먼저 알렉산드리아 70인역 헬라어 번역판인 LXX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지적해 보자. 이 번역본은 기원전 280년경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는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의 번역은 고대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루어졌다.
위의 참조 성구에서 영어 단어 욥이 사용된 모든 경우에, 헬라어 단어 “Іωβ”(Iob)가 LXX에 나타난다. 영어판에 요밥이 나오는 모든 경우에, 헬라어 “Ιωβαβ”(Iobab)가 LXX에 사용되었다. 이 구절들을 번역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결과 두 이름의 어근은 그리스어로 "Іωβ"(Iob)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LXX는 욥이라는 단어가 전체 이름 Jobab의 축약 또는 별명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만일 LXX의 유대인 번역자들이 고대 히브리어 본문에서 뭔가 다른 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두 이름은 이 그리스어 역본에서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이것은 마소라(Masoretic Text, MT)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본문으로 이어지는데, 이 본문은 서기 100년경 얌니아 공의회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영어로 번역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텍스트이다. 이 역본에서 욥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יו ב )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Yod Vav Bet이 "Yowb"로 발음된다. 이것은 또한 참조 번호 3102의 Strong's Concordance에 나타나는 방식이다. 이 콘코던스는 이 단어가 Jobab 철자 (יובב) 또는 Yod Vav Bet Bet이 "Yowbab"으로 발음되는 Reference 3103의 한 형태임을 언급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확실히 Yod Vav Bet이므로 Jobab과 Job이 연관된 단어라는 데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욥의 다른 형태는 마소라 본문에서 (איו ב) 또는 Aleph Yod Vav Bet이 Strong의 참조 번호 347에서와 같이 "Iyowb"로 발음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다시 한 번 Yod Vav Bet 또는 "Yowb"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밥과 욥이라는 이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 번역자인 버나드 노스럽(Bernard Northrup) 박사는 창세기 10:29에 나오는 요밥이 욥기에 나오는 요밥과 정확히 동일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였다. 우리는 언어학적, 과학적 이유로 그 평가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4.
LXX에는 욥을 에돔 사람으로 묘사한 추가 섹션이 있다. 마소라에서 제외된 욥기의 결말이 70인역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욥이 요밥이었고 욥이 248세까지 살았다는 논의에 더하여, 욥이 에돔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추가 부분이 있다. 포스트 스크립트로 알려진 추가 구절에 있는 내용이다. 그들은 창 36:33-34의 요밥을 욥기의 요밥으로 삼았다. 아래서 자세히 고찰할 것인데, 그것은 잘못된 요밥(Jobab)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창 10:29의 요밥을 선택해야 옳았다.
이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는 먼저 LXX가 42장 16절과 17절로 끝나는데, 여기서 우리는 욥의 나이가 주어진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70인역의 일부이다. 그러나 번호가 매겨지지 않은 다소 긴 단락이 있는데, 17절의 끝부분에 따로 나타난다. 이것은 추가된 것이며, 우리는 이 추가 구절이 어디에서 왔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추가 단락의 서두에는 “이 사람[욥]은 시리아어 책[역본]에서 이두메아와 아라비아의 경계에 있는 아우시스(Ausis) 땅에 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과 이어지는 모든 것은 분명히 시리아어 버전의 욥기에 대한 사설의 논평이다.
구약성경의 첫 번째 시리아어 역본은 서기 180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마소라 본문이 시작된 서기 100년 얌니아 공의회 이후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원전 280년경이나 그보다 450년 전에 나온 알렉산드리아 70인역 본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이 포함은 후기 70인역에서 유래한다. 「칠십인역」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LXX를 지정하는 이유이다. 서기 180년은 오리게네스가 서기 100년의 마소라 본문과 일치하는 여러 그리스어 역본을 만들었을 때였다.
이 가짜 댓글을 다른 방법으로 제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들은 창세기 36:33-34의 요밥을 에서의 가계에서 취하여 그를 욥기의 요밥으로 삼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요밥’과 ‘욥’이라는 이름이 관련 언어에서 같은 이름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요밥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창세기 10:29에 나오는 요밥 곧 욕단의 막내 아들 요밥을 선택했어야 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야곱과 에서의 시대에 성경에 따라 도달한 최대 연령이 야곱의 경우 147세, 아브라함의 경우 175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LXX는 욥이 248세, 즉 에서의 시대에 대한 성경적 기준보다 약 100년 더 긴 나이로 죽었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벨렉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사람들이 일반적인 수명으로 약 250년을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에서의 후손과 벨렉의 조카 중 요밥을 선택하는 것, 어느 것이 타당한 것인가는 그들의 나이를 수학적으로 고려하면 분명해진다. 욥은 에서의 후손이 아니라 욕단의 아들이었다. 곧 욕단의 막내아들 요밥이다.
욥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느 그룹(창세기 10장 또는 36장)에 속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야곱과 에서의 시대에 성경에 따르면 도달한 최대 연령은 이스마엘이 137세, 야곱이 147세, 아브라함이 175세였다. 이 시대는 일치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LXX는 욥이 248세, 즉 에서의 시대보다 약 100년 더 많이 살았다. 그렇다면 요밥은 결코 에서의 후손이 될 수 없다. 그는 명백히 벨렉의 조카 즉 욕단의 막내 아들 요밥이다.
타당한 고려 사항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또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에서라는 가계의 유형이다. 이 노선은 종종 주님의 백성과 그분의 길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예: 에돔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 오바댜[Obadiah]나 헤롯[Herod] 왕의 경우).
만일 욥이 에서의 가계 출신이었다면, 그는 이 그림에서 성경적으로 예외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만일 욥기가 욕단의 계통에서 나왔다면, 성경의 모형 가르침이 보존된다. 이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5.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다(욥 1:1, 3). 욥이 요밥과 동일인물이라면, 욥의 그 위대한 신앙은 분명히 그의 아버지 욕단으로부터 전수되었을 것이다. 우리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욕단의 직계 후손이다.
이것은 물증도 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다. 이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이었다. 헌데 고인돌은 유럽 전역에 걸쳐 수 천기 정도 밖에 없는데 견주어 한반도 전역에는 총 4만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다. 단일 면적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가히 한국을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아시아에서는 지나 요령지방(고조선 영역)에 326기, 일본 규수(九州) 지방(한반도 도래인 개척 지역)에 600여기가 있다.
▲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이 고인돌은 크기뿐만 아니라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고인돌을 대표한다.
강화에는 약 120기에 달하는 많은 고인돌이 있다.
게다가 제단의 형태도 아주 또렷한 우리나라 고인돌은 다른 나라 것에 비해 모양이 월등히 아름답다. 그리하여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우리나라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우리나라 고인돌의 보존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한국인은 이 놀라운 우리 문화유산에 마땅히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옛날에 하느님께 경배하기 위해 제단으로 축조했던 고인돌은 이제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보존해야 할 인류 문화유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고인돌의 3/4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다신 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동방의 한국인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 정성을 다해 섬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그랬는가? 우리 조상은 대홍수 후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을 갖고 동방으로 천동한 셈족의 남은 자 욕단 계열 천손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신을 숭배하는 제사민족이었다. 그래서 돌제단 고인돌이 이 땅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인돌 유적은 한민족이 욕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외증(外證)이다. 왜 한반도에는 전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성경 안에 있다.
상세한 것은 2022년 출간된 아래 책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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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라 성경(MT)이란 무엇인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 자음(ㄱㄴㄷㄹ)만이 아니라 모음(ㅏㅑㅓㅕ)도 만드신 것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만일 한글에 모음이 없이 자음만 있다면 ㄱㄹㅇㄹ ㅇㄹㄱㄱㄱ ㄷㄷㄴㅎ ㅇㄹㅇㄹ ㄱㅅㅇㄷ. (글을 읽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구약이 기록된 히브리 문자는 원래 자음으로만 되어있다. 모음이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 특별히 교육받은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은 자음으로만 쓰여진 히브리 성경을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주전 722년), 남유다왕국도 몰락하고 (주전 586/7년),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지속되어 내려오는 동안 히브리어는 사어(死語)가 되었고 서기관이나 제사장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자음으로만 쓰여진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일반 유대인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오직 극소수의 유대교 랍비, 학자들만이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교 학자들 사이에서는 모음자를 고안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기 500년대 들어와서 모음자를 고안해내려는 운동이 바벨론 지역과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바벨론 지역에서 고안해낸 모음자 체계는 너무 복잡하고 배우기가 어려워 유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디베리아에서 고안해낸 모음체계는 간편하고 배우기가 쉬워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표준적인 히브리어 모음체계로 정착되었다. ‘디베리아 모음체계’는 점(點)의 형태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은 ‘이,’ ●●는 ‘에’ 하는 식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모음을 ‘모음점’(vowel point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음점’이 첨가된 히브리 성경을 ‘마소라 성경’(Masoretic Text, 약어 MT)이라고 부른다.
갈릴리 호숫가에 세워진 도시 ‘디베리아’는 역사적으로 중세 시대 이후부터 유대인 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던 곳으로 많은 유대인 학자들을 배출했다. ‘디베리아’에서 히브리어 모음체계를 고안해낸 작업의 중심에는 ‘아셀’(Asher) 가문이 있었다. 이 유대인 학자 가문은 5대에 걸쳐 내려오면서 히브리어 모음자를 고안해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5대째 와서 모음자 체계를 완성시켰고, 이렇게 완성된 모음자를 첨가해 히브리 성경의 결정판 필사본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를 이은 성업을 완성시킨 인물은 ‘아론 벤 아셀’(Aaron ben Asher)이었다. 그가 완성한 모음이 첨가된 히브리 원문 성경(즉 MT)이 유명한 ‘알레포 사본’(Codex Aleppo)이다.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3대 MT는 알레포 사본, 레닌그라드 사본, 그리고 최근 경매 시장에 나온 ‘사순 사본’이다. 이 셋 중에 사본의 내용이 학계와 세상에 공개되고 활용되고 있는 것은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이 사본의 연대는 서기 1008년에 필사된 것으로, 구약성경 39권 모두가 빠짐없이 들어있는 MT사본이다. 이 사본은 오늘날 구약성경을 원문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본으로 사용되는 귀중한 사본이다. 1859년 제정 러시아가 당시로서는 거금 2500루블에 구입해서 피터스부르그에 있는 도서관에 보관했다. 러시아가 공산화된 후 이 도시 이름이 레닌그라드로 바뀌었고, 지금은 본래 지명을 회복했지만 이 사본을 계속 ‘레닌그라드 사본’이라고 부르고 있다.
- 박준서 교수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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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셈의장막재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