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음은?
2001년 경북대 국악학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악동(樂童)을 모태로 발전해왔다. 2003년 졸업 후 진로 모색 중 새로운 장르의 창작 국악의 신지평을 열어간다는 의미로 2003년 9월 여음을 창단. 매주 수요일 경북대 동문 근처에 있는 사무실 겸 연습실에 모인다. 이들은 그동안 터키 이스탄불 공연을 비롯해 대구컬러풀 페스티벌, 공군사관학교, 적천사 산사음악회, 2005년 서울 대학로에서 노래 판 굿 꽃다지 '사인사색', 지난해 8월엔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기획공연 '여음과 함께 하는 국악여행' 등 100회 이상 크고작은 공연을 펼쳤다. 올해 경북도로부터 지원받은 무대기금을 갖고 모든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기획공연을 연말에 올릴 예정이다. www.cyworld.yeuum.com
♬ 비쓸락 무대에서 만난 여음
국악도 꽤 진화했다.
국악 방송만 해도 그렇다. "이거 국악 프로 맞아?"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던하다. 청승과 애조보다 화사·발랄·산뜻함이 주종이다. 예전 국악은 '무침', 요즘은 '샐러드'같다. 퓨전 국악 붐 탓이다.
재즈는 물론 힙합, 랩, R& B의 기운도 가미한다. 정통 판소리 율조에 현세태를 반영한 가사를 집어넣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같은 내용을 씩씩한 판소리 가락인 '우조(羽調)'식으로 풀어내는 꼴이다. 그래서 '퓨전 판소리'가 랩처럼 젊은이들에게 어필된다. 개량 가야금과 해금은 8음계를 오르내리면서 트로트는 물론 팝송을 거쳐 뉴에이지 음악까지 끌고온다. 기타리스트 김수철과 김도균은 기타로 산조를 연주한다. 어렸을 때 '예솔이'로 유명했고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국악뮤지컬 '타루'를 만든 이자람은 '국악계의 보아'로 신세대 국악 스타로 급부상했다.
대구에도 퓨전 국악 기류가 여러 가닥 감지된다. 그중 하나가 창작국악합주단 여음(餘音·대표 최희정).
여음의 색깔은 어떨까. 지난 14일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비슬문화촌에서 열린 비쓸락 7월 정기 공연에 출연한 멤버들을 공연 직전에 만나봤다. 야외 무대를 굽어보고 있는 오송정(五松亭) 아래서 컬러풀하게 포즈를 취한 멤버의 미소는 상쾌하고 웃음소리는 청명했다.
여음이 오프닝 무대를 연다.
선보인 건 모두 5곡, 마지막 곡이 가장 인상적이다. 폴카 리듬이 짙은 비틀스의 명곡 '오블라디 오블라다', 갓 배위로 잡혀 올라온 생선처럼 움직이는 리듬, 나이든 관객은 평소 생각하던 국악 리듬이 아니라서 그런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객석은 이내 증기기관차처럼 칙칙폭폭거리는 리듬에 쉽게 올라탄다. 농악대 뒤를 따르던 촌로들의 깨끼춤이 아니라 S라인 무희의 탄력넘치는 쿨한 어깨춤사위가 객석 곳곳에서 피어났다. 베이스 기타로 변한 가야금과 거문고, 드럼처럼 포인트를 찍는 피리, 리드 기타로 변한 해금. 꼭 4인조 여성 록밴드 같다.
퓨전에 무게를 두다보니 멤버들은 복장에도 무척 신경쓴다. 요즘 한복보다 양장을 즐긴다. 양장을 입었을 때 연주력과 객석 반응이 더 좋단다. 때론 찢어진 청바지, 청 미니스커트도 마다 않는다. 자연 화장도 짙다. 최 대표는 "예전엔 한복 입고 민요부르면 할머니 부대가 덩실 춤을 췄다. 그런데 이젠 그런 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퓨전 국악에 잘 적응해 놀랄 때가 많다"고 달라진 객석에 대해 얘기했다. 작년엔 록 공연장에서나 볼 법한 스탠딩 점핑 장면도 나와 여음을 흥분시키기도 했다.
♪ 11명의 멤버…그녀들은 누구?
단원은 모두 11명. 송예진만 빼고 모두 경북대 국악과 출신이고 연령은 거의 20대 중후반. 3명은 기혼, 나머지는 미혼. 다들 국내의 유수 국악상을 받고, 각종 기관단체 초청 공연, 지역의 국악단과 협연 및 단원, 강사 등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재학시절엔 구조상 정통 국악에 푹 절어 살았다. 졸업과 함께 밀어닥친 퓨전 신드롬에 편승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박미라(31)= 작곡가 겸 신시사이저 주자. 2001년 실내악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수연장별곡' 등 다양한 장르의 퓨전 국악곡을 작곡한다. 여음의 맏언니로 단원들의 자잘한 갈등을 잘 챙겨준다.
△양홍지(28)= 거문고 주자. 국악학과 악장을 역임했고 현재 단국대 대학원 예술학부 공연예술과정에 재학중. 남성적 거문고를 만져서 그런지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고 듬직하게 행동한다.
△최희정(28)= 피리 주자. 대표답게 시원하게 단원들의 뒤를 잘 챙긴다. 수더분한 성격, 여음에 청춘을 다 걸었다. 결혼한 직후 인터뷰 관련 자료를 챙기기 위해 아이를 친정에 맡길 정도로 프로 근성이 돋보임.
△고정숙(27)= 소리꾼. 주운숙 문하에서 심청가, 유영애 문하에서 춘향가를 사사. 2003년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단원들은 그녀의 2% 부족한 미소를 사랑한다. 판소리와 결별하고 싶었던 사춘기를 극복, 이젠 판소리를 업고 다닌다.
△박수경(26)= 소리꾼. 이명희 문하에서 흥보·춘향가, 강정자 문하에서 적벽가를 사사. 재치만점 만담꾼이다. 쪽진 스타일의 머리, 끼 넘치는 눈빛은 영화배우 뺨칠 정도.
△오은비(26)= 소리꾼. 민요를 맛깔나게 잘 불러 단원들로부터 '대구 민요계의 얼짱보아' '한복미인'으로 불린다. 첨단과 복고를 아우를 줄 안다.
△최영란(25)= 가야금(25현) 주자. 현 가야금 앙상블 '로사' 단원이기도 한 그녀는 평상시는 고요하나 연주에 임할 땐 결사적이다. 개량 가야금에 어울리는 중국 타현악기 양금을 구하러 중국 베이징까지 단번에 날아갈 정도.
△오미진(27)= 해금 주자. 현재 경북국악관현악단과 이현의 농 단원이다. 단원 중 가장 키가 큰 미인. 한복보다 민소매에 배꼽티가 잘 어울리는 서구적 몸매를 가졌다.
△이태은(27)= 독일,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공연한 해금 주자. 예술가로 성공하기 위해 대구 생활을 접고 상경, 현재 중앙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활동.
△송예진= 현재 경북대 음악학과 작곡과 3학년에 재학중. 단원 중 막내로 유일하게 정통 클래식 전공.
△조성욱= 현재 경북대 국악학과 3학년에 재학중. 타악 주자로 여음의 청일점.
♩ 정통을 거부한…그래서 더 튄다?
여음은 정통 국악을 곧이곧대로 연주하는 걸 거부한다.
"정통 국악도 그것대로 소중하지만 일단 국악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객석이 원하는 걸 먼저 챙겨줘야 된다"는 게 이들의 국악 살리기 전략의 핵심이다.
최 대표는 "정통 국악을 바탕으로 현시대 흐름에 발맞춰 시대와 삶의 희로애락을 풀어내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세상이 변하면 국악도 변해야 되고 따라서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면 존립 기반을 잃게 된다"고 역설했다.
여음의 튀는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은 '각시방에 불을 켜라'. 이 곡이 나오면 객석은 박장대소로 뒤집어진다. '쿨(Cool) 판소리'랄까, 서편제처럼 비련스럽지 않다. 젊은이들에겐 딱 간이 맞다. 이 곡은 신민요인 '각시풀 타령'을 여음 스타일로 편곡한 것. 랩과 힙합 리듬을 가미했다.
고정숙은 특히 창작 판소리에 올인한다. 그녀의 주 레퍼토리는 '머피의 법칙'을 소재로 한 7분짜리 해학적 판소리.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안풀려', 그녀의 좌충우돌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청바지에 일상복 차림, 합죽선도 안 쥔다. 박수경과 함께 만든 '솔로의 기도'는 연극 기법이 가미돼 있으며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기가 좋다.
박미라는 황순원의 유명 단편소설 '소나기'를 소재로 만든 '비와 소년'을 깜짝 프러포즈 타임의 배경음악으로 잘 사용한다.
이밖에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딱인 '두 사람'(송예진 곡),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언덕에 앉은 기분을 주는 '바람이 부는 자리'(이제경 곡), 대중가요 '백만송이 장미'는 재즈풍의 반주 위에 가야금·거문고의 리듬이 합쳐져 이국적 기분을 들게 편곡했다. 또한 귀에 익은 영화 스팅의 주제곡,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 탱고 리듬 가득한 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곡은 물론 세월이 가면,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 게요, 사랑하기 때문에 등 대중가요도 새롭게 메이크업했다.
♬ 만삭의 몸으로도 무대에 올라
초창기 단원 중 3명(최 대표·박미라·김유란)이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자신들의 피가 국악과 동고동락해왔기 때문에 온전히 결혼에만 자신의 모든 걸 다 주고 싶지 않아한다.
최 대표의 경우 여음에 가장 애착을 보인다. 2005년 창단 연주회 때 만삭의 몸으로도 무대에 올라 주위를 감동시켰다. 그 덕분인지 아이를 순산했다. 하지만 걸림돌은 육아, 친정에서 그녀의 프로 기질을 잘 알기에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한창일 땐 친정 부모가 아이를 챙겨준다. 현재 여음은 육아를 위해서 1년간 육아휴직 제도를 마련했다. 유란씨는 가족의 삶에 더 치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