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6일 (금) 촬영.
인천에서 8시 40분에 출발하는 청주행 버스를 타고,
정확히 2시간 후인 10시 40분에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본 길 건너편 풍경.
관광안내소에서 한국공예관으로 갈 수 있는 버스를 문의하니, 한국공예관은 문화제조창에 있으니,
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이곳 버스정류장에서, 101번, 105번, 105-1번 747번 등의 버스를 타고
문화제조창, 시청 임시청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침 도착한 747번 버스를 탔다. 인천이나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내릴 때처럼, 내릴 때가 되어서
편한 대로 앞쪽 검표기에 카드를 댔더니 기사님이 두 번 결재되었다며, 1,600원을 다시 내주며 뒷문에서
다시 찍으라고 했다. 카드를 다시 찍으니 3,600원이 결재되었다. 귀찮았을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1,600원을 반환해 준 기사님에게 감동 먹었다. 청주의 첫인상은 GOOD,
문화제조창, 시청 임시청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정류장 뒤에 바로 문화제조창이 있다.
문화제조창으로 들어가는 길.
문화 제조창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공예관 등이 함께 있다.
예전에 담배를 만들던 공장을 리모델링하여 현재의 문화 제조창을 만들었다고 했다.
앞쪽에 보이는 건물이 창고형 국립 미술관 청주이고, 좌측의 건물이 청주시청 제2임시청사 건물인데,
임시청사 건물 2,3,4 층에 한국공예관과 갤러리 등이 있다.
참, 내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카페 서예 동호회에서 활동하시는 '늘 평화'님이 이곳에서
"묵향에 담긴 사직동 '국보로'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해서 작품들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서 본 1층의 모습이다. 리모델링한 건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멋졌다.
중간중간에 있는 기둥들만이 옛 건물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줄 뿐이다.
건물이 너무 커서 이 표식을 보고도 전시실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ㅎㅎㅎ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지나서 늘 평화(이영미) 님의 전시실이 있었다.
전시실 모습.
가슴으로 추억하고 열정으로 남기는 동네 기록.
근원 이영미의 "묵향으로 꽃피우는 사직동 국보로 이야기" 전시에 부쳐
태양의 계절 8월
온 세상의ㅣ 생물들이 태양 빛에 맞춰 생명의 춤을 춥니다.
이렇게 강렬하고 아름다운 계절에, 근원 이영미 작가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작가가 살고 있는 동네인 청주시 사직동 '국보로'의 모습을 글과 먹그림, 글씨로 풀어냈습니다.
'국보로'는 옛날 국보제약이 있었던 지역으로 제약회사가 떠났는데도 여전히 그 이름으로 친숙하게 불리는
삶터입니다. 작가는 이곳에 살면서 눈에 담았던 풍경과 가슴에 남은 추억,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이영미 작가는 마음의 눈이 밝은 예술인입니다.
그의 눈을 거치면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들에 이야기가 생기고,
오래된 간판, 풀꽃 하나에서도 지역의 문화를 찾아냅니다.
이영미 작가는 가슴이 따뜻한 예술인입니다.
일생을 교육으로 봉사로 다져온 그의 가슴을 거치면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랑의 꽃이 피고, 생명의 존귀함이 살아납니다.
지난해 인사동 전시에 이어 13번째 여는 이 작가의 개인전을 축하하며, 모쪼록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기록한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움과 감동을 주는 작품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8월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입구에 있는 방명록에는 하루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지금부터 작품 감상을...
작품 사진들은 원본과 느낌이 다를 수가 있다. 색감도 다르고 원본과 크기도 다르다. 감안하길.
작품에 설명된 글과 시들은 모두 이영미 작가의 글이다. 그는 시, 서, 화 작가이다.
국보로 이야기 팻말 - 제호 글씨 이영미.
국보로는 청주가 고향인 국보 제약 창립자ㅣ 안석원(安錫源) 님께서 1968년 봄 서울 마장동에서 의약품,
살서제(쥐약) 등을 생산하던 공장을 이곳 사직동 허허벌판으로 옮겨와 지역 최초의 제약회사로
운영하였으며,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국보 제약 골목이라 부르다가 국보로로 유래되었고,
이 마을에서 청주의 향토기업으로 성장하던 국보 제약은 1983년 청주산업단지로 이전하였지만
현재도 모충로에서 사직동 변전소에 이르는 도로를 국보로라고 부르고 있음.
2010년 12월 24일 NEW 사직 2동 직능단체 일동.
국보로의 흔적 / 67 x 35cm,
언제부터인가 국보로는 충혼탑이 있는 사직동이어서 호국로라고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거리와 아파트와
부동산과 이용원과 전집 등 수십 년 된 노포들의 상호는 국보라는 표현이 많다.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 차츰
국보란 명칭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국보란 명칭이 사라져도 국보로의 가장 큰 흔적은 지금도
수십 년째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다. - 사직동에서 살았던 근원 쓰다 -
情 / 34 x 70cm.
삼십여 년 바라보니 없던 정도 생긴다. 허물고 다시 지어져도 골목을 비추는 달빛은 변함없을 것이다.
오래된 담장 안 빨랫줄에도 담겨 있는 정은 어쩌면 사랑보다 우리 삶에 친근하고 질긴 생명력의
근원일 것 같다. -근원-
사직 전통시장 / 330 x 125cm.
사직 전통시장 초입에는 할머니들의 좌판이 있다. 더우나 추우나 입구를 지키는 좌판에는
채소와 과일 곡물만 있는 것이 아닌 건강한 정담과 삶의 희비와 인내가 들어있다. - 근원 -
도서관 가는 길 / 45 x 70cm.
중앙도서관 앞의 쌍용아파트에 십수 년 살면서 도서관을 사랑했다.
국보로에서 도서관 가는 길은 추억의 길이기도 하다. 살던 사람이 바뀌고 점포도 바뀌지만 도서관 가는
길은 그대로 있고 그 길은 어제와 같이 달빛과 별빛은 변함없이 비추고 바람도 말없이 지나간다.
비가 오는 오늘도 책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도서관 가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동행 / 35 x 35cm.
서로 다른 사람과 동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레임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사직동에 있는 해동연서회 오십 주년 기념 근원 짓고 쓰다.
사직동 예술의 터전 / 65 x 45cm.
사직동에 있는 반백 년 역사의 해동연서회에서 한때 묵향의 습작기를 보냈고 1998년에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하였다. 그리고 사직동에서 첫 서예학원을 열었다. 그리고 1999년 보건복지부 사단법인 충북여성장애인
연대를 창립하고 박노해 시인의 후원으로 사직 2동에 청주여성장애인 성폭력 상담소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그리고 충북도청 여성정책실의 지원을 받아 차이를 너머로 하나로란 예술 공연을 기획하여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였다. 신 미술관과 청주시립미술관도 있는 사직동의 예술 터전으로 해서 삶의 질이 문화적으로 높아졌다.
사랑 / 35 x 35cm.
나 죽도록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박철시에서 근원-
딸들에게 / 65 x 35cm.
사직동에서 두 딸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었다. 희로애락이 함께 펼쳐져서 언제 끝날지 모를 터널 같았지만
기쁨은 돌에 새기고 아픔은 모래에 날린다는 명언처럼 좋은 추억만 가득 가슴에 적금처럼 간직하고
늘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고 살고자 한다. 딸들을 언제 어디서나 응원하면서 편지글을 적어 보았다.
괜찮아 / 63 x 54cm.
괜찮다고 해주는 그 누군가가 하늘 위에서,
때로는 초록의 나뭇잎과 겨울을 견디고 피는 봄꽃과 큰 돌을 껴안고 버티는 참나무에 숨어서 지켜보는 것 같다.
그리고 햇살에 실어서 괜찮아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바람에 손길을 담아 내 뺨을 어루만지며
괜찮아, 잘 될꺼야, 그러니 마음이 가는 대로 끝까지 완주하고 소풍길 가듯이 잘 가렴! 하고
믿어주고 지켜 봐주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병아리의 뒤뚱 걸음을 지켜보는 닭처럼...'
세월 / 35 x 35cm.
새가 지붕 위로 날았나 싶었는데
시간이 날개를 달았다
비바람 몰아쳐 낙화인가 싶었는데
세월이었다
항아리 길 / 50 x 65cm.
문화와 조경을 잘 아는 어떤 분이 사직 2동에 잠시 머물렀다. 그분은 팔을 걷어서 동네를 위해 나무를 심고
항아리와 솟대 길을 조성하고 점포마다 데크를 만들어 옹기종기 꽃 화분을 사시사철 키우게 하였다.
녹색동네 자연친화 동네를 만들고 가꾸던 그분은 떠났다.
관심을 가진 분이 떠나자 데크는 낡아지고 꽃 화분들은 말라서 몇 점포만 남아있다.
그러나 항아리 길의 항아리는 몇 개 깨어졌지만 깨어진 그 안에서도 작은 꽃은 피어나고 솟대도 그 길도 건재하다.
항아리 길 솟대를 바라보며 고단한 삶들이 바라보고 위안을 얻는다.
솟대는 민초들의 애환을 알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바라본다.
그저 지켜만 보아주고 한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한 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참 고맙다.
그런 솟대 같은 분이 주변에 많이 있어 덕분에 소담히 살아갈 수 있음에 이 기회에 다시금 감사드린다.
대추 한 알 / 45 x 40cm.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대추 한 알. 장석주 -
향수 / 35 X 35cm.
행복이란 내 손에 먼저 묻혀서 남에게 전하는 향수 같은 것. -근원-
그리움 / 44 x 67cm.
맑은 하늘 우러러 그리움 안고 오늘도 피어나는 향기 하나, -신축 여름 근원-
능소화 피는 계절 / 65 x 45cm.
사직 2동에는 화교소학교가 있었는데 점점 입학아동이 줄어 들어서 수년 전에 폐교가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학교 담장에는 능소화를 비롯해 담장이 등이 가득하였다. 학교는 닫았지만
시민단체들이 들어서고 작은 규모로 나마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운동장에는 동네 아이들 웃음이 남아있다.
사직동 오래된 나무 아래 / 44 x 68cm.
사직 2동 행정복지센터에는 오래된 나무와 주민들과 어르신들이 쉬는 작은 정자가 있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오래된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도 나무는 전해 들었을 것이다.
필자는 사직 2동 주민자치문화센터의 서예반을 개설 직후 20여 년 동안 출강하였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상선약수 같은 사람들 / 35 x 35cm.
사직 2동 서예반에는 50년 이상을 사직동에서 거주하는 표 씨 할머니가 계시는데 붓을 사랑하고 묵향이 좋아
서예반에서 20여 년간 학습하고 봉사하셨다. 이제는 팔순이 지나 연로하시고 팔 수술을 받으셔서 붓 대신
지팡이를 짚고 사람들을 보고 싶고 묵향을 사랑하여 가끔 나오신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 아래의 정자에 앉아 먼 하늘을 응시하며 때가 되면 눈 감아야지 하고 고은 미소를
지으신다. 상선약수는 다름 아닌 동네를 느티나무처럼 지키며 평범하게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표 씨 할머니 같은 어르신들 같다는 생각이다.
* 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노자의 도덕경)
천진한 동심 / 44 x 34cm.
존경하는 수필가 김애자 선생님의 손주분이 풀을 왜 뽑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쓸모없어서라고 대답하니
손녀는 왜냐고 반문했다고 하였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으로 구분되는 어른들의 세상에 아직 들어서지
않은 천진한 동심...
살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 행복하고 예쁜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다.
살기 위해서 쌓고, 넣고 챙겼던 욕심의 생각과 마음을 비우고 꼬맹이의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선이 멈추는 곳 / 57 x 35cm.
사직동 오래된 집과 집 사이 빈터 곳곳에는 호박 꽃들이 피어난다.
대문 앞에 스티로폼 박스에 고추와 상추를 비롯하여 분꽃, 나팔꽃, 무궁화 등 정겨움과 정성이 담겼다.
눈길을 끄는 그곳에는 서민들 삶의 금쪽같은 사랑이 깃들어 있다,
골목길 주막 / 35 x 68cm.
국보로 골목길엔
해란강, 한양전집, 인생술집, 엄마전집, 대박전집, 다양한 주막들이 마음에 그리움을 담은 사람들을 손짓한다.
비오면 비가 와서 벗이 오면 벗이 와서 혼자면 혼자라서 찾아간다. -근원-
좋은 술잔 / 34 x 65cm.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술을 부어도
술맛이 나는
그런 술잔이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가득 차
넘치는 술잔이기보다
아쉽고 모자라기에
부을수록 고마운
그런 술잔이면 좋겠습니다.
때론 술이 떨어져
쓸쓸한 빈 잔이라도
바람 한 보시기에도
행복하고 정감이 새로운
술잔이면 좋겠습니다.
때론 닳고 닳아
볼품없어도
오랜 손때로 길들여져
절로 영혼이 취하는
그래서 아름다운 시가 되고
예술이 되는
그런 술잔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동네 / 35 x 68cm.
민들레, 나팔꽃, 능소화, 담장이, 꽃잔디가 골목마다 어울렁 더울렁 사이좋게 피어나는 우리 동네
국보로 골목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봄빛처럼 정겹고
양지마을 두부 만드는 할머니의 미소 작은 상가 가게의 문턱에도 따스한 봄빛이 있고 정꽃이 피어나네
국보로 골목에는 옹기종기 정다운 꽃들이 있고 가게를 들어서면 미소로 반겨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꼬맹이 / 35 x 35cm,
사직초등학교 아이들이 등하교를 할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봉사도 하고 돈도 번다.
나이가 많아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많지 않아도 돈을 벌어서 손주 용돈도 주고 친구들과 막걸리를 나누는 소박한 삶들...
양지마을에는 두부를 만들어 이익금으로 우리 동네를 위해 쓰는 주민들이 있었다.
양지마을도 서서히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닮고 싶은 민들레 / 35 x 35cm.
삶에 지쳐 걷는 어느 날 문득 발아래서 웃는 민들레를 만났다.
국보로 돌 틈에서도
주인 없는 상가 문 앞에서도 방긋 웃는 노오란 민들레
바람이 세차도 걱정 없고 키 작아도 괜찮다고 웃는 민들레
언제 어디서나 웃음이 해맑으니 영혼도 맑으리
아무리 고단해도 때가 되면 바람에 사랑을 실어 보내고
낮은 자리서도 늘 기쁨으로 희망 안고 살아가는 민들레 닮고 싶은 민들레
수선화 / 45 x 50cm.
나태주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생각나는 민들레가
곳곳에 핀다.
특히 돌 틈에서 피는 꽃들은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다. 겨울을 이겨서 피는 수선화를 보면
우리들의 억척 어머니들이 생각나고 나도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버렸다.
복 / 35 x 35cm.
마철저(磨鐵杵) / 68 x 40cm.
오래도록 노력해야 쇠공이가 바늘이 된다는 마철저처럼 사직동에서 수십 년 노력해서 이룬 많은 소상공인
점포들이 재개발로 대부분 이주하고 공가가 되고 있다.
그 노포들의 모든 분들이 다시금 일어나서 시작하여 복을 듬뿍 받기를 기원한다.
인생.
점으로 시작된 나의 인생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가 되어 딸의 울타리로 살아간다. -근원-
필 / 35 x 35cm.
작가노트.
묵향의 숲길을 걸어가면
묵향의 숲길을 걸어가면 스스로가 작은 존재임을 깨달아지고
이 숲은 얼마나 깊고 푸르며 끝이 없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자주 찾는 숲이다.
그 숲길에 들어서면 외로움도 잊고 매 순간 겸손해지고 힐링이 된다,
그 숲을 오늘도 들어서면서 정든 동네였던 사직동 이야기를 민들레 꽃씨처럼 바람에 풀어본다.
늘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지켜봐 주고 맞아주는 뿌리 깊은 큰 나무 같은 고마운 스승님들과
늘 응원해 주는 가족과 벗들이 있어
덕분에 미완의 사랑일지언정 다시금 표현해 보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다.
그 숲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 그 숲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다 보니
나도 숲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오늘도 모두의 손을 잡고 그 숲으로 나들이를 간다. 2022. 8월 근원.
작가님과 함께.
방명록에 흔적을 남겼다.
2023년도 달력.
첫댓글 근원님 작품 멋집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저는 앉아서 해설까지 곁들인 좋은 작품들 잘보았습니다
또 저 긴 글 컴에 올리신 바위솔님( ㅋ 칠복이 보단 아직 제겐 바위솔님입니다)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감사드립니다 ^^
덕분에 참 잘 읽고서
감동 가득 먹고 갑니다
_()_
칠복이님 덕분으로 훌륭한작품 편히 앉아 감상잘했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작품들을 만드시느라 그맘을 헤아리기조차 힘드네요
덕분에 감상잘했습니다^^
또 감동입니다
일주일 전 선약으로 못가봐서
아쉬움이 컸는데 이렇게 정성으로 올려주시니
편안하게 감상합니다
좋은 인연에
고마운 인연에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도 바위솔 닉이 정겹습니다
칠복이님 닉도 깊은 뜻이 있으리라 헤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