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 있어
그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동생이었다. 공직자의 장남으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자집 딸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으로 갔다.
그시절 미국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미국 각 지역의 상점으로 넘기는 일이었다.
그가 사기죄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수입한 물건의 대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제들이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는 무죄라고 확신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돈을 다 지급하지 못한 걸 사기죄로 구속시킨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감옥 안에서도 그의 생활은 건실해 보였다.
내가 만나러 갈 때 그는 읽고 있던 문고본 영어책을 접견실까지 들고오곤 했다.
그와 삶의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법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결과는 유죄판결이었고
징역형이 선고됐다. 나는 속에서 억울한 감정이 치솟았다. 그를 모르는 바위같은 재판장이 원망스러웠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징역을 다 살고 나온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반가왔다. 변호하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와 정이 들었다.
속으로는 무죄를 선고받지 못하게 한 미안함도 컸다.
“감옥에서 나와 친척 집에 얹혀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다시 사업을 할 겁니다.
아직도 미국에는 내 재산들이 있습니다. 가족들도 기다리구요.”
잠시 그가 말을 끊고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가지고 온 가방 안에서
카달로그를 꺼냈다. 정수기류의 사진이 보였다.
“제가 지금 형편이 어려워서 외판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하나 사겠습니다. 제일 수당을 많이 받는 걸로 주세요.”
그가 더 이상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승락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부탁을 더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미국수표가 있습니다. 일주일 후에 은행에 넣으시면
바로 현금으로 결제가 될 겁니다. 돈이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그 수표를 받으시고
돈을 돌려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그러시죠”
수표까지 주겠다는데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다. 작은 액수는 아니었다.
나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그에게 주었다.
일주일 후 그 수표를 가지고 은행에 갔다온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그 수표는 처음부터 이미 지급정지가 된 것이었대요. 그 분이 애초에 가짜를 들고 온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띵했다.
돈보다도 내가 진짜라고 믿어온 그에 대한 신념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한 행동은 전형적인 사기꾼의 행태였다.
그를 통해 나는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만 진실이고 진짜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지지하는 이념이나 내가 믿는 종교 내가 깨달은 진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다른 것들은 전부 가짜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부류였다.
나는 법정에서도 그리고 텔레비젼 토론장에서도 한번 주장하면 그게 절대 옳다고 하면서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 개인의 관점 안에 있는 주관적인 판단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고수하려고 했다.
그렇게 행동하던 나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진실보다는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함으로써 나의 에고를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진 외눈박이였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이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관점과 주장을 어느 정도 내려놓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까 의외로 조금은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다시 몇년이 흐른 어느 날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사기죄로 다시 구속이 되게 생겼습니다. 이건 정말 별 게 아니예요. 오셔서 변호해 주실 수 없을까요?”
“별 게 아니라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실수도 있죠. 저는 여기까지이고 싶습니다.”
진짜 사기범은 자기의 거짓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틀릴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사람이었다.
[출처] 내가 틀릴 수 있어|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