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전]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신경숙 / 소설가
길을 떠날 일이 생겨 속초에 갔었다.
나는 바다를 모르고 자란 사람이라 바다에만 다녀오면
가까운 곳에 갔다 와도 아주 먼 곳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숙소 주인은 IMF 때 하던 일에 타격을 입어 접고 바닷가 앞에 그 집을 지었다 한다.
부부의 정성이 작고 세련된 간판에서부터 느껴졌다.
부부는 강릉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통학시키는 일만 빼면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는 커피 냄새가 끊이지 않고
수건이 보송보송하며 세면대는 윤이 나고 미니 냉장고 안의 먹을 것들은
와인만 빼고는 공짜인 곳이었다.
봄이 오고 있는 바닷가의 파도는 귓속말처럼 잔잔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이들이 펭귄같이 뒤뚱거리며 배에 실려 봄 바다 가운데로
떠나갔고 크고 작은 바다 바위 사이로 몸을 반을 밀어넣은 해녀는 딱딱 소리를 내며
무엇을 부지런히 캐내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즐거움은 색다른 먹을 것이기도
해서 숙소 주인에게 맛있는 걸 추천해 달라 했더니 게장백반집을 소개해 주었다.
게장백반을 시키라면서 꼭 탕으로 끓여 달라고 하라 일렀다. 게장백반인데 탕이라고?
기어이 그 집을 찾아냈는데 아무 집도 아니다.
그냥 길가에 알아보기 쉽게 유리창에 ‘오봉식당’이라고 써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저씨 두 분이 반주 곁들인 밥을 먹고 있고 그 곁에 평생 일만 해온 것
같은 덩치 큰 식당 아주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다가 웃지도 않고 쳐다봤다.
들은 대로 “게장백반 탕으로 둘요”라고 주문하고는 적당히 어질러진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을 사람들인지 수협에 불만을 터뜨리는 두 남자의 대화를 건너
들으며 물기가 덜 닦인 식탁을 휴지로 마저 닦아내고 있다가 내 두 눈이 그만
왕방울만해졌다. 커다란 뚝배기에 담겨 나온 게장(탕) 백반 좀 보라. 홍게 다리와
몸통이 뚝배기 안에 한가득이다. 아주 빼곡히 차 있다. 멸치젓에 꼴뚜기 무침에
바닷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밑반찬이 또 한가득이다. 저절로 음식값에 시선이 갔다.
오천원이다. 이렇게 주고 뭐가 남는대여? 갑자기 태생지의 사투리가 툭 튀어나왔다.
간은 적당하고 국물은 시원하고 게다리 속엔 흰 살이 가득 차 있다. 연신 맛있다,
맛있어 해대는 꼴이 재미났는지 식당 아주머니가 서울에서 왔냐며 옆에 와 앉았다.
항구에서 홍게를 사다가 하면 그렇게 많이 못 준단다. 남편이 배를 타고 가서
잡아온단다. 내일 게가 들어오는 날인데 내일 먹으면 더 맛있을 것인데,
은근히 뻐기신다.
언젠가 그 근처에서 ‘물곰탕’이라는 걸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있는 동행자가 ‘
물곰탕’ 가격을 물었다. 식당 벽 메뉴표의 ‘물곰탕’ 옆에 ‘시가’라고
써 있어서다. 아주머니는 그건 너무 비싸다고 특별히 부탁하는 사람 아니면
못 해준다고 말을 잘랐다. 대체 얼마나 비싸길래? 꼬치꼬치 물으니 일인분에
만원은 받아야 하니 미안해서 어떻게 파냐!고 한다. 나는 일인분에 만원 하는
음식은 너무 비싸다고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가 신기해서
바라볼 뿐인데 아주머니는 요새 물곰 자체가 비싸게 나와 그렇다며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연신 못 먹어 못 먹어… 그러신다. 요새는 비수기 중의 비수기라 밑반찬도
충분치 않다며 어디 선반에서 녹차김을 꺼내서 잘라 내왔다. 왜 요새가 비수기냐
물으니 아직 건설 인부들이 본격적으로 봄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등록금 철이
겹쳐서라고 했다. 등록금 철이라니요? 되물으니 고등학교니 대학교니 등록금
낼 때면 사람들이 밥 사 먹으러 안 나온단다. 있는 돈을 다 모으느라고.
남은 홍게 국물을 쳐다보다 맨발인 아주머니 발뒤꿈치를 간질이고 있는
봄 햇살을 쳐다보다 깊은 숨을 내쉬다가 하였다. 마음이 뜨끔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