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
김옥수 지음
비꽃
2016년 09월 30일 출간
우리에게 한글은 세상을 이해하는 창구며 생각과 논리를 담는 그릇이며, 밖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며,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근간이다.
훈민정음 반포는(1446)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사례다. 우연히 생긴 문자를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하며 발전한 게 한문이요 그리스 로마 문자라면 그것을 약간 바꿔서 발전한 게 일문자요 영문자, 불문자, 독문자 등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지식인 집단을 동원해서 우리말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만든다.
우리말과 일치하는 글이 생겨났다는 건 우리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문을 사용하는 기득권층은 언문이라며 억누르고 연산군은 대자보로 폭정을 비판했다며 탄압한다. 고종 때 비로소 국문으로 선포하나 곧바로 일본어에 억눌리니, 우리가 한글을 떳떳하게 사용한 건 해방 이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한문과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까지 한글을 왜곡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우리글을 제대로 정립하고 익혀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며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가는 어디든 모국어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다룬다. 미국은 초등학교는 물론 이공계 대학원에서도 영작문 학습에 상당한 시간을 배정한다. 독일 역시 독어 학습을 가장 중시한다. 모국어는 수학과 과학을 비롯해 모든 학문을 이해하는 바탕이니, 모국어를 못하면 다른 과목도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로 배운다면 중국은 ‘번역하기’를 덧붙어서 자국어를 보호하며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는 한글을 제대로 모르고 영어 학습에 매진한다. 초등학교 때 ‘철수야, 영희야 놀자’는 내용으로 한글 기초를 깨우치고 곧바로 영어 학습에 들어가, 영어를 독해하며 한글을 배운다. 하지만 두 언어의 특징과 차이를 외면하니, 영어는 어렵고 한글은 망가진다.
한글과 영어는 당연히 뿌리도 다르고, 등걸도 다르고, 가지도 다르고, 잎사귀도 다르다. 30년에 걸친 번역 경험과 최근에 발표한 학계의 연구 업적에 근거해, 두 언어의 특징과 차이를 최대한 세세히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한글도 살리고 영어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책속으로 추가
우리말은 동사 중심이니,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가 당연히 발달할 수밖에 없고 영어는 명사 중심이니,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당연히 발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말과 영어는 다양한 차이가 일어난다. 이런 차이를 무시한 번역은 명사 중심에다 이중, 삼중 형용사를 그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영어 번역투’며 그걸 보는 독자 역시 그만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직후에 출발어를 그대로 번역하던 일본은 당연히 명사 중심으로 번역할 수밖에 없고 식민지를 살아가던 지식인은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 우리말도 명사가 중심처럼 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난중일기(亂中日記), 동의보감(東醫寶鑑) 등도 우리 눈에는 당연히 명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사를 중시한 우리 조상에게 이것은 ‘조선왕조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다’, ‘전란을 겪는 도중에 하루하루 기록하다’, ‘동쪽 나라에서 소중한 의학 목록을 살피다’는 내용이다. ‘錄’은 ‘(공식적으로) 기록하다’고 ‘記’는 ‘(개인적으로) 기록하다’며 ‘鑑’은 ‘살피다’란 동사니 말이다.
‘약포집’이나 ‘피난행록’을 보면 임진왜란 때 세자 광해군이 왜군 점령지를 돌아다녀서 민심을 불러일으키며 활동한 내용에 소제목을 붙이는데, ‘백성들의 믿음을 잃지 마소서! ? 민심이 왕세자를 남쪽으로 이끌다’는 식으로 번역한다. 그게 한자로 모이면서 명사에 익숙한 우리 눈에 명사처럼 보일 뿐이다.
셋째, 대명사에 내용을 찾아주어야 한다. 영어는 다양한 표현을 중시한다. 게다가 주어가 꼭 필요한데, 똑같은 주어를 계속 쓰자니 다양성이 깨지고 주어를 생략하자니 문장이 깨지고, 그래서 명사를 대신하는 대명사가 나왔다. 하지만 우리말은 대명사를 안 좋아한다. 1, 2인칭 대명사는 생략할 때가 많고 3인칭 대명사는 명사로 풀어준다. 대명사를 그대로 번역하면 표현이 이상할 뿐 아니라 심하면 오역으로 이어진다. 사례를 보자.
The hopes are dwindling but they are not yet dead.
가능성은 줄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직 생존해 있다.
‘희망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의미 같다. 하지만 대명사 ‘그들은’이 걸려서 원문을 보니, ‘they’는 ‘hopes’를 받는다. 대명사는 바로 앞에 있는 동격 명사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다. ‘희망은 줄어들어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는 뜻이다. 대명사가 가르치는 대상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번역해서 나타난 오역이다. 대명사를 구체적인 내용으로 바꾸는 습관을 들이면 피할 수 있다.
넷째, 명사중심 번역을 피하라. 영어는 명사중심, 우리말은 동사중심이다. 따라서 영문번역 과정은 명사중심 언어를 동사중심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다. 명사중심으로 번역한 내용은 ‘한글이란 탈을 쓴 영어’에 불과하다. 찰스 디킨스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고딕양식 창문 사이로 스크루지를 몰래 내려다보던 거칠고 낡은 종이 있는 오래된 성당 종탑도 안 보일 만큼 말이야.
기다란 문장이 명사 ‘성당종탑’을 수식한다. 명사중심으로 번역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연히 눈에 안 들어온다. 이런 문장은 끝까지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해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The ancient tower of a church, whose gruff old bell was always peeping slily down at Scrooge out of a Gothic window in the wall, became invisible(…)
이것을 동사중심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오래된 교회 첨탑에서는 낡고 묵직하게 생긴 종 하나가 고딕 창문 너머로 스크루지를 언제나 은밀하게 내려다보는데, 지금은 (짙은 안개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인다.
영어는 ‘그래서 그렇고 그런 철수’라는 식으로 ‘철수’를 기다랗게 수식하는 명사 중심 문장구조다. 이런 문장을 ‘철수가 그래서 그렇고 그렇다’처럼 동사 중심 문장구조로 바꾸는 건 아주 중요하다. 사례를 더 보자.
수레와 마차의 무거운 바퀴가 깊숙한 고랑을 만들어 놓았어.
→ 짐마차와 역마차가 묵직한 바퀴로 깊은 고랑을 팠거든.
나는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안도감,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진정했다.
→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놓였다.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편안했다.
베시 유모가 든 등불이 눈이 녹아서 흠뻑 젖은 자갈길과 계단에 빛을 뿌렸다.
→ 베시 유모가 등불을 들자, 자갈길과 계단에서 녹은 눈이 반짝거렸다.
다섯째, 복수명사 관련 번역어투를 고쳐야 한다. 우리말은 원칙적으로 복수형을 안 쓰고 다른 식으로 처리할 때가 많다. 연설 서두에 흔히 말하는 “Ladies and Gentlemen!”을 우리는 “신사들과 숙녀들!”이라고 하는 대신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고 하는 식이다. 그런데도 복수형만 나오면 “~들”을 써서 어색할 때가 많다. 사례를 몇 개 보자.
Old rusted cars or piles of tires sat in the yards.
녹슨 자동차 또는 타이어 더미들이 마당에 쌓여 있었다.
국내 출간서적에 실린 번역 내용이다. ‘piles of tires’를 ‘타이어 더미들’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더미’ 자체에 복수 의미가 있어서 복수형 어미 ‘들’까지 들어가는 건 중복이다. ‘타이어 더미’로 충분하다. 그런데 ‘piles’라는 복수형에 담긴 뜻은 외면했다. ‘타이어 더미가 여러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yards’란 복수형을 ‘마당’이란 단수형으로 번역하면서 뜻이 애매하게 변했다. 마당 한곳에 타이어 더미가 모두 쌓였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원문에서 말한 ‘piles’와 ‘yards’는 여러 마당에 타이어 더미가 쌓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마당에’를 ‘마당마다’로 혹은 ‘여러 마당에’로 바꾸어야 한다. (실제로 주인공이 어떤 초라한 마을에 들어서다가, 눈앞에 쭉 늘어선 주택 풍경을 묘사한 장면이다.) 이렇게 되겠다.
마당마다 녹슨 자동차나 타이어 더미가 쌓였다.
아래는 위 문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Finally we stopped at a small house just like all the others.
마침내 우리는 다른 모든 집들과 똑같이 생긴 조그만 집 앞에 섰다.
‘all the others’를 ‘다른 모든 집들’이란 복수형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모든’이란 표현에 복수 의미가 있다. 복수 개념을 중복하면 문장이 어렵게 변한다. ‘들’이나 ‘모든’ 가운데 하나를 빼서 간편하게 바꿔야 하는데, 형용사 ‘다른’을 붙여서 ‘집’ 일반을 수식하므로 둘 다 빼는 게 더 좋겠다. 그리고 ‘just like’를 ‘똑같이 생긴’이라고 표현해, 집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just like’는 어느 집이나 고물을 쌓아놓은 형편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형편이 비슷한’ 정도가 좋다. 이런 식이다.
마침내 우리는 여느 집이랑 형편이 비슷한 조그만 집으로 다가갔다.
다른 문장을 더 보자.
Then the four men began to lift the awkward makeshift stretcher.
네 명의 남자들은 임시로 만든 들것을 들어올렸다.
‘네 명의 남자들’이란 표현이 이상하다. ‘네 명’ 자체가 복수다. 그런데도 명사에 복수접미사 ‘~들’을 붙였다. 게다가 소유격 ‘의’는 대표적인 번역어투다. ‘남자 네 명’이나 ‘남자 넷’으로 바꾸는 게 좋다.
그리고 원문에 있는 ‘awkward’는 번역 자체를 안 했다. 형용사 두 개로 명사를 수식하는 형상이다. 형용사가 여러 개 나오면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부사로 번역하는 게 좋다.
남자 넷이 임시로 들것을 어설프게 만들어서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우리는 명사를 동사로 바꾸는 등, 품사를 다양하게 바꾸는 사례를 살폈다. 이번에는 명사를 강조하는 영어의 독특한 용법을 살피도록 하자. 그런 다음에 우리말 어법에 맞도록 바꾸는 방법을 익히자. 영문법대로 번역하는 방식을 싹 잊고 우리말 특징에 맞도록 번역하는 방식을 익히는 건 아주 중요하다. (영역하는 원리는 역으로 정리하면 된다. 각각의 사고방식과 특징과 차이를 이해하는 건 콩글리시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하나씩 검토해서 바람직한 우리말로 바꾸는 방법을 익히면 좋겠다. 영작은 영어 원리에 맞도록 해야 의미가 있듯이 번역은 한글 원리에 맞도록 해야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영어는 행위주체인 사람과 동물은 물론이고 행위객체인 무생물이나 추상적인 내용까지 주어로 사용한다. 필요하면 주어를 가짜로 만들기도 한다. 가주어 ‘it’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다’를 ‘어떤 행동이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로 표현하는 형식을 즐긴다. 그래야 고급영어가 된다. 영어에서 수동태가 발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런 고급영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고급한글이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행위주체만 주어로 등장하고 결과는 동사로 표현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무생물주어를 보어나 동사로 돌리고 사람이나 동물을 주어로 번역해야 한다. 사례를 보자.
법칙 1. 무생물주어+동사+목적어
목적어를 주어로 삼고 무생물주어를 부사로 바꾼다.
영어가 우리말과 제일 많이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시제다. 영어는 시제 자체로 다양한 내용을 말하는데 우리말은 원칙적으로 현재형을 통해서 느낌으로 전달한다. 내가 ‘영어를 과학적인 언어, 우리말을 감성적인 언어’라고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시제는 한국인이 영어를 어려워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다. 그래서 번역어투와 오역을 만드는 공장도 된다. 영어 시제를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려면 첫째, 우리말에서 시제를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고, 둘째, 영어 시제를 우리말로 옮기는 방법, 특히, 우리말에 없는 대과거를 정확히 옮기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열두 시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어는 참 과학적인 언어란 생각이 든다. 문장 자체에 사건 순서가 모두 들어간다. 논리적 사고와 물질주의가 발달한 배경이다. 반면에 우리말은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언어다. 영어는 열두 시제에서 동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말은 동사보다 시간부사가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현상도 재미있다. 시간부사에 따라서 시제가 변하는 사례를 보자.
그는 학교에 갔다. (과거시제)
그는 어제 학교에 갔다. (과거완료시제)
그는 벌써 학교에 갔다. (과거완료시제)
그는 확실히 학교에 갔다. (과거완료시제)
시간부사 ‘어제, 벌써, 확실히’ 등이 붙으면서 과거시제가 과거완료시제로 변했다.
그는 (내일) 학교에 다 갔다. (미래시제: 예언, 조롱, 경고)
그가 내일 학교에 가면 좋겠다. (미래시제: 가정, 희망)
동일한 문장에 시간부사를 ‘내일’로 바꿨는데 미래시제가 된다.
‘그는 학교에 간다’는 문장은 상황에 따라서 현재시제도 되고 미래시제도 된다. 동사 자체로는 시제가 불분명한데, 시간부사를 첨가하면 시제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지금 학교에 간다. (현재시제)
그는 [곧, 이따가, 오늘, 내일……] 학교에 간다. (미래시제)
시간부사로 현재형과 미래형을 결정한 사례를 한 번 더 살펴보자.
나는 지금 서울에 간다.
나는 내일 서울에 간다.
위 사례에서 두 번째 문장은 미래를 나타낸다. 하지만 ‘내일’이라는 시간부사 이외에는 특별한 미래시제 형식이 없다. 그래서 국문학계에서는 우리말 시제가 ‘과거, 현재’나 ‘과거, 비과거’ 두 개만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영미권 영문법 학자 역시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논쟁을 진행하는 중이다.)
1. 문단 첫줄 들여쓰기
수강생 전체가 첫 번째 과제물에서 저지른 실수다. 절반은 ‘문단 첫줄 들여쓰기’를 아예 안 하고 나머지 절반은 커서를 누르는 식으로 들여쓰기했다. ‘문단 첫줄 들여쓰기’는 원고를 작성하는 기본이다. 여기에서 실수할 거란 사실은 상상도 못 했다. 번역작업은 대부분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 하는데, 거기에서 모양 → 문단 → 들여쓰기를 지정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문단 첫줄 들여쓰기를 실행할 수 있다. 책 한 권 전체로 치면 시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2. 대화 부분 처리하기 ? 문단 바꾸기
화자가 이야기하는 경우에 영어와 한글은 문단 표기 방식이 다르다. 하지만 영문 표기 방식을 한글에 그대로 사용한 사례는 정말 많다. 독자가 이해하는데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고 생각을 펼쳐나가는 수단이며, 우리 몸속에는 한글의 독특한 표기 방식이 녹아있다. 번역가한테는 쉬운 한글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례를 보겠다.
사례1) “Come in, Septimus.” Marcia’s voice drifted through the thick oak door.
사례2) “You’ve had a difficult week, Septimus,” Marcia began. “Well, we all have. It is very good to have you back. I have something for you.”
사례3) “Good afternoon, Septimus,” she said. “Do sit down.” Marcia indicated the smaller but equally comfortable green chair on the other side of the desk. “I hope you slept well?”
《수강생이 번역한 방식》
1) "들어오렴, 셉티무스." 마르시아의 목소리가 두꺼운 떡갈나무 문을 통해 들렸다.
2) “저번 주 힘들었을 거야.” 마르샤가 말을 이었다. “하긴 우리 모두 힘들었지. 자네가 무사히 돌아와 정말 다행이야. 자네에게 줄 게 있네.”
3) "안녕, 셉티무스." 마르시아가 말했다. " 자리에 앉으렴." 마르시아는 책상 반대편에 놓여있는 자신의 의자보단 작지만 편한 녹색의자를 가르켰다. "잠은 잘잤니?"
1, 2, 3 모두 문단 바꾸기를 안 했다. 화자의 동작과 표현내용이 한데 어울려서 혼란스럽다.
1은 국문 표기법에 맞다. 하지만 문단 바꾸기를 하면 여백이 생겨서 눈으로 보기에 편하다. 문단 바꾸기를 하는 편이 좋다.
“들어와, 셉티무스.”
마르시아 목소리가 두터운 참나무 문짝을 뚫고 흘러나왔다.
하지만 2는 약간 복잡하다. 문단 바꾸기와 모으기를 해야 하니 말이다.
마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문단 바꾸기)
“너는 지난 일주일 동안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어. 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이렇게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너한테 줄 게 있어.” (문단 모으기)
영어는 ‘화자가 말했다’는 표현을 중간에 넣어서 ‘화자가 한 말’을 두 개로 나눈다. 여기에서는 ‘Marcia began’이란 표현으로 대화체를 두 개로 나누었다. 주어를 중시하는 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은 주어를 중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에도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마르시아가 한 말을 하나로 모으는 표기법이 우리말 어법에 적합하다.
3은 좀 더 복잡하다. 문단 바꾸기와 모으기 중간에 새로운 동작이 들어간다.
“어서 와, 셉티무스, 자리에 앉으렴.” (모으기)
마르시아가 책상 앞에 있는 녹색의자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조그맣지만 마찬가지로 편안한 의자였다.
“잠은 잘 잤니?” (문단 바꾸기)
이렇게 표현하면 글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원문에는 ‘덧붙였다’는 표현이 없다. 하지만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할 때는 이런 표현으로 연속성을 살려주는 게 좋다. 영어와 한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고맙습니당....
축하드려요. 직접 쓰신 책이네요^^
오. 이 책 멋지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교재로 삼으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