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6월19일 – 마 16 : 13 – 17
예수님의 세 가지 질문
(마16:13-17)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서론 : 루이 14세는 주일이면 가족과 왕족을 거느리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교회는 프넬론이라고 하는 대주교가 시무하는 교회로 왕이 출석하다 보니 예배당은 늘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교인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이 대주교의 마음은 결코 기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들이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인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려고 왕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왕이 도착하기 전에, 다음 주일은 국왕께서 교회에 나오시지 못한다는 거짓 광고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왕이 왕족들과 교회에 도착했을 때 교회가 너무나 조용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대주교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주교는 슬픈 얼굴로 “아무래도 이분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왕을 만나러 오는 것 같아서 한번 제가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 전에 다음 주일에는 왕이 나오시지 못한다고 광고했더니 오늘 이렇게 다들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라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왕과 악수 한번하고 왕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실제로 있었던 충격적인 실화입니다.
◈ 이 시간에 “예수님의 세 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입니다. 좋은 질문은 좋은 정답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좋은 질문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유대 랍비들의 교육 방법 중 한 가지는 ‘좋은 질문을 권장하라’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기보다 ‘어떤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질문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만 잘못된 질문은 스스로를 시험의 수렁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타락도 사탄의 잘못된 질문을 받아들이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3가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1. 예수님이 누구신지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 그러자 주님은 다시 (마16:15)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영생의 문제가 걸린 문제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질문하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지금은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확인이 되고, 우리가 고백한 것이지만 당시에 주님에 대한 아무런 정의가 내려진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여러 가지의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때 배드로는 대답합니다, (마16:16) ”베드로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칭찬하셨습니다. 주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라 한 것처럼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백이 나올수 있는 것은 베드로의 지식이나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것을 말씀 하십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우리들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마음으로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올바른 신앙으로 나갈수 있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모든 것이 잘못되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의 삶)
(요21:15) 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느냐 그럼 너희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 즉 양들을 맡기시기 전의 질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원문으로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헬라어에서 사랑의 종류에 4가지가 있는데 ◈ 아가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키고, ◈ 필레오는 우정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 스톨게는 자식 사랑이나 혈연적인 사랑을, ◈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주님이 먼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아가페(αγαπας)하느냐 물으시자 베드로는 내가 주를 필레오(φιλω) 하는 줄 주님께서 아신다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 질문과 답변도 똑 같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거듭 신적인 사랑을 요구했으나 베드로의 수준은 우정의 수준밖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막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고 섬기고 충성하고 봉사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순종, 충성, 헌신, 모두가 노동이고 고통일 뿐이고 부담일 뿐입니다,
3. 예수님은 얼마나 감사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환자 열 명을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러 온 사람은 그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섭섭해 하시면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는데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복을 알지 못한 우리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워하실까요? 우리는 날마다 감사하고 춤추며 살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 위더스픈 (Johe Witherspoon) 박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마차를 타고 오는데, 말은 도망가고 마차는 바위에 부딪혀 깨졌습니다.그런데도 감사해야 하나요?” 그러자 위더스픈 박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사고가 났는데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감사한 일 아닙니까!" “선생님의 말을 듣고보니, 저 또한 마차를 타고 여러 번 그 바윗 길을 왕래했지만 한번도 말이 도망치거나 마차가 깨어지는 일이 없었으니 저 또한 감사하지요."
감사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감사를 찾아서 발견하여 감사하여야 합니다,
◈ 박성연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머리 좋은 사람이 부모 잘 만난 사람 못 당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듣지만 아무리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라도 잘 풀리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이 밀어주시는 하늘 수저를 이길 수는 없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더욱 큰 감사 거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 주님이 하신 이상 3가지의 질문은 우리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인생사활이 걸린 질문입니다. 주님을 누구라고 믿습니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주님을 위해 희생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우리를 사랑해주심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