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인연의 깊이를 생각한다 / 우신초등학교 대 선배님-91세 이명호 선배님-을 알게 되다

[햇살편지]

한 겨울 한파가 장난이 아니다.

대한 추위쯤이야 하고 우습게 여기던 소한 한파를 무시하듯 쨍한 날이 정말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짱짱하고 칼날이 서린 듯한 겨울 날을 좋아한다.

거기다 뼈속까지 시린 칼 바람이 부는 날이면 들판에 나가 바람을 맞고 싶어질 정도로 추운 겨울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청춘일 때 이야기지 싶었는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날마다 혹한의 일기예보를 전하는 기상캐스터가 우스울 정도로 여전히 그런 날을 좋아한다는 것을

요즘같은 미친 날씨에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완전무장을 하고 날선 바람이 부는, 아무도 없는 곳을 걷는 즐거움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어쨋거나 날씨 타령은 그렇고 작년에 지인들과 만나 송년식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안성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끼리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굳이 영역과 경계를 가르자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같은 무리 안에 있어도 뭔가 2프로 부족한 허전함이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고민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군중 속에 고독이다.

암튼 편편하지 않은 그런 자리지만 또 초대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 관계상 엮여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그런대로 견디다 오긴 하지만 일정부분은 늘 흡족하지는 않다 뭐 그런 말이다.

와중에 그래도 서울내기가 있어 가끔은 서로 통하는 이야기가 있음은 물론 당연히 주고 받는 이야기 자체가

이리 꿰어도 저리 엮어도 통하는 맥락인지라 서울내기라 지칭되어지는 그녀를 만나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했다.

그런 상황에 지나가는 말로 그녀가 자신의 친정아버님께서 서울 하고도 영등포에서 역사가 가장 긴

우신초등학교 출신이라는 말을 전하는 바. 이게 웬일이래 싶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는데 에그머니나 91세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완전 70대 어른 같으시다.

게다가 91세 생신에 자신의 촛불 개수를 한김에 불어버리셨다는 전설의 그 친정아버지-이명호님-.

지난 연말에 친정아버지께 확인사살한 결과 분명히 우신초등학교 출신이 맞다는 전언을 전하면서

다시금 사진도 보내오긴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친정아버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건너로 들려오는 그 대선배님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쩌렁쩌렁 강건하기 이를데 없고

전해주는 내용을 들으면서는 기억력도 놀랍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니까 친정 아버님께서는 그 시절에 영등포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학교이면서

일제 강점기에 존재하는 보통학교 출신이셨던 것이며 1학년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면서는

현재의 우신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진 학교를 한참을 걸어서 통학하셨다는 말이며

친정아버님의 친구들 중에는 지금의 당산동이나 양평동같은 곳에서도 20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닌 친구들도 수두룩하셨다고 했다.

한번도 초등학교라는 곳을  먼길 통학거리로 다닌 우리 윗세대에 대하여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쥔장이 살았던 그 시절처럼 가까운 곳에서 통학을 한다는 개념만 있었을 뿐이요

누구나 그러하였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 뿐이었으니 새삼스럽게 전화선을 타고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통학로 이십리길은 시골이나 산간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는 말이다.

서울이라는 곳에서도 그런 통학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사람은 쥔장 뿐만이 아닐 터.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니 알긴 했어도 관심권에 넣어두었더라면 작년 2015년에 우신초등학교 100주년 행사에 모셨으면 좋았을텐데 싶은 아쉬움이 크다.

그런 대선배님을 모셔 그 옛날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싶은 아쉬움.

그런 선배님께서는 일찌감치 백년대계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경복고등학교 교사로서

왕성하게 후학을 양성하시며 오랜 기간 열성을 다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전언을 통해 3남 1녀의 자식도 올곧게 잘 키워내신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자신을 기점으로 일거수 일투족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짐은 물론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누려가시며

자식들에게 걱정 시키길 꺼려하셔서 자신이 이 세상을 끝낼 것을 대비하여  장례 절차는 당연지사요

그후로 벌어지는 일들을 조목조목 정리해 놓으셨다고 한다.

어느 것 하나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그 훗날까지 대비한다는 것,

참으로 보기 드물게 완전체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지 싶기도 하다.

******아랫글은 그녀가 자신의 친정아버지- 83세 생신 때- 에 대해 쓴글을 퍼왔다

지끔껏, 우리 친정아버지...건강하셔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 아버지는 올해로 83세가 되셨는데 실제로 뵈면 남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시고

젊은 패션 감각이며 싱글의 골프 실력에다가 머리도 염색한 번 안하시고....

그 연세에 다른 노인들 같지않은, 청년같은 젊음이 있으시다.

결혼 전에게 나에게 너무 엄하셔서 저녁 9시면 대문을 걸어 잠그시는 통에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해야 했고

여행은 끔도 못꾸고  그저 학교에서 가는 MT나 교회 수련회 정도만 보내 주셨다.

너무 그 구속이 힘들어 원망하고 빨리 아버지를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3남 1녀에 고명딸인 내가 그렇게 소중하셨던 게다.

지금 나는, 그렇게 깐깐한 아버지 성격과 다른, 편안하고 나에게 언제나 관대한 남편을 만났지만

아직도 어두둬지면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밖에 안나가는 걸 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호통이 지금까지도 유효 한가보다.

나도 이제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내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짐이 되지 않는...

그리고 권위와 품위를 잃지 않는 그런 부모가 간절히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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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니겠는가?

딸은 아버지 바라기라고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니라도 그저 부모라는 이름 앞에서면 당연히 존중과 존경을 드려야 하지만

헌데 그렇게 근사하고 멋진 아버지라면 더욱 플러스 알파가 아니던가 말이다.

요즘엔 하도 존속살인도 많고 부모 같지 않은 부모도 많아 자식들을 패대기 치거나 자신들의 놀잇감 정도로 치부하여

아이들 목숨을 쥐락펴락 하는 세상이고 보니 그야말로 어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제대로 된 정상적인 어른들의 교훈이 필요한 이 시점에 쥔장에게도 그런 대선배가 있다는 사실이 감동이다.

소시민으로서 자신을 추앙하는 자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표본이기도 하디

그런 분이 또 쥔장의 우신초등학교 대 선배라는 사실이 놀랍고 건강하게 잘 계신 모습을 보자니 고맙기까지 하다

오늘 같은 한파를 녹이는 따스하고 보가좋고 화목한 선배님의 가정이 부럽기 까지 하고 본받고 싶어진다.

너도 나도 바쁜 세상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아주 작은 밀알같은 가정의 참다움으로 비롯된 따스함으로 온다는 것.

그 따스함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강공세로 달려오는 추위를 물리치길 바라는 마음이 또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