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일 (토) 촬영.
무궁화 열차가 하루에 7번 밖에 정차하지 않는 천안역 아래에 있는 전의역입니다.
영등포에서 오전 10시 8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열차를 타고 전의역에 도착한 시간은 10분을 연착한 11시 28분이었습니다.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정리에 있는 승천사를 가보기 위해서입니다.
천안 승천사를 가려면 천안역에서 540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되지만 승천사로 가는 유일한 버스인 540번 버스는 하루에 5번 밖에 없어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지리적으로 승천사가 더 가까운 세종시 전의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전의역 앞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타면 승천사까지 7~8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7500원 정도 됩니다.
영등포에서 전의역까지 무궁화호 열차 요금은 6,900원입니다 (경노는 4,800원)
전의역 앞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습니다.
전의 3. 1 만세운동 기념비.
이곳은 1919년 3월 13일 전의 장날을 기하여 애국지사 17명이 만세를 외친 곳이다. 만세운동 당시 비밀리에 제작된 목판본 태극기를 이용하여
종이에 태극기를 찍어 전의 장으로 통하는 길목에서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장터를 돌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기념비 상단의 태극기는 목천 독립기념관에 있는 만세 운동 당시 서울역에서 채집되었던 목판본 태극기를 차용하여 제작하였으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와는 다른 면이 있다.
목판본 태극기의 형태를 차용한 것은 전의의 대표적인 상품인 나무 묘목 시장을 상징하는 의미로 나뭇결 모양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중간 부분의 태극기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17각"으로 전의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17명"의 애국지사를 상징한다.
하단부의 작품을 받치고 있는 원형으로 된 좌대 부분은 전의 초수, 즉 왕의 물이 샘솟는 우물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마주한 승천사 모습입니다. 승천사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유일한 부처님을 모신 전각입니다.
천안 승천사가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전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대웅전 하나뿐인 절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는데 대웅전에서는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예불 중이었고,
대웅전 좌측에 있는 공양간 앞에는 집사 같은 장년의 체격이 좋은 남자가 정자의 지붕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돌부처에 대해 물어보려고
머리가 짧기는 했지만, 스타일이 전혀 스님 같지 않은 사람 좋은 집사처럼 보였던 일꾼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돌부처에 대해 여쭈었더니
커피도 내어 주고, 지금 공양 시간이 되었으니 괜찮다면 공양을 같이 하자며, 저를 공양간으로 안내해 격의 없이 함께 공양을 했습니다.
물론 예불을 마친 비구니 스님과 보살님도 함께였죠.
이 분이 바로 승천사의 주지이신 원공 스님이었습니다. 주지스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일이 생각나서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절에서 먹었던 음식 중 최고로 맛이 있었던 밥상입니다. 특히 깻잎장아찌가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원공 스님은 2012년도부터 영농법인 '승천'을 설립하여 장을 활용한 나눔행을 적극 실천하는 스님으로 이름난 분이더군요.
그래서, 장이 좋아서, 반찬들이 맛있었나 봐요.
영농법인을 설립한 이유도 소외된 이웃을 돕고, 지역 경제에도 이바지하고, 대중에게도 부처님의 가피를 전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답니다.
스님은 지역 내에서 '동네 머슴" 또 "퍼주지"로 이미 유명한 스님이라고 합니다.
처음 만난 식객인 저에게도,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사양하는 제게 역까지 차로 바래다주고, 맛있다는 반찬도 듬뿍 주셨습니다.
"퍼주지"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원공 스님 아니 퍼주지 님 부담 주지 않으려고 시내에 나갈 일이 있다며 핑계까지 만들며 행복한 추억을 주신 일 등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공양간.
공양간에서 본 승천사의 유명한 약수터.
공양간에서 본 풍경입니다. 대웅전과 청룡 조각품과, 돌부처와 약수터와 오층 석탑.
대웅전의 좌측면.
영농조합을 만들어 지역을 돕고 있는, 장을 만들어 놓은 장독대.
참고로 사찰 전통음식의 전통을 이어가는 영농조합법인 승천의 전화번호는 041-554-4595번 (HP 010-8823-4595)입니다.
생산품은 청국장, 청국장 가루, 된장, 고추장, 쌈장, 참기름, 들기름, 각종 장아찌류 등인데 된장은 1kg에 18,000원이라고 합니다.
장독.
대웅전의 좌측에 있는 출입문.
승천사에 하나뿐인 부처님을 모신 공간인 대웅전의 내부 모습입니다.
수미단에는 특이하게도 주불로 고행상을 모셨습니다.
닫집에는 "적멸보궁"이란 편액이 걸려 있네요.
고행상.
백옥 관세음보살.
반야용선.
천장에 달아 놓은 금색과 은색의 연등.
불을 켜니 이렇게 화려합니다.
비구니 스님과 대웅전을 지키는 삽살개 들쑥이입니다. 비구니 스님은 여러 유명한 절에 주석하셨는데, 홍련암과도 인연이 있었답니다.
들쑥이는 대웅전을 찾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환영하지만, 대웅전을 벗어나 안쪽으로 가면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짖는다고 합니다.
들쑥이 뒤 공양간 문쪽에 계신 분이 주지스님인 원공 스님입니다.
들쑥이 독사진. 그동안 날이 너무 더워서 털을 깎았다고 하네요. 그래도 눈은 잘 안 보입니다.
돌부처 옆에 있는 청룡 조각상입니다.
이 청룡 조각은 주지스님인 원공 스님이 직접 만든 작품입니다. 스님이 못하시는 것이 없어요. 목청도 아주 좋습니다.
청룡의 뿔과 이빨은 스님이 서울 경동시장에 직접 가서 사슴뿔을 사 와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뿔은 잘 썩지 않으니까요.
몸통도 치수를 맞혀가며 일일이 금속을 오려서 붙였다고 합니다.
주지스님은 매년 사월 초파일에 절에 새로운 조형물을 선보여 신도들을 기쁘게 해 줍니다. 나비도, 연꽃도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내년엔 승천사가 또 어떻게 변신할지 기대됩니다. 석탑 위에 연꽃도 올려놓았었다고 하는데, 이번엔 봉황새가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웬만한 예술가도 이렇게 만들지는 못할 것 같아요. 작품이 엄청 대형이에요.
약수터에도 두꺼비와 물고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청룡을 만들고 남은 재료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물통을 가지고 와 이곳에서 승천 약수를 받아 갑니다.
승천약수(僧泉藥水)
이곳은 예부터 스님들이 즐겨 마시던 약수로 이름이 나 있으며, 세종께서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밤샘 작업 중 눈병을 얻은 후 이곳에 직접
찾았다는 기록과 한양까지 이 약수를 날라다 마셨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3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예부터 널리 알려져 온 이곳 약수는 게르마늄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음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원근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어 그 성분과 효능이 입증되고 있는 귀한 물이다. -현지 안내문 내용-
돌부처.
돌부처는 2000년 이 절 창건 당시 바닥에 길게 누워 있던 돌을 세워 보니 부처님의 몸통처럼 보여, 부처님으로 세우기로 마음먹고
두상으로 적합한 돌을 구하기 2년여 만에 두상을 찾아 얼굴을 조각하여 세운 자연석이랍니다. 별다른 치장도 하지 않은 원석인데.
보는 이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부처상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미소.
나도 용이예요.
얌 마, 나처럼 여의주는 물고 있어야 용이지 ㅋㅋㅋ
풍경소리 들으며, 물을 받으시라고, 처마 끝에 풍경을 달아 놓았습니다.
전면에서 본 오층 석탑입니다. 이 탑은 유래도 출처도 잘 모릅니다.
이 절을 창건할 당시 신도분이 불교용품점에서 구입하여 기증했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기단석에 사천왕상이 새겨 있다는 것입니다.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 오른손에 삼차극, 왼손에 보탑을 들고 있습니다.
전면에서 왼쪽으로 돌며 보는 탑의 모습입니다.
북쪽을 수호하는 다문천왕. 비파를 들고 있습니다.
남방을 수호하는 증장천왕. 용을 잡고 있습니다.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칼을 들고 있습니다.
간다는 인사를 드리려 주지스님이 일하고 있는 공양간으로 가는 길입니다.
주지 스님이 당신도 시장에 나갈 일이 있다는 핑계로 전의역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참 상대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분이셨습니다.
그동안 돌아봤던 절 중에서 제일 편안했던 절이었습니다.
전의역에서 용산으로 올라가는 열자 시간이 2시간이나 여유가 있어서 시내를 돌아 보았습니다.
역 앞에 있는 전의 홍보관.
나무토막으로 만든 동물입니다. 설명이 없어도 하마나 돼지처럼 보이네요.
얘는 염소 아니면 말 같네요.
전의 왕의 물 시장.
전의 왕의 물 분수대.
세종실록 103권, 104권, 105권 1444년(세종 26년)명 정통(正統) 9년 한글 창제 과정에서 혹사로 앓던 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수소문하던 중,
전의현의 물맛이 호초(胡椒) 맛과 같이 톡 쏜다 하여 초수(椒水)라 하는 물이 나온다고 아뢴 자에게 목면(木棉) 10필을 하사하였다.
전 경시서령(京市署令) 장택(張擇)과 중 신정(信汀)을 전의현 초수에 보내어 안질(眼疾)을 치유하여 효력을 시험하게 하고,
이어 그 고을에 명령하여 공궤(供饋)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문헌에 있다. *공궤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림.
당시 오랜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 행궁을 지을 수 없어 전의 초수를 한양으로 운반하려면 며칠이 걸려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에 전의ㅣ 초수에서 한양까지 사이에 역마다 빠른 말 2필씩 배치하여 반나절 만에 궁궐에 당도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왕의 물(전의 초수) 원천수는 전의 왕의 물 시장으로부터 북쪽으로 4.5km 거리에 위치하고 자연 분출되고 있으며,
우리 지역에서는 매년 왕의 물 축제를 열어 세종대왕의 영정을 모시고 제례를 지내며 왕의 물 운반을 재현하고 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전의 초수로서 약효가 강하며 안질, 위궤양, 피부병, 심장병, 당뇨 등 천 가지 병에
효력이 있다 하여 명수(命水)라 전해지고 있다.
이곳 분수대는 왕의 물(전의 초수)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분수대를 설치하여 왕의 물 분수대라 명명하였다. 2017, 2. 전의 왕의 물 시장 상인회-
전의 왕의 물 분수대.
전의 왕의 물 시장.
도로 위를 지나는 철교
조천
조천 위에 놓인 다리인 신방교.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전의 시장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북암천에 놓인 전의교.
옥으로 제작한 대형 옥불이 있는 명산사.
지은지 70여 년이 되었다는 2층 한옥.
문화센터 뒤로 전의 초등학교와 우체국이 있는 거리입니다.
옛 방앗간.
전의 초등학교와 우체국 건물(흰색 건물)입니다.
전의 향교의 홍살문.
전의에는 향교도 있네요. 향교는 문을 닫아 놓았습니다.
향교 입구에 건축 중인 건물.
대추나무.
전의 성결교회.
전의역에서 15시 31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16시 40분에 영등포역에 도착했습니다.
첫댓글 가을에 천안 여행을 하려는데
승천사 탐방 설명 고맙습니다
절 공양이 최고이셨다는 말씀에
마음이 쏠리는 중생입니다 ㅎㅎ
사실은 고불행을 주불로 모신거와
비구니스님 절이어서 관심이 커집니다.
성불사도 작지만 아름답고 유서깊은 절이라하여
떠나보려던 참이었습니다
퍼주지.
인상적이고 멋진 스님이시네요.
멋진 사진과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