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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힘들었던 미야코지마대회의 후기를 기다리며
작년 대장정 후기를 올립니다.
언제 다 마칠지는 저도 모르지만요...
여행 중 지나온 길
독일 베를린-폴란드 바르샤바-리투아니아 카우나스-라트비아 리가-에스토니아 탈린-러시아 상크페테르부르그-러시아 모스크바-우랄산맥-카자흐스탄 아스타나-다시 러시아 시베리아로 -이르쿠츠크-몽골 울란바토르-중국 베이징-중국 단동-중국 훈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대한민국 동해, 고성,철원,임진각, 서울
1. 시작은 당위(當爲) 위에 세워라.
2014년 여름은 무거웠다. 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수학여행에 나선 어린 학생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이에 따른 눈물과 슬픔, 분노가 세상을 채웠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병원을 개원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에 나온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원정단 모집 공고를 보았다.
백 일 동안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15,000km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한반도 통일(One Korea)과 유라시아 평화의 필요성을 세계에 알리고, 유라시아 여러 나라와 문화 및 인적 교류를 하고 지역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New-Eurasia), 대한민국 국민의 기개를 알리고 실추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공고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나를 위한 프로젝트 같았다. 나는 얼른 준비 서류를 마련하여 지원했다.
백 일 동안 자전거로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한다 하니 부럽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정신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아내의 걱정이 컸다. 지난해부터 나를 괴롭혔던 치주염은 아내를 더 예민하게 했다. 아내는 “백 일 동안 자전거를 탄다니 당신이 아직도 청춘인 줄 알아요? 당신도 쉰 살이 넘었어요.”라며 나에게 현실을 인지시키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도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병원을 백 일이나 비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나를 보고 아내는 “당신이 그렇게 원하니 집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라며 비장하게 허락하였다. 마치 독립운동가 남편을 만주로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대학교 4학년과 1학년인 두 아들은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세상일은 동전 같아서 장점과 단점이 붙어 있다. 좋은 일만 생기는 선택은 없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선택의 순간에 있으면 당위(當爲)를 떠올린다. 하고 싶은 것, 얻고 싶은 것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커다란 선택을 몇 차례 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인턴을 마치고 외과로 진로를 정한 것도 중요한 선택이었다. 학교 성적과 인턴 성적이 괜찮았고 예뻐하는 교수님과 선배님이 여럿이었기에 당시에 인기가 높았던 돈을 잘 벌 것 같은 진료과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인기가 시들기 시작한 외과를 선택하였다. 그때 떠올린 것이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의과대학에 지원하며 생각한 당위(當爲)였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 모든 진료과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세상살이가 퍽퍽해서 그런지 살면서 생계와 무관한 일을 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잠깐이라도 생계와 무관한 일에 한눈을 팔았다가는 경쟁에서 밀려나기 쉬운 탓이다. 하지만 평생 생계만을 쫓다 죽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 번쯤 큰 뜻에 참여해야 한다. 인류도 생각하고 민족도 생각하고 이웃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은 필수 비타민 같아서 몸과 마음이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백 일의 공백이 생계에 어떤 영향을 주더라도, 백 일의 투쟁이 나를 체력적 한계에 몰아넣더라도 ‘원 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의 라이딩 팀 닥터 역할을 맡으며 큰 뜻에 참여하기로 했다.
2. 합격하고 싶으면 간절함을 이야기하라.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대원 모집에 2,200명이 지원하였다. 첫 관문은 서류 전형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원정단에 어떤 공헌을 할지 적어야 했다. 나는 간단한 이력과 함께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살았고 수영과 마라톤, 철인 삼종 경기 같은 운동을 꾸준히 했으며 의료 지원으로 원정단에 이바지하겠다고 썼다.
일차 서류 전형에 합격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1박 2일 동안 체력 측정과 면접시험이 있었다. 첫날에는 먼저 한국체육대학 오륜관 사이클장에서 와트 바이크(Watt Bike)라는 장비로 근력을 측정하였다. 전자 장비에 연결된 세워진 자전거를 일 분 동안 달리는 것이었는데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페달을 밟았다. 오후에는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으로 이동하여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은 제출한 서류에 적힌 내용을 물어보며 지원자의 성품을 파악하려 하였다. 백 일 동안 함께할 사람을 뽑으려니 당연한 절차였다. 또 우이동 오투월드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은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부터 14시간 동안 37km 북한산 둘레길을 트레킹 하는 이차 체력 측정이 있었다. 2,200여 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20여 명은 모두 체력이 엄청나서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거뜬히 완주하였다.
면접관으로 병원 직원을 선발하다가 다시 지원자로 돌아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2~3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고 면접관이 되니 어떤 지원자가 합격할지가 보인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 면접관은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을 뽑는다. 지원자라면 해당 일을 얼마나 하고 싶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준비했는지 설명하라. 비굴한 자세가 아니라 당당하고 밝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설명하면 금상첨화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였던 차범근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 팀에 있는 박주호 선수를 만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겠지만 나이 들어 반듯한 청년을 보는 기쁨은 참 크단다.’ 면접관에게 차범근 감독이 느꼈던 기쁨을 느끼게 하라.
닷새 후에 조선일보가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3. 꿈꾸는 레고 블록, 팀(Team)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의 원정대 팀이 구성되었다. 원정대 팀원은 모두 일곱 명이다.
대장은 세계적인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김창호 대장이다. 그는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을 한 산악 전문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모험과 도전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이번 대장정을 준비하면서도 청소년 오지 탐험을 다녀왔다.
황인범 대원은 연세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다가 268일 동안 포르투갈까지 자전거 횡단을 했던 친구이다. 이 경험을 ‘268 미치도록 행복하다.’라는 책으로 펴냈고 강연 100℃에 출연하여 ‘지금 아니면’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그는 이번 대장정에서 부대장 역할을 맡았다.
김영미 대원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산악인으로 원정단의 유일한 여성 참가자이다. 하지만 남자 뺨치는 체력을 지녔다. 남극을 포함한 7대륙 최고봉 등반 기록을 한국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세웠다.
안영민 대원은 한국체육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산악자전거 국가대표였다. 이번 대장정에서 자전거 매카닉(machanic) 업무를 담당하였다.
최병화 대원은 해병대 수색대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체육학과에 다니며 연세대학교 조정부 주장이다. 이 친구 할아버지가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3위를 한 최윤칠 선수이다.
이상구 대원은 대구보건대학에 다니는 1991년생 대학생으로 경주공고 산악부 출신이다. 몽골과 베트남을 자전거로 여행한 경험이 있고 청소년 오지 탐사를 다녀온 등산가(Alpinist)이다.
나는 다른 대원과 똑같이 전 구간을 자전거로 달리는 라이딩 팀 닥터 자격으로 선발되었다.
한편 이번 원정단에 의사가 한 명 더 있었다. 총괄 메디컬 디렉터를 맡은 이병달 삼성의료원 마취과 교수이다. 그는 ‘사단법인 한국 달리는 의사들’이라는 의사 마라톤 동호회의 고문이고 히말라야 청소년 원정단 팀 닥터와 국민생활체육 철인삼종경기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 밖에도 취재팀과 다큐멘터리 팀, 지원팀, 차량 지원팀이 있다. 또 이광회 조선일보 편집부국장이 원정단장을 맡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절대로 동업하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람은 무슨 일을 함께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또 이런 경향은 시험 점수와 스펙으로 진학과 취업을 결정하는, 남보다 나은 점수를 얻어야 성공하는 사회 구조 탓에 더 굳어졌다. 하지만 서양은 그렇지 않다. 대학이나 기업이 신입생과 직원을 뽑을 때 팀으로 일한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외국 회사 이름에 동업을 뜻하는 파트너스(Partners)라는 명칭이 많은 것도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 사회가 고도화하였고 경쟁이 치열하여 회사를 차릴 때도 혼자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제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비용을 줄이고 시너지(Synergy)를 거두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었다.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얼핏 의사 혼자 모든 일을 할 것 같은 병원에서도 팀으로 일이 이루어진다. 외과 의사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헌신이 필요하다. 병동에서 주치의와 간호사가 환자를 잘 돌봐야 하고, 마취과 팀이 환자를 잘 마취해야 하고, 수술을 보조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집도의를 제대로 보조해야 한다. 심지어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이 수술실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도 수술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좋은 팀이라 하면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불평도 없고 이타적인 사람이 모인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팀은 세상에 없다. 앞의 병원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불평도 없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레고 블록처럼 다른 크기와 다른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장점을 잘 발휘하며 조화롭게 일하는 것이 좋은 팀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존재하는 까닭이 있듯이 사람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 얼핏 일처리가 빠르지 않게 보이는 사람에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꾸준함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얼핏 게을러 보이는 사람은 체력과 열정을 조절하는 중이다. 관심 있는 일이 생기면 그동안 아꼈던 체력과 열정을 쏟아낼 것이다. 툴툴거리는 사람은 실제로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툴툴거림을 애정과 유머로 받아주면 조직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알려줄 것이다. 얼핏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머리 회전과 행동이 빠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며 동기를 부여하면 조직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 리더(Leader)란 팀의 우두머리를 뜻하지 않는다. 다양한 팀원의 특성을 파악하여 팀원이 알맞은 곳에서 성장하도록 물을 부어주고 윤활유가 되는 사람이 리더이다.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팀원은 백 일 동안 어떻게 진화하며 자리를 찾아갈까? 이번 원정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모든 대원이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바랐다. 나는 아버지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레고 블록이 배송되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심정이었다.
4. 준비가 즐거워지면 성공하는 길이 보인다.
2014년 7월 12일과 13일에 1박 2일 동안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1차 라이딩 훈련 및 캠핑 훈련이 있었다. 훈련 목표가 세 가지였는데,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자전거에 싣고 대장정의 하루 운행 거리만큼 달리며 안전한 자전거 타기를 익히기, 야외에 텐트를 치고 하는 취사와 야영에 익숙해지기, 현지에서 사용할 GPS 프로그램 익히기였다.
아침 8시에 용산 LS 타워 앞에 모든 대원이 모였다. 대장정을 달릴 ‘코가 랜도너’라는 자전거에 오르트립 패니어(각주: 자전거에 장착하는 짐 싣는 가방)를 달고 행동식(주석: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탈 때는 한 시간에 십 분가량 휴식을 취하는데, 이때 먹는 간단한 음식. 초코파이, 초콜릿, 스니커즈, 단백질 바, 음료(물, 포카리스웨트, 탄산음료), 바나나, 빵 등. 반대로 캠핑하며 먹는 밥, 국, 반찬을 취사식이라 한다.)을 비롯한 모든 캠핑 물품을 넣었다. 준비를 마치고 반포 지구로 이동하여 삼십 분가량 사진을 찍은 다음에 양평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길은 달리기 좋게 포장되었고 코가 랜도너는 소문대로 묵직하게 잘 나갔다.
양평에서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고 후미개를 넘고 이포보와 여주보를 지나 야영장에 도착하였다. 1시간 20분 일찍 야영장에 도착한 탓에 김창호 대장이 한 시간 더 자전거를 타자고 하여 강천보를 지나 충주 탄금대 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대원들의 체력이 대단하였다. 123km를 달렸는데도 끄떡없었다.
젊은 대원들이 나서 우리가 잘 베이스캠프용 텐트와 작은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간단한 분임 토의를 마친 다음에 밥을 먹고 함께 설거지하였다. 야영장을 방문한 조선일보 스포츠부장은 대장정이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회사도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대원들을 응원하였다.
텐트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 2시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2시 30분이 되자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가방과 걸어 놓았던 옷이 걱정되어 옆에 있는 베이스캠프 텐트로 가니 벌써 비를 맞지 않게 안으로 들여 놓았고 자전거 여덟 대도 모두 비닐에 덮여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라 한창 잠이 많을 텐데, 참으로 듬직하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미역국과 계란말이, 간단한 밑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자전거를 타고 온 길을 거슬러 올라 100km를 달려 서울 뚝섬한강공원에 도착하였다.
7월 16일에는 준비 회의가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유라시아, 한반도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길!’이란 주제로 이번 대장정의 의미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그는 이번 대장정을 꿈의 길(Dream Road), 평화의 길(Peace Road), 환경의 길(Green Road)이라 했다. 대륙의 일부이면서도 분단으로 섬이 된 한반도에 대륙 국가 한반도의 혼을 일깨우고 대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중심 다리가 될 꿈의 길이며, 분쟁과 갈등의 지역과 나라를 통과하며 평화와 문화, 세계화에 이바지할 평화의 길이라는 것이다. 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전거로 달리며 한국 DMZ와 중국 녹색 만리장성, 몽골리안 그린벨트, 시베리아 원시림, 유럽 그린벨트를 연결하는 환경의 길이라 했다. 또 대원들에게 분단의 상처를 치료하는 큰 가방을 지고 간다고 생각하라고 하였다.
이어진 업무 준비 회의에서는 출발점이 될 베를린까지 자전거를 어떻게 운반할지, 3.5톤 탑차(각주: 뚜껑이 있는 화물 자동차)에 자전거를 어떻게 실을지, 자전거를 어떻게 정비할지, 겨울을 맞아 의류와 물품을 어떻게 준비할지, 캠핑과 식사를 어떻게 준비할지, 전 구간 원정단과 소 구간 원정단의 자전거 라이딩 운영 방안, 자전거와 컨보이 차량(주석: 안전하게 자전거가 달리도록 앞 컨보이 차량은 길 안내 역할을 주로 하고 뒤 컨보이 차량은 뒤에서 오는 다른 차량에 서행 및 우회 신호를 보낸다.), 취재진 차량을 어떻게 운영할지, 통신과 행정, 의료 업무, 기록 촬영은 어떻게 할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대장정에는 전 구간 원정대와 소 구간 원정대가 참여하는데 전 구간 원정대은 모든 구간을 달리고 소 구간 원정대는 (1) 독일 베를린~폴란드 바르샤바 구간, (2) 라트비아 리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 (3)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구간 가운데 한 곳을 달린다.
원정대가 이런 준비를 하는 동안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 사무국은 많은 산적한 일을 해결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지원팀 차량, 무전기, 취재진 카메라와 헬리캠(Helicam)(주석: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촬영하기 위한 소형 무인 헬기로 본체에 카메라를 장착하여 리모컨으로 조정한다.) 등을 준비하였다. 또한 모든 참가자의 비자와 비행기 표를 준비하고, 참가자와 차량이 대장정 경로에 있는 열 개 나라를 문제없이 통과하도록 준비하고, 여러 행사 일정을 준비할 방안을 토의하였다. 백 일 동안 원정단 모두가 먹고 자고 입을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회의하고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프로젝트였다. 조선일보 같은 큰 신문사가 기획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7월 19일 토요일에는 2차 라이딩 훈련이 있었다. 차량이 많은 도심 구간 통과를 대비한 훈련으로 대열이 나누어졌을 때 다시 결합하는 방법을 익히고 라이딩 팀과 컨보이 차량 두 대가 호흡을 맞추고 현지에서 사용할 GPS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침 8시 한국체육대학교에 모여 운동생리학 실험실에서 생체 변화를 측정하는 검사를 받은 다음에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또 자전거 점검과 준비 운동을 한 다음에 아침 10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여 7시간 동안 한국체육대학교-판교역-안양역-인천시청-계양역-행주산성-월드컵경기장으로 이어지는 114km 길을 달렸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하므로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팀원들이 재빨리 적응하였다.
7월 26일과 27일에는 1박 2일 동안 2차 훈련에서 나타났던 문제점에 관한 해결 방안을 찾는 3차 라이딩 훈련이 있었다. 수신호 미숙이나 속도 및 간격 조절 미숙 같은 컨보이 차량 운행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형모 선수를 초청하여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MTB 대회 동호회 부문에서 1위를 하였고, 미대륙 4,800km 횡단에서 2인 1조 1위와 솔로 2위를 한 전문가이다. 한편 미대륙 횡단에서 동료 8명과 함께 차량 두 대와 컨보이 차량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또 GPS 장비의 화면이 작고 차량용 안내가 없어 운전기사가 길을 못 찾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프린터기를 휴대하며 그날 경로를 출력하여 차량마다 지급하는 안과 스마트폰이나 갤럭시노트에 GPS 수신기를 설치하여 화면을 키우고 길 안내 음성이 나오게 하는 안을 준비하였다.
첫날에는 아침 8시에 뚝섬한강공원에 모여 자전거 점검과 준비 운동을 한 다음에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뚝섬한강공원-운길산역-청평-쁘띠 프랑스-가평역-강촌으로 이어지는 126km 길을 달렸다. 컨보이 차량 없이 김영미 대원을 선두에 세우고 고도 10~450m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하였다. 또 강촌 오토캠프장에서 야영하였다.
둘째 날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자전거 점검과 준비 운동을 하고, 이형모 선수에게 컨보이 차량 운영 방법을 배운 다음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촌-강촌 나들목-청평-마석역-남양주시청-상봉역-뚝섬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108km 길을 달렸다. 이형모 선수의 지도로 컨보이 차량 두 대와 호흡을 맞추었고 일반 도로를 안전하게 달리는 방법과 대열이 나누어졌을 때 다시 결합하는 방법을 익히고 GPS 프로그램을 원활히 운영하도록 연습하였다. 또 이상구 대원을 선두에 세우고 이동 경로에 산악 지형을 추가하여 인내심을 키우고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였다.
8월 2일에는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4차 라이딩 훈련이 있었다. 불볕더위 속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훈련이었다. 아침 8시에 경의선 전철로 문산으로 이동하고 문산에서 자전거로 출발하여 임진각과 양주, 의정부를 지난 다음에 동부간선도로로 들어와 미사리 조정경기장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일정을 이렇게 잡은 것은 이날 최병화 대원이 제9회 대학조정경기에 참가한 탓이다. 모든 대원이 목이 터지라 응원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최병화 대원 팀이 당당히 일 등을 하였다. 나도 체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불볕더위 속에서 143km를 달렸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요즘은 학기 초가 되면 초등학생도 반장 선거나 회장 선거를 한다고 떠들썩하다. 출마할 사람이 팀을 꾸려 함께 공약을 만들고 공약을 적은 카드를 들고 반마다 다니며 선거 운동을 한다. 나는 이렇게 자아를 마음껏 표출하는 요즘 학생이 부럽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한다. 내가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선거로 반장을 뽑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학생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하였다. 반장을 한 경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나는 어떤 대표든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이 지명했던 방법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거기에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분야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공부나 운동이나 준비를 잘해야 결과가 좋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준비를 잘하기가 쉽지 않다. 책상에 앉으면 딴생각이 떠오르고 훈련을 하다가도 힘이 들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왜 그럴까? 게을러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을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성공이 주는 기쁨을 아직 맛보지 않은 탓이다. 성공이 주는 달콤함을 한 번만 맛보면 공부하지 말라 해도 책상에 앉고 운동하지 말라 해도 체육관으로 달려간다. 의과대학에 들어갔고 의과대학에서도 성적이 괜찮았으니 나도 공부를 웬만큼 한 셈이다. 그런데 내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중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여자 국어 선생님 눈에 들려고 국어 공부를 조금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엄청나게 오르며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경험을 하였다. 이것은 우리 몸이 즐거움이나 쾌락을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이때부터는 공부가 즐거워졌다. 시험 준비가 전자오락(주석: 지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것처럼 당시는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을 하였다.)보다 즐거웠다. 리더십으로 야구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김성근 야구 감독이 잘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는 평범한 선수를 데려다 짧은 시간에 많은 훈련을 시켜 성공을 맛보게 한다. 그러면 다음부터 그 선수가 스스로 밤잠을 자지 않고 연습하고 노력하여 대형 선수로 거듭난다. 아직 공부나 운동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잠깐이라도 온 힘을 다하여 작은 성공이라도 거두어라.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원정단 훈련이 즐거운 것을 보니 우리 대원 모두 대장정을 성공으로 마무리할 것 같다.
1차 국내 훈련 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마지막 4차 훈련 사진
5. 만찬을 하며 옛사람을 생각한다.
내일은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원정단’이 한국을 떠나는 날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발점인 베를린으로 간다. 나는 병원 일을 일찍 마치고 오전에 예약했던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도착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날 만찬을 하며 양껏 먹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결혼 전에는 동생이나 후배들과 하였고 결혼한 다음에는 아내나 아이들과 한다. 음식을 넉넉하게 시키고 포도주도 한 병 곁들였다. 식사와 이야기를 곁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식당을 나왔다. 아내와 두 아들은 오랜만의 외출에 기분 좋아 했다. 하지만 아내와 두 아들은 내가 왜 만찬을 하는지 모른다. 그저 오랫동안 집을 떠나니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만찬 초대 대상이었던 동생과 후배들도 까닭을 알지 못했다.
캄보디아에는 자야바르만 7세라는 위대한 왕이 있다. 그는 왕족 출신이 아니면서도 참파 왕국(주석: 베트남 중부 지방에 있던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왕국)을 물리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가 왕이 되어 세운 도시가 거대한 성벽의 도시인 앙코르 톰(주석: 앙코르 와트라고도 한다.)이다.
앙코르 톰에는 왕실 광장이라는 넓은 운동장이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제국의 상징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최고 40만 대군이 이곳에 모여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들은 왕이 내린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운 다음에 적을 무찌르러 길을 떠났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가족의 품으로 살아 돌아오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앙코르 톰의 왕실 광장에서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고 살아 돌아오려고 온 힘을 기울였던 무명용사를 떠올린다. 또 그들이 했던 만찬 의식을 흉내 내며 스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되뇐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다짐한다.
6. 바라보고 등 두드려 주라.
인천공항에서 아들과 강남철인 동지들 이정수형님 홍성철님 윤진환님의 환송~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와 저 많은 짐 좀 봐요^^
8월 9일 새벽 3시 드디어 독일 베를린 도착 숙소 앞에서 쌓여 있는 짐 ㅎㅎ
8월 8일에 대원들은 독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에 모였다. 나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갔다. 아침 9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원정단은 자전거를 포장한 상자와 산더미처럼 많은 원정 물품의 통관 절차를 밟은 다음에 모여 대장정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한편 강남 철인 클럽 회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대형 현수막에 적힌 ‘강남 철인 클럽 회장 박영석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대장정 환송’이란 글이 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출국 절차를 밟고 나는 가족 및 강남 철인 클럽 회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또 공항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모님과 많은 친구, 지인이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였다.
많은 사람이 독일에서 서울까지 백 일 동안 이동해야 하므로 짐을 최대한 적게 가져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는 대원에는 카고 백(Cargo Bag) 하나와 배낭 하나, 다른 참가자에는 기내 반입 가방 하나 정도가 허용되었다. 짐을 싣고 12시 45분에 비행기에 올라 오후 1시 15분에 인천공항을 떠났다. 나는 창문 밖을 응시하며 머릿속을 떠다니는 많은 생각을 만났다. ‘대장정이 오십을 넘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와 같은 철학적 물음도 있었고, 새로운 일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안이나 오랫동안 병원을 비우는 것에 관한 생활인으로서의 걱정도 있었다. 나는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얼굴과 응원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어느새 잠에 빠졌다.
평탄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아무리 잘나 보이는 인생도 파헤쳐보면 아픔, 슬픔, 고통, 울분, 상실, 실패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삶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어둡고 어려운 시기를 혼자 뚫고 나가려면 지치고 힘들다. 이럴 때 누군가 바라보고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 주면 큰 힘이 된다. 반드시 많은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도 과도한 업무와 수면 시간 부족으로 체력의 한계와 싸웠던 외과 전공의 시절을 겪었고, 큰돈을 들여 개업한 병원에 환자가 적어 불면의 밤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힘이 되었던 것은 등을 두드려 주었던 가족과 선배, 친구이다.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상대방의 손이 내 등에 닿는 순간에 그의 진심과 응원이 세포 깊숙이 전해졌다. 이것이 프리 허그(Free-Hug) 운동의 진정한 취지이다. 그러면 다시 힘을 내 달렸다. 마찬가지로 나도 친척이든, 선배든, 친구든, 후배든 바라보고 등 두드려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런 노력에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고 체력 소모가 큰 외과의사로 일하며 내 응원이 필요한 곳을 모두 찾는 것은 어려웠다. 힘에 부쳤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얻었던 응원을 기억하며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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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이글을 꼼꼼히 메모도 해가면서 읽고 있어요. 철학. 인간관계. 휴머니즘이 복합적으로 녹여있는글. 계속해서 읽어나가겁니다. 책한권 나오겠는데요. 박전회장님 화이팅.
원코리이뉴라시아 의 관한 책을
한권 내셔도 좋을거같습니다
함축한 글속에 인간냄새가 나며
불혹의나이도 아닌데도
젊은친구들과 긴 여정을 소화하신
박영석대원 멋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속 기대됩니다.
멋진인생
대단하세요.
그 전부터 였지만 울 전회장님 짱 멋져요~
항상 배우고 있어요.
홧팅~~
계속이어지는 후기
기대합니다
형님이 아무래도 자서전을 준비중에 있는듯 합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문체및 구성이 예사롭지 않은것 같습니다.
흥미롭게 연재를 기다릴께요....!!!
잘 읽었습니다.
계속이어지겠지요?
작은성공이라도 거두어라는 말씀 마음에담아 두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
모든일에 동기 부여가 되어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도록 함이 중요 하다는 것을 숙지 하였습니다~
대장정 후기 후편이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