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TNS 전국시청률 19.1%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안정권에는 들어섰다. TNS 시청률 31%로 막을 내린 전작 '프라하의연인'에 비하여 한참 뒤떨어진 시청률이지만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어 놓은 구성으로 여타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얹어 놓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화려한 드라마적 장치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던 SBS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 SBS 제공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가짜 백만장자 청년에게 구애하는 여인들을 다룬 전형적인 '신데렐라'풍 드라마로 미국에서 제작된 리얼리티 쇼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미인대회를 연상시키는 콘테스트 형식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화려한 미인 쇼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고 깔끔한 화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현실의 삶은 고단하고 힘겹지만 무대 위의 삶은 화려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안착할 공간적 여유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몇 가지 구성적 허점이 드라마의 재미를 떨어뜨리면서 시청률의 고공행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 당첨될 수 없는 복권을 사야하는 시청자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그동안 제작되어 온 신데렐라 풍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투르기를 취하고 있다. 시청자에게 '환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어 결말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만들었다.
마치 가난한 다락방 위에 소녀가 힘겨운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상상 속에서 공주가 되어 노래하고 춤추듯이 시청자들도 주인공과 함께 환상에 취해야 한다. 현실과 결말이 보잘 것 없을수록 환상 속의 모습은 눈부시고 화려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배경도 동화 속처럼 유럽으로 설정됐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은영(김현주)은 은행창구에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남자 주인공 영훈(고수)도 설렁탕집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하류 인생이다. 두 사람이 원하는 삶은 공주와 왕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방송사의 모략에 가담한다. 두 주인공은 인형처럼 방송사가 원하는 대로 멋진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사랑을 펼친다.
그러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몇 가지 구성적 허점으로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드라마 초반에 이미 남자주인공이 왕자가 아니라 ‘거지’였다는 사실을 밝혀서 시청자와 주인공 간에 거리를 만들어버렸다. 시청자가 신데렐라풍의 드라마에 심취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환상이 이미 헛꿈이라는 것을 안 이상 시청자들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다.
마치 당첨될 수 없는 복권 한 장을 사듯이 시청자들은 '이 복권은 당첨되지 않습니다'고 경고문을 읽은 상태에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 꼴이다. 가난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만나기 위해서 거대 물량이 투입되고 여자들이 치장하고 나와서 인형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시청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슬픈 배역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위해 콘테스트에 참여한 여성들이다. 여성들은 ‘투루먼쇼’의 투루먼처럼 ‘왕자는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꿈속 연기를 펼쳐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또한 시청자들은 PD로 상징되는 진하(윤상현)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온갖 속임수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트르먼이 된 듯한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 구성의 허점이 드라마의 재미를 앗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두 번째 허점은 백만장자인 영훈이 처음부터 은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시청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첨자를 알고서 복권을 사는 것만큼 시청자의 흥미를 앗아가 버린다. 또한 시청자들은 이미 영훈이 꿈꾸는 ‘최고의 여성’이 재투성이 아가씨인 ‘은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대상과 일등을 미리 알고서 대회를 구경하는 것 마냥 김빠진 콘테스트를 보도록 강요당하는 시청자들의 고역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영훈은 현실에서는 설렁탕집 배달부에 불과하지만 콘테스트 속에서만은 왕이고 권력자이어야 한다. 왕비를 간택하는 왕처럼 현실에선 꿈도 꿀 수 없었던 멋진 여성들을 울고 웃게 만들고 고통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최악의 모습까지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양귀비도 왕의 삶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순진한 청년 ‘영훈’은 콘테스트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죽으나 사나 전직 은행원 출신에 평범한 여자의 사랑이나 구걸하는 볼품없는 남자에다가 설렁탕집 배달부 생활을 만족하는 그저 그런 남자일 뿐이다. 시청자는 착한 주인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여 현실의 고달픔을 잇게 해줄 스타를 원한다. 영훈이 드라마 속에서 화려한 스타로 변신하지 않는 한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
드라마에서는 영훈이 그 많은 멋진 여성을 놔두고 ‘은영’을 택해야 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못하다. ‘첫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기엔 상대 여성들이 너무 멋지고 은영의 모습도 너무 하찮아 보인다. 영훈이 신분적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을수록 여성을 제압하는 능력만은 특별해야 한다. 또한 은영의 상대의 여성이 못된 이유가 페어플레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인 것도 재미를 반감시킨다. 이러한 치밀하지 못한 구성은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완전히 깎아버렸다.
‘신데렐라 뒤집어보기’란 야심찬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기존의 주류 풍을 뒤집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주는 좋은 전례로 남을 것 같다. 동화를 뒤집기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의 경우에도 인물의 성격은 바꿨을망정 기본적인 뼈대만은 바꾸지 않았던 것은 나름대로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제작진도 이를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첫댓글 와...... 따끔하네.............
기자가 제대로 된 기사를 썼구만... 존경...
그러네요. 기자 말대로 이게 바로 가장 현실을 잘 보는 눈이죠. 작가와 연출가를 믿어봐야죠..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