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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애시인 시평
청실홍실 타래로 엮은 그리움이 담긴
문순애 시인의 반지 고리를 들 여다 본 다
시 인 권 영 상
역사는 남자들의 용기에서 부터 이루어 지는게 아니라 구중 규방 여인의 아랫목 반지고리 맡에서 역사가 생성되는 과정을 흔히 말하곤 한다. 섬세한 여인이 만들어낸 역사가 사회를 지배한 예는 허다하다 .
사물과 사물이 교감하며 원대하고도 오밀조밀한 아름다운 시어들을 생성되고 인연과 인연들이 모여서 간절한 그리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사연들이 나열되고 있는가 하면 가족을 필두로 한 원대한 탑을 쌓아가듯 정의 골짜기를 형성해서 인간미 넘치는 사회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시는 문순애 시인의 섬세하면서도 다정다감한 가슴에서 탄생되는 시의 모습들을 담아둔 반지고리를 열어서 멋지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여기 천년에 한번 핀다는 불교의 성스런 꽃 만다라 화가 피어나듯 고귀한 모습으로 펼쳐질 문시인의 작품들이 강호 제현의 가슴에 울려 서 뿌려 지기를 기원해 본다
붓다의 탄생일에 꽃비가 되어 내렸다는 설화가 있는 만다라 화처럼 귀하고 성스런 설램이 파릇파릇 새순을 일으켜 새울 소식과 함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픈 섬세하고도 자상한 풋 처녀 앞섶을 풀어 해치듯 멋진 서정을 펼칠 문우 문순애 님의 시의 세계를 들 여다 보며 서정의 발길을 더듬어 보련다 .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선 사물을 보는 눈의 능력을 길러서 관찰하고 지혜의 눈으로 통찰하는 직관력이 필요하고 새로운 의미[depaysment]를 발견하여 그 가치에 대한 의미를 마음으로 붙잡아서 추상적 관념을 문자로 구채화하는 일이며 추상적 관념을 이미지로 만들어서 정서에 맞게 채계화하는 일이 될것이다 일컬어 한 폭의 추상화적 요소로 나타냄으로서 그림중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 라고 표현하고자 한 다 .
우리의 문학이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했다고는 하나 문자가 중국의 한자로 되어 있어서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로 한 시조로 전해 왔으며 계급사회를 거치면서 억압받던 계층의 한이 서리고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각 지방마다 민초의 비애를 바탕으로 구전 되어온 동요 민요 향가 등으로 전해진것 중에 일부가 문학의 현대어를 통해 전해질 정도에 불과하고 불교의 경전 기독교의 성서등다양한 종교적 신앙의 바탕위에 형성된 간절한 구원 받을 기도문이 문학의 이미지를 통하여 발전하여 와서 대중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인간의 마음 움직임을 시도하다 보니 자연히 문학적 토대로 이입되었으며 그 영향이 없다 할수 없다 하겠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대신 말하기도 하고 이미지와 생각들을 문자를 통해 형상화하기도 하는데 사물과 시인과의 관계는 물론 사물과 사물의 대립을 통하여 시인의 심상과 대립되는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시인은 자기의 생각과 사물과 이미지를 형상화시켜 융합하고 문자 나열의 기교를 가미하여 출시하고 있는데 멋이 있는가 보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하면서도 그 사물 속에 시인의 마음을 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무리 표현이 아름답다 한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시는 독자를 감동 시킬 수 없다.
참된 마음 즉 내용 속에 내재된 시인의 참 마음이 담겼을 때 좋은 시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마음이 선과 악을 구분 지어지지 않는 범위를 포함하고 작가의 심성을 글 속에 담아내고 있음으로 참된 시를 쓰거나 읽었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는 그 뿌리가 한시에서 유래하고 있음으로 현대시에 접목 하기엔 용이하지 못하다가 . 유구한 역사의 산물로 오래도록 선비들의 멋으로 또는 역사서로 자리잡은 한시나 농요 사모곡 등으로 역사를 이루어 왔으며 천년 역사를 간직한 불교의 경전 문학과 이씨 조선의 사대부에 의한 유교사상에 따른 학풍으로 찬란한 문학세계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무나 접쉽 근하기엔 용이하지 못하였고 오랜 세월 그 주류를 이루는 선비들의 전유물인 한시로 문학의 근간을 이루어 왔으므로 일반 대다수의 시민들은 접근하기에 쉽지 않아서 한으로 점철된 향가나 농요 사모곡 등으로 이루어진 천대받는 하급 문학이 일반 민초들에게 이어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제조명된뒤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문맥을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고초의 노래로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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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학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세계인 작가 자신의 운명처럼 점철된 인간미와 사물과 사물 사이의 매개를 원점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연들을 화자로 등장시켜 문자로 나타내는 것을 문학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말하고 있는 좋은 시란 운문으로서의 운율적 요소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인식내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간의 뇌의 저 깊은 심상을 불러내어 울릴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에 감춰진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생각할 맛을 남겨 두어서 염력을 살찌우는 것이며 또는 평상시 같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을 찬찬히 살필 수 있는 여유와 경이를 독자에게 더해서 시의 신비감을 배가하고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멋을 주기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대신 말하기도 하고 이미지와 생각들을 문자를 통해 형상화하기도 하는데 사물과 시인과의 관계는 물론 사물과 사물의 대립을 통하여 시인의 심상과 대립되는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시인은 자기의 생각과 사물과 이미지를 형상화시켜 융합하고 문자 나열의 기교를 가미하여 출시하고 있는데 멋을 가미한 글자의 연을 다듬어 내기도 하고 독자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감명을 얻어내기 위한 다양한 기교가 쓰여 지기도 하는가 보다.
현대시의 나아갈 방향타가 함축과 요소를 가미한 질서속에 정해졌다고 해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없다면 발전의 기틀을 잃고 말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터치와 강열한 구도와 타 예술들이 정립하는 자세의 중요성과 새로운 문물에 융합하는 시인들의 자세가 더욱 중요시 되고 있어서 좀더 나은 생각나름의 정립이 필요한가 보다 ,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 깃든 심상을 노래한다. 사물에 시인의 마음을 태우고 노래한 싯구에는 언제나 작가 자신의 저 깊은 내면의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항상 독자 앞에 어쩌면 자신의 나신을 들어낸 채로 심상의 산등성이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작가들은 한 문장 한 소절을 엮어 출시한다 라고 할 때 독자 앞에 선 자세대로의 나신에 한없는 부끄러움과 자신감의 다짐으로 작품을 퇴고하고 또 퇴고하며 구도의 정리를 거듭하는 산고를 치르느라 여념이 없어야 하겠다.
그래도 출시해 놓고 나면 언제나 모자란 자신의 표현에 채찍질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게 시인들의 자세이며 한 없는 그리움이 일어날수 있는 환경조성적 요소를 가미하기를 게을리 해선 않된다 ..
어느 시인이 말하길 시란 인간의 작은 영혼이 머물고 있는 작은 움막집과 같아서 언제나 영혼들이 상존하며 대화하고 공감과 갈등으로 영혼을 살찌워 가는 산실이라 하는데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작품 속에 화자로 등장시켜 작품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현실감각을 외면하는 작은 실수로 인해 시적 자아를 잃고 있는 시가 우후죽순 떠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만 시인의 길이란 그 시대의 배경에 따라 문학적 흐름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휴머니스트를 자처하며 사랑을 노래하듯 서정의 꽃마차를 굴리는 방랑시인의 기질을 간직하신 문시인 같은 서정시인의 가슴엔 늘 그리움이 가득함을 눈여겨 볼만하다.
서정시인의 길이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진 않지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아름다운 시어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한 사물에 집중하여 산출하는 그리움의 자화상이 문순애 시인의 작품성이며 늘 그리움이 녹아내리은 언덕배기에 기대 선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볼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의 산실의 주역이신 모정을 필두로 서정을 생산 하고 있어서 자애와 박애가 스며 있으니 과연 이시대의 여인상을 목표로 서정으로 매진하고 있음을 였볼수 있다 .
여기 문 순애 시인은 언제부터인가는 이른 봄 새싹이 솟아날 때처럼 연한 잎새들을 작품 속에 나타내길 즐겨한다. 무더운 여름길가의 높은 대공위에 한 마리 노오란 새처럼 피어있는 원추리 꽃을 자신인양 작품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시인의 여린 심성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작은 이기심의 자유를 가진 원추리 꽃을 닮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문시인의 작품 속에 한 발짝 더 들어가 보자. 이른 봄, 창조적 향기에 젖어서 시심을 아우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보헤미안의 기질을 가졌다. 자상하고 섬세한 여인상에 어울리게 맑고 고운 심성을 자존심 만큼이나 소중히 가꿔가는 모습은 문시인 풍의 멋을 끌어내고 있어서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서정 시인임을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 하겠다.
현대 시단에서 가장 다루기 어러우면서도 잘 시도하지 않는 서정을 토대로 이어 가시는 문순애 시인은 자상하신 외모와 더불어 오직 외길 서정을 고집하는 것은 그가 겪은 어릴적 추억된 그리움들이 산재한 모습채로 가슴을 지배하고 있으며 자연에 녹아있는 순수하고도 거짓없는 그리움들을 모토로 작품이 구성되기를 기구하고 있어서 그 사물과 심상이 어우러저 가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여 여기 본문 중에서 기억되고픈 민달팽이의 느린 미학으로 서막의 장을 잡아 가고픈가 보다
힘겨운 오체투지
끈적거리는 고행의 험로
배밀이로 벽을 올랐을 것이다
사막을 횡단하듯
베란다 화분의 신선한 풀냄새에
이주를 결심하여
생을 이끌고 기어왔을 부단한 몸짓
유리창에 선명하다
제 살던 곳으로 보내주려 잡으
물컹한 감촉
창밖 외벽에 놓아주니
언제쯤 땅으로 왔던 길 되짚어 가려나
다음날 화단에 물 뿌리니
잠에서 깬 민달팽이들이 화초에서 움찔
낯선 방문을 하였던
민달팽이가 그중 한 마리길 바랬다
물세례에 풀잎 그네 타다가
흔들흔들 어지러웠는지
한참을 꼼짝 않고 있다가
슬금슬금 풀잎 뒤로 숨어든다
산다는 것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생은 늘 진행형이다
<본문 민달팽이 전문>
은근하면서도 음미하면 할수록 구수한 인간미가 풍기는 싯구와 상반된 서정시의 솔직한 내용들이 전시처럼 나열되고 있는데 그 표현의 방정식이 없고 매우 자유분방하며 서파격적이면서도 서정적 사고를 자리에 깔고 있음을 고찰할 수 있다.
작금의 우리 시단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30만명 시인시대를 맞으며 시인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전파매개의 발달과 영상미디어의 홍수 속에 발 디딜 곳 없는 만원 사례의 현실속에서 함께 걸어 가고자 하시는 서정 시인들의 역할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시를 써야 하는지는 시인 각자가 정해야 할 숙명적 과제이다.
힘겨운 오채투지 배밀이로 벽을 기어오르며 고행의 정도를 고찰하신 문시인의 가슴엔 아마도 자연속에 고행하는 모든 사물과 교감하고픈 순수함과 고행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파 해치고 픈 마음으로 민달팽이란 작품을 책머리에 둔것으로 보인다.
느릿느릿 말하지 않아도 개으름이 표현되는 민달팽이의 일생이 얼마나 고달플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초의 삶처럼 보통 생물의
살아가는 이치를 배워 보고픈 염원이 담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주전자에서 내보낸
방안 가득한 보리 내음
아버지의 목소리는
물 끓는 주전자의 뚜껑처럼
달그락거리며
나른한 귓가에서 맴돈다
다음 이야기를 보채며
바짝 당겨 앉던 아랫목에서 듣던
옛날이야기는
따스한 한모금의 행복이다
슬픈 이야기줄거리의 다음이 궁금해
눈물 꿀꺽 삼키다 사래 들면
모두들 까르르 웃다가
엉덩이에 뿔 하나씩 나곤 했었지
구수한 보리차를 마실 때마다
귓전에 맴도는 아버지의 옛날이야기
보리차 내음은 아버지의 냄새다
<본문 옛날 옛적에 전문 >
해가 뉘엇뉘엇 지는 저녁나절에 고향길을 갇는 듯 평화와 정이 넘나드는 시골길에 저녘을 짓는 실연기 피어오르고 삼배적삼을 땀으로 흠뻑 적신 큰 아버지 넓은 등이 믿음직 스런 고향모습으로 그려지고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여름밤을 데우듯 그리움을 나타내 보이고픈 문시인이 꿈꾸는 독특한 사보타지인 듯하다
어느 시인이 말하길 "시란" 인간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작은 움막집과 같아서 언제나 영혼들이 상존하며 대화하고 공감과 갈등으로 영혼을 살찌워 가는 산실이라고도 하는데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작품 속에 화자로 등장시켜 작품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현실감각을 외면하는 작은 실수로 인해 시적 자아를 잃고 있는 시가 우후죽순 떠돌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여기 문시인의 예날 옛적에란 시속엔 조금은 엄버런스하면서도 고향정을 나타내고픈 욕구가 사물과 정으로 엮여서 꿈을 꾸듯 가족 사랑의 정원으로 향하길 원하는가 보다 .
다만 시인의 길이란 그 시대의 배경에 따라 문학적 흐름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휴머니스트를 자처하며 사랑을 노래하듯 서정의 꽃마차를 굴리는 방랑시인처럼 순애보를 간직하신 문시인은 그런 자상한 심상을 갗추고 늘 그리움이 가득한 서정시를 감미하며 그리움으로 자연스레 접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볼만하다. 하겠다
가끔 바람이 힐끔거릴 뿐
무료한 시간 뒹구는
앞마당엔
침묵이 잡초로 자라고
텃밭엔
무관심만 무성하니
삐뚜름히 기울어 버티는 기대가
아득합니다
바람의 기척에도 반가워
사립문 열지만
행여나 하는 기대만 삐걱거려
다시 도지는 관절염
허물어지는 마음 견디자니
하릴없는 기다림만 무성합니다
빈집에선
가난의 인기척도 그리움이랍니다.
<원문 빈집1 전문 >
언젠가 오랜만에 찾은 추억이 숨 쉬는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고 이미 도회지로 떠난 사람들이 남긴 빈집들이 곳곳에 산제한 모습의 기억과 더불어 잡초무성한 장독대 앞엔 물망초 한 포기 제멋대로 꽃을 피워서 주인을 기다리고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던 추억마당엔 덩그러니 웃자란 오동나무가 자리잡고 있음을 바라보고 허전한 기억을 더듬고 있음이리라 .
시인의 가슴으로 내리는 서정의 빗줄기는 여름날 장마철 소나기 만큼이나 넉넉하고 많은 양과 연속으로 계속되며 문학과 오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자아적 도취에 취해서 예술은 무엇이고 참 삶의 정점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보이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터득하고 표현함으로서 심상으로 깨달아 가는 행위와 표현이며 오락은 현재의 마음상태를 그저 즐거움으로 인도하고 있다면 문학은 과 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서의 기틀을 잡아가는 학문임을 알아야 하며 시대적 대변을 작품속에 자연히 도태되지 못한채로 전해 지기에 시대적 책임감도 동반하고 있음으로 역사를 창조한다는 조심성을 가져야 함은 물론 책임감도 동반하고 잇음을 고찰할 책무를 가저야 한다.
과거의 거울이 없다면 현재를 조명할 수 없고 현재는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어 가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를 조명 하고자 한다면 모든 면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관점에 빠져서 오류를 범하기 쉽다.
문시인의 위에서 "빈집1을" 바라보며 사립문 안으로 비뚜룸히 반쯤 열린 저 문안에서 정이고운 시골 아낙을 떠올려서 그날들의 추억과 사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을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 지난 과거 속에 투영된 자기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유하다보면 분명 척박한 가난의 추억속에서 그리움이 되 살아 나리란 기대를 바램하고 잇는가 보다 .
눈 질끈 감고 어두운 바다로 나가
집어등 밝힌 고깃배
그물을 당기는 억센 손아귀에서
본능으로 반복되는 노동이 숨가쁘다
사리 물때 깊이에서
무리지어 헤엄치던 멸치 떼의 몸부림에
바다를 공유하는
어부의 어깨는 팽팽해졌다
긴장이 역력한 바다에서
생과 사가 판가름되는 찰라마다
검푸른 삶이 비릿함으로
건져 올리는 묵지함이 반짝 거린다
<본문 삶의 현장 원문 >
밤새껏 높은 파도에 지친 육신을 달랠 기력도 소진한 어부는 희미한 집어등 불빛속에서 고사리손으로 흔들어 주던 어린 아이의 웃는 모습을 떠 올리며 고된 노동의 현실도 잊었지만 굳은 손마디로 전해 오는 어군들의 삶의 본능을 느낄 새도없이 묵직한 수확에 가족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다 본다
삶의 현장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시인의 세계는 늘 가슴으로 느끼는 희열과 마음속 설램으로 다가오는 온갖 추억들을 고찰하며 문순애 시인은 생활의 역경 속에서 찾기를 일상화 하면서도 회한으로 얼룩진 그리움을 섞어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가 보다 삶의 현장과 계절의 현상을 시인은 묵과 하지 못한 그리움 속에다 심기를 게을리 하지 않지만 서정의 길엔 민감한 시인의 심상이 그대로 노출 되는듯 하다 .
계절에 민감한 시인의 길을 답습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그리움과 사랑을 전제로 시인의 길을 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별 성과가 없을 것이란 걸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데도 서정시를 고집하는 건 이 시대의 서정시인의 갈 길은 결국 인간이 동반하는 외로움의 길이란 걸 알면서도 필연의 우직함으로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위치를 분별하고 언제나 주저함 없이 다가가는 일은 분명 용기임이 분명 하다. 시는 분명 언어의 미학이며 인간들 심성의 고향이요 그리움의 산실로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 받았고 또한 시인은 그 공간에 자유로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창조의 장이며 그곳을 운영하는 신과 같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언제나 주위 환경에 부합하고 융화하는 자세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시인의 길이며 문학도들의 명심 과제인 것이다.
문 시인께서는 여기 삶의 현장으로 가장 평화로와 보이는 넓은 수평선 위의 밤바다에 집어등 불빛속에 그려낸 고난의 행군을 조명하며 자기 시와 결부한 그리움을 산출하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넓고 넉넉한 수평선위에 꿈을 펼치면서도 도전과 그리움과 동반한 노동의 대가가 가족의 행복을 예약하고 있음을 고찰하고자 하는가 보다
손 곱아 햇살 한 됫박 꾸어오다
발길에 채이던 시詩처럼
냉이꽃 피어서 어리둥절합니다
눈에 띄려고 애쓴 시간 어쩌지 못하여
추위에 떨던 시詩처럼
무관심에 뿌리박고 냉이꽃 피었습니다
무심결에 밟히면서 한때 시詩였노라고
생색냈던 부끄러움도
올망졸망 냉이꽃으로 피었습니다
소박한 국그릇 내밀며 미안해하던
순진한 아낙의 마음처럼
별거 아닌 듯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덜컥 엎지른 눈물처럼
당황스럽던 시詩가
두서없이 냉이꽃으로 피었습니다
<원문 냉이꽃 전문 >
그 유명한 피카소 의 동자들이란 그림 작품이 생산 되기까지 피카소는 어린아이들과 어울린 생활을 하면서 수년의 시간과 진력을 기울였다는 설화가 있듯이 문순애 시인은 여기 냉이꽃이 피는 과정과 시가 생산되는 과정을 표현 하면서 냉이꽃이 그 밀장의 얼음속을 견디다가 한줌 봄볓에 그리움처럼 피워내는 향기를 이입하고자 하는듯 간절한 소망과 시인 자신의 그리움을 표출하고 있는듯 하다 .
누가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척박한 환경을 딛고 아름다움을 가꿔가는 냉이꽃의 모습에서 문시인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느껴지는 일들을 열정 하나로 일군 생활의 밑그림들을 심상에 이입하여 시어로 탄생 시키는 일이 수월치 않음을 느끼며 탄생되는 시의 향기를 곱게 이입하려 함인가 보다.
보통 사람의 생활을 할애해서 다만 심상의 모퉁이를 두드려 보겠다는 열정이 그 순진한 여린 모습에서 어떻게 과감한 시도로 글을 쓰겠다는 도전을 하게 된 것인지 존경 스럽기 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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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인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특별히 아름다운 사물보다 들꽃처럼 환경이 정리되지 않은 곳에서 기적처럼 작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사물에 더욱 애착을 느낀다. 작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신비의 칼이 시인에게 잡혀 휘둘리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환호하고 있는데 시인에게 주어진 언어란 도구가 그와 별 다르지 않다.
언어의 창조는 시인에게는 기본 무기이다 .그 언어에서 웃음을 창조하기도 하고 눈물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그리움을 만들어 사랑의 기초를 놓는 것 또한 시인의 책무이며 작은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들꽃처럼 작은 생명에도 존엄의 뜻을 두어 그리움의 길로 가서 모든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문 시인은 이들 선배의 길을 답습하는 듯 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작을 멈추지 않는것은 보통의 삶을 문학에 접목 하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라 생각된다 ..
하얀 설원을 연상 시키는 티 없이 고운 문시인의 심상이 민족의 위대한 어머니를 연상하게 하고 문시인의 자애로움을 풍기시는 다정다감한 모습속에서 활화산처럼 피어나는 열정과 한 처럼 각인된 그칠 줄 모르는 그리움들을 그 넉넉한 가슴의 반지고리에서 끄집어 낸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일 인데도 과감히 서정에 도전하는 심순애 시인의 장도에 함께하게 된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문시인과의 교우는 다음 문학 카폐 "꽃씨뿌리는 마을"에서 함께 댓글을 주고 받으며 시작하여 동인지를 통한 교우와 출판 기념회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 밀양 얼음골 사과밭에서 밤새 모닥불 피워놓고 우정을 다진일부터 해서 오랜시간 함께 우정을 나눈 사이이며 감히 문우로서 시평을 쓴다는게 옳은 일인지 생각하기도 햇으나 문시인이 생각하는 문학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으로 그래도 쌓은 정을 무기삼아 감히 도전의 필을 잡았음을 고찰한다.
내가 아는 문시인은 지금은 예향 전북 정읍에서 내장산 올래길 애기 단풍처럼 곱게 다듬으신 그리움으로 정읍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하시면서 부산 청옥문인협회 전북 지부장 시화문학 초대 작가 다음 문학 카폐 계시판지기와 동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남다른 열정과 학구열로 서정의 씨앗을 뿌려 가며 텃밭을 일구고 계시며 올해 고희를 맞는 중견인으로 자리 매김 하고 있다.
남다르신 노력하시는 시인이시며 자연에 내포된 신비를 필력에 이입하길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는 자연사 박물관 같은 분이면서도 남 앞에 선듯 드러내 보이지 않는 은둔자이시기도 하다.
혹자들이 말하길 스스로 노래하는 일이 뭐 그리 어럽겠냐들 하지만 작가의 길이란 독자들에게 나의 모든걸 발가벗겨 보여내는 과감하고 당찬 도전이기에 배가의 노력과 열정이 요구되는 일인만큼 문순애 시인의 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섬세한 여류시인의 모습속엔 보석처럼 갈무리된 심상들이 반지고리에 차곡히 쌓인 실타래처럼 길고도 질긴 인연들이 담겨 있음이며 문시인을 알고 잇는 주위분들은 그의 섬세하신 자애와 과감한 터치가 명작의 산실이 될것임을 확신해 보고자 한다
척박한 땅을 바라보기 보다 먼산을 바라보라는 말이 생각난다 먼산은 지금이나 다음이나 항상 푸르게 나를 바라봐 줄것이고 항상 푸름의 꿈속에 있응것이기 때문이다 문순애 시인님 아마 지금보다 먼 훗날 주위에서 인식하는 일들이 먼산처럼 푸를 것이란 사 실을 인지하시고 용기와 열정이 식지 않길 기원해 봅니다
시인 권 영상 프로필
문학 21 창간 신인으로 문학 입문 ‘
한국문협 제 2대 양산 지부장
양산 삽량문학 창간 및 초대 회장 역임
경남문협 회원
계간 주변인 시 창간 초대 발행인겸 동인 회장 역임
문학 21 편집 인 역임
다음 카폐 꽃씨뿌리는 마을 동인지 주필
저 서
제1시집 산처럼 물처럼
제2시집 산매아리 들리는 곳에 물이 흐르고
제3시집 달맞이 꽃
제4시집 사랑의 스캔들
제 5시집 산여울에 피는 꽃
동인지 및 문학지 300여회 시 및 평론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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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자크기 띄워쓰기 문단정열 등이 미숙하게 처리 되었습니다 '
문영길 시인님의 퇴고를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10페이지를 기준으로 작성되기는 했으나
내용이 부실 하던지
많아서 넘치면 줄이고 싶으면 연락 주시면 다시 손질 하겠습니다
참 제사진이 필요 하시면 어디에서 찾아서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