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서부교회가 김천의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까? 교회 이름을 서부교회로 명명한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부교회’하면 저에게는 마냥 친근하게만 느껴지는 교회입니다. 양규식 목사님이 그렇고 그 교회 장로님들이 그렇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교회 중에 서부교회는 선순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난 주 초쯤 될 것입니다. 아니군요. 추수감사절 전 날이니 11월 20일 토요일이군요. 서부교회 부목인 라관태 목사님이 11월 28일 주일 오후 2시 8,9 여전도회 헌신예배 설교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해왔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겠노라고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 친척들이 모임이 있어 지례의 한 가정에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라 목사님이 전화로 헌신예배 설교 제목과 성경 구절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니 내일(27일, 토요일) 오전 10시까지 알려주시면 된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11월 28일) 낮 예배 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별로 준비도 못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만 했는데도 마음의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이 신기하지요? 출발하고서부터 서부교회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휘파람이 나왔습니다. 마음이 즐겁다는 이야기입니다. 2시 예배 시간 20분 전에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목양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양 목사님은 주일이어서 무척 바쁘신 것 같았습니다. 상담이며 제자 교육하며 BCM 교육 참석자들을 격려하는 일 등으로 당장 옆에서 보기에도 아주 바쁘게 보였습니다. 목회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한가한 날 제일 바쁜 날이 됩니다.
시간이 되어 본당으로 올라갔습니다. 교회가 거의 꽉 차 보였습니다. 서부교회의 저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느 교회들은 주일 대예배 때는 많은 성도들이 참석하지만 오후 또는 밤 예배 때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드는 것이 상례입니다. 하지만 서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로님들도 거의 모습이 보였고 아는 권사님 집사님들도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런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 예배 끝나고 공동식사를 하고 이어 2시 찬양 예배를 드리니까 줄어드는 숫자가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 예배 뒤 귀가했다가 다시 시간에 맞추어 교회에 나오는 데는 주위에 발목을 잡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양 목사님은 주위에 늘 덕담을 즐겨 주시는 분입니다. 단점이 많은 후배 목회자들에게도 많은 단점은 덮어 두고 적은 장점을 들추어내어 격려를 해 주십니다. 설교 전 저에게도 과분한 칭찬의 말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설교에 자신이 생기더군요. 제목은 '온전한 주일성수'였고 본문은 이사야 58장 13-14절로 잡았습니다. 주일성수는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지만 믿음 좋은 신앙인들도 가끔 범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교회 설교이니 만큼 편견이 배제된 일반적 설교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감이 덧붙었습니다.
서부교회 8,9 여전도회는 젊은 전도회입니다. 9여전도회는 막내 전도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새내기에서부터 아마 30대 초반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8여전도회는 30대가 주축이고 간혹 40대 초반의 성도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연령대입니다. 한 집사님이 대표기도 중, 사회적으로 볼 때도 가장 분주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여전도회니만큼 주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헌신예배의 '헌신(獻身)'은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받치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설교 전 간단한 멘트를 하면서 한참 일할 나이에 더 열심히 헌신하는 성도들이 될 것을 권면하면서 종교개혁의 횃불을 치켜 든 마틴 루터의 예를 이야기했습니다.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95개조에 달하는 항의문을 게재함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루터를 조용한 가운데 두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많은 일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발이 네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루터의 기도 시간은 그 이전보다 갑절로 늘어났습니다. 주위에서 그에게 빈정대는 말투로 물었습니다.
"아니 바쁘다고 아우성이면서, 그래 기도는 왜 그렇게 많이 하는가?"
루터가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으로 대꾸합니다.
"여보게,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많다는 이야기이고, 또 일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의할 것이 많다는 얘기가 될 텐데,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 기도 말고 또 있는가? 나는 바쁘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 시간도 갑절로 더 하고 있다네."
성도들의 눈들이 반짝 반짝 빛나 보였습니다. 농어촌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도회지 교회의 성도 연령도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아니,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현상입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낮은 출산률의 결과가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2,30년 뒤를 걱정하지 않는 교회가 드뭅니다. 오늘 서부교회의 저 젊은 눈빛들에서 저는 고령화로 교회 쇠퇴를 염려하는 이외 지역을 발견한 듯해 기뻤습니다. 서부교회는 상대적으로 주일학교부터 중고등부 청년회 장년부 등 고루 분포해서 미래를 잘 대비하고 있는 교회 같았습니다.
헌신예배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습니다. 양 목사님은 다음에 또 모시겠다며 힘을 보태 주었고, 여전도회 임원들도 모두 흡족해 하는 듯해 안심이 되었습니다. 서부교회 조동환 장로님은 옆에서 늘 기도로 제 걱정의 문을 막아 주고 있는 분입니다. 그 교회 재정을 맡고 있고 또 우리 지방회 교육부 서기로 두루 일을 하고 있는 조 장로님이 헌신예배에 참석한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오늘 구미 중앙교회에서 있을 BCM 교사교육에 참석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별히 전부터 주겠다고 약속한 기성총회 발행 <올바른 교회언어 예문집>을 두 권이나 헌신예배 설교 뒤 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작은 행동에서도 빈틈없는 조 장로님의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교계가 침체되고 있다며 염려들을 많이 합니다. 제가 이번 서부교회에 가서 느낀 것 하나는 교계가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과 발전의 출구를 찾기 위해서 많은 세미나가 열리고 있지만 정녕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을 덮어두고 테크닉만 가르치고 있는 탓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씀에 충실하고 개 교회 이기주의를 벗어나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할 때 교계가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 전 양 목사님과 나눈 대화에서도 이런 고민거리들을 교환했습니다. 오늘 헌신하기로 작정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서부교회 8,9 여전도회를 시발로 서부교회 전체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헌신된 신앙생활로 21세기 안디옥교회의 영광을 되찾아 교계에 크게 이바지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목사님의 생명있는 말씀은 누구나 은혜를 받지요
성도들의 눈빛이 반짝 반짝 빛났다는 것은 말씀에 흡수력이 굉장했다는 증거인대요
덩달아 저도 기쁩니다 상상이 가서요 목사님 늘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송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시간 되시면 또 한 번 내려오세요. 주님 안에서 아름다움 추억을 그려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