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세상을 꿈꾸는 영원한 소녀
-곽종분의 작품세계
박 일
1.
바람 불면 아장아장 아기연꽃은
초록빛깔 양산 쓰고 춤을 추어요.
우리스님 저를 봐요 자랑 할래요
진흙 속에 꽃을 피운 연꽃이래요.
아기연꽃 방글방글 자랑한대요.
해님달님 보시면은 부끄러워서
아기연꽃 꽁봉오리 들고 있어요.
연못가에 부처님 저를 보셔요
진흙 속에 꽃을 피운 연꽃이래요
아기연꽃 생글생글 웃고 있어요.
-곽종분 유아동요 「아기 연꽃」 전문
전화를 올렸다. 단절되어 있다가 갑자기 근황이 궁금해서 전화를 올린다고 쉬 소통이 되겠는가. 전화가 안 되니 불안해진다. 급히 한국불교청소년진흥회 곽영석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올렸다. 얼마 전까지 유아동요와 불교동요를 작사하면서 그 회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차녀 연락처를 보내주었다. 그에게 전화를 올렸다.
“건강한 편이지만 불편한 곳이 많아 거의 활동을 못하신다.”
고 한다.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1933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동래여고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1964년 초등학교 교사 채용고사에 합격하여 초등교사로 재임했고, 1998년 퇴임했다.
문단 경력은 1984년 『아동문학 평론』 여름호에 동화 「은행잎 하나」가 추천되면서 등단했고, 동화집으로 『별의 뺨』(소문출판사. 1989), 『눈꽃이 피는 날』(소문출판사. 1993), 『그림으로 잡은 고래』(명성출판사. 1995) 그리고 『눈사람과 인형(아동문예. 2011) 등을 상재했다. 전자책으로 불교동화집 『부처님의 일기장』(고글. 2014), 창작동화집 『은행잎에 쓴 편지』(고글. 2014) 그리고 구연동화집 『벌 받는 사자』(고글. 2014) 등이 있다.
아동문학은 산문(동화)과 운문(동시)을 모두 수용하는 횡적문학이어서 동시와 동화를 넘나드는 작가들이 많은 편이다. 그는 동시를 쓰는 동화작가다. 첫동시집 『양지꽃 피는 언덕』(글숲. 1986)은 첫동화집보다 앞서 출간했으니 동시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동시집으로 『메아리 편지』(글숲. 1988), 『싱가포르 아기 새』(아동문예. 1995) 그리고 동요작사집 『노래 항아리』(고글. 2014) 등이 있다.
동화는 2018년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연간집 『사거리 팬시점』에 동화 「아기 배 엄마 배」를 상재한 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럴 이유가 있다. 곽영석 총장이 협회 까페에 올린 글(2015. 12. 26)이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원로아동문학가 곽종분선생이 11월 대장수술과 12월초 안과 수술 등 근 한 달 간 부산대병원에서 입원하며 수술을 마치고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최근에야 집밖을 오갈 정도로 회복되었다고. (중략) 건강이 회복되면 호흡이 긴 동화를 쓰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최근 동요동시에 집착하신 것이 안과적 장애 때문임을 이제야 알았으니-
원로들 달달 볶아 글 쓰게 하는 내 취미도 이제 새해부터는 삼가야지. 모시고 사는 딸들이 나를 원수로 알고 있다. 늙은 어미 죽일까봐서-
2015년에 백내장과 대장 수술을 받았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끈기 있게 긴 글을 쓰는 행동은 무리였을 게다. 그래서 동요 작사에 더 애착을 보였다. 한국불교청소년진흥회의 찬불가(불교 동요 및 불교 가곡) 보급 등에 관여하면서 불교도인 그의 정서를 한층 자극시켰으리라.
그의 저서를 찾았다. 동시집 『싱가포르 아기 새』(아동문예. 1995)가 보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차녀가 보내준 동화집 『은행잎에 쓴 편지』에 마음이 그득해진다. 좋은 글(작품 세계)로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그 책을 받았다.
수상 경력도 꽤 있다. 제12회 부산아동문학상(1990), 제10회 불교아동문학상(1994), 제17회 부산문학상 본상(2011), 황진이문학상과 제8회 불교청소년도서 저작상(2013) 등을 수상했다.
‘영원한 소녀’라는 애칭은 정말 잘 어울린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늘 웃음을 띠고 소녀처럼 분위기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2.
동화는 성장하는 아동들에게 현실적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예술적 승화작용에 그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는 동화집 『은행잎에 쓴 편지』 ‘책머리에’ ‘대부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얻은 소재’라고 했고, ‘작품 모두가 사랑이 주제입니다. 친구와의 사랑, 작은 동물을 보살피는 사랑, 가족 간의 사랑! 그런 사랑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정감 있는 글’이 되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교단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이란 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쓴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실린 단편동화 16편은 제1부 ‘할머니의 어머니’와 제2부 ‘아름다운 꿈’에 나뉘어 실려 있다. 그러나 생활동화는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가 우의적寓意的 표현에 의존하고 있다. 우의적이란 의인화하여 비유하거나 풍자하는 표현이다. 그나마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작가의 어릴 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뒤처리하기 위해 짚이나 돌멩이를 사용했다는 등 할머니의 처절하게 가난했던 어릴 때의 생활 단면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형식이다.
생활동화는 소년소설이다. 그래서 동화와 차이를 보인다. 동화의 발상은 생활감정보다 전설이나 신화처럼 물활론적 태도에 의존한다. 배경도 현실세계보다 환상의 세계다. 우의적 환상에 의해 서술한 동화는 15편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주제다. 이에는 작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 삶의 방향이 들어 있다. 큰 주제가 순수 동심의 구현과 사랑이라면, 작품마다 가지는 소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동화 세계의 부분이라도 접근해본다.
환경문제를 다룬 동화는 「실러의 아기들」과 「유채꽃의 약속」 등이다. 경제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지만, 환경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작가들도 소홀하게 할 수 없는 소재다. 지구온도가 2도만 상승해도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아서 평균 해수면이 0.7m까지 상승하고, 유럽의 날씨가 중동처럼 변하면서 폭서현상이 생겨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뿐 아니라, 산불의 위험도 커질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점점 그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다.
「실러의 아기들」은 눈이 셋 달린 강아지를 출산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다. 의사인 아
빠가 수술해 줄 것이라고 자위하지만, 한때 환경호르몬 문제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환경호르몬은 생물체(동물이나 사람) 내에 들어가서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하여, 체내의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킨다. 이것이 남자를 여자로 바꾸기도 한다고 했고, 기형아 출생의 원인이라고 했다. 세제도 그것을 배출한다고 해서 세제 사용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유채꽃의 약속」은 유채꽃밭에 소풍 온 아이들이 꽃밭을 훼손시킨 바람에 이듬 해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요즘에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산책로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오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사람도 만난다. 이와 더불어 애완동물 용품쇼핑몰이나 관련 산업도 성업 중이다. 이런 시대가 올 거라는 예감이라도 한 것은 아닌가. 강아지를 소재로 한 동화는 「편지 읽는 삽살이」, 「인철이와 몬순이 이야기」, 「강아지와 함께 공부한 날」과 「방울이네 집」 등이다. 「강아지와 공부한 날」은 첫 시간 공부가 시작될 때 교실에 들어온 강아지를 오전 수업 내내 아이들이 돌보아주면서, 강아지와 겪는 이야기다. 강아지를 다독여주는 마음이 한결같이 맑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추억이나 그리움은 소중하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날마다 옥상 장독에 날아오는 산새를 보고, ‘어머니!’라고 부른다. 마치 영혼의 새인 양 여기는 할머니의 모습에 잠시 혼란을 겪는다. 이를 걱정했지만, 선생님의 얘기를 틀어놓으면서 자신의 마음도 풀리고,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한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글로벌 소재를 보여주는 동화는 「엑스포가 열리는 날」, 「은행잎에 쓴 편지」와 「꽃들과 약속한 후리」 등이다. 「엑스포가 열리는 날」은 엑스포가 열리면서 이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에게 자기의 집을 민박으로 제공하는 이야기고, 「은행잎에 쓴 편지」는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있는 아빠를 은행잎에 편지를 쓰면서 그리워한다. 「꽃들과 약속한 후리」는 광우병을 앓고 있는 남친 에라드를 위해 의사가 되어 그를 치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동화다. 등장하는 인물도 문화가 발달된 나라의 사람이고, 장소도 마찬가지여서 독특한 재미를 준다.
꿈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소중하다는 것이다. 「지푸라기 할아버지의 꿈」은 이색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다. 지푸라기 할아버지는 갈 곳 없는 걸인이다. 그러나 그는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기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걸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 재산은 한국의 어린이 축구 발전에 쓸 거라는 꿈 때문이었다. 축구 선수의 꿈을 가진 현구를 만나면서 그 학교 축구부에 전 재산을 기부한다.
3.
동시집 『싱가포르 아기새』를 읽는다. 머리말에 ‘그 동안 동화와 동시를 통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어린이 여러분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릴 줄 압니다. 어린이 여러분! 짜증스런 일이 생겼을 땐 책과 이야기해 보세요. 책을 많이 읽고 꿈을 가져 봅시다. 꿈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게 해 주는 상상의 공간입니다.’라고 하면서, ‘여러분의 마음밭에 심을 고운 씨앗을 고르기 위해서 시인은 밤을 세워 시를 쓴다’고 했다.
이 동시집에 실린 동시의 분량은 자그만치 75편이다. 15편씩 5부로 나누어 실었다. 제1부 「싱가포르 아기새」는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체험한 동시다. 제2부 「시인의 씨앗」은 꿈의 씨앗을 심기 위한 시인의 노력과 마음을 담았다. 시인의 머릿속엔 꿈의 씨앗이 들어있다. 그 씨앗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는데,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그 씨앗을 고르기 위해 시인은 밤을 새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인의 사명감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한다.
시인의
머릿속엔
꿈의 씨앗이 들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꿈의 씨앗을 심는다.
아이들에게
심어 줄
꿈의 씨앗을 고르기 위해
꼬박 밤을 세우기도 한다.
-「시인의 씨앗」 전문
제3부는 「아가와 봄」이다. 아기 손주를 보면서 얻은 영감들이다. 아기는 ‘아기만 아는 시를’(「아가와 봄」)를 쓴다고 했고, ‘아기의 울음은/ 방울’(「아기」)이라고 하면서 달빛도 흔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온통/ 봄을 끌어당기’(「봄의 배달부」)는 배달부라고도 했다. 제4부는 「가을 달빛」이다. 계절의 정취와 가을에 느끼는 쓸쓸한 감정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했다. 「산」은 ‘마음을 비우고/ 가슴을 열고/ 기다리는’ 것이 어머니의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깊어가는 산 색깔도 ‘어머니의/ 깊은 정’이었다.
산이
조용히
누워 있다.
하늘은
이불인가
정을
더해주는데
연둣빛
산은
어머니의
깊은 정
마음을 비우고
가슴을 열고
기다리는 산
-「산」 전문
제5부는 「스님 마음」이다. 불교적 색채를 깊이 담아 놓았다. 호박꽃이 법당에 촛불을 켜면 나비들이 찾아와 세속의 탐욕들을 날려 보낸다고 한다. 「관룡사 가는 길」은 ‘내 마음도/ 신선이 된 듯/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가고 있었다. 「수덕사」는 ‘가슴에 가득찼던/ 욕망과 미움과 허망/ 모두 떠나’ 보내는 곳이었다. 내가 불민하여 그의 불교적 가치관을 더 소상하게 서술하지 못해 안타깝다.
절간
담장
호박꽃
법당에
촛불을 켜면
나비도
찾아와
온 세상 가득한
근심 욕심을
날개로 훨훨
날려 보낸다.
-「부처님 앞」 전문
4.
아동문학가들 중에는 동시를 쓰는 동화작가와 동화를 쓰는 동시인이 많다. 산문과 운문을 모두 아우르는 문학이기 때문에, 장르의 교류도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다.
곽종분은 동화작가다. 그러나 동시를 즐겨 발표하여 여러 권의 동시집도 발간했다. 동화는 인내와 끈기를 요하는 산문문학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운문으로 처리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긴 글을 쓸 수 없게 하는 건강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최근에는 불교유아동요를 작사하면서 불교문인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동화는 아기자기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수사력을 발휘하진 않았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과 우의적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은근한 사랑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할머니만의 특별한 정서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할머니에 대한 인식과 경로정신을 새롭게 하는 계기도 되었으리라.
그의 동시는 그의 시적 체험에 의존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보다 동심을 담아낸 서정시였다. 사랑을 주제로 하면서도 외로움, 그리움, 교훈이나 종교적 가치 등을 중요시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감정의 응어리를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문학은 그에게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했으리라. 젊어서(30대 초반)부터 두 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라.
그는 연꽃 세상을 꿈꾸는 영원한 소녀다. 진흙 속에 꽃을 피운 연꽃이 방글방글 웃듯이, 이기주의나 물질만능화의 세속적 가치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그의 소망이 온 누리에 연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