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같은 아름다움과 치열함의 미학
- 권현 소설집 『투명 인간』
손영란
권현 작가는 항상 조용하다. 작가의 인상은 선하면서 때론 수줍어 보이기도 한다. 권현 작가를 용인문학회에서 알게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는 한때 교사였으며 정치부 기자, 드라마작가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미 오래전인 1996년 KBS 극본공모에 당선되었고, 영화사 시나리오 공모 등에도 당선된 실력파 작가이다. 그뿐만 아니라 《창조문예》에 시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도 등단하였으며 이미 시집 『사자와 함께』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마침내 소설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의 소설은 리얼하고 강렬하다. 읽을수록 작품의 깊이는 더욱더 심층 깊은 곳을 파고들어 간다.
‘아름다워요’
아내가 꽃잎이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얀 이가 벚꽃과 같았다. 입술이 붉었다. 어디선가 남녘 바닷가에는 동백꽃 잎도 뚝뚝, 떨어지고 있으리라.
- 「병 속의 흙」 중에서
병마와 싸우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애잔하다. 하필이면 이 봄날,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는데 죽을 준비를 해야 하다니. 그런데도 그의 글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디선가 남녘 바닷가에는 동백꽃 잎도 뚝뚝, 떨어지고 있을 거라는 절묘한 표현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아내의 입술처럼 붉은 동백꽃과 죽음을 대비시킨 작가의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게 느껴진다.
기독교인이었던 주인공은 어느 계기에 ‘하나님의 사도교’ 라는 이단 종교를 알게 된다. 간간이 의심도 들지만 그들의 교리에 동조하면서 점점 더 빠지게 된다. 무조건 교주를 믿으면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면서 천년왕국을 세운다는 그들의 교리는 허황되지만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믿고 싶은 주인공의 심정이다. 투병 중인 그의 아내는 이 사실을 알고 나오라고 권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내외가 행복하고 아름답게 죽는 모습을 재영이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천년 왕 노릇 하며 살겠다는 미련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병 속의 흙」 중에서
이단 종교에 빠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을 받는 주인공. 그는 친척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진다. 화장하여 곱게 갈아진 큰어머니의 유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주어진 이 땅에서의 생을 마치고 떠나는 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며 이치임을 깨닫는 주인공. 훗날 부모님과 자신의 묘택이 될 땅의 흙 한 줌을 병에 담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이단 종교에서 나오겠다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바람일 것이다. 이단은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천년만년 살길이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 내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발로 쓰러진 개의 목을 힘껏 꽉 밟았다. 발바닥으로 투두둑, 하고 목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개는 사지를 잠시 버르적거리더니 드디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중략 …-
맙소사, 나는 개였다. 언제 어떻게 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뜬장」 중에서
소설 「뜬장」 중 개 농장에서의 살육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 한 부분을 읽다 보면 등골이 섬찟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 장면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환영을 준다. 「병 속의 흙」에서 느껴지던 아름다움은 「뜬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용 개를 도살하는 삶을 살고 있는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직접 겪은 사람처럼 너무나도 리얼하고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직 은행원이었으나 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도피 중에 숨어든 개 사육장에서 그 역시 잔인한 도살자가 된다. 나는 결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인간의 내재된 잔인함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그는 개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목이 터져라 왈왈! 짖어대고 있다. 개가 되자 개들의 말이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는 개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개들도 이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는 개들의 이름을 지어준다. 그것은 연민일 것이다. 곧 죽어야 하는 목숨이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난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정신이상자 여성 인부의 성을 착취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장을 결국 경찰에 고발하게 된다.
「뜬장」 소설을 읽는 내내 숨이 가쁜 긴장을 필자는 느꼈다. 너무나도 사실적이면서 강렬하게 전개되는 내용이 놀라울 정도였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절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요소요소에 꼭 필요한 묘사만 있을 뿐이다. 그 선한 인상을 가진 권현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니 그의 필력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뜬장」은 《경북일보 문학대전》에 당선된 작품이다.
회사를 떠나면 6개월 치의 월급을 위로금으로 주겠다고 해도 싫다며 버텼다. 그렇다고 완구 재료의 문제점을 당국에 고발하는 것도 왠지 싫었다. 내 자리에서, 내 힘으로 완구 재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나를 지하 주차장 창고로 보냈다. 출근을 해도 누구 하나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창고의 비품을 정리하면서 내가 맡은 역할을 해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석 달을 힘겹게 보내다가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 「투명 인간」 중에서
장난감 제조회사에 다니던 주인공은 우연히 아이들이 갖고 놀아야 할 장난감 재료가 몸에 안 좋은 값싼 중국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시정하려고 회사에 알렸다가 해고 협박을 받게 되었으나 끝까지 버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때부터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중간자가 되었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아직 이승에 남아 있되, 죽은 자인 주인공의 눈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집과 회사를 가보지만 모두 알아보지 못하는 투명 인간일 뿐이다.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말해도 소용이 없다. 사랑했던 아내 역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냉랭했던 아내가 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죽음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아내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정말로 죽은 것입니까? 검은 신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은 것이 맞아. 궁금한 것이 있어서 검은 신사에게 물었다. 낮에 공원 자판기에서 라면도 사 먹었는데요? 그건 허상이야. 누구나 자신만의 허상을 가지고 있어. 아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안타까운 일이야.
- 「투명 인간」 중에서
남편을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그의 아내와 투명 인간이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남편. 그들은 이승과 저승으로 경계 지어진 세계에 속하게 되어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고 아픈 일인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그런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투명 인간」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투명 인간」 뿐만 아니라 위의 두 편의 소설 또한 궁극적인 작가의 의도는 사랑일 것이다.
어느새 가을이 깊다. 한낮에는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엔 으스스 파고드는 한기에 몸이 떨리기도 한다. 올가을은 서평을 써야 하기에 권현 작가의 소설집을 심도 있게 읽었는데 그 시간이 내게는 매우 유익했고 또한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작가의 작품은 정말 치열하다. 때론 눈앞에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벚꽃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등이 서늘할 정도의 공포감에 전율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필력을 가진 권 현 작가가 더 많이 비상하기를, 그래서 훗날에 더 멋진 작품으로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손영란|2006년 《용인문학》 신인상 수상. 《인천시민문예공모전》 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