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章 四人의 奇才들
전전대의 가주였던 할아버지 창궁검(蒼窮劍) 남궁상인(南宮象仁)의 미망인(未亡人)인 노태태(老太太), 전일화(錢一花)는 남궁청우의 친할머니인 만큼 가장 어려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아까 욕설을 퍼붓고서 들어간 남궁조영이 즉시 그쪽으로 달려가서 고해바쳤을 것이 거의 분명한 지금의 상황에서 노태태의 부름을 받고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남궁석약 등의 기분은 마치 뇌옥(牢謂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역시 가장 태연자약해 보이는 사람은 남궁청우 한 사람 밖에는 없는 것 같았는데 남궁석약을 비롯한 나머지의 사람들은 이 순간에 대부분이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흥, 제아무리 집에 돌아와 있는 고모(姑母)라고 해도 일단은 출가외인(出建r人)인데 감히, 이 집안의 중심(中心)인 우리 어머님에게 무슨 물건 같지 않다느니, 혹은 집안을 말아먹으려고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욕설을 퍼붓다니...... 정말로 할머니만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아까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미 할머니인 전일화가 머물고 있는 방문이 목전에 도달했고 그녀들의 두려운 심정은 더욱 강렬해져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이윽고 사람들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방문앞에 이르자 하녀들에 의해서 그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즉시 내부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인 전일화는 이 순간 약간 딱딱해진 안색으로 방안의 안쪽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좌측에는 지금 남궁조영과 유소하가 함께 서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다소 멈칫거리자 전일화는 남궁청우 등을 바라보고는 거의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렇게 말했다.
"가주님과 민의(敏儀)어멈, 그리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시게나."
남궁석약 등은 노태태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우선 예의부터 갖추자 왠지 더욱 두려운 심정이 되었다.
남궁청우와 가심의가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뒤를 이어서 나머지 사람들이안으로 들어섰고 방문이 닫히자 하녀들이 일제히 지시를 받은 듯이 물러갔다.
......
남궁청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자 이윽고 전일화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서 남궁청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밤새 편안히 주무셨소. 가주?"
사람들은 노태태가 왠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평상적인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더욱 섬뜩한 기분이 들었으나 남궁청우는 오히려 마주 미소하며 즉시 대꾸했다.
"예 할머니, 할머니께서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노태태 전일화는 이에 더욱 크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았다.
"예, 이 할미도 간밤엔 편하게 지냈지요. 우리 가주님은 정말로 마음도 넓
으시고 착하기도 하셔라......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오?"
(......)
사람들은 전일화가 계속해서 다른 얘기들만 꺼내고 있자 더욱 마음이 초
조해지고 긴장되어서 마치 태풍전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궁청우는 역시 마주 미소하면서 태연하게 대꾸했다.
"저는 오늘 옛날의 친구들을 한번 만나볼까 합니다."
전일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옛친구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것으로 본가(本 의 기반이더욱 튼튼해지게 될 테니까. 가주님의 연일 계속되는 노고에 이 할미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오. 허나......"
전일화는 문득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할미는 지금 가주님이 고단할 텐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한가지의 중요한 일을 정하려고 하오. 가주님은 이 일을 허락하시겠소?"
남궁청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께서 하시려는 일을 제가 어찌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전일화는 문득 좌측으로 시선을 돌려서 남궁조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아(英兒)! 지금 즉시 가주님께 큰 절을 올려서 감사를 표시하도록 해라."
......?
주위의 사람들은 이제야 드디어 기다리던 일이 터지려나 보다 하고 크게 긴장하고 있다가 문득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는 다소 의아해했다.
특히 당사자인 남궁조영은 더욱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어머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나더러 저 조카에게 절을 하라니요?"
남궁조영 뿐만 아니라 그 옆의 유소하조차도 일순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헌데 그 순간에 전일화는 느닷없이 일장(一掌)을 날려서 자신의 앞의 방바닥을 후려치면서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말이 많다! 어서 시키는 대로 하지 못하겠느냐!"
순식간에 전일화가 내리친 그 일장으로 인해 방바닥에는 깊이가 무려 세치에 달하는 작은 돌구덩이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바로 남궁세가의 절기인 장력 가운데의 하나인 벽공장(劈空掌)이라고 하는 것으로 수련하기가 까다로우면서도 위력이 놀라운 것이었다.
노태태인 전일화의 무공이 이미 황화예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는 예기가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최고 경지에 도달한 벽공장을 보니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펑 하는 강렬한 폭음과 함께 실내에 즉시 돌가루들이 휘날렸는데 주위의 공기는 그로 인해서 더욱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크게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일순 그와 같은 광경을 대하게 되자 남궁석약 등은 그만 비명소리를 지를 뻔 했다.
남궁조영은 자신의 모친인 전일화의 눈초리가 지극히 살벌해져 있는 것을보고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안색이 돌변했다.
지금 전일화가 대신 방바닥을 후려친 것은 만일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사람을 치겠다는 표시로서 그녀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급히 남궁청우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조, 조카! 고맙네."
그녀는 대체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고서 그렇게 절을 하는 모양이었다.
원래 전일화는 아직 남궁조영에게 그처럼 무섭게 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궁조영은 느닷없는 일을 당하여 너무나도 두려워서 시키는 대로 큰 절을 하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혹시 자신의 큰절이 그것으로 부족할지 몰라서 남궁조영은 일어서지 못하고 다시 머리를 조아리면서 남궁청우를 향해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부디 나의 죄가 있다면 용서해 주게!"
(......)
주위의 사람들은 이 도깨비와 같은 돌변하는 상황에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히려 남궁청우는 조용한 신색(身色)이 되어서 남궁조영을 향해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만 일어서십시오, 고모님!"
"......!"
남궁조영은 이에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다가 문득 모친인 전일화를 의식하고는 다소 주저주저했다.
그것을 보고 문득 전일화가 남궁조영을 향해 입을 열어 싸늘하게 물었다.
"영아, 너는 내가 가주님에게 어째서 감사의 큰절을 올리라고 했었는지 알고 있느냐?"
남궁조영은 모친인 전일화가 갑자기 크게 두려워졌기 때문에 전전긍긍하여 몸을 가늘게 떨며 어쩔줄을 몰라 했다.
"저어, 그것은...... 제가 잘못했기 때문에......"
전일화는 차갑게 말을 받았다.
"바로 그렇다. 너는 조금 전에 실로 아주 사소한 문제로 감히 가주님에게 대들었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가주님을 능멸하는 것으로서 대역죄(大逆罪)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너는 나에게 달려와서 일일이 고해 바쳤지만 내가 그러한 너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는 말이냐? 나는 보아하니 가주님이 이미 너의 그러한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알고는 너에게 큰 절을 올리라고 했던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러한 얘기를 듣고는 절로 가슴이 섬뜩해졌다.
남궁조영은 전일화의 친딸인데도 그처럼 엄격하게 하고 있으니 자신들에게는 얼마나 혹독하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남궁조영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일화는 이어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매서운 눈길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분명하게 밝혀둘 것이 있다. 나는 오늘 아침과 같은 일을 보니 스스로 후회가 막심하다.우리 가문은 지금 어려운 시기(時機)에 놓여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다니...... 이는 사실 모두가 이 할미의 잘못이다. 미리부터 너희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키지 못한 내가 잘못인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그다지 늦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너희들에게 명한다. 본가에 있어서 가장 높은 어른은 이 할미도 아니고 민의어멈도
아닌 오직 가주님인 것이다. 가주님은 비록 아직 나이가 어리고 식견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주인(主人)인 것이다. 감히 그 분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는 민의어멈 뿐만 아니라 누구를 막론하고 가주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며 반드시 가주님이라고 호칭을 해야 하고, 그리고 또한 반드시 어른을 대하듯이 말씀을 높여야 한다. 만일 여기에 조금이라도 잘못을 범한다면 그 사람은 우선 나에게 처벌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한편으로는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로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노태태가 반드시 남궁조영의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아하니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남궁청우에게 말을 높이는 것은 이미 조금 전에도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고 따라서 그녀들은 모두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해지는 것을 보고는 전일화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너희들 가운데에는 영아처럼 가능하면 서로간에 격의 없이 부드럽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민의아범이 살아있었을 때에는 충분히 그럴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
"당시 민의아범은 구태여 그와 같은 격식을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히 위엄이 섰고 모두가 복종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가주님이 들어선 상황에서 시기가 좋지 못하여 위엄이 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커다란 위기(危機)를 초래할 수가 있는 만큼 우리는 격식을 따져서 최대한으로 노력(努力)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말하자면 서로간에 규율이 서지 않으면 명분(名分)이 서지 않고, 명분이 서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말을 알겠느냐?"
사람들은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모아서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어, 전일화는 남궁청우를 향해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자, 이제 모두 끝났는데 혹시 가주님은 그간에 다소 번거롭지 않으셨소?"
남궁청우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제가 바라던 바를 이루어 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전일화는 이에 절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모두들 돌아가서 편히 쉬도록 하오. 이 할머니가 모든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나는 다소 피곤하여 쉬고 싶으니 아침식사는 내가 없더라도 모두 함께 하도록......"
남궁청우는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는 일어서서 물러나왔다.
가심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서 나왔다.
* * *
사람들이 대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식탁위에는 하녀들이 차려놓은 음식들로 가득차서 풍성한 식욕(食慾)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야호! 아침식사로구나."
아침식사에 가장 즐거워하는 사람은 남궁완청이었다.
남궁민의와 왕정안은 조용한 태도였고 남궁석약도 역시 얌전한 편이었다.
뒤늦게 따라나온 남궁조영은 의식적으로 가심의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어
색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케언니, 미안해요. 내가 분수도 모르고 날뛰어서."
가심의는 다소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가 있으니 이제는 그런 일은 잊어버리도록 해요."
남궁조영은 활발하게 웃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 함께 식사나 하도록 할까요?"
......
무학을 연마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름진 음식들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서인지 남궁세가의 식단은 대부분이 소채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나마 고기가 있다면 기름기를 거의 빼버리고 조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남궁세가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정평이 나 있어서 그러한 재료들만을 가지고도 훌륭한 음식들을 만들어 내며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은 요리들을 얼마든지 수도 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남궁완청이 비록 혈기왕성한 처녀이기는 하지만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것도 모두 그러한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도중에 남궁청우는 계속해서 딴전을 피우면서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 했기 때문에 비교적 활발한 남궁완청이 입을 열어 웃으며 물었다.
"가주님, 대체 무슨 고민이 있길래 밥도 먹지를 못하나요?"
남궁청우는 이에 정신을 차리고 잠시 남궁완청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문득 수저를 놓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왜, 그만 드시려고 그러는가?"
모친인 가심의가 그렇게 묻자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이 없어서 나중에 들도록 하겠습니다."
......!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하나같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서남궁청우가 나가는 것을 배웅하기 시작했다.
"가주님, 안녕히 다녀오세요!“
* * *
합창을 하는 듯한 여인들의 음성은 때로는 듣기 좋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다지 듣기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남궁청우는 기실 후자에 해당되는 상태여서 그다지 기분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가 현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이미 준비를 하고 와 있던 가우왕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가주님?"
"그대도 잘 잤소?"
남궁청우는 가볍게 손을 들어서 답례하고 웃어보인 연후에 먼저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집무실(執務室)은 비록 세가내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의 윗층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당(內堂)보다도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남궁청우보다 한자나 더 큰 키에 우람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가우왕(賈牛王)은 허리를 펴고 단정한 태도로 남궁청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기실 남궁청우는 이곳 남궁세가의 하나밖에 없는 가주의 신분이기 때문에 지금보이지 않는 가운데 백호당(白虎堂)의 호위무사(護衛武士)들이 계속해서 그를 호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세가의 사당(四堂)중의 백호당은 남궁세가의 가옥들을 호위하고 가주 등을 호위하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표면상으로 가우왕이 그 호위무사들의 중심이 되어 있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무공이 그 가운데의 최상인 것은 아니었다.
남궁청우는 문득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뒤를 바싹 따르고 있는 가우왕을 향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 오늘은 그들을 만날 준비를 해 두었소?"
가우왕은 공손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일은 집무실로 들어가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그들을 만나는 것은 어떻게 되었는가?"
남궁청우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즉시 다시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
가우왕은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공손히 대답했다.
"오늘 정오(正午)에 성내(城內)의 영웅루(英雄樓)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남궁청우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영웅루?"
-----영웅루(英雄樓) 그곳은 바로 금릉성내에서 가장 커다랗고 화려(華麗)한 주루(酒樓)로서 남궁세가에서 가업(건포)으로 하고 있는 곳이었다.
현재 모두 오층전각(五層殿閣)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 영웅루의 뒤쪽에는 영웅객점(英雄客店)이 붙어 있는데 그 두 가지는 남궁세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거의 유일(唯一)한 주루와 객점으로서 당금에도 아주 성황을 누리고 있는 상태였다.
가우왕은 남궁청우의 안색을 살피면서 다시 말했다.
"원래 그들은 성내의 다른 주루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만, 저는 가
능하면 세가내에서 회합(會合)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려다가 마침내 그곳으로 결정이 나고 말았습니다."
남궁청우는 지금 아주 중요한 신분이기 때문에 함부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고 따라서 남궁세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루라면 그다지 위험은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가우왕의 생각인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들은 어째서 구태여 다른 주루에서 나를 만나려고 하는 것인가?"
가우왕은 다소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보다 자유(自由)로운 분위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궁청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실상 지금 남궁청우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우왕과 함께 남궁청우의 오랜 친구들이었던 네 사람 가운데의 나머지 세 명이었다.
그들은 바로 남궁세가의 사대가신인 사대당주(四大堂主)의 나머지 세 아들들이기도 했는데 마침 가우왕은 부친의 지시에 의해 남궁청우를 호위하는 내호위(內護衛)의 임무를 맡게 되어서 보다 빨리 그와 접하게 되었지만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은 아직 남궁청우와 전혀 대면하지 못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지금 가우왕이 남궁청우와 주종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인 그들도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리게 될 것을 우려해서 일단은 남궁세가를 벗어나서 주종관계가 아닌 친구로서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문득 다시 물었다.
"좌선비(左善譬), 방덕승(龐德勝), 서무구(徐無垢)...... 그들이 오늘 정오에 거기에 모두 나오기로 했다는 말인가?"
가우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
남궁청우가 바라보자 가우왕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거기에 함께 나오려면 가주님과 주종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나와 달
라고 그들은 말했었습니다."
남궁청우는 눈살을 다시 찌푸렸다.
"친구로서? 그것이 그들의 조건이라는 말인가?"
가우왕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습니다."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존댓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가우왕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간혹 가주님께 경어(敬語)를 쓰지 못하게 되더라도 양해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
남궁청우는 잠시 가느다란 시선(視線)으로 가우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직하게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터뜨렸다.
"핫핫핫, 그래? 그들이 감히 나에게 조건을 들고 나왔다는 말이지? 나더러 자신들을 만나려면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자신들을 무슨 대단한 인재(人才)들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나는 일단 그 조건들을 수락하도록 하지."
가우왕은 남궁청우의 말을 듣고 안색이 점점 더 붉어지다가 일순 마지막의 말을 듣고는 환하게 밝아졌다.
"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돌려서 가우왕을 노려보면서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해주는 것은 오직 이번 한번뿐이야. 아직 그들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정도 만나보려는 것이지. 하지만 보나마나 그들의 능력(能力)은 뻔할 것이니 앞으로는 이와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조건은 수락하지 않을 것이야."
가우왕은 웃으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야 당연하신 말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