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결정 / 송덕희
졸업식을 준비하던 6학년 부장이 교장실로 왔다. 학생들에게 줄 상을 선생님들과 의논했다고 한다. ‘안 주겠다고 말하러 왔나?’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다. “상의 이름을 바꾸고 싶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하며 상장과 함께 상품을 주고 있다. 공로상, 우정상, 체육상, 학업 우수상, 과학 우수상 등으로 정해져 있다. 왜 그런 의견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예년처럼 주면, 상에 어울리지 않은 학생이 꼭 있기 마련이란다. 그래서 학부모나 학생이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왜 우리 아이가 우정상인가요?’ 학업 우수상을 받고 싶다는 표현이다. ‘제가 과학 우수상을 받은 이유는 뭔가요?’ 과학에 소질이 전혀 없는데, 왜 그걸 주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단다. 받고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맥이 풀린다.
어떻게 바꾸는지 물었다. 학생들이 정하고 상의 이름은 반마다 다르단다. 부장이 맡은 반은 고운 음색상, 배려 돌봄상, 개성 화가상, 바른 예절상, 똑똑 논리상, 웃음 매력상, 개그 장인상 등 10여 가지 이상이 나왔단다. 새로웠다. 잘하거나, 모범이 되는 행동을 칭찬하는 뜻이 잘 녹아있다. 다른 학교에는 없는 특별한 상이 되리라고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이 보는 눈이 선생님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친구들이 서로 잘 알아서 다들 불만 없이 받아들인단다. 교사는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한다.
또 “학생들끼리 주고받는 것으로 하자는 의견이에요.” 눈치를 살핀다. 예를 들어 개그 장인상이라면 〈위 학생은 1년 동안 우리 반 학생들을 많이 웃게 해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 상장을 줍니다. ○○초등학교 6학년 1반 일동> 이렇단다. 상에 대한 기본 생각을 뒤집는다. ‘가만있어 보자. 6년의 과정을 갈무리하는 마당이야.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학교 문화는 14년여 전부터 빠르게 변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해 오던 일들을 과감하게 없애거나 바꾸었다. 날을 정해서 치르는 지필평가, 교육청과 학교에서 겨루는 온갖 대회, 보여주기식 운동회와 축제 등이 그랬다.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일이 사라졌다. 학급을 대표하는 반장도 뽑지 않고 돌아가면서 역할을 하게 한다. 몇 명만 이익을 챙기고 경쟁을 부추기는 문제를 고쳐 왔다. 시비에 휘말리는 일들을 줄였다. 어떤 분야든 한 가지라도 잘하면 칭찬하고, 학생 모두에게 기쁨을 주자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들러리가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으로 키우고자 한다. 졸업 때를 빼고, 상을 주지 않는다. 몇몇 학생이나 학부모는 불만이겠지만,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학교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경우도 교직원과 폭넓게 협의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복잡해진다. 한 예로, 노란 버스 문제가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졌다.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 어린이 안전용 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해석이 나왔다. 그런 차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학교 사정을 모른 채 혼란을 부추겼다. 선생님들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갈 이유가 없다며 일어났다. 학교 밖은 사고 위험이 따르는데, 부담을 떠안기 싫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아예 없애야 한단다. 교사들 입장이 이해된다. 사고가 나면 교장을 비롯하여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굉장히 기대하며 좋아한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살아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더구나 체험학습 3만 원, 수학여행 15만 원을 교육청에서 지원해 주는데, 안 가면 우리 학생들은 혜택을 못 받는다. 불 보듯 뻔한 학부모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2월 초부터 전체 선생님들과 서너 번 모여 의논했다. 1년에 두 번 이상 가던 것을 한번 가는 것으로 정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많은 교사를 설득하는 데 진이 다 빠졌다. 그게 엊그제 일이다.
학교장은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까지 고민한다. 작은 일이라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직접 영향을 주기에 썩 조심스럽다. 물론 선생님 처지에서 생각하고 미치는 일도 헤아려야 한다. 한번 정한 것은 다음 해에 관례가 되어 굳어진다. 잘못해서 되돌리는 데는 시간과 힘이 더 많이 든다. 항상 옳은 결정을 하지는 못한다. 무엇이 최선인지 되묻고 다른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생각을 정리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상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좋으나, 상장을 주는 이를 누구로 할지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상을 받으면 학생생활기록부에 적게 되어있다. 어젠가 쓰일 수도 있고 평생 남는다. 개인이 사사로이 받은 건 당연히 기록할 수 없다. 해마다 졸업생 모두에게 줘 왔고, 다른 학교 학생들은 다 받는다. 졸업할 때마저 상을 안 주면 우리 학생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부장은 이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학부모는 상을 받는 기쁨을 경험한 세대다. 간혹 자녀가 칭찬받을 일이 있을 때 이왕이면 교장이 직접 해 주면 고맙단다. 뭔 차이가 있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훨씬 자랑스러워한단다. 졸업식 때는 가족들이 많이 온다. 일일이 상을 주면 아들, 딸을 귀히 여긴다고 생각할 거다. 학생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해지면 더 좋지 않을까? 교장이 한 개인으로 권위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지 물었다.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들 의견을 다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끝내 교사들이 바라는 대로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폭넓게 살폈을 때, 학교장이 직접 수여하는 것이 좋겠다. 학년에서 다시 의견을 나누어 보자고 했다.
“웃음 매력상, 6학년 1반 진달래.” 선생님이 부르자,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단상으로 올라온다. 졸업증서와 상장을 준다.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여 준다. 해맑게 웃는다. 강당에 꽉 들어찬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다. 동시에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딱 어울리는 상이다.
158명의 학생이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괜찮은 졸업식이었다.
첫댓글 교사와 관리자가 잘 협의하여 모두가 만족스러운 졸업식을 이끄셨네요. 역시 지혜로우십니다.
지혜롭다고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분 좋습니다. 하하.
자리의 무게가 실감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진짜 힘들 때가 많아지는 시대죠? 관리자는 무한 챡임을 져야하고요.
차분하게 잘 읽힙니다. 정말 괜찮은 졸업식이었네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괜찮은 졸업식이었네요.
과정은 지난했네요.하하 고맙습니다.
하하. 저랑은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글을 쓰셨네요.
같은 걸 다르게 보는 것, 민주주의의 시작이겠죠?
아, 그렇군요. 관점이 다르니 같은 것도 다르게 생각하는 걸로. 하히하.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민주적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열린 생각이 그렇게 만드나 봅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은 다 열어 두어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글은 더 정갈하게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황작가님, 고마워요. 정갈하게 느껴진다는 말에 힘을 얻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현명하게 해결하셨네요.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배우겠습니다.
아이고, 황송한 말씀을요.ㅎ
송선생님, 잘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공감이 갑니다. 졸업식날 받는 상에 대해 매 해 불만이 많더라구요. 예쁜 이름이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랬군요. 뭐든 맞춰가고 바꿔가면서 해나가야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