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구들과 잡담나눌 시간도 내겐 별로없이 여태껏 살아온 것 같다.
어린시절, 우리집을 보고 괴짜집안,공부 잘 하는집 이라고 부르던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형제들은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방학식 날이면 가방 팽개치고 방학동안 내내 놀다 개학전날 그 때서야 가방을 열어보면
방학숙제인 방학책, 숙제과제물인 방학중 일기, 곤충표본 만들기, 기타 여러가지 숙제물이 있었다.
그때부터 007작전이 시작된다. 작은형은 방학책을 쓰고 내동생은 지가 만든 곤충 표본에서 몇개 떼내고, 작은형 표본에서 몇개 떼내 그럴싸한 표본을 만들어낸다.
그래도 내가 하는 한가지 숙제는 있었다. 바로 방학중 일기장! 이것은 거짓말로 쓸수 가 없다. 왜냐구? 바로 날씨때문이다.
동생 일기장에서 일자별 날씨를 베껴써야 하니까, 내용은? 뻔하지, 아침에 일어나 아침먹고 놀았다. 놀다보니 점심때라 점심먹고 또 놀았다. 밤이되어 저녁먹고 놀다 잠잤다.
( 이런 일기장 내용은 방학부터 개학식전날 까지 한자도 틀리지 않고 똑 같았다.)
나 또한 놀랐다. 이런 내 인내심의 끝은 어디일까?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나는 정몽주 보다 더한 충성심을 같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상시는 학교 갔다오자 마자 풀베고, 개구리잡고 닭모이 주고 달걀 걷고 그러면 하루가 다 간다.
(집안 사정모르는 칭구들을 위하여 덧 붙이면 우리집이 양계장을 해서... 닭을 수천마리 기르다 보면 집안에 일하는 사람을 두고도 부모형제 다 달라 붙어도 정신없이 바쁘다.)
개구리는 하도 잡아봐서 1타에 한마리씩 꼭 잡았다. 척 보기만 해도 요놈이 어디로 튈지 감이 잡힌다.
개구리가 앉아 있는 곳에 작대기질 해봐야 백이면 백 허탕이다. 항상 개구리 앞쪽 5센치 앞을 쳐야만 잡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은 군대가서 잘 써먹었다. 우리부대는 사격을 잘해야 한다. 그건 양희태한테 물어봐라! 사격중에 이동 사격이 있는데
항상 총알이 나가는 속도와 표적이 움직이는 속도를 감안해서 표적 앞쪽을 겨냥해서 쏴야만 명중한다. 나는 항상 백발백중이었다. 사격을 잘해서 보직이 저격수였는데 사격 덕분에 2박3일 특박을 여러번 갔었다.)
큰형, 작은형, 내 동생들 모두가 공부를 잘했다. 물론 전교생에서 등수 안에는 꼭 들었기 때문에 그건 나도 인정은 한다.
그래서 국민학교땐 내 이름보다 영구동생으로 더 유명했다.(작은형 이름이 영구거덩) 공부한번 안했던 나도 시험은 잘 봤다.
여태껏 어떤 시험도 마음 먹으면 첫번 시험에 다 붙었다. 내게는 재탕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괴짜집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난 지금도 세븐카드를 치면 히든 카드에서 상대방이 하프를 치면 대부분 다이하지만 난 반드시 개패를 들고 있어도 콜한다.
왜냐구? 확인해야 하니까.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보고 맛을 봐야만 알 수있으니까,
그 버릇은 어릴 때 부터인가 보다. 예를 들면 국민학교때 가로 50 센치 세로 50센치의 두변의 합 길이는 얼마인가?
그걸 확인하려고 노트가 작으니까 노트를 찢어 붙여서 실제로 가로 세로 길이를 재단해서 확인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걸 보면 골통기질이 다분했었던 것도 같다.
신학공부를 약2년이상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꼭 확인해야하는 습성 때문에 회의가 일었다. 모세가 홍해바다 바닷물을 갈랐다는
거라든가, 예수님이 물고기 몇 마리와 떡으로 수천명을 먹였다는 거라든가 그런 의구심은 풀수가 없는 문제일텐데 그냥 넘어가야 하는데, ..
그 때 연세대 다니던 작은형 친구가 너 아니어도 목사할 사람 많다. 당장 때려쳐라 하는 소리에 그 날로 가서 자퇴원서를 냈던 기억이 있다.
(난 지금도 물고기 몇 마리가 그냥 물고기가 아니고 혹시 고래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릴적 썰매를 탈때도 특이하게 탔던 것 같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두줄 썰매가 있었고, 칼날을 세운 한발 썰매도 있었는데
두줄썰매는 길고 크게 만들어 업드리면 가슴부터 종아리까지 닿는다. 그러면 그위에 두세명이 올라타고 꼬챙이로 치고 달리면
그러면 업드린 사람이 두손으로 외발썰매로 좌우로 움직이면 방향 전환이 된다. 정지할땐 업드린 사람이 발만 내리면 얼음판에 닿아 속도가 줄어들고
(자동차의 핸들과 브레이크 처럼) 우리 형제들이 탔었지만,친구들도 타고..
언덕배기에선 겨울철 눈내리면 프라스틱 판에 올라타면 자동 스키가 되지만 여름엔 탈 수가 없어 기다란 판에 바퀴를 달아
눈 썰매 대신 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 물론 작은형이 고안해서 만들었지)
군대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복무) 시절 용산 미8군에서 파견근무를 꽤 오랫동안 했었다.
근무하던 파견대 사무실과 식당까지는 꽤 멀다. 보통은 찝차로 이동했었는데 (그 때 운전을 배웠었다.)
파견대장이 찝차몰고 사령부에 간 덕에 내 후임과 걸어서 식당으로 가고 있는 중에 미육군 중위가 오길래 못본척 외면하고
(군대시절 나는 중위라면 치가 떨린 경험이 있어서 무척이나 중위를 싫어했었다. 국적불문, 땅개,물개,참새불문, ) 가니까 아! 글쎄
요놈의 중위가 불러 세우더라 이거야, 왜 장교를 보며 경례안하냐 하길래 변명하기 싫어 아임쏘리! nimisip sir! 외치며 경례를 착 붙였지.
그제서야 중위도 차렷자세로 거만하게 답례받더군. 음 ... 하하핫
나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첫댓글 ㅎㅎㅎ 역시 뭔가가 남달랐군요...다음 글이 궁금해 집니다. 빨리 연재해 주시기를~~
희랍인 죠르바 처럼 살겠다고요? 일찌감치 접은거 잘하신겁니다.. 안소니 퀸이 열연했었지요..아득한 이야기네..줄거리도도 가물거리고.. ㅋㅋㅋ안소니퀸의 얼굴만 떠오르네요.
"나는 아무것도 믿지않소, 오직 나자신만을 믿을 뿐이요.
내가 남보다 잘나서 믿는게 아니요
다만, 내가 아는 것 중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나뿐이기 때문이요."
너무나 젊은 혈기로 세상을 내 발 아래 두고 싶었을때의 내 마음과 같았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하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6.gif)
![하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6.gif)
우리는 밤이 늦도록 묵묵히 화덕 옆에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알, 허름한 화덕
바닷 소리처럼 단순하고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바로 이 순간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데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그것 뿐이었다."니코스 카쟌챠스키의 희랍인 죠르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