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들의 기도나 경배들, 예배와 헌신들, 심지어는 특별 작정들까지도 하나님께 열납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고, 결코 아무 소용이나 의미가 없을 때가 있으며, 심지어는 오히려 반대로 진노의 제목이나 가증스러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에 대해서는 말라기서를 위시해서 성경 곳곳에 구체적으로 잘 증거되어 있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미움과 우상들 등을 품은 채 반복하면서 그렇게 행할 때인 것이고, 한편으로는 하늘의 힘과 은혜가 아닌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을 우선할 때이기도 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과 별개인 경우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하지 않은 것으로 그러한 기도와 예배와 헌신들 등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주재자이시고 주관자이시며,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온갖 은혜와 복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만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 와 창세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인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영적으로는 진노와 음부와 사단과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어떠한 인생들이라도 따지고 보면 그 자체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인 것이고, 한편으로는 세상적인 면에 있어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과 능력들이라 하더라도 단 하나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것이고, 실상 언젠가 흩어지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내일 당장, 아니 오늘 밤 당장 어찌될지 모르는 실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시며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기도와 예배와 헌신과 작정 등에 있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하며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으로 몸부림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오신 메시야를 믿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하며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고, 직접적, 경험적,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역사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이 모든 우선이자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사단 마귀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연역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동안 더 이상의 죄와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특히 모든 기도와 예배들, 헌신과 작정들 등의 때에야 말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야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순간순간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이 되는 것, 바로 그러한 믿음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갈수록 더한 기뻐 역사하심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긴급하며 모든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해 진정 얼마나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그와 같은 모든 일들에 있어 실질적이고 영적이며 현실적이고 경험적이며 기적적인 모든 근본과 기준, 방법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전도서5:1)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4월 27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