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6월30일
양심에 찔린 사람들
(요한복음 8:1-8)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서론 : 투우사의 마지막 결정적 한방이면 황소는 곧 쓰러질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우사는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진하고도 애원하는 의 눈빛과 마주합니다. 투우사는 그 순간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정의감이 끓어올랐고 투우사로서 자신이 구제받아야 할 추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살육의 상징’인 투우사라로서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인 양심의 가책과 황소의 슬픈 눈 빛과 마주친 그는 그 이후 경기장을 뛰쳐나가 투우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토레로 알바로 무네라 입니다. 그 후, 스페인 카탈루냐주에선 투우금지법이 통과돼 2012년부터 투우경기가 더 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들려주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 서기관들, 장로들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은 끌고 예수님에게도 나오는 데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 걸린 여인입니다, 그여인을 끌고 사람들은 의기양양하게 예수님에게도 나왔습니다,
1.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합니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합니다,
이세상에 의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사니엘 호손] 이 쓴 주홍글씨라는 책이 있습니다, 호손은 큰 바위의 얼굴을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주홍글씨에는 영국에서 늙은 의사와 결혼한 [헤스터] 는 남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면서 펄이라는 딸을 낳게됩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가슴에 간통녀임을 나타내는 A 라는 글씨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많은 봉사를 하고 지역 사회에서 그녀를 칭송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간통한 상대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녀는 재판정에서 상대가 누구냐고 추궁을 당하지만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런데 [딤스데일] 이란 젊은 성직자가 있습니다, 설교도 잘하고 아주 유능한 성직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주홍글씨를 발견합니다, 그는 테스트를 찾아가서 어린 딸과 함께 죄를 고백하고 교수대로 올라가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들어간 죄인이 있고 들어내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이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주홍글씨의 저자 호손이 말하고자 한것은 가장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들에게도 감추어진 죄는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칼빈은 나는 의인이라고 하는 죄인과 나는 죄인이라고 하는 죄인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은 의로운 사람인양 의기양양하게 간음한 여인을 끌고 주님에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의롭다는 것을 강조하는 군중들을 볼수 있습니다, 자기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게 살고 있는데 이여인은 간음을 하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남을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적으로 볼때 교만한자, 위선자, 그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정죄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은 아마 두종류의 사람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만하거나 위선자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기세 좋게 여인을 끌고 나온것입니다, 이들이 정말 겸손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여인을 끌고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이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남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남을 정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눅6:36-37)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우리가 남을 정죄할때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정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일까요?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수 있는 자격이 있거나 권리가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약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방하거나 제외하면 그것은 명백한 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좀 심하게 말하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과 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재판관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라고 하는데 스스로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님에게도 몰려온 사람들은 또하나의 감추어진 속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 여인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라고 묻는 그 질문속에는 이들이 노리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음모입니다, 만약에 여인을 유대의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시면 그 즉시 예수님은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면 유대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요즘 말로 하면 빼박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심의 법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돌을 들어 먼저 치라> 아마 다른 사람의 소리라면 그들의 양심을 깨우거나 영향을 전혀 끼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고 사람의 심령 골수를 쪼개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앞에 그들은 자기를 더이상 섬길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들을 책망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스스로 한 사람 씩 물러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추어지고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죄는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의 양심이 항상 깨어있게 하여야 합니다,
결론 : 우리의 양심이 더러워지고 악하여지지 않토록 우리는 깨어있어 자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자녀 답게 세상속에 살아가며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