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나오는 괴물들 49종
25. 와유자기 (卧柳自起: 누워 있던 버드나무가 스스로 일어났다는 말)
스스로 움직이는 커다란 나무로 보통 버드나무와 비슷한 종류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꼭 필요할 때에만 조금 움직인다거나 한 두 발 걸어간다거나 하는 정도로 짐작된다. 253년에 지금의 신라 시조의 사당 앞에 경주 땅에서 나타났다. “삼국사기”에 나온다.
* 걸어 다니고 움직이는 버드나무처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활발하게 움직인다기 보다는 너무나 귀찮거나 피곤하거나 움직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한자리에 가만히 있으며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가끔 반드시 꼭 움직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찾아 오면 한 발자국 정도 움직인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시조의 사당 앞에 있던 버드나무가 일어 났다는 이야기에서 그 위치에 초점을 맞춘다면 버드나무라 할 지라도 시조에게 예의를 다하기 위해 누어 있다가 일어 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 신라 시조의 영험함을 높이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뛰어난 영웅이나 훌륭한 사람 앞에서만 움직이는 나무라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6. 성광입구 (星光入口: 별빛이 입으로 들어 간다는 말)
밤에 별빛처럼 빛나며 날아다니는 것이다. 길가던 여자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자를 임신시킨다. 묘한 향기가 있어서 임신한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진한 향기를 주위에 내뿜게 한다. “삼국사기”의 유례이사금의 어머니가 임신한 이야기에 나와 있다.
* 이상한 빛을 먹은 뒤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신비로운 출생을 강조하기 위해 옛 기록에 종종 나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한국민속신앙사전”에는 통효대사 범일(通曉大師 梵日)의 탄생에 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설화가 현대에 채록된 것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우물 물을 떴는데 거기에 태양이 담겼다고 하고 그 물을 마신 뒤에 임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를 버리자 학이 붉은 구슬을 토해 내어 먹이면서 돌보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엮어서 이것을 사람 몸 속에 들어 가서 자라나는 이상한 벌레 같은 것으로 상상해 본다면, 이것은 사람이나 짐승의 몸 속에서 들어 가서 사는 빛나는 형체를 가진 것인데, 낮에 쉽게 눈에 뜨이지는 않으나, 밤에는 날아 다니거나 물 속에 숨어 있거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상상해 볼 수 있는데, 그러다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면 태아가 자라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7. 일각록 (一角鹿, 외동곳)
뿔이 하나 달린 사슴이다. 귀한 짐승으로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나, 좋은 징조이다. 376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고, 그 해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삼국사기”에 나와있다.
* 조선시대 이덕무의 "양엽기"에서는 한글로 "외동곳"이라고 표기하는 뿔 하나인 사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보통 사슴보다 더 힘이 세고 한결 큰 특별한 사슴 종류와 비교하기도 했다.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풍년과 부유함을 미리 짐작하고 그것을 좋아해서 그런 경우에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면 그런 습성을 이용해서 이것을 꾀어 내기 위해서 사치스러운 것, 부유함을 나타내는 것을 쌓아 두고 이것을 이끌어 내는 함정을 꾸밀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8. 이죽이병(珥竹異兵, 이죽병 珥竹兵, 음척 陰隲, 개이죽엽 皆珥竹葉 즉 모두 귀에 댓잎을 끼웠다는 말)
귀에 대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있는 사람 비슷한 독특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다. 알 수 없이 문득 나타나 알 수 없이 사라지므로, 정확한 것을 알기는 어렵다. 싸움에도 매우 능하며 말이 별로 없다. 보통 수백수천 정도의 무리로 아주 많은 숫자가 떼로 몰려다닌다. 특별한 때에는 귀에 있는 대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떨어지게 된다. 297년에 신라에서 지금의 경주 땅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서고국의 군사가 침공해 왔을 때 갑자기 나타나 신라를 도와 물리쳐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삶과 죽음을 넘어선 것으로 수명이 없으며, 저승에서 온 병사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이 죽은 미추왕, 혹은 미추왕릉과 관련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이죽이병"은 조선시대의 "대동운부군옥"에서 이 일을 설명하며 붙인 제목입니다. "이(異)"는 이상하다는 뜻일 뿐이니, 줄여서 "이죽병"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음척(陰隲)”이라고 하여 저승에서 온 병사들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미추왕을 위해서 신라의 전쟁을 도와 준 것이므로, 한번 떠받들기로 한 사람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따르는 무리라든가, 죽은 사람의 명을 따르는 저승의 병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9. 대영차 (大盈車: 커서 수레에 가득 찼다는 말)
뿔이 달린 물고기로 바다에 살며, 크기는 매우 커서 수레에 가득 찰 정도이다. 416년에 신라, 동해에서 잡힌 물고기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뿔이 달린 물고기에 관한 기록은 보통 머리뼈가 이상하거나 몸에 이상한 돌기가 있는 물고기를 잡은 기록인 경우가 많고, 특이한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나 괴상한 복어 종류를 그렇게 기록한 경우도 있다. 특히 도성에서 지방에 파견된 관리가 물고기 잡는 일에 대해 잘 몰라서 생전처음 보는 이상한 물고기 모양에 놀라서 괴물로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커다란 모양을 보면, 일각고래(monodon monoceros)나 그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에는 북극권에서 주로 살고 있는 고래 부류인데, 이것은 그 발견된 곳이 동해인 것을 보면, 갑자기 특히 날씨가 이상했던 해에 우연히 신라 근방의 바다까지 나타난 것이라는 이야기로 상상해 보는 것이다. 혹은,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 우연히 아주 멀리 북극권 가까운 지역까지 떠내려 갔다가 이것을 잡은 후에 돌아 왔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각고래의 죽은 사체, 뼈 같은 것을 우연히 건져내서 보인 것일 수도 있다는 짐작도 해 본다. 그런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그 뿔이 특별히 귀하고 가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30. 백치 (白雉, 장미백치 長尾白雉: 꼬리가 긴 흰 꿩이라는 말)
흰 색 꿩으로 꼬리가 특별히 긴 종류도 있어서, 그 길이가 사람 키 정도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비교적 자주 나타나는 편이나, 매우 아름다운 생물로 여겨서, 나라간의 선물로 주고 받곤 하였다. 496년, 793년 등등 여러 차례에 걸쳐 주로 신라 일대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꼬리가 특히 긴 흰 꿩은 496년 가야에서 신라에 선물로 보낸 사례에 나타난다.
꿩은 상당히 흔한 동물이고, 현대에도 비교적 숫자가 많은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백치는 요즘도 발견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단순히 신기하다는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것이고 나라의 좋은 징조로서 특히 외국에서 받는 선물로 징조가 좋은 것으로 주로 언급되었다. 조선시대 문헌 중에는 흰꿩에 대해 중국 주나라의 주공(周公)이 외국에서 흰 꿩을 선물로 받은 일에 빗대어 언급하는 경우도 자주 나왔다.
31. 육안귀 (六眼龜)
거북과 비슷한 형태의 짐승으로 눈이 여섯개가 있다. 배 아래쪽에 복잡하고 묘한 무늬가 있는데 글자를 이루고 있다. 488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글자가 그려져 있는 거북은 “낙서(洛書)”와 같은 사례처럼 중국 고전에서 그 글자에 심오하고 놀라운 지식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역시 그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뜻에 대한 기록은 없으므로, 상상해 보자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뜻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든가, 혹은 감히 역사에 남길 수 없을 만큼 위험하거나 예의에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이 여섯 개인 거북은 중국 고전에서 지혜로운 짐승으로 언급되어, 고려시대 문헌인 “보한집(補閑集)”에 그러한 뜻으로 사용한 예가 있기도 하다. 이후, 단지 눈 뒤에 눈 같은 무늬가 둘 씩 있는 거북을 귀하게 쳐서 일컫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엮어서 보면, 이것은 눈이 여섯 개인 지혜로운 짐승으로 사람들이 쉽게 말할 수 없는 특이한 지식을 자기 배에 글자로 보여 주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2. 목우사자 (木偶師子)
사자 형태의 짐승 모양인데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창칼로 공격해도 당할 수가 없어서 만약 여러마리가 사람들에게 덤벼 든다면 군사들이 몰려가 나선다고 막을 수 없다고 믿기도 한다. 배 안에 가두어 두고 몰고 다니다가 풀어 놓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 우산국 사람들이 이것을 매우 사납고 무서운 괴물이라고 보고, 바다 저편에서 이것이 나타나면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다는 생각하였고 나무로 된 이 짐승 모양의 것이 움직여 난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특히 사람을 밟아 죽일 것을 두려워 했다. 512년 아찬 이사부가 신라 하슬라주, 즉 현재의 강릉 일대를 다스리는 제후가 되었을 때, 나무로 이런 모양의 괴물을 생동감있게 만든 후에, 울릉도에 가서 괴물을 풀어놓고 밟아 죽이게 만들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이때 우산국을 건국하고 살고 있던 지금의 울릉도 사람들은 크게 겁을 먹고 항복하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사람을 밟아 죽이겠다고 겁을 주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그 발이 위험하고 강한 짐승이었다거나, 발 부분이 특히 무거웠다거나, 몸이 튼튼하고 무겁다거나, 크기가 아주 커다랗다고 그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문화속에 깊숙히 자리잡는 동물이므로, 이사부가 만든 사자 형태는 불교 유물의 사자 석상, 사자 석등과 닮은 점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512년은 불교를 신라 조정에서 공인하여 신봉하기 전이므로, 불교의 영향력이 특별히 강했던 시기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6세기 초에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무서운 사자 모양의 괴물이라는 것은 불교의 사자와는 다른 점도 다소 있었던 모양이었다거나, 어렴풋이 전해졌던 불교 문화에서 나타나는 사자의 모습 중에 무서워 보이는 것을 과장한 모양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자를 두려워한 것이, 불교 전래 초기의 오해와 신기함이라든가, 혹은 토착 신앙을 믿던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느꼈던 이상함, 거부감을 나타낸 일화라는 이야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짐작의 범위를 넓혀 보자면, 우산국 사람들이 그저 나무로 만든 사자 모양만 보고 겁을 먹었을 이유는 없으니, 나무로 교묘하게 만든 기계 장치가 어느 정도 움직이며 실제로 사람을 잡아 먹는 기계 괴물이라는 식으로 속임수를 썼다는 이야기도 상상해 봄 직하다.
출처 : 곽재식의 옛날 이야기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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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박일도네
똑같이 빵에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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