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07 - 한 사내, 한 여자
지독히 외롭게 살다 간 한 사내를 알고 있다. 지독히 사내 복이 없이 살다 간 한 여자를 알고 있다. 나는 이들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다. 내 속에 이들의 일부가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난 행복 이데올로기에 젖어서 행복하고자 안달하는 사람들에겐 적잖은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나의 감정을 질투의 일종으로 몰아붙이진 말길 바란다. 세상의 좋은 점만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나와는 별로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은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았다. 그들을 이해는 하지만 속에서 시퍼렇게 일어나는 분노를 난 잘 제어하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외로워지는 걸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내부에 분명 살아있는 고독을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괴롭기 때문이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그럴수록 뻔뻔함으로 무장한다.
물론 필자도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흔히들 행복은 마음속에 있고, 늘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면 된다고, 꼭 자신이 원전인 것처럼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난 적잖은 혐오를 느낀다.
헤세도 그의 시에서 “우린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노래했지만, 무조건 행복 이데올로기에 젖어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반드시 상대적으로 더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한 대가라면 그것을 어떻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허접한 이야기 같지만, 나는 아직도 초등학교 때 배운, 남과 불행을 나눌 때, 진심으로 남을 배려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배려받지 못할 때 가장 슬펐다. 그럴 때 오는 소외감이 필자를 불면의 밤으로 몰고 가곤 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분명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배려받기를 바라냐고, 욕심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느낄 때 잘 견디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안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스스로 세상에 대해 은밀한 냉소로 무장한 경우가 많아 보이곤 했다.
물론 필자도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진 못했다. 혹시 서운했던 분이 있다면 날 용서하시라. 요즘 필자의 서툼과 세심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 물론 나부터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지독히 외롭게 살다 간 한 사내가 있다. 지독히 사내 복이 없이 살다 간 여자가 있다. 난 이들의 이름을 안다. 난 이들이 왜 이렇게 외롭게 살다 갔는지도 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이 이렇게 살다 간 것이 그들 탓이라고 질타할 수 없다. 전생의 업이었다고도 믿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이들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지만, 마음 한구석에 내가 사는 동안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은 떨쳐 버릴 수 없다. 필자가 이들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필자가 이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운명처럼 이들을 보살폈어야 했다는 부채감을 벗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이 세태는 서로 책임지지 않고 서로 부담 주지 않는 것이 세련된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고독할 준비가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불행하게도 스스로 고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누구나 혼자 살 순 없다.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생명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듯 어쩔 수 없이 서로 신세 지고 적당히 부담도 주고 무엇보다도 서로 책임도 져주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사랑이라고 믿는다. <수정본>
게으른 마술 / 에리히 캐스트너
이른 아침 욕조에서 일과가 시작된다.
욕조에 앉아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게을러 수도꼭지를 잠글 마음도 없다.
목욕을 해야 하지만 물만 철벙거릴 뿐이다.
물이 차오른다. 발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떠올리며,
그건 착각이다. 발가락이 조금 크게 보였을 뿐이다.
장미 향기를 맡기라도 하는 듯이 미소 짓는다.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렇게 게으른데도, 하지만 웃음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아, 판단력은 팬티에 남아 있다!
에너지, 머리, 남자 -
이 모두는 여행을 떠났다. 언제까지 여행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앉아 있다. 실업자다.
누워있다가 잠이 든다. 먹고 외출도 한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허튼 소리도 중얼거린다.
제비꽃이 핀 정원에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마치 풍선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 같다.
요정이 보낸 편지를 조각조각 내던진다.
그리곤 한동안 기다린다.
바람만은 편지를 읽어 주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이.
이렇게 게으르면서도 나름 할 일이 많다!
시계는 사방에서 째깍째깍 소리를 낸다.
시간은 달아나고, 붙잡으려 하면 또 달아난다.
시간은 쉴 새 없이 달린다.
게을러 영혼을 깨끗하게 씻지도 않는다.
시간을 사탕처럼 녹여 먹는다.
살금살금 집으로 가 휴식을 취한다.
게으름은 역기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힘들다.
혼자 지내고 교류도 없다.
돌을 깨는 일도 이것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빈둥빈둥 서서 빛나는 행운을 기다린다.
웃는 모습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무위도식으로 남는 건 빈 지갑 뿐만은 아니다 ----
이건 역사에서 가장 슬픈 일이다.
어느 경리 사원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 에리히 캐스트너
세탁해서 보내 주신 옷은 오늘 잘 받았어요, 어머니.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딱 맞게 도착한 것 같아요.
우체부가 방금 다녀갔습니다.
옷깃이 제게 너무 클 거라고 말씀하셨네요.
아니나 다를까, 힐데 이야기를 계속 하시네요.
저는 지금 제 월급으로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다 이야기했고, 이제 그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녀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요, 기다리다간 할머니가 되어
버리고 말 거예요.
제가 어머니의 편지를 읽지도 않는 것 같으니
이제는 엽서만 보내시겠다고요?
제가 어머니를 잊고 지낸다고요?
그건 정말 오해입니다 ---
제가 얼마나 자주 세세하게 쓰고 싶어 하는데요.
매주 보내는 주간 보고서뿐만 아니라요!
제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이번 편지를 보니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쉴 새 없이 책상에 앉아 다섯 자리 숫자를 계산하고 장부
정리를 합니다.
그런데도 일이 끝나지 않네요.
다른 일자리를 한번 찾아봐야 할지.
제일 좋은 건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거겠죠?
제가 멍청이는 아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옆길 인생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힘드네요.
일요일에 브레슬라우 사람들이 온다고 하셨죠?
제가 어머니께 권했던
세탁부 구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브레슬라우 사람들이 오면 안부 전해 주세요.
제 생일에는 선물을 보내지 마세요!
어머니가 쓸 것 안 쓰고 모으신 거잖아요.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편지를 잘 쓰지 않더라도 어머니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걸 믿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