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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마거트는 저녁식사에는 거의 식욕이 없었다. 얼른 식사를
끝내고 먼저 실례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잔이 토미를 도와
접시를 치우고 나서 디저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배인이 놓고 간 열쇠 꾸러미를 몸에 지닌 마거트는 우선 시트
두는 곳으로 가서 타월을 한 뭉치 들었다. 세 남자의 옷이랑
짐을 대강 훑어보려고 생각하고서, 누군가에게 발견되었을 때
깨끗한 타월을 돌리고 있다는 구실을 대기로 한 것이다.
케이츠가 가장 수상한 것 같았으므로 그녀는 우선 ‘송어
방’에서부터 시작했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면 알 수 있도록
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 그녀는 매우 조심해 가며 짐을 조사했다.
성격이 까다로운 멋쟁이에다가 굉장히 넥타이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밖엔 알아낼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이 R 데이븐퍼트
케이츠라는 것을 증명하거나 혹은 부정할 만한 편지나 서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오후 그가 읽고 있었던 책이 두 권의 다른 책과 함께
장롱 위에 놓여 있었다. 별 관심없이 속표지를 열어보니
커다랗고 화려한 필적으로 헌사(獻辭)가 쓰여 있는 것이었다.
‘옛날 이야기의 대가로서 감탄하는
데이븐퍼트에게오스카로부터.’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우리들은
오스카 와일드의 연극을 2년 전에 했었는데, 그것은 공연료가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이 말소된 것이 몇 년도일까 ?
케이츠는 아직 마흔은 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 10.
그녀는 갑자기 햇수의 계산을 그만두었다. 좀 작은 책을
집어들곤 그것이 。오셀로。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곳에도 W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위에 RD 케이츠의 재능에 대한 화려한
찬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책에도 케이츠에 대한
시적 찬사가 같은 서체로 씌어 있었는데, 서명은 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이었다.
‘못된 장난에도 한도가 있는 거야.’ 하고 마거트는 속으로
화를 냈다. ‘이런 책을 갖고 다니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걸까 ?
그렇지 않으면 잘난 체하고 있는 걸까 ? 그것도 아니면 내가 또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고서 오늘 오후에 이런 것을 써놓은
걸까 ? 이것을 쓰면서 나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며 껄껄 웃은
것은 아닐까 ? ’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노여움에 휩싸인 채
마직 시트와 타월을 침대 위에 놓고서 그녀는 복도를 가로질러
셸던의 방으로 갔다. 이 손님은 케이츠만큼 꼼꼼하지는 않았다.
가방 내용물도 거의 풀지 않았는데 옷장에서 양복 두 벌만
걸어놓고 당장 필요한 것만 꺼내놓은 것이다. 가방 속을 대충
훑어보면서 너저분한 내용물들을 가능한 한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데 그녀는 전력을 다했다. 수고한 보람도 없는 조사였다. 셔츠나
바지 속에 신분증명서와 파티 초대장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어디에도 모두 마이클 셸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옆주머니에 고무 밴드로 묶은 편지봉투가 몇 통 있었다.
발신인은 시카고에 있는 신문사이며, 그 신문사가 내세운 대통령
후보의 행선지로 생각되는 루트를 따라, 여러 도시의 주소로
마이클 셸던 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었다. 그 봉투의 내용은 극히
평범한 것이었는데, 경비로 필요한 액수의 돈을 동봉했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신분의 증명을 위해 교묘하게 조작된 위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다음에 그녀는 여행 가방
바닥에서, 똑같은 시카고 신문의 톱면을 오려낸 듯한 스크랩
북을 발견했다. 그 어디에서든 자기네 신문사의 후보자가
각지에서 한 명연설로 큰 갈채를 받았다고 하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기사에는 어느 것에든 마이크 셸던의 서명이 있었다.
그럼, 이 사람은 괜찮은 게 틀림없다고 그녀는 자신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조급히 굴어서는 안된다. 이런 것은 마이크
셸던이라는 신문기자가 있다고 하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이
남자가 정말로 그 기자인지 확신은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서
이름과 이런 서류를 빌려온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신문의
오려낸 부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대개는 그 후보자가
여러 사회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나와 있었지만,
끝부분 한 면은 샌프란시스코의 기자회견 사진이었다. 마거트는
창틀에 앉아 있는 그 남자의 모습에 정신이 들자 이상하게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사진 설명에는 당당하게 본사 특파원 마이크
셸던이라고 쓰여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믿음직스러운 턱의
선, 유머러스한 입가. 이제는 틀림없었다.
‘마이클 셸던은 역시 마이클 셸던이었구나.’ 하고 마거트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이런 사실을 안 마거트는 기쁨으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 탐정은 케이츠나
밀러가 틀림없다. 그녀는 서둘러서 하다 만 일로 마음을
되돌렸다. 케이츠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밀러의
방도 조사하는게 좋아. 확실히 해야만 하니까.’
복도로 나오고 나서 타월을 놓고 오는 것을 잊고 온 게 생각나
다시 타월을 들고 들어가 두 장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오자 케이츠가 조금 숨을 헐떡이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 깨끗한 타월을 놓고 왔습니다."
그녀는 팔에 안은 타월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 감사합니다." 그는 공손하게 대답한다. " 사랑스러운 퀸
양과 성실하고 정직한 톰린슨 아주머니, 그리고 친근한 당신.
지배인이 있을 때보다 훨씬 서비스가 좋군요."
그는 자기 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어조나 안색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밀러의 방에 들어가면서 ‘케이츠가
탐정인 것이 확실하다면 어떤 방법을 쓸까.’ 하고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아름다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듯했기 때문에, 보통 방법으로는 안된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겠지.’ 하고 그녀는 스스로 기운을 북돋았다.
필요하다면 마이크를 끌어들여 그를 말려들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밀러가 좋을지도 모르지. 밀러 쪽이
오히려 다루기 좋아. 조금 치켜주기만 해도 나를 위해서 어떤
곡예라도 할 테니까. 저녁식사 때 내게 다리를 바짝 붙여온 것을
냅다 차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 그 남자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거든.’
밀러 방을 조사하는 것은 빨랐다. 케이츠가 2층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욕실 청소라도 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마음내키는 대로 생각하라지 뭐.’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그녀는 역시 서둘러서 조사했다. 찰리 밀러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하는 증거는 많이
있었다. 여러 가지 부엌 도구가 들어 있는 견본 케이스가
있었고, 주문 장부가 일부분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그
밖에도 출장판매 세일즈맨의 여러 가지 준비물로 생각되는
신청서와 같은 인쇄물도 있었다. 찰스 D 밀러가 7월의 최고 성적
세일즈맨이라는 장식문자를 단 상장도 있었다. 그가 어젯밤에
가져온, 술이 많이 들어 있었던 가죽 보스턴 백도 있었다.
마거트는 타월을 두 장 놓고는, ‘케이츠를 해치우는 데 어떻게
하면 밀러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 ’ 생각하면서 방을 나왔다.
케이츠의 방문이 꽉 닫혀 있는 것을 보고서 그녀는 이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녀는 감사로
생각했다. ‘만일 그 여행 가방을 조사한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 하지만 위험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마음대로 하시라고. 나는 케이츠와 셸던, 밀러에게 깨끗한
타월을 나눠주고 왔으니까. 자, 나머지는 저 퀸이라는 여자
방에다가 갖다놓고, 내 몫으로도 두 장 들고 가는 거야. 호텔의
임시 지배인으로서 전혀 꺼림칙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아주
훌륭한 일이지 뭐.
자신의 행동을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봐도 상관없다는 혼자의
속단에서 그녀는 수잔의 방문을 크게 활짝 열어놓았다. 타월을
놓고 나니 문득 침대 밑에 반쯤 감추어진 작은 여행 가방이 눈에
뛰었다. 재빨리 가방 위쪽을 훑어보았다. 여기서 그녀는 문득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서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것은
머리글자였다. SQR로 되어 있었다. ‘왜 SQR일까 ? ’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이 ‘스티븐 。틴 로드스’라고
움직였다. 。틴 로드스라면 뒤집어서 줄여 로키라고 하는 별명을
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누구의 여행 가방일까 ? ’ 이 의문이 집요하게
그녀의 머리를 요란하게 두드렸다. 수잔과 밀러는 함께
도착했다. 밀러가 가방 하나를 그녀와 함께 이 방으로
옮겨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수상하다고 여기고서 그의 방을
조사해도 발견되지 않도록 이 방 침대 밑에 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케이츠의 짓인지도 모른다. 그는 수잔에
대해 순진하고 좋은 아가씨라고 줄곧 애기했었다. 그가 이
가방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그 아가씨는 그 이유도
묻지 않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가방이 누구의 것이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조사해야만 한다.
그것만 알면 다음에 취해야 할 방법도 알 수 있다.
가방을 끌어내려고 하는데 계단에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꼼짝않고 그 자리에 못박힌 채 섰다. 곧 수잔이 문에
나타났다.
" 어머나, 부인 ? " 수잔은 조금 놀란 듯이 말했다. " 뭘
찾으시나요 ? "
" 타월을 갖고 왔어요." 마거트는 자신의 목소리가 공손한
것이 화가 났다. ‘이런 바보 같은 여자에게 겁먹을 것 없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아가씨에게는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이번에는 좀 전보다
자신을 갖고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 여행 가방은 매우
모양이 좋네요. 내 친구가 이런 것과 꼭 닮은 것을 갖고 있지요.
상당히 가볍죠 ? "
" 네, 가벼워요." 수잔은 쾌활하게 대답했다. " 하지만 실은
제 것이 아니에요. 언니인 샤일라의 것이에요.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아서 무엇이든 빌려쓴답니다. 어머니가 곧잘 하시는 말처럼
가장 일찍 일어난 딸이 가장 좋은 옷을 입는답니다. 저는 좋은
가방이 없지만, 형부가 요전 크리스마스에 샤일라 언니에게 좋은
세트를 사주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라일리 언니의
집에 들러서 가져온 거예요."
‘거짓말 ? 이 가방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내게 숨기려는
걸까 ? 이 아가씨는 이런 애기를 스스로 만들어낼 만한 재치는
없어. 내가 이 머리글자에 관해서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은 게 틀림없어. 설령 목을 조르는 일이
있더라도 이 가방에 대해서는 사실을 알아내야만 해. 내용물이
무언지 봐야만 한다고.’
마거트의 목소리나 미소에는 마음속에 있는 이런 무서운
생각의 그림자나 형태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 이런 걸
빌려주는 언니가 있으니 참 좋겠군요." 그녀는 상냥하게 말했다.
" 안은 촘촘하게 칸막이가 붙어 있나요 ? "
" 아녜요. 칸막이는 전혀 없어요." 수잔이 대답했다.
‘좋아, 새끼 고양이 같으니 ! ’ 마거트는 화가 났다.
‘보여주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보겠어. 그리고 만일 내용물을
보고서도 어느쪽 남자가 진짜 소유자인지 알 수 없으면 반드시
자백시키고 말겠어.’
" 안을 좀 봐도 괜찮겠죠 ? "
가방 위에 웅크리고서 걸쇠를 벗기는 마거트의 목소리는
사탕처럼 달콤하다. " 난, 좋은 가방을 보면 맥을 못 춘답니다.
얼른 안감을 보고 싶군요."
그녀가 뚜껑을 열어도 수잔은 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거트의 눈은 흥분으로 반짝였고, 가슴은 고동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수수께끼의 해답에 접근했다고 하는 확신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물을 보고 나서 그녀는 실망 때문에 숨을
고르게 쉴 수가 없었다. 푸른색 비단 나이트 가운, 하의가 몇
벌. 게다가 수잔이 위장을 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다소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역시
SQR이라고 쓰인 머리글자가 붙은 여자의 가죽제 화장품 케이스가
들어 있었다. 그 남자들 물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마거트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서 생각했다. 그 머리글자가 수잔이
말한 대로 샤일라 퀸 라일리의 것이라고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뚜껑을 덮고 일어서면서도 마거트는 낙담하여 울고
싶었다. ‘잘못된 경보에 지나지 않았어.’ 하고 그녀는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케이츠가 맞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걸 드러내도 좋아.’
" 대단히 예쁘네요." 가방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그게 참
좋다고 하는 듯이 그녀는 수잔에게 말했다.
" 아래층으로 함께 내려가시지 않겠어요 ? " 수잔이 물었다. "
혼자 계셔서는 안돼요. 지금 조용히 애기들을 하고 있는데
대단히 재미있답니다. 마이크와 찰리가 로키 산맥의 대분수령에
관한 것으로 토론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전 이야기에 결말을
짓기 위해 콜로라도 지도를 가지러 온 거예요.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라서 항상 어디에 갈 때는 지도를 잘
들여다본답니다."
‘그래, 나도 아래로 내려가야지.’ 하고 마거트는 생각했다.
‘케이츠를 해치우는 데에 밀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면
지금부터 공작을 펴놓는 게 좋아.’ 그렇게 하면 계획을 세웠을
때 맘 먹은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거실로 들어갔을 때, 밀러는 잔을 든 손을 화려하게
흔들면서 애기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전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그 이후 죽 끝없이 계속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마거트를 보자
그는 얼굴을 반짝였다.
" 오, W 부인." 그는 뛰어나와 마거트의 팔을 잡았다. " 지금
맞이하러 가려고 생각했었죠. 굉장히 맛있는 하이볼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10. "
" 감사합니다, 찰리." 마거트는 눈을 내리깔면서 의미있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 지금은 술은 마실 수 있을 것 같지 않군요. 하지만 퀸
양에게서 여러분이 즐겁게 애기하고 있다는 말을 들고서
왔습니다. 웬지 저만 제외된 것 같아서요."
" 곧 고쳐 드리겠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마거트를 구석의
긴의자로 안내하고는 나란히 앉았다. " 둘이서 사이좋게
신경쓰지 말고 애기라도 합시다."
밀러의 태도는 의식적으로 마이크를 따돌리고 있었다.
마이크는 넓은 그 방 반대쪽의 난로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가
들어왔을 때 마이크도 뛰어나왔지만 밀러가 가까웠던 것이다.
마거트는 뒷짐을 지고 있는 셸던의 얼굴에 유감스러운 빛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셸던은 그곳에서 수잔
쪽을 돌아보고 그녀가 갖고 온 지도에 흥미가 있는 얼굴을 했다.
마거트는 일부러 밀러 쪽으로 몸을 기댔다.
" 하시는 일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 무척 재미있을 것 같네요."
밀러가 아주 신나는 기색으로 애기를 시작하자 셸던이
발끈하여 가시가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 수잔에게 지도를 갖고 오라고 한 건 당신이었소. 그런데 왜
보지 않는 거요 ? "
‘가엾은 마이크.’ 마거트는 득의양양했다. ‘지금 저 사람은
잠시 수잔과 사이좋게 있는 게 좋아. 그렇게 하면, 나중에 나를
위해 이용하고 싶을 때 이쪽에서 공작하기 좋거든.’
" 이제 지도 같은 건 볼 필요없소." 밀러가 아주 기분좋게
고함쳤다. " 그런 말은 했지만 더 멋진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오. 그렇죠, W 부인 ? "
" 찰리, 상당히 서먹서먹하군요." 그녀는 공손하게 말했다. "
왜 마거트라고 부르지 않는 거죠 ? "
" 물론 당신의 말씀대로 부르겠습니다." 그는 마거트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 다만, 마거트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서요.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겁니다. 틀림없이 어머니가 붙인 이름은
메기가 아닐까요 ? 무대에 나오는 예명처럼 만든 이름이
틀림없소."
" 무대에 ? " 메기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나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썼다.
" 그래요, 여배우들의 습관을 알고 있죠. 모두 예명을
사용하거든요. 그러니 당신은 필시 대단한 여배우였을 겁니다.
당신의 연극을 보고 싶군요."
탐정의 변장을 알아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처음부터 초조해
있던 마거트의 신경이 여기서 갑자기 휴하고 풀어지게 되었다.
마치 되살아난 듯한 심정이었다. ‘그 문제는 풀었으니,
나머지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다리고
있던 단서야.’ 그녀는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어. 내가 무대에 섰던 것을 밀러가 알고 있다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필이 애기한 게
틀림없지. 필은 친구인 로키 로드스에게 여배우와 결혼했다고
애기한 거야. 빈틈없는 필의 이 친구도 깡통따개 세일즈맨으로
변장한 것까진 좋았지만, 좀 과음해서 꼬리를 드러내고 말았군.
실망은 했지만, 이젠 확실히 안심했어. 악으로는 이제 짐작과
추측만으로 움직이지 않고도 끝나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이 허점을 드러낸 것을 이 사람에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만 해.’
"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마거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
그냥, 보지 못한 게 섭섭할 만한 연극은 아니었지요."
"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요." 밀러는
쾌활하게 반대했다. " 지방순회극단에서는 뛰어나셨고, 영화회사
같은 데서 쫓아다닌 것은 아닙니까 ? "
‘역시 필이 그런 것까지 애기했었군.’ 마거트는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결혼하는 것 때문에 내가 스크린
테스트를 받는 걸 단념했다는 애기를 정말로 받아들였던 거야.
이 사람이라면 아무런 조작도 필요없어. 밀러라서 다행이야.
케이츠였다면 무척 고생했을 텐데.’
밀러의 팔이 허리를 감싸왔고, 얼굴에 닿는 입김이 뜨거웠다.
그녀는 방 맞은편에 있는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눈길을
보내고는 약간 몸을 빼냈다. 밀러도 그녀의 눈을 보고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여기서 나갑시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2층에 있는 방으로 가면 둘이서만 있을 수 있죠."
" 어머나, 그건 안돼요. 그런 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녀는
완전히 믿는 듯한 표정으로 밀러를 올려다보았다. " 소문의 씨가
되어서는 곤란하지요."
" 그렇군요." 그도 신사인 체하며 맞장구를 쳤다. " 당신에게
나쁜 소문을 돌게 하고 싶지는 않소. 그러나 마이크와 수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딘가에 있을 만도 한데."
" 찰리,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 밖으로 나가서 내 차에 타면 되지 않겠어요 ? 그건 어때요 ?
"
" 훌륭하오." 그도 열을 내며 말했다. " 그럼, 갑시다."
밀러는 곧바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마거트가 말했다.
" 저 사람들에게서 도망갔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요.
라디오를 들어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 훌륭한 방법이잖아요 ?
호텔에는 전혀 없거든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차에 붙어
있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우리 두 사람 다 아주
으스대고 나갈 수 있죠."
" 명안이오." 밀러는 감탄했다. " 당신은 멋진 여성이오.
지혜가 있어요."
" 좋아요, 찰리. 시작해요."
" 알았소." 그는 방안에 들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를 냈다. "
음악은 어떻소 ? 자, 수지 큐. 음악은 싫소 ? 라디오를 켜서
생기 없는 바람을 쫓아버리지 않겠소 ? "
" 어머, 그거야 좋지만 . 10. " 수잔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 부인, 라디오를 켜도 괜찮을까요 ? "
" 공교롭게도 불가능해요." 마거트는 얼른 대답했다. " 자랑은
아닙니다만, 이 호텔은 구식이라서요. 찰리, 라디오는 없어요.
단념해 주셔야겠네요."
" 이런, 어처구니없군." 그는 불만을 나타냈다. " 음악이 듣고
싶은데. 라디오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내가 노래부르겠소."
" 차에는 라디오가 있어요." 그녀는 지금 생각이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 꼭 음악이 듣고 싶다면 차에 있는 라디오를
들으시는 게 어떻겠어요 ? "
" 그거 좋겠군." 밀러는 그녀를 잡아당기며 일으켜세웠다. "
자, 메기, 건너편으로 가서 음악을 들읍시다. 당신은 코트를
걸치고 오시오. 나는 추위를 피할 술을 한 병 갖고 올 테니까."
그녀는 거의 항의하듯이 웃으면서도 방에서 끌려나갔다.
‘잘했어.’ 그녀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완벽해. 마이크나 그 아가씨나 차에 가자고 한 사람이 밀러라고
생각하겠지. 밀러가 취해 있는 것도 봐서 알고 있고. 아무리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해도 이 이상 완벽하게
준비는 할 수 없을 거야. 곧 로키 로드스는 죽고, 그것이 불행한
사고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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