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버핏에 “은행 도와달라”… 스위스, 1-2위 은행 통합 추진
[글로벌 은행 위기]
SVB 파산 열흘, 뱅크런 불안 확산
美 중소형 은행 도미노 붕괴 우려… 정부에 예금전액 신속한 보증 요청
CS, 하루 13조원씩 유출 파산 위기… 스위스 정부, UBS와 합병 서둘러
파산 위기에 놓인 스위스 업계 2위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와 CS인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업계 1위 UBS 로고가 18일(현지 시간) 스위스 취리히 두 빌딩에서 각각 보이고 있다. 취리히=AP 뉴시스
스위스 당국이 자국 1, 2위 은행 통합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스위스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크레디트스위스(CS)발(發) 위기 확산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CS가 다음 주에 실제 파산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다른 은행으로 ‘은행에 대한 신뢰 위기’가 확산될 수 있어 당국이 인수합병을 서두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CS는 지난주 하루에 100억 달러(약 13조 원)꼴로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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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크런에 장사 없다…긴박한 시장
CS는 지난해 10월 영국 국채 위기 당시에도 파산설이 나오는 등 글로벌 금융 불안 시기마다 시장의 불신을 받아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부실 채권 등 특정 위험에 집중 노출돼 파산했던 것과 달리 CS는 최근 수년 동안 돈세탁 혐의 등 각종 스캔들과 소송전에 시달렸고, 여기에 미국 아케고스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 등 대규모 투자 손실까지 더해져 부실이 누적돼 왔다.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 폐쇄로 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자 CS에서 또다시 뱅크런과 상위 고객 이탈 현상이 벌어졌다. 스위스 당국은 CS 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결국 자국 1, 2위 은행 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규제당국도 긴밀하게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월가 관계자는 “CS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뇌관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같은 스위스 은행인 UBS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고 말했다.
UBS와 CS가 합치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UBS와 CS의 시가총액은 각각 650억 달러(약 85조 원), 80억 달러(약 10조 원)로 완전 합병될 경우 100조 원에 육박하는 ‘공룡 은행’이 탄생된다. 전 세계에 임직원 약 7만4000명을 둔 UBS와 5만 명을 고용한 CS의 합병 시 일자리가 최대 1만 개가량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베어스턴스 모먼트’ 될까 노심초사
SVB 폐쇄 당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주 거래 고객인 테크 산업 외에 시스템적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공포가 확산되며 일주일 여 만에 미 중소형 은행이나 스위스 CS처럼 ‘약한 고리’에 뱅크런이 집중돼 파산 위험이 제기되고, 이에 따른 불안이 다시 증폭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16일에는 11개 미 은행이 위기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39조 원 예치까지 밝혔지만 좀처럼 불안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주 이 은행 예금 인출 규모는 약 890억 달러(약 117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주요 은행 시가총액도 이달 들어 17일 현재 4600억 달러(약 602조 원)가량 증발했다.
이에 큰손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은 트위터에 “신뢰 위기가 번질 때 반쪽짜리 조치는 의미가 없다. 즉각적인 임시 예금 전액 보증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미 당국과 중소형 은행 투자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골드만삭스 투자에 나선 것처럼 ‘소방수’로 나설지 주목된다.
이번 위기가 2007년 베어스턴스 등 중소형 금융기관의 도미노 붕괴를 연상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에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는 등 월가 ‘큰손’들이 위기 진화에 나섰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스템적 위기가 다시 올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온다면 과거 중앙은행들이 썼던 ‘양적 완화’와 같은 해법이 막혀 해결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