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여자
- 김은경의 신작시를 중심으로
박 윤 영
얼룩덜룩한 얼굴로 누군가 흘러내린 벽지처럼 웃는다
울다가 웃는 사람의 얼굴은 닮아 있고
― 「어느 맑은 날」 부분
김은경의 신작 「어느 맑은 날」의 한 대목에서 나는 순간 멈칫했다. 늘 다정히, 또 유쾌하게 웃는 시인의 얼굴을 사랑하고, 그 모습이 익숙한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 이면에 감춰져 있을지도 모르는 눈물 자국 가득한 “얼룩덜룩한 얼굴”을 한번 상상해 본다. 하지만 역시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고통과 희열이 하나의 표정”이라는(「비우티풀」) 시인의 말처럼, 그 얼굴이 서로 닮았다는 “울다가 웃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나는 시인의 전작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2018)를 다시금 천천히 넘긴다. 그 안에서 시인은 “꿈에서도 눈물을 꾹 참았”고(「눈물을 참는 습관」), 음식을 먹다가도 “곡소리”를 내며 줄곧 “흐느”끼고 있었다.(「미역」) 그녀는 “지상의 모든 열매”가 “눈물방울 같”다며(「시월」), “보고 싶다는 말/아름답다는 말/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눈물”이 난다고 했다.(「서툰 사람들」) 또,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직 많”아서 대신 “흐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동경」) 그리하여 시인은 “일 없이” 울었고(「외롭고 웃긴 가게」), 좀처럼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시인의 얼굴은 “눈물 흘리지 않”은 날에도 “잔뜩 얼룩져 있”었다.(「옥수수버터구이」)
다르질링(Darjeeling)이 티베트어로 ‘벼락이 치는 곳’을 뜻한다는 건 이곳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시의 마음이 생성되는 곳도 ‘다르질링’이 아닐까. 구름이 몰리고 바람이 몰리고 눈물방울이 몰리는 그곳에서 패배자의 심정으로, 길 잃은 이의 마음으로 쓰는 게 시 아닐까.
-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시인의 말」 부분
“왜 우느냐고/무슨 일이냐고”(「염천」) 나는 시인에게 묻는다. 이 물음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쇳말은 정작 시인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공간인 “다르질링”(「누가 같이 살고 있다」)에 있었다. 다르질링은 티베트어로 “벼락이 치는 곳”을 의미하는데, 시인은 “구름이 몰리고 바람이 몰리고 눈물방울이 몰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가 만들어 진다고 말한다. 구름과 바람의 작용으로 말미암은 비와 벼락, 그리고 시인의 눈물이 한편의 시를 짓는데 필요한 질료인 셈이다. 시인은 안부를 묻는 전화에 곧잘 “너스레를 떨”고, 대체로 잘 “웃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시를) 쓰기 위해 늘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시는, 안 썼으면 좋았을 걸”이라고.(「어느 맑은 날」)
고통을 시로 옮겨 적는 이들이
저기 들판에 가득하여
(…)
빗방울에 새긴 글씨는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마가목 열매처럼 붉어진 두 눈으로 나는 응시하리라
- 「응시」 부분
시인이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시인의 말」에서 인용한 로렌 아이슬리의 “그것들이 우리 자신이었으므로 우리가 울 뿐”이라는 구절은 김은경의 시에서 일종의 시론으로 기능하며 ‘운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내 준다. 그러니까 시인은 울고 있는 “그것들”과 함께 울며 “우리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 허무와 슬픔을 대신 받아 적는 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마가목 열매처럼 붉어진 두 눈”으로 “응시”한 시의 순간들은 무엇일까.
비린 마을을 지나 버스는 내리 동해를 달리고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떠난 이의 뒤편도 흘러간 노래도 아닌 아주 사소한
모래바람 따위
사막에서도 길을 내어 가는 것들
- 「감은사지 가는 버스」 부분
시인을 태운 버스는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고 또 달린다. 시인은 흩어지는 “모래바람”을 보며 “사막에서도 길을 내어 가는 것들”의 사소한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가슴 아파한다. 신작 「어느 맑은 날」에서도 시인은 별내로 가는 33번 버스 안에서 오늘이라는 그저 그런 하루에 내재한 사소함을 헤아린다. 일상적인 안부 전화와 오래 알던 문우(文友)와 먹는 고추장수제비 한 그릇, 가고 다시 오는 계절과 차창 밖의 낯익은 풍경들까지 시인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갑자기 ‘시’로 귀결되는 것은 이러한 사소함이 시인을 “괜히” “울고 싶”게 만들고 그 지속되는 먹먹함이 그녀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탓이리라.
또 다른 신작인 「누가 같이 살고 있다」에서 시인은 방안에 가만히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양 백 마리”를 세어도 끝나지 않는 이 지독한 불면은 “낮에 들리지 않던 소리들”의 “이상하고 슬픈 돌림 노래” 때문이다.(「다르질링에서 쓰는 엽서」) 그 노래의 첫 소절은 동생이 전해 온 노모가 폐지를 줍는다는 소식으로 시작되고, “금간 접시”나 “죽은 화분”을 집에 두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소싯적 엄마의 엽렵한 목소리로 이어진다. 시인은 폐지라도 줍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노년의 정서적 허기에 대해 생각하고, 언젠가 거리에서 보았던 폐지 줍는 노인과 기우뚱거리는 리어카의 불규칙적인 리듬에 서서히 빠져든다. 잠은 여전히 오지 않고, 보이지 않던 “별의 뒷면”과 방 안을 부유하는 누군가의 “배꼽 냄새” 같은 사소한 것들이 마치 “세꼬시에 남은 가시”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각으로 시종 “깜빡― 깜빡― 깜빡―”거리며 시인을 괴롭힌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옥수수버터구이」) 곤란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시인은 자신을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같다고 여기며,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당도한 슬픔들” 때문에 하릴없이 “두 눈을 스위치처럼 깜박 감았다”가(「크리스마스 캐럴」) 뜬다.
불을 붙인다
흰 입김 내뿜는다
담배가 타오른다
연기(煙氣),
실오라기처럼 날아가는
집시의 뒷덜미처럼 사라지는
연기(緣起)
새카만 비밀을 삼키듯
연기를 삼키는 날들
- 「스모크」 부분
신작 「담배 한 개비」에서 시인은 희미하게 존재하다 흩어져버리는 연기의 속성에 주목하는데, 이는 전작 「스모크」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인용한 시에서 시인은 연기를 “실오라기처럼 날아가는”, 또, “집시의 뒷덜미처럼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가연성 물질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미립자인 ‘煙氣’와, 모든 현상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는 ‘緣起’로 확장해 낸다. 아마도 시인은 스스로를 태워 한낱 연기(煙氣)로 사라지는 지독한 연기(緣起)의 굴레가 우리의 생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다음 연에서 연기는 다시 “새카만 비밀”로 변주되는데, 어쩌면 시를 쓰는 행위는 무상성(無常性)이라는 생의 비밀을 묵묵히 삼키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은경의 신작은 “금간 접시”나 “죽은 화분”, “폐지”, “노인”, “별의 뒷면”(「누가 같이 살고 있다」), “유골함”, “죽음”, “장송곡”(「체리 향기」), “만장”, “사라진 이름들”, “재”(「담배 한 개비」) 등 허무와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담배 한 개비」에서 시인은 이러한 것들로부터 조금은 놓여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만장처럼 휘날리는”, “긴 곱슬머리”를 가진 한 사내가 솔(담배)을 태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담배 연기는 시인으로 하여금 “굴뚝에 연기”나 혼란하기만한 “풍진세상”을 연상하게 하지만 결국에는 공중에 흩어진 “사라진 이름들”을 호명해 낸다. 그리하여 때때로 그가 뱉어낸 연기는 “안녕, 안녕”이라는 반가운 인사가 되기도 하고, 하늘에 날리는 경쾌한 “휘파람”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이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우주는/재가 되어도 좋”다고 하는데, 이는 지상의 사소하고 허무한 것들을 떠올리며 늘 눈물짓던 시인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가벼워지는 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새소리가 들린다 귀를
놓아두고 왔는데
시큼한 향이 등성이를 물들인다 다 따먹지도 못할 수천 개 열매
환호를 지르며 노크한다
발랄해라 파도 같아
벽을 간질이는 키스 같아
- 「체리 향기」 부분
시인이 차용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체리 향기》(1998)에는 죽기 위해 길 위를 떠도는 자의 허무가 짙게 깔려 있다. 주인공 ‘바디’는 흙먼지로 가득한 공사장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마지막을 확인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한 노인이 그의 제안을 마지못해 수락하는데, 그는 과거 목숨을 끊으려 했던 자신의 경험을 풀어 놓으며 바디가 다른 선택을 하도록 조언한다. 영화 속에서 ‘체리 향기’는 노인이 그 스스로 등졌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로 그려진다. 죽음이라는 도착지를 향해 질주하던 바디는 딱 한번 차를 돌려 다시 노인을 찾고, 삶에 대한 미련인지 희망인지 모를 미묘한 태도를 드러낸다. 영화는 바디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향해가던 길 위에서 단 한번 망설였음만은 분명하다.
김은경은 신작 「체리 향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새소리”와 “수천 개의 열매” 그리고 그것들이 발산해 내는 “시큼한 향”을 “죽음”으로 표상되는 생의 허무와 나란히 겹쳐 놓는다. 시인에게 삶이란, “유골함을 들고 온 소년”처럼 “체념과 먼지와 안개와/한줌의 보리씨앗”이 공존하는 “누가 낸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은 “장송곡에도 아랑곳 않는 바람만이 계속되는” 곳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섣부르게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치마폭에 가득 담긴 “시디신 붉은 알”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발랄”한 “환호”나 달콤한 “키스” 역시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수께끼의 답은 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기 마련이듯, 그녀가 “울다가 웃는 사람”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 약력
문학평론가. 2016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숙명여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