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대구시 대명동에 사는 김진ㅇ씨는 우연히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라는 말을 들었다.
낡은 한옥에 사는 김진ㅇ씨는 부부는 부부가 함께 막노동을 해서 대학생 한 명, 고등학생 두 명, 삼남매를 교육시키며 살아가려니, 사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항상 경제적 여유가 없는 그들로서는 새로 좋은 집을 짓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아득한 꿈 속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이 자라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면, 언젠가는 꼭 좋은 집을 지어서 편안하게 살 것이라는 꿈을 항상 갖고 있었다.
어느 해 봄, 친구들이 갓바위 부처님을 참배하러 가자고 하였다. 그 날은 마침 날씨도 좋고, 별로 할 일도 없는 날이었으므로 김진ㅇ씨는 흔쾌히 친구들과 함께 팔공산으로 향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다다르자 온 몸에 땀이 비오듯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그도 부처님께 3배를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평소에 가졌던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 얼굴을 쳐다보니 그를 자비롭게 굽어보고 웃고 계시는 것만 같았다. 김진ㅇ씨는 가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갓바위'를 찾아가 약사여래 부처님께 일념으로 기도를 올렸다.
'갓바위'를 다닌지 약 3년이 되었을 어느 해 봄, 어떤 낯선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헌 집을 헐어버리고 새로 집을 지으라고 하였다. 김진ㅇ씨 부부는 돈이 없어 새 집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설계비, 공사비, 등록세 등 일체의 비용을 그들이 다 부담하고 새 집을 지어줄테니 걱정말고 허락만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집을 다 지은 다음 1~4층을 전세놓고, 그 돈으로 건축비를 뽑아가면되니, 아무 걱정하지말라고 하였다. 뿐만아니라 전세도 그들이 놓아준다고 하였다.
김진ㅇ씨는 며칠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김진ㅇ씨의 헌 집은 헐리고 그 자리에 말끔한 5층 빌딩이 세워졌다.
김진ㅇ씨 가족은 5층 주택에서 살고, 1층 일부에 슈퍼를 차렸다. 그리고, 집을 지어 준 사람들은 2,3,4 층을 전세놓아 건축비를 포함한 일체의 비용을 빼갔다.
김진ㅇ씨는 지금 세 준 1층 가게 두 칸과 2, 3, 4 층에서 받는 월세(전세와는 별도)의 수입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러한 모든 행운은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이 베풀어주신 덕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갓바위' 부처님 찾아뵙는 것을 잊지않고 있다.
............................................................................................................................................ 3. 안양 불교회관의 신도 임법련화 보살은 지금도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만 생각하면 환희에 젖는다. 4. 강화 보문사 선오 스님도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피를 잊지 못한다. 2~4 출처: 자비하신 부처님의 영험과 전설 청남 권영한저, 전원문화사간 |
............................................................................................................ 5.
5. 몸에 진흙을 발라 난을 면한 부처님
2차대전 말엽, 일제는 극심한 물자 부족으로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당하자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서 온갖 만행을 다 저지르기 시작했다.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집기 중 모든 쇠붙이를 강제로 공출하게 하는 한편 향교나 사찰 등을 찾아가서 놋그릇, 쇠절구, 촛대, 제기, 심지어 불상까지도 강제로 빼앗아 전쟁에 필요한 물자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당시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밤 당시의 주지스님 꿈에 법당에 약사여래부처님이 내려오셔서 "내 몸에 속히 진흙을 칠하라."하시는 것이었다. 주지스님은 꿈도 이상하다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며칠을 지냈다.
그런데 2,3일 있다가 똑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그때서야 이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꿈에 분부를 받은대로 부처님 몸에 골고루 진흙을 잘 칠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일본 순사와 많은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와서 절에서 사용하는 놋그릇과 향로,촛대등 많은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빼앗아갔다.
그때 한 일본 순경이 약사여래부처님을 보고 "이 부처님은 흙으로 된 土佛(토불)이군"하며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약사여래 부처님은 무사히 난을 면했다고 한다.(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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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0쌍의 쌍둥이들
한천사 약사여래 부처님의 위신력과 영험은 대단하다.
자식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이 만일 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일념으로 기도를 올리면 부처님께서 아들을 점지해 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자식 못 가진 한을 한꺼번에 풀어 주시는 듯, 아들을 하나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쌍둥이로 안겨 주신다.
이 부처님께 기도를 해서 낳은 쌍둥이는 정확히 몇 쌍이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약 50쌍의 쌍둥이는 지금도 이 절과 인연을 맺고 살고 있으며, 절에 오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 20쌍의 쌍둥이를 합하면 약 70쌍의 쌍둥이들이 한천사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아 태어났다고 한다.
울산에 사는 박□□씨(지금 86세)는 늦도록 자식이 없어서 아예 자기 팔자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라고 단념하고 살다가 우연히 한천사 부처님 소문을 듣고 100일 기도를 올린 결과, 50세 때 생남하여 지금 그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노후를 잘 보내고 있다.
역시 울산에 사는 최□□씨도 결혼한지 9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었다.
대구, 부산, 서울등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진찰을 하고 약을 먹어도 허사였으며 병원마다 가망이 없다고 절망적인 말만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천사 약사여래 부처님 소문을 듣고 열심히 100일 기도를 올렸다. 그리하여 그들의 정성이 부처님께 닿았는지 작년 8월(1995년)에 예쁜 딸을 하나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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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수생에게 용기를 주신 부처님
1994년 10월 말경, 100일 기도를 마칠 무렵이었다.
석양 무렵 등산복 차림의 한 젊은 청년이 찾아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하러 왔다고 말한다.
어디에 살고 어떻게 이 절을 알고 찾아 왔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에 사는데 무작정 발길 닿는대로 오다가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주지 스님은 그에게 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이름도 주소도 사연도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약사여래 부처님께 하루에 3000배씩을 올리라는 말 한 마디만 하였다.
다음날부터 그 청년은 열심히 절을 하였고 일주일을 계속 3000배를 올렸다.
1주일이 지난 다음 그 청년은 올 때와는 달리 밝은 얼굴로 주지 스님께 하직 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11시 경, 전화 벨이 울렸다. 기도하는 절에는 밤늦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또한 스님들도 밤늦게 오는 전화는 잘 받지도 않는 것이 관례이다.
그래서 그 전화를 달갑지 않게 받아 보니 전에 3000배를 하던 청년이 울먹이면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사연인 즉 자기는 4번이나 입시에 실패하여 온 동네와 집안의 웃음거리가 되어 살고 싶은
생각마저 없어져 자살이라도 할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갔는데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우연히 한천사에 가게 되었고 생각지도 않게 부처님께 3000배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3000배를 시작하고 1주일째 되던 날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한번 더 도전하라는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창피를 무릅쓰고 다시 용기를 내어 부처님 시키시는 대로 5번째 도전을 하였으며, 막내 여동생과 함께 시험을 쳤는데, 지금 막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고 너무 기뻐서 제일 먼저 스님에게 알리고 싶어서 밤중임을 무릅쓰고 전화는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이제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좋으며 자존심을 회복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청년은 벅찬 기쁨과 감격 때문에 말을 잘 이을 수가 없었다.
연세대학교에 입학이 된 그 청년은 해마다 방학이 되면 꼭 한천사를 찾아 와서 열심히 약사여래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주지스님)
5~7 출처:www.andongkwon.pe.kr 청남 권영한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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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방생을 그냥 방생이라고 하기보다는 방생수복(放生修福)이라고 많이합니다. 방생하여 복을 닦는다는 뜻으로 그만큼 방생공덕이 크기에 방생에 수복을 같이 붙여서 읽는 것입니다.
.................................................................................................................................................. 9.
약사 부처님의 금광(金光)
보광거사진화 옮김 바오야터우(寶丫頭) 전재, 2009년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나는 절에 자주 갔는데, 당시 집사람은 상당히 반대했죠!(그때집사람은 부처님을 전혀 믿지 않았고, 불법이 무엇인지도 몰랐답니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집사람이 절에 자주 가는데, 집사람이 불교에 호기심을 갖게 된 이유는두 가지 일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먼저 한 가지 일을 말씀 드리죠.)… 내 큰아들은 유전적으로 과민성체질이었습니다. 늘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고 특히기침을 했다 하면 안색이 거무스름해질 정도로 기침을 해대고 어느 때는 울어도 울음소리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기침을 했습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지켜보자니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양의(洋醫)에게도 보이고 중의(中醫)에게도 보이며 사흘이 멀다 하고 타이베이에 있는 병원들을 들락거렸습니다. 아이의 기침과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느 의사가 잘 본다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좋아지는 기미가 없었고 아이가 계속 울어대며 기침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아야 했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밤중 한 시 무렵에 또 아이의 기침소리에 시끄러워 잠이 깼습니다. 당시엔정말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고 한밤중에 동네 병원 문을 또 두드리기도 난처했는데, 왜냐하면 그제와어젯밤 연속해서 영화시(永和市)에서 내가 비교적 잘 알고지내는 종(鐘) 의사 선생님을 한밤중 두 시에 깨워서 진찰을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의사를 찾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고 아이의 괴로움을 줄여줄 좋은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자하니 약사주(藥師咒)를 정성껏 염송하기만 하면 불가사의한 영험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곧 끓인 물을 종이컵에 따라서 응접실의 낮은 탁자 위에 올려두고 석조 바닥에 꿇어앉아 합장을 한 채 탁자 위의불경을 보면서 약사주를 염송하기 시작했습니다.(당시에는 아직 약사주를 외우지 못했기에 한 자 한 자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사주를 108번 읽어서 한컵의 약사주수(藥師咒水)를 만들어 아이에게 먹여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본것이죠. 그때는 경건하고도 정성스럽게 꿇어앉아 약사주를 108번 다 읽는데 한 시간이상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약사주를 108번 읽는데 1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석조 바닥에 아무 것도 깔지 않은 채꿇어앉아 있었더니 다 읽고 나서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습니다. 두 무릎이 다 납작해질 정도였답니다. 집사람은 약사주수를 아이에게 먹이면서 달래서 재웠습니다. 그 다음 다음 날아침에 집사람은 내게 이상한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집사람이 한밤중에 일어나 아이가 솜이불을 잘 덮고자는지 살펴보려다가 보통 사람 크기의 좌불(坐佛) 한 분이아이가 잠들어 있는 곳의 공중에 떠계셨는데 머리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고 그 부처님에게서 나온 금광(金光)이 큰아들을 덮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큰아들이기침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큰아들은 이미 대학 3학년이되었는데, 아버지인 나보다 건강하게 자라났답니다. 원문출처:http://www.fomen123.com/fo/jingdian/yaoshijing/ganying/8858.html [출처] 약사 부처님의 금광(金光) (무외시공덕회) | 작성자 보광거사 ............................................................................................................... |
10. 약사유리광여래다라니의 위신력
견공 가족 해피가 이제 17살에 들어 섰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건강한 편인데, 얼마전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심장 체크 후 고혈압이 있는걸 알게 되었어요.
이정도면 말을 못해서 그렇지 통증이 꽤 있었을 거라시네요..
어찌나 미안하고 속상하던지요..
약을 받아오고, 약 먹이고 3일쯤 후부터
약사경에 부처님 말씀이 생각나
38절
《 나모 바가와테 바이샤지야 구루 바이두리아 쁘라바 라자야 따타가따야 아르하떼 쌈약쌈붓다야.
따디야타 옴 바이샤지예 바이샤지예 바이샤지야 싸무드가떼 쓰와하
문수사리여, 만약 병고에 시달리는 남자나 여자를 보면,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병든 사람을 위하되, 깨끗이 씻고 양치하며, 음식이나 약 또는 벌레 없는 깨끗한 물에 이 신주를 백 여덟번 빌고 나서, 먹게 하면 모든 병고가 없어지느니라...》
깨끗한 물 떠서 신주를 백여덟번 빌고
약사여래부처님께 간절한 원을 청정한 마음으로 말씀드리고 해피에게 주었지요.
그리고 그저께 병원에 가서 혈압체크
170에서 110으로!
아니 일주일 만에이렇게 뚝 떨어질 수가^^
선생님이 혈압을 재는데 평소 체크시간보다 두배도 넘는 시간동안 길게 하시길래 왜그런가 하였더니
선생님도 혈압 재시면서 뭔가 잘못된거가 하여 길게 체크하셨나봐요^^
보통은 일주일 약 먹어보고 99%정도는 약의 용량을 늘이는데 해피는 줄여야겠다고, 매우드문 경우라고 하시며ㅎㅎ
부처님께서 주신 영약으로 해피는 1%에 들었네요ㅎㅎ
혈압약 먹이며 부처님께서 주신 다라니약을 먹이고
가끔 심장에 손을 대고 약사여래부처님,아미타부처님을 염하며 치료해주시기를 말씀드렸어요.
경전의 말씀대로 하여보고, 종종 염불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저의 작은 정성에도 광명을 비추어 주시네요 ()
늘 저의 정성보다 많은 것을 주시는 부처님.. ()
부처님 감사합니다 ()
그리고 약사여래부처님의 명호를 들을 수 있게, 약사경을 수지독경할 수 있게, 장엄하신 부처님을 뵙고 공양올릴 수 있게 하여 주시는 우리 스님,
스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다리니약을 부처님께 청하여 받아놓았습니다^^
불자는 신심과 정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우리 스님 말씀.
저의 정성은 늘 부족하지만
스님의 말씀을 조금은 알것같습니다^^
환희심으로 아름다운 밤^^
법우님들 굿밤하세요^^
출처: 다음 안심정사 카페(cafe.daum.net/ansim24) 화엄행자(자월혜)님 글
11. 약사여래 기도와 관음기도로 담석증이 낫다.
부산 연산동에 사는 노일심장 보살이 하루는 혜원정사로 고산 스님을 찾아와서 삼배를 올리고 말했다.
"스님, 제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담석증이랍니다. 쓸개에 돌이 세 개나 박혀서 수술을 해야한대요.
수술하지 않고도 나을 수가 있을까요?"
스님은 "아, 그거야 염불 열심히 하면 나을건데 수술은 뭐하려고 해요?"하고는 일심장 보살에게
"하룻밤 잠자지 말고 시간마다 생수 한 컵 떠놓고 약사여래불 108번 부르고 약사여래멸제일체중생고뇌진언인 '나무 바가바제 비살사루로 벽유리발라 바갈나사야 다타아다야 아라하제 삼먁삼붇다야 단야타
옴 비살서 비살서 비살사 삼몰아제 사바하'를 108번하고 그 물을 세 모금 마시고 나머지 시간에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세요. 그리하면 관세음보살이 낫게 해줄 것입니다."라고 했다.
스님이 시키는대로 하룻밤을 꼬박 새워 염불한 보살이 새벽녘에 요강에 소변을 보니 딸그락 딸그락 소리가 세 번 나기에 하도 신기하여 요강의 오줌을 부어내고 자세히 보니 돌이 분명했다. 보살은 그 돌을
휴지에 싸서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담석이 정말로 없어진 것이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상하다. 오진은 아니었는데 담석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자 보살은 휴지에 싼 돌을 보이면서 "새벽에 오줌을 누는데 이것이 나왔습니다."하였다.
의사는 "거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저절로 나왔을까?"하였다.
보살은 "밤새도록 염불을 했더니 이것이 나왔습니다. 하고는 휴지에 싼 돌을 챙겨 고산 스님에게 가서 보여드리면서 입이 마르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옮긴이의 말: 아마 노일심장님의 경우는 담석이 아니고 요로결석의 경우인 듯합니다. 결석도 이렇게 배출될 수 있으니 담석도 이렇게 기도해도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예화와 같이 하루 기도로 승부보려고해서는 힘들 듯합니다. 꾸준히 기도하여야지요.
출처: 고산큰스님의 관세음보살 영험록-소원을 이루는 법 (담앤북스간)
참고: 산스크리트어음 약사여래멸제일체중생고뇌진언
나모 바가와떼 바이샤쟈구루 와이두-리아 쁘라바 라자야
따타-가따-야 아르하떼 싸먁쌈붇다-야 따디아타-
오-ㅁ. 바이샤졔 바이샤졔 바이샤쟈 싸묻가떼 쓰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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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약사여래불 기도로 건강을 찾은 어느 보살
약사여래께서는 일찌기 12 대원을 세워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 주고 계시며,
그 자비하신 원력은 오늘에도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약사야래의 가치력을 입은 사람 중에는 올해 50 대 초반의 주부가 있어
그 보살의 얘기를 지금 부터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약사여래불의 12 대 서원을 먼저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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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
자기와 남의 몸에 광명이 끝없고, 상호(相好)가 원만하기를 서원함
(2) 수의성판원(隨意成辦願)…
몸은 유리와 같고 치성한 광명은 마음의 암흑을 비추어 모든 사업이 생각대로 이루어지기를 서원함
(3) 시무진물원(施無盡物願)…
중생의 욕구를 다 이루게 하기를 서원함
(4) 안립대승원(安立大乘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를 불교로, 소승교는 대승교로 이끌어 들이기를 서원함
(5) 구계청정원(具戒淸淨願)…
청정한 수행을 하는 이에게 3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게 하기를 서원함.
* 3취정계는 보살수행의 계법임.
(6) 제근구족원(諸根具足願)…
신체의 불구자를 완전케 하기를 서원
(7) 제병안락원(除病安樂願)…
병을 없애고 위 없는 증과(證果)에 이르게 하기를 서원함
(8) 전녀득불원(轉女得佛願)…
여자 몸을 남자로 변하게 하여 성불하기를 서원함
(9) 안립정견원(安立正見願)…
사사(邪思), 사견(邪見)을 버리고 정견에 인립하기를 서원함
(10) 제난해탈원(除難解脫願)…
중생으로 하여금 도난, 투옥 따위의 벗어나게 하기를 서원함
(11) 포식안락원(飽食安樂願)…
음식이 넉넉하고 불법을 듣고 절대적인 안락경에 있도록 하기를 서원함
(12) 미의만족원(美衣滿足願)…
빈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아름다운 옷을 얻게 하기를 서원함
때는 1985 년 이른 초 여름이었다.
그 보살은 당시 여러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의사로 부터 자궁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엄청난 진단을 받고,
용하다는 한방 병원과 침술치료하는 곳을 찾아 다니며 치료를 했다.
그러나, 별다른 차도는 없고
서 있기도 힘들어 하고, 숨은 차고, 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지냈었다.
결국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큰 수술을 눈 앞에 두고
1987 년 4 월 중 순 쯤 둘째 딸아이의 유치원 봄 소풍을 맞이 하게 된다.
딸 아이는 엄마의 어려움도 모르고 소풍을 같이 가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픈 몸으로써 부모 마음은
'같이 동행은 못하나마 출발 지점에 가서
이웃에 사는 유치원생 어머니라도 찾아 아이를 부탁하여, 떠나는 모습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유치원에 와서 염체불구하고 자기집과 가까운 학부모가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아픈 배를 움켜쥐고 울쌍을 하였다.
그 모습이 불쌍하였던지 한 남자 아이의 부모가 나섰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분은 비록 처음 보는 분이지만 너무나 고마워 눈물이 저절로 솟아 두 볼을 적시었다.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고 "내 아이를 부탁한다"고 하니
그 어머니가 무조건 동행을 하자고 하였다.
외출복도 안 입은데다가 소변도 늘 재대로 보지를 못하고, 걸음조차 불편한 그녀는
몸은 뚱뚱 부어서 누가 보아도 중환자임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학부형은 그녀를 보면서 웃으면서
"제가 마련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되니, 무조건 같이 가면 몸을 낫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옛말에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살기를 원한다'고 했듯이
그녀는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귀가 솔깃하여
거동도 불편한 몸으로 무작정 준비도 없이 그 학부형과 함께 차에 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아이들은 선생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그 학부형은 이미 몸을 가누고 지쳐있는 그녀의 사대육신을 여기저기 만져 주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잠시후 고통없는 소변이 하염없이 나왔다.
게다가 몸의 통증도 차츰 가시며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그 학부형이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유리광여래를 모시고 있는 부처님 제자임을 알았다.
그녀는 원래 천주교 신자였다.
그렇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가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집은 바로 이웃이었다.
치료라고 해야 아픈 곳을 지압식으로 만져 주는 것 외에는 아무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약이 있을 수 없고, 주사를 맞는 법도 없었다.
오로지 정성으로 부처님 전 기도와 사대육신을 만져 주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었다.
차후에 안 일이지만
그분도 병명도 없이 장기간 몸이 아파서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다 찾아 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고 한다.
결국에는 어떤 분의 권유로 약사여래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여 병마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아픈 사람을 위하여 약사여래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법사님이시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당신은 천주교 신자이니 열심히 천주교를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근 일년을 천주교(성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그분이 모시고 있는 약사여래부처님 전에 기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년 후에야 그분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내 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한 것이다"는 넒은 마음에서
천주교 신자인 그녀를 굳이 불교를 밎으라고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급기야 이미 부처님의 신앙에 깊이 젖어 개종을 하고,
오지 말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않고 약사여래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였다.
하루는 그분이 보살님(그녀)을 모시고 무엇인가를 깊은 생각에서 한 말씀을 하시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얘기였다.
"보살님은 시집와서 딸만 둘 두었는데 끊어진 대도 이을 겸 임신을 해서
아들도 얻고 지병인 자궁병도 고치자"는 것이었다.
'나이가 37살이고, 몸도 합병증에 더욱이 임신을 하려면 자궁이 튼튼해야 하는데
자궁병인데 천부당 만부당한 말도 안되는 얘기'같아서 처음에는 웃고 지나쳤다.
하지만 1년여 동안 느낀바도 있고 병원 치료도 불가능하고,
그 분을 만남으로써 많은 차도를 느꼈으므로
'이판 사판 무엇을 망설이랴?
무조건 믿고 따르리라. 잘되면 아들도 얻고 병도 고치고, 일석이조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그동안 가족의 눈총, 친인척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들
죽음보다 더욱 괴로운 이 심정, 그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남편과의 불화,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 심지어는 정신병자 취급.......
보살님은 시키는 대로 하리라고 작심을 하였다.
조상님 천도제도 지내주고, 산신, 용왕기도도 하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약수 - 즉 백 고을 약수를 떠다 집에서 기도를 하였다.
말이 쉬워 백 고을이지
전국의 시, 군, 읍, 면이 다른
고장 절과 약수터를 찾아 다니는 그 고충은 말로 다 표현할수가 없었다.
한 예로..........
김포공항 이륙, 전남 광주공항 도착, 남원 구례 지방 택시 대절,........
그러나 그것도 남편의 퇴근시간 전에 집에 먼저 귀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유명사찰 약수를 한 곳이라도 더 뜨려다 비행기 이륙 시간 5 ~ 6 분 남기고
광주 비행장으로 급행....
택시 기사의 말에 "5 분 먼저 가려다 50 년 먼저 간다"는 안전사고 표어도 잊은 체
160 키로메타로 번개처럼 달리는 차 속에서도 "약사여래불"정근을 하면서
눈물이 한강수를 이룰 정도로 소리없이 울기만 하기도 수십차례.......
공항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올망 졸망 물통을 짊어지고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검색원이 '배행기 타고 약수를 길러가는 사람도 다 있다'고 핀잔을 주면서
"못 가지고 들어간다"고 할 적에는 그만 기가 막혀
"얼마나 고생 끝에 귀중하게 얻은 약수인데"라고 물통을 끌어 안고
땅바닥에 털석 주저 앉아 그만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했단다.
그리하여 3년이 지난 어느날
드디어 몸도 건강해 지고
기도 덕분에 약사여래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었다.
3 년 동안 일백 고을 산천 좋은 절간마다 대웅전에 예를 올리고
보시함에 보시를 하고
약수물을 길러다가 집에서 법사님이 그만 할 때까지 기도하라는 말씀만 믿고
'엉 엉 엉' 통곡을 하기도 했다.
3 년이란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지만
보살님으로는 30 년보다 도 더더욱 긴 시간들 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지내온 것을 글로서 다 표현하겠습니까?"하던 그 보살님 얘기가 오늘 문득 떠 오른다.
태산 같던 남편은 미쳤다고 이혼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야단법석,
그 뿐이랴? 한 번은 태백산 구인사 관음기도 철야정진하기 위하여 일박을 하고 돌아와
힘에 겨워 누워 있는데, 남편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왔느냐?"면서
붓글씨를 사용하는 서진으로 마구 때리고 발로 차고, 온 몸에 피멍이 들고
앞니가 한개 부서지고, 눈 두덕이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보살님은 장기간 몸이 아픈 죄로
정신병 환자 취급을 받았으며, 이유없이 구타하는 남편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로 인하여 각방을 쓰게 되는 것을 이해 못하는 친척들..
더욱이 친정 부모님 부모님 시댁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아뭏튼 힘든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어쨋거나 건강을 되찾고 자궁병이 나아서 임신이 된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혹시나 아들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달이 찰수록 불안하여
불러온 배를 쓸어 안으며 "꼭 아들을 점지하여 주십시요"하며 기도를 드리면서
포교원을 왕래, 말없는 남편 냉대하는 주위 시선들..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의 나날들......
그러나, 언제나 따뜻하고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과 같으신 법사님,
그 자비심에 365일을 하루 같이 포교원을 다녔다.
아........
드디어 "으아아앙" 하는 순간
"아들입니다."라는 간호사의 말에 보살님은 긴 잠에서 기절을 하였다.
산모 건강하고 아들을 얻은 기쁨......
"진정 부처님 고맙습니다"
"법사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반가움보다는 지나간 3 ~ 4 년 세월의 가슴을 도려내는 슬픔과 감격의 눈물이 한 몫을 하였다.
아들을 낳았는데도 남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쳐다 보지도 않는 남편,
6 개월이 지나도록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주민등록증에 입적도 못시켰던 슬픔......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아버지를 빼다 닮았고
주위에서 보살님의 마음을 엄동설한에 봄눈 녹이듯 고통을 덜어 주었다.
남편의 냉대 속에서 어쩌다 한 합궁이
지금은 온 집안의 화목과 대들보 역활, 아니
끊어질뻔한 대를 이어 자랑스런 그 아들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가 있을까?
여기서 또 하나
이러한 약사여래불을 신앙하면
다음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경에는 설하고 있다.
★ 재물에 인색하거나 계율을 깨트리고 방해하며 탐내고 성내는 등의 악업을 일삼아
3 악도에 떨어 지더라도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들으면 거기에서 해탈을 할 수가 있다.
★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듣고, 그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죽은 후에 그 곳에서 태어난다.
★ 만약 병이 들거나 악귀의 해를 입거나, 수재나 화재등을 민나거나
맹수의 피해를 입거나 하더라도 한 마음으로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외우고
염하면 거기에서 해탈을 할수가 있다.
★ 수면이 연장되며, 모든 횡액을 면할수가 있다.
부처님은 종종 대의왕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달려간다.
그러면 먼저 진찰하고 아픈 원인을 찾았다면 그에 맞는 치료나 약을 쓰게 된다.
그러면 환자는 아픔을 잊고 다시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된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이다.
중생이 고뇌와 번뇌 그리고,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아픔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아픔을 진단 하시고 그에 맞는 수많은 처방을 진단하시고,
그에 맞는 수많은 처방을 내려 주신다.
이것이 대기설법 혹은 응병여약應病與藥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 사람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에 맞는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아픔을 치료하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대의왕불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늘 보살의친구를 방문 하시는 불자님이나 혹은,
개종을 하시려는 갈림길에 서 계신 분들에게 이런 글을 서툰 자판 실력으로
한 타 한 타 칠수 있는 기쁨도 바로 이같은 수많은 불자님들의 직접 입은 가피에 대한
원력담을 납승으로 통하여 전해 주고자 이 공간을 마련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설마. 설마.......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 일게다.
그 설마. 설마하는 사람들은 10 년 혹은 20 년 이상을 사찰을 다니며 기도를 했는데도
아무런 가피를 못 얻어 보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수행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기도를 할 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했거나,
혹은 건성으로 남에게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불자들이었다고
납승은 오늘도 자신있게 말을 할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정성이 깃들여져야 하고,
그 정성 속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접어들어 일념으로 기도 정진을 할 때
모든 가피는 기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적어 나갈 수많은 가피의 경험들........
아마 분명 여러분의 가슴에 무엇인가가 닿으리라 생각하면서
누가 보아주든 안 보아주든 늘 자주 올려 보고자 이 지면을 만든 것이다.
분명 누군가가 찾고 있는 경험담이 있을 것 같아서..................
밤이 깊어가는 삼경에 진각 합장.
출처: cafe.daum.net/smdrhf86 제석천의 금강저 카페 행성님 글 옮김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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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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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나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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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수복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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