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장,
정선은 한참을 아들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참으로 잘 생기고 멋진 아들의 모습이다.
이제 서너 달만 있으면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기다려진다.
제대를 하고 나면 취업걱정을 하지 않고 바로 출근을 할 수 있는 법관이 된 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대견스럽다.
정선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기라는 생각을 한다.
지성이와 지우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부듯해져 온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불 꺼진 컴컴한 집이 참으로 쓸쓸하고 적막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진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동안 살기 바빠서 외로움과 허전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왔던 정선에게는 자식들이 없는 텅 빈 집이 참으로 허전하다.
자식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정선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임을 느낀다.
자식들만 바라보며 자식들 생각만 하며 살아왔던 지난 세월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성이도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더구나 법조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 출 퇴근 시간이 따로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얼마 안 있으면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품안에서 이젠 자식들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싸 해져온다.
민영규는 그런 정선의 마음을 이해한다.
민영규 자신도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을 하고 이제는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전화도 잘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참으로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식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각자의 독립된 생활을 해 나가며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부지런히 살아갈 것이다.
이제 부모는 그저 지켜보는 일만이 남아 있다.
민영규는 거의 매일 저녁을 정선과 함께 식사를 한다.
때로는 정선의 식당에서 때로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낸다.
그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로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고 부담이 없다.
“유사장! 이번 휴일에 어디 바다가라도 가서 바람이나 쏘이고 옵시다.“
”바다요? 좋겠네요. 바다를 가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잘 되었습니다.“
”그럼 아침 일찍 출발을 해 봅시다.“
“그러지요.”
“내가 유사장 아파트 앞으로 가겠소. 몇 시까지 준비를 할 수 있겠소?“
”그야 이르시면 언제든지 준비를 할 수 있지요. 준비랄 것이 뭐가 있겠어요? 이대로 민사장님을 따라나서면 될 것이 아닌가요?“
”그럽시다. 내가 새벽 여섯시까지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을 하리다.“
그들은 그렇게 약속을 한다.
정선은 약속을 하고 나서 막상 준비할 것을 생각한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을 하게 된다면 아침을 사 먹어야 한다.
그러나 적당한 곳에서 아침을 파는 곳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재료를 구입해서 준비를 한다.
정선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한다.
생선 알을 구입해서 밥과 함께 간을 해서 버무려 김에 돌돌 만다.
김 또한 한 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잘라서 밥을 싼다.
무 말랭이 장아찌를 곁들이고 과일을 깨끗하게 씻어 보기 좋게 담고는 커피를 준비해 보온병에 넣는다.
김과 함께 생선 알이 씹히는 맛 또한 일품이었다.
밥을 짓는데 그냥 쌀을 씻어 하는 것보다는 불린 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서 짓는 밥이 향기도 좋고 고소하다.
정선은 새벽같이 일어나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서 민영규를 기다린다.
민영규는 여섯시가 조금 못되는 시간에 전화로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정선은 간편한 차림을 하고 집을 나선다.
“와! 그렇게 입고 나서니 십년은 더 젊어 보이십니다.“
“놀리지 마세요. 정장보다는 이런 것이 돌아다니기에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민사장님께서도 아주 간편하고 편안하게 입으셨네요.“
“하하하......... 아마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했던 모양이죠? 어디로 출발을 할까요?“
”그야 민사장님이 이미 결정하신 것이 아닌가요?“
”하하하.......... 오늘은 제가 하루 몽땅 다 주시는 겁니다. 그나저나 뭘 이렇게 잔뜩 싸 가지고 오신 것입니까?“
“별 것 아닙니다. 아침을 제대로 사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서 가면서 차 안에서 요기를 하려고 조금 준비를 해 봤어요. 우선 커피부터 마실까요?“
”커피를 준비해 가지고 오셨어요? 참 좋지요. 안 그래도 너무 이른 새벽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어떨까 싶어 그냥 나왔는데 아주 좋습니다.“
정선은 준비를 해 가지고 온 커피를 야외용 컵에 따른다.
“커피 향이 아주 좋습니다.”
민영규는 커피 마니아였다.
그는 하루 종일 수없이 커피를 마신다.
물을 대신해서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커피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민사장님은 참으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 같아요.”
“네! 수시로 마시고 있지요.“
“이젠 조금 줄이시고 다른 차로 대신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이제는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 아닌가요?“
”그런가요? 그러나 손쉬운 것이 역시 커피라서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커피 대신 다른 차로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우리 국산차도 좋은 것이 참 많지요.“
“그럼 유사장께 부탁을 드려볼까요?”
“호호호........... 그러고 보니 제가 짐을 떠맡은 것이 되나요?“
그들은 유쾌하게 출발을 한다.
민영규는 일단 경춘가도로 차를 몰고 간다.
그의 계획은 한계령을 넘어 동해안의 해변도로를 달려볼 생각이다.
싱싱한 생선회도 먹고 바닷바람을 쏘이면서 차를 달려볼 생각인 것이다.
아직 피서 철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운 느낌이 드는 늦봄의 날씨는 한낮에는 초여름의 날씨처럼 기온이 올라가 더운 느낌을 준다.
“아, 정말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이 시원해요.”
정선은 창문을 열고 큰 심호흡을 하며 공기를 들여 마신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는 경춘가도를 민영규는 속도를 낸다.
한참을 그렇게 정선은 눈을 감고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즐긴다.
그런 정선의 모습을 민영규는 방해를 하지 않겠다는 듯 운전에만 신경을 쓰며 정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정선은 자신이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한 것이 언제였나를 생각해 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참으로 바쁘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산뜻해지고 기쁨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민사장님! 이렇게 나온 것이 참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이다.“
”정말 기분도 산뜻하고 마음이 가볍고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센스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정말 진즉에 이렇게 함께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으로 나도 그런 센스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려!“
“왜 민사장님 탓인가요? 그동안 저는 참으로 옆을 돌아볼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어떻게 하든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요.“
”그렇겠지요. 여자 혼자 몸으로 두 자식을 그렇게 키워내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아무리 수많은 재물을 가졌다고 해도 그렇게 키우기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유사장이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어요.“
“제가 대단할 것은 없지요. 우리 지성이와 지우가 올곧게 잘 자라준 것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죠.“
”엄마의 성품을 그대로 닮은 아이들이니 어련하겠습니까? 지성이도 그렇고 지우 또한 유사장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 문뜩 문뜩 들 정도니까요.“
“제 성품이 좋을 것이 있나요?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 세울 것이 없는 별다른 특징이 없지요.“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유사장은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죠.“
민영규는 가만히 정선의 손을 잡는다.
정선은 흠짓 놀라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정선! 정말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오.“
”............................“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오. 허나, 재혼에 대해서는 결코 억지로 허락을 받을 생각은 없소. 언제라도 당신 마음이 허락하는 날까지 기다릴 것이오.“
”..................................“
정선은 무엇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민영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정선이다.
“정선! 당신도 나를 싫어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신은 반드시 나를 허락해 주리라 믿고 있소.“
민영규는 정선의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민사장님! 솔직히 재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재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지만 만일 제가 재혼을 한다면 민사장님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언제가 될지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그것이 언제가 되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매일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데 급할 것이 뭐가 있겠소?“
”그렇지만 민사장님은 하루가 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요!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온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소. 다만, 당신을 바라보면 늘 함께 있고 싶고 아침이면 제일 먼저 당신을 보게 될 것을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오.“
정선은 문득 시간을 본다.
벌써 아홉시가 넘어간다.
“참, 아침을 먹어야지요.”
정선은 민영규의 말을 회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뒷좌석에 있는 가방을 손을 뻗어 앞으로 가져와 가방을 연다.
그리고 미니 김밥을 하나 집어 민영규의 입에 넣어준다.
민영규는 정선이 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먹는다.
“무엇이 들었기에 씹히는 맛이 아주 좋소. 톡톡 터지는 것도 같고 고소한 맛도 나고 너무 맛이 있소.“
”입에 맞아요?“
“맞다 뿐이오? 정말 아주 훌륭한 맛이오. 당신의 음식솜씨는 어디를 내 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이오. 어떤 음식이라도 당신 손만 가면 기막힌 맛으로 변할 것이오.“
“너무 그렇게 추켜세우지 마세요. 생선 알을 넣고 미니김밥을 만들어 본 것뿐이에요.“
정선은 자신의 입에도 하나 가져가고 다시 민영규의 입에 넣어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그들은 한계령을 넘어 속초항에서 싱싱한 회를 먹고 다시 해변도로를 따라 쭉 내려간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정선이 핸들을 잡는다.
두 사람은 서로 교대로 운전을 해 가며 삼척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급할 것도 없이 느긋하게 구경을 하면서 나아간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머물며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며 그렇게 유람을 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즐긴다.
정선의 마음은 모처럼만에 여유를 가지게 된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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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