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같은 여자예요 /
꿈도 많은 여자예요/
당신의 향기속에 /
꽃 나비가 될수 있는 /
연약한 여자입니다 /
여자 마음을 어떡하라고 /
내 맘을 울리시나요./
나의 가슴에 사랑을 피워준 /
당신은 누구세요./
"각하 아이엠에프에
가야겠습니다"
"아이엠에프
그거이 어데있는데."
아이엠에프에 가서
손 벌려야 한다는
고건 총리의 보고에
김영삼 대통령이
대답한 말 이라고 한다.
"아이엠 에프
그거이 어데있는데"
대통령도 모르고
국민의 99.9%가 몰랐다는
아이엠에프.
그것이
갱제를 신탁 통치 한다는 인터내셔널 머니 펀드 라는 것을
알았을 땐
나라도 국민도
절단 나 있었다.
아이엠에프가 갱제를
신탁 통치 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시절
생 머리가 허리 자락까지
찰랑 거리던 한 언니를
알게되었습니다.
그 언니는
30여명의 직원을 둔
수영복 만드는
공장 사장이였습니다.
나는 그 수영복 공장을
빤쓰 공장이라 했고
그 언니를
빤쓰 사장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것 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보험 가입 할때나
이것 저것 따지지
남녀가 불 붙으면
이것 저것 따지지 않잔아요.
시도 때도 없이 만나
밥 먹고 술 먹고
술 먹고 밥 먹고
노래방 가고...
남녀가 만나서
술 먹고 밥 먹고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방 가는게 뭐겠어요.
뻐언 한거 아니에요.
뭐 다아들 해 보신
그 절차를 밟고 있는 거죠.
아이엠에프에 돈 빌리려
경제 기획원 관계자가
김포 공항을 출발 한 줄
꿈에도 모르고
흘러 넘치는 돈에
어제도 오늘도
부어라 마셔라
띵까 땡까
흥청망청 진창으로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옵빠 돈 있으면 좀 빌려줘."
" 어따 쓰게."
"직원들 봉급 줘야 하는데
수금이 안되서 그래,
보름 만 쓰께."
고위층에 빽과 줄이
연결된 사람들은
아이엠에프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증거 입니다.
넘쳐나던 돈이 갑자기
돌지 않기 시작 한 것입니다.
"현찰은 없고
어음 쪼가리 하나 있는데
할인 해서 쓸래."
"그래 줘봐,
내가 깡 해서 쓸께."
" 쓰고 나머진 가꽈.
글고 여자가 깡이 뭐냐 깡이
깡패도 아니고
바리깡도 아니고
할인 이라고하는거야"
"알았어 잘난체는..."
그녀가 필요하다는 금액 보다
다섯배 많은 액수의
어음을 건네 줬습니다.
쓰고 나머지 가져 오면
그녀와 마추픽츄 로
여행이나 갈 참 이였습니다.
몇일 뒤
티비에서 아이엠에프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기름 값이 두배 세배로 뛰고
여기 저기서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메아리 쳤습니다.
내가 하던
코딱지 만한 사업장도
아이엠에프의 직격탄에
초토화 되었습니다.
말라 버린 돈 때문에
곤란 했지만
그녀에게 빌려준 돈 은
최후의 보루로 생각 해
찾지 않았습니다.
아이엠에프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자
그녀가 쓰고 나머지를
가지고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통화를 시도 했습니다.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수소문 해보니
공장도 폐쇠 되었고
집도 다른 사람이
살고있었습니다.
여기서 돌아서야 하는가
그냥 이대로
할말은 너무도 많은데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
잘가라 그대
어디서든
잘 살아라 그대
여기에서 접어야할 사랑이
우리들의 운명 이였네
어디서든 잘 살아야 해
나보다 행복 해야 해
부디 부디 잘 살아야해.
부디 부디 행복 해야 해.
그녀의 친정을 알고 있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못 찾을 건 없지만
찾지 않았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가 고향인 그녀
국민 학교를
수석으로 댕겼다고
자랑질 하던 그녀
니 대가리가
아니 니 머리가
수석 닮았다고 하면
까르르 웃으며
"맞어 맞어 내 머리가
수석 닮긴 했지."
하며
너스레 떨던 그녀
야
완도 화흥 국민학교 수석 졸업생
니 형편 풀렸으면
그때 쓰고 남은 돈 줘라.
아니 쓴 돈까지 다 줘라.
이 옵빠 술 고픈데
술 사 자실 돈이 없다.
정읍 내 패밀리 아그들 풀면
니 찾는건 일도 아니데이..
아이엠에프 때
서울역 시계탑 아래서
마지막으로 봤으니께
얼추 30년이 지났다.
잘 살고 있제.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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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서울역 시계탑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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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잊을만도한 세월이건만
여즉 찾고 계신 거 봉께로
미련이 쪼까 남았능가 보오
아제요
절대 있어도 못 받으니
딴데 가서 알아보쇼 ~잉
ㅎㅎ
포기 해야 것지요.
아이에에프 만 없었어도
새 역사가 창조 되었을텐데..
에효
그런데
여기서 질문~
팩트요?
팩트에 살 이빠이 붙였소?
넌픽션 확실 합니다요.
넌픽션에는 아지노모도를 첨가하지 않습니다요.ㅎ
글, 잠 재밌게 쓰시네요
덕분에 즐거웠어요
님 글 ~
내일도 기다리고 있을테요^^
지금은 방학 중이라 쫌 한가한데 개학 하면..
우얀둥 칭찬해 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요.
한때는 어음으로 깡도 하고
밥 벌어 먹었었는데 고것 때문에
파탄 난 집안도 많지요...
그나 저나 서울역 시계탑 다시 원상복귀
시켜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에 드갑니다... ㅋ
깡이 보통 3푸로 100일
3푸로 100일 이면 딱 10푸로 입니다.
1억 깡 하면 천만원이 깡비 라는 거죠.
그시절 깡만 해서 먹고 사는 사람 많았습지요.
아이엠에프때 그덜 나고 작살난 사람들 많응께
나 역시 그때 주식해서 집 두채 날렸시유
아고 아까바라
야튼 재미있는 연애담 꼭 내일 같네유 ㅎㅎ
ㅎ ㅎ ㅎ
그 시절 한때 다 그랬지요
그땐 돈도 잘 벌리고
심도 좋았고
돈 못 벌고 심 없으니께
에효
그시절은 잘 넘겨었는데
그 다음 다음해부터 사방터지기
시작해서리 힘든시기였쥬^~~
처자하고 거시기 거래한건
다 무효이니까
잊어 버리시는게 좋을듯요^ㅎㅎ
ㅎ ㅎ ㅎ
말이 그렇다는 거지
벌써 잊었습니다요.
뭐 찾는다 해도
채굼질 심도 없고 돈도 없고
그래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요
그 어음 깡은
같은 핏줄끼리 해도 사단이죠ㅎ
저희 가족 중에도 두 집이서
급할 땐 이용해놓고
해준 사람이 어려울 땐
나 몰라라해서
지금도 말안해요
안줘도 그만이라 생각하시면
마음은 편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잘만 하면 워낙 수익이 좋으니께
깡만 전문으로 하는 업이 있었어요.
보통 3푸로 100일 인데 그게 따지고 보면 10푸로 이자 거든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모조리 도망 가고
전화 안되고. 휴지같은 어음 몇장 내 생 처음 으로 차를 옆 도로에 세워놓고
소리내어 엉엉 한참을 울었지요
마누라 패물 딸래미 돎반지 모두팔아 인권비
해결 해주고 마누라 가 생 처음으로 파출부
나갈때 또 한번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목심이 고래 심 줄 보다 질기다고
그래도 다 덜 살아났어요.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 생각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이거 nonfiction?
멋진 옵빠였네요
ㅎㅎㅎ
ㅋㅋ ㅋ
다큐멘터리
그땐 심이 좋았걸랑요.
이제 에효....
서울역 시계탑 그녀님
대체 워디서 사십니까?ㅎㅎ
하마님 5빠가 찾아유 ㅎㅎ ^^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강동구 워디 산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심 없어서
찾아봐야 .....에효
서울역 시계탑 사연이
첫사랑 명자씨에 이어 두번째쥬?? ㅎ
서울역 시계탑 처럼
명자씨도 그녀도
다 세월에 묻혔네요.
깡은 선이자 떼고 그런다더만요...
가만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부터 결혼 할 때까지
여자한테 차 인거 세어 보니
얼추 스무번은 된거 같아요.
인물 훤 하고 심시고
돈 잘 벌고
그란디 언니들은 왜 그렇게
나으 가심에 대못을 박았는지 모르겠어요.
^^;
이 나이들이 되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만
울 멋진 하마님도 전설의 여인 같았던
그녀를 떠올리시며 사연을 올리셨네요. ㅎ
돈처럼 돌고 도는 우리의 거친 삶들.
이젠 그 추억과 함께 건강하시기를요.
맞어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
맞어요
제가 해외 여행을 가도 사진을 안 찍는데
지금은 사진을 많이 남겨요
사진이 없으면 추억이 잘 안되더라고요